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歸農人 장영란의 우리 땅, 우리 맛 ⑤

벼 이삭 나오니 논에서 오리 빼고 무 밭에 씨 뿌리고

  • 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벼 이삭 나오니 논에서 오리 빼고 무 밭에 씨 뿌리고

4/5
솔직히 말해 김장배추를 자급한 지는 얼마 안 된다. 그러니까 처음 몇 년은 제대로 못했다. 무에 견주어 김장배추는 참 어렵다. 8월 모종, 9월 어린 배추에 어찌나 벌레가 많이 꼬이는지. 잡아도 잡아도 벌레가 다시 생긴다.

첫해 꿈도 야무지게 친정집 김장거리, 맞벌이하는 친구 김장거리까지 꼽아가며 배추를 심었다. 넉넉하게. 한데 배추는 안 자라고 벌레는 꼬이고. 밭에 가 보면 배추가 잎이 없어지고. 어찌저찌 고갱이가 차기 시작했다.

그 어리디 어린 고갱이 사이로 벌레가 드글드글대는데…. 한 포기에서 한번에 스물네 마리까지 잡아보았다. 그러니 배추가 제대로 될 리 있나. 속이 안 찬 배추로 김장을 담가 먹어야 했다. 포기 수가 아무리 많으면 뭐하나. 속이 안 찬 배추는 절여 독에 넣으면 얼마 안 된다. 부드러운 배추에 길들여진 입에 질기기만 하고.

처음에는 배추 농사가 잘 안 되는 게 유기농을 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내년에는 눈 딱 감고 비료를 조금만 주어 볼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씨 뿌리고 어린 싹을 기를 때는 희망을 기른다. 희망이 있으니 또 열심히 해보지. 새벽에 재를 뿌려주기도 하고. 한낮에 식초를 뿌려주기도 하고. 그러면서 배추 농사는 어린 배추일 때 벌레가 먹는 속도보다 배추가 자라는 속도가 빠르게 키워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먹을 테면 먹어봐라 하며 쑥쑥 자라도록. 그러려면 뭐니뭐니해도 땅이 좋아야 한다.



밭에서 일하다 보면 먹을거리 지천이다. 맨손으로 갔다가 한아름씩 안고 돌아온다. 김매고 돌보아준 품값인가. 토마토와 수박이 아직 있고. 풋콩이 하나 둘 달린다. 그걸 따다 밥에 놔먹으면…. 달빛에 박꽃이 하얗게 피고 박이 영글면 어린 박도 먹는다. 파란 박 껍질을 벗기고 속을 긁어낸 뒤 하얀 속살. 그 빛과 촉감처럼 깨끗한 맛이다. 말려두었다 묵나물로 먹어도 좋다. 들깻잎, 호박잎, 호박, 오이….

이렇게 먹을 게 많지만 이맘 때는 옥수수 철이다. 시장에는 진작 옥수수가 나왔지만, 우리 밭에는 이제 한창이다. 밭에 서 있는 옥수수. 옥수수가 영글기를 기다리며 ‘먹을 만할까?’ 껍질 속사정을 어림짐작하곤 한다. 사람보다 새와 벌레가 먼저 안다. 금세 옥수수 겉껍질을 뚫고 파먹은 자리. 그렇다면 이제 옥수수가 알맞게 영근 게다.

고추는 비닐 집에서 말려야

어느덧 여름 기운이 꺾이는 처서(處暑)다. 아침저녁 선선하고 해가 제법 짧아졌다. 풀들도 뻗어나기보다 씨를 맺는다. 길가에 노란 마타리가 하늘하늘 흔들리고. 여기저기 보랏빛 쑥부쟁이 무리지어 피어난다. 검불 뒤덮인 곳에 사위질빵 하얀 꽃이 피어나니 진짜 가을인가 싶다.

참깨가 벌써 다 자랐다. 5월 말에 심었는데 그 사이 꽃 피고 알 영글어 가을걷이하는구나. 가장 먼저 가을걷이하는 게 참깨다. 참깨는 꽃이 층층이 달려 있는데 밑에서부터 피어오른다. 그러니 꼬투리도 열매도 밑에서부터 익는다. 꼬투리가 익으면 벌어져 알이 다 빠진다. 그러니 제때 안 거두면 참깨 알을 다 잃어버릴 수 있다. ‘참깨 농사는 털어봐야 안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잘 지었더라도 제때 안 거두면 헛수고다. 그 잘디잔 열매를 주울 수도 없고….

아래 꼬투리가 다 익으면 참깨 대를 쪄(베어) 단으로 묶어 말린다. 밑에 꼬투리가 익어 벌어져 알이 떨어져도 위 꼬투리는 이제 막 맺혔다. 그러니 말리면서 두세 차례 턴다. 참깨를 쪄놓고 나면 다 털 때까지 비가 안 오시라고 빌고 빈다. 곡식이 알이 잘수록 빨리 자라고 씨를 많이 만들어내는지. 참깨는 수천 배 자기 복제를 한다. 한 움큼 심어 한 포대 얻을 수 있다. 씨 많이 만들고 빨리 익는 참깨. 길러보니 참깨 성질이 보인다. 고추농사를 많이 하는 집은 바쁘다. 때맞춰 붉은 고추를 따야지. 새벽에는 이슬을 털게 되니 못하고. 한낮 땡볕에 딴다. 포대를 하나 들고 고추 포기 사이로 기어다니며 고추를 딴다. 어른만 하나, 아이들도 거들어야 한다.

붉은 고추를 따오면 그걸 말리는 일이 크다. 우리 동네는 고추를 겁나게 많이 하지만 말리는 기계를 가진 집이 하나도 없다. 모두 비닐 집 속에서 말린다. 바로 ‘태양초’다. 옛이야기에 나오듯 햇살 아래 직접 말리는 게 아니다. 비 가림 해주지, 햇살을 더욱 뜨겁게 모아주지. 햇살 아래 그냥 말리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좋다.

4/5
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목록 닫기

벼 이삭 나오니 논에서 오리 빼고 무 밭에 씨 뿌리고

댓글 창 닫기

2022/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