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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돌보는 일, 철학

  • 고승철│저널리스트 koyou33@empas.com

영혼을 돌보는 일,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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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돌보는 일, 철학

‘그리스 신화와 철학으로 보는 영혼의 역사’<br>장영란 지음, 글항아리, 540쪽, 3만2000원

신화(神話)는 신비로운 이야기다. 곰이 사람이 되고 사람이 알에서 태어나기도 한다. 신(神)과 인간이 교유한다. 지옥에 간 사자(死者)가 살아나 세상에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마치 꿈속에서 본 듯한 장면이다.

이런 내용이 때로는 그럴듯하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허황된 스토리가 수천 년 동안 유지되는 비결은 뭘까. 인간의 이룰 수 없는 욕망을 담았기 때문이 아닐까. 신화는 개인의 창작물이라기보다는 수많은 사람의 꿈이 어우러진 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명징성(明澄性)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과학자에게 신화, 설화, 전설, 야담, 동화 등은 황당무계한 이야기로 들릴 뿐이다. 논리적인 플롯을 갖춘 소설마저 ‘소설 같은 이야기’로 치부된다.

삼천갑자 동방삭이 땅바닥을 한 번 구르면 60년을 더 산다는 설화나 구렁이가 아름다운 아가씨로 바뀐다는 전설 따위는 허구에 불과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합리성을 유독 중시하는 과학자도 자신이 독실한 크리스천이면 노아의 방주, 모세의 기적 같은 종교적 사건을 팩트라 믿는다. 그게 신앙이다.

비(非)이성적인 체계를 부정하는 유물론자도 비 오는 밤에 공동묘지에 가면 귀신이 나오는 광경을 연상해 벌벌 떤다.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이성적인 잣대로만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신화의 영역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20세기 최고의 신화 해설자’라 불린 비교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신화란 결국 우리가 궁극적으로 걸어야 할 ‘내면의 길’에 대한 안내자”라고 갈파한 바 있다.



신화 가운데 그리스 신화가 가장 유명하다. 서양문화의 뿌리여서 그럴 것이다. 한국에서도 ‘신화=그리스 신화’라는 등식이 성립될 정도다. 한국의 청소년들에겐 단군 신화나 중국 반고 신화보다 제우스, 헤라, 헤르메스 등 그리스 신들에 관한 이야기가 더 익숙한 편이다.

철학에서도 그렇다. 제도권 교육에서 배우는 철학은 서양철학이 동양철학보다 중시된다. 서양철학의 원조 격인 그리스 철학은 여전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소크라테스, 플라톤의 사상을 살피는 데서 서양철학 공부를 시작할 정도다.

현대는 영혼을 잃어버린 시대

서양의 정신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리스 신화와 그리스 철학을 알아야 한다. 양쪽 분야를 아우르는 ‘그리스 신화와 철학으로 보는 영혼의 역사’란 신간이 눈길을 끈다. 이 분야 책이라면 대부분이 번역서인데 국내 저자의 오랜 내공이 빚어낸 역작이어서 의미가 크다.

저자인 장영란 박사는 그리스 철학을 전공해 학위를 받았고 ‘장영란의 그리스신화’‘플라톤의 국가, 정의를 꿈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식론’ 등의 저서를 낸 전문가다.

저자는 서문에서 “우리는 영혼을 잃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오늘날에 영혼에 대해 말하려는 이유는, 정신(mind)이라는 개념이 너무 협소한 까닭에 초기 그리스부터 사용돼왔던 영혼 개념이 지시하는 내용을 모두 포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영혼은 과연 존재하는가. 육체와 영혼은 다른 것인가. 사람이 숨지면 몸무게가 21g 줄어든다는데 이것이 영혼의 무게인가. 인간 이외에 개나 말도 영혼을 가졌을까. 이런 의문들에 대해 영혼의 존재를 믿는 사람은 이에 걸맞게 그럴듯한 설명을 한다. 부정론자는 “영혼이 있다는 주장은 허황된 것”이라 일축한다. 무신론자의 귀에는 귀신 이야기나 지옥, 천당 개념이 모두 지어낸 것으로 들린다. 자연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다수 사람은 영혼의 존재를 믿는다. 종합적인 지식체계가 막 짜일 무렵인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사람들 대부분이 신, 영혼이 실재한다고 믿었을 것이다.

이 책은 먼저 그리스 서사시에서 영혼은 어떻게 탄생했는지부터 설명한다. 호메로스의 작품에서는 인간이 죽는 순간 영혼은 신체를 떠난다고 묘사됐다. 호메로스의 대표작 ‘일리아스’에서는 아킬레우스가 헥토르를 죽였을 때 헥토르의 영혼이 육체를 떠나 하데스(지하 세계)의 집으로 갔다고 표현됐다. 영혼은 생전의 모습을 띠지만 만질 수도, 잡을 수도 없는 허상이다. 호메로스 이후의 서정시인 핀다로스는 영혼이 죽음 이후에도 파괴되지 않고 살아남는 이유는 신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라 설파했다. 영혼은 수많은 신체를 돌아다니다가 하데스에서 심판을 통해 처벌과 보상을 받는다는 것이다. 소포클레스 등 그리스 비극 작가들은 영혼을 인간 감정의 원천으로 보았다. 용기, 격정, 연민, 불안 등의 감정은 영혼에서 비롯된다고 믿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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