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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막걸리 교실 마지막회

아이들에게 술을 가르치자!

발효과학 속 문화인류학

  • 허시명| 술 평론가 sultour@naver.com

아이들에게 술을 가르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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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술을 가르치자!

2010년 12월7일 대구시교육청에서 열린 건전한 술 문화 교육. 한 학생이 술 취한 느낌을 체험할 수 있는 안경을 쓰고 책을 집으려 하고 있다(왼쪽).

이 아이들을 어찌할꼬!

건전한 술문화교육단의 단장은 중앙대 정헌배 교수가 맡았다. 또한 음주예방교육을 담당해온 한국주류연구원,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 한국대학생알코올문제예방협회가 동참했고, 한경대 우리술연구소 이종기 소장, 한국전통주연구소 박록담 소장, 서울벤처정보대학원대 정철 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이문주 박사, 디아지오코리아 전 대표인 김정식 교수, 인터솔류션 김갑식 대표 등 술 관련 전문가들이 함께했다. 필자는 막걸리학교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교육단에 참여했다. 참여자들끼리 의견을 모아 ‘아름다운 삶, 책임 있는 음주문화’라는 소책자를 만들었고, 농수산물유통공사와 전국 시도교육청의 도움을 받아 고교 3년생을 대상으로 음주교육을 하게 됐다.

강연을 하러 찾아간 곳은 인천의 부평고와 대구시교육청. 2시간 강의의 첫 시간은 ‘우리 술과 우리 문화’, 둘째 시간은 ‘나를 지키는 책임 있는 음주’가 주제였다. 첫 시간은 필자가, 두 번째 시간은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 나장원 연구원이 진행했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육은 필자로서는 처음이었다. 성인이 아닌 학생들이라 술을 마시며 교육을 할 수도 없었다. 학생들 또한 무슨 교육을 받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나온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개중에는 술에 관심이 있는 학생도 있지만, 스스로 선택한 강좌가 아니다 보니 강의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졌다.

머리를 짜낸 끝에 강사들은 최대한 그 학교의 실정에 맞는 강의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필자가 부평고에서 주목한 것은 축구부로 유명한 이 학교가 국가대표 A매치 출전 선수 최다 배출 고교라는 점이었다. 김남일, 이천수, 최태욱, 이근호, 조용형, 김정우, 김형일, 김영철, 박용호 선수 등이 모두 부평고 출신이다.



그래서 축구 얘기로 강의를 풀어나갔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 앞서 16강 진출을 기원하는 ‘대한민국 대표 막걸리 16강’ 선발대회를 치렀다는 얘기를 했다. 미국 맥주회사 버드와이저는 월드컵 공식 스폰서 회사이고, 일본 술 회사들은 월드컵 공식 후원사로 홍보활동을 폈다면서 월드컵과 술의 관계를 들려줬다. 우리 막걸리는 아직 공식후원사가 될 만큼 성장하지 않았지만, 조기 축구나 등산 뒤에 갈증 해소를 위해 마시기 좋은 ‘음료’라고도 했다. 이 대목까지는 학생들이 두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그런데 축구와 술의 함수관계 이야기를 지나 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술을 왜 마시는지, 술을 마실 때 왜 예절이 필요한지 따위를 얘기하는 대목에 이르자 학생들은 절반 이상 책상에 엎드리거나 눈을 감고 있었다. 달성고 학생 500명가량이 모인 대구시교육청에서의 강연도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은 동원 예비군들처럼 그저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임무를 다하고 있다는 듯했다. 이교도 앞에서 다른 종교에 대해 설교하는 하는 것 같았고, 포로들을 모아놓고 승전국의 위대함을 외치는 것과 같았다.

필자는 기업 임원, 고위공직자, 양조기술을 배우려는 사람,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 위주로 강연을 해왔다. 강의를 듣고자 하는 사람들이었다. 고교생 음주교육은 이것과 차원이 다르다. 강의를 듣겠다는 의욕이 전혀 없거나 이미 주량에서 진도가 꽤 많이 나가 있는 ‘어린 고수’들이 대상이다.

연전에 개그맨 J씨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음주교육을 하려고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한 적이 있다. 그가 음주교육을 한다면 술에 대해 어떤 얘기를 해도 학생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을 것이다. 학생들과 그 사이에는 이미 라포(Rapport·신뢰와 친근감으로 이루어진 인간관계. 상담이나 교육을 위한 전제가 된다)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민속학자가 현지조사를 할 때에 가장 먼저 염두에 두는 것도 라포 형성이다. 상대가 내 질문에 잘 대답해줄 수 있는 인간관계를 형성한 뒤라야 조사가 원활하게 이뤄진다. 강연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내 말을 들을 수 있는 상태를 아주 빠른 시간 안에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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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명| 술 평론가 sultou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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