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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김승호의 약초 이야기 ⑮

어혈 풀고 굳은 것 깨뜨리다

장자의 나무 옻

어혈 풀고 굳은 것 깨뜨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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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의 항암작용

그런데 이 옻나무는 옻칠을 하는 도료로만 쓰임새가 한정되지 않는다. 약이다. 그것도 암과 같은 불치의 질환을 치료하는 영약이다. 옻 속의 후스틴과 피세틴 등 몇 가지 성분이 항암작용을 한다. 항간에 인산의학으로 유명한 김일훈 옹은 옻을 난치병 치료의 기본 약재라고까지 말한다. 그는 유방암을 비롯한 여러 가지 난치성 질환에 이 옻을 오리나 닭과 함께 넣고 조리해 복용하면 효험이 크다고 했다.

실제로 옻은 항암제로 쓰여서 혁혁한 성과를 보였다. 옻나무 진액에서 독성을 제거해 만든 ‘넥시아’는 사형선고를 받은 것과 같은 말기 암 환자들을 10년 이상 생존시켰다. 강동경희대병원 한방암센터의 한의사 최원철 씨가 이뤄낸 쾌거다. 이 바닥이 워낙 말만 많은 곳인데, 그의 성과는 말로만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과학적인 데이터, 논문자료 다 있다. 어쨌든 이 시대는 과학적이라고 해야 통하는 세상이니까. 덕분에 한동안 그는 갖가지 딴죽걸기와 논란의 중심에 서 있어야 했다. 개인적인 고초도 컸던 것 같다. 주류 의학인 양의학계에서 이런 일을 해냈다면 반응이 사뭇 달랐을 것이다.

옻은 한약재로 쓰일 때는 건칠(乾漆)이라고 한다. 맨 처음 옻나무에서 얻어진 진은 우윳빛이다. 고운 모시나 명주 등으로 불순물을 걸러내는데 이를 생칠(生漆)이라 한다. 이 생칠은 수분이 많으므로 햇빛이나 숯불로 수분을 증발시키는 과정을 거치는데 그렇게 하면 투명한 옻액이 된다. 이를 투명칠(透明漆)이라 한다. 한약재로 쓰이는 건칠은 흑갈색의 수지 덩어리인데, 생칠 속의 우루시올 성분이 공기 중에서 산화해 색이 변한 것이다.

동의보감은 건칠이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맵고 독이 있다”고 했다. 흔히 어혈(瘀血)을 삭히고 몸속의 궂은 덩어리를 깨뜨리며 여성의 생리가 끊어진 것 등을 치료하는 약으로 썼다. 활혈거어(活血祛瘀)하는 약재다. 요샛말로 전립선염이라고 할 수 있는 산가(疝痂)를 치료하고, 회충 등 배 속의 기생충을 없애는 데에도 썼다. 중국 금나라 때의 저명한 의가인 장원소(張元素)는 “오래되어 딱딱하게 굳어버린 적체를 삭혀내고, 응결된 어혈 덩어리를 깨뜨린다(削年深堅結之積滯, 破日久凝結之瘀血)”고 했다.



건칠은 뜨겁고 매운, 신온(辛溫)한 약이다. 역시 아무에게나 좋은 약은 아니다. 몸이 차고 냉랭한 사람에게 쓴다. 이런 이들에게서 생긴 적체와 어혈에 쓴다. 염증이 많거나 몸이 더운 사람에겐 써서는 안 된다. 그런데 옻에는 독이 있다. 자칫 잘못 쓰면 부작용이 극심하다. 이른바 옻독이다. 한의학에선 칠창(漆瘡)이라고 한다. 옻액의 우루시올 성분이 이 옻독을 일으키는 물질인데, 옻에 예민한 사람은 1μg(마이크로그램)의 우루시올에도 피부염이 생긴다.

이 옻독을 없애기 위해 건칠을 쓸 때는 판판한 돌 위에 건칠을 올려놓고 불을 피워서 약재에서 연기가 올라올 때까지 가열한다. 그렇게 몇 차례 연기를 빼내면 웬만하면 옻독이 오르지 않는다. 요즘은 옻나무 진액이나 옻 껍질에 용매를 첨가하고 고열처리를 해서 독성을 제거하는 기술특허를 내 독성이 제거된 옻 진액을 대량으로 생산하기도 한다.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필자의 경험으론 거의 옻이 오르지 않는다. 전남 화순에 사는 지인 한 분이 솜씨가 있으셔서 이 옻액을 만들어 보내주셨다. 한 달 넘게 음료수 마시듯 먹었는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옻나무는 흔히 참옻나무, 개옻나무, 검양옻나무, 붉나무 등으로 분류한다. 참옻나무는 중국이 원산지다. 우리나라 산야에선 보기 어렵다. 그래서 대개 밭에서 재배하는 것은 참옻나무이고 산야에 흔히 보이는 것이 개옻나무, 검양옻나무다. 약재나 칠의 원료로서 가치가 있는 것은 참옻나무다. 그런데 옻나무 종류가 아닌데 잎사귀의 생김새가 옻나무와 흡사한 나무가 많다. 어린 잎을 따다가 장조림을 하거나 맛있는 부각을 만드는 멀구슬나뭇과의 참죽나무도 옻나무와 잎이 비슷해 구별이 쉽지 않다. 얼마 전 일이다. 농가의 밭에 심어진 옻나무를 참죽나무로 잘못 알고 옻잎을 먹고 전신에 시뻘겋게 옻독이 오른 환자 한 분을 치료한 일이 있다. 참옻의 새순이나 어린 잎은 맛이 달아서 보양식품으로 식용하기도 하는데, 이분은 참죽나무 잎이 참 맛이 좋다며 많이 먹었다. 옻을 쉽게 타는 체질이기도 했다.

옻독의 양면성

옻 잎을 먹은 후 한나절 동안은 별다른 기미가 없었다. 단지 잇몸 주변이 좀 부은 듯한 느낌이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하루가 지나자 입 주변의 피부와 입술이 퉁퉁 부어올랐다. 곧 부기가 얼굴 전체로 번졌다. 작열감과 가려움이 너무 심해 민간처방으로 들기름을 바르고 꽃게를 끓여 국물을 마신 후 좀 완화됐다. 그렇게 괜찮아지나 했더니 다음 날 온몸으로 열이 퍼지고 전신의 피부가 성이 나서 살갗이 터지고 진물이 났다. 양방의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아 먹었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 한의원에 내원한 환자를 살펴보니 등과 복부, 목 주변, 가슴, 손목과 다리, 허벅지까지 온통 시뻘겋게 옻독이 올랐다. 특히 항문과 고샅 주변 등 여린 피부조직의 발적(發赤)이 심하다. 가려움이 극심하다.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이 온몸에서 열이 나면서 가려움이 심해서 이를 긁어대느라 밤에도 잠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급히 한약을 조제해 투여하고 침을 놓으면서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2~3일여가 지났는데도 크게 진전이 없었다.

필자는 환자의 동의를 얻어 토종약재 전도사로 항간에 유명한 최 모 씨가 옻독의 특효약이라고 했던 ‘칠해목(까마귀밥여름나무)’을 구해서 투여했다. 이 까마귀밥여름나무의 줄기와 잎이 옻독에 신통한 효과가 있어서 이를 끓여 복용하면 첫날부터 소양감과 발적, 작열감 등이 없어지고 부어오른 피부 표면이 꾸덕꾸덕하게 마른다는 것이다. 점차 모든 증상이 없어져서 3~7일 만에 완전히 좋아진다고 했다. 북한 동의학 자료를 많이 참조했지만 최 씨 본인의 경험도 덧붙였다. 이 나무 줄기와 잎을 끓여 복용시키면서 필자는 잔뜩 기대했다. 최 씨가 쓴 글을 보고는 왜 진작 이를 구해다 쓰지 않았을까 필자의 무지를 탓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말 어처구니없었다. 약물 복용 후 옻독의 증상이 개선되기는커녕 상상도 할 수 없는 부작용이 튀어나왔다. 환자의 멀쩡했던 한쪽 팔이 손목에서 어깨까지 뽀빠이 팔처럼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올랐다. 만져보면 고무처럼 탱탱한 것이 아무래도 림프부종이었다. 옻독의 증상인 피부의 소양감과 발적, 작열감 어느 것 하나도 호전이 안 됐다. 3~4일을 속을 끓이며 지켜보았으나 차도는커녕 터무니없는 부작용만 생긴 것을 확인하고 모든 기대를 내렸다. 환자를 볼 낯이 없었다.

어찌됐든 수습을 해야 했다. 부기가 빠지지 않는 팔에 부항을 써서 사혈(瀉血)을 했다. 며칠 동안 필사적으로 사혈을 한 것이 주효했는지 다행히 팔의 부기가 빠지기 시작해, 부어오른 팔은 원상으로 돌릴 수 있었다. 다시 한약을 조제해 투여하고 소양감이 심한 피부를 사혈하고 침을 놓고 하여, 치료를 시작한 지 보름쯤 지나자 옻독이 대부분 진정됐다. 국소적으로 소양감과 발적이 남아 있었지만 큰 문젯거리가 아니었다.

어혈  풀고 굳은 것 깨뜨리다
김승호

1960년 전남 해남 출생

現 광주 자연마을한의원 원장

前 동아일보 기자·송원대 교수


옻독으로 고생은 하지만 질병을 앓는 것과는 다르다. 혹시 고생한 만큼 몸이 더 좋아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한 것인지 환자도 크게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치료를 받는 것보다 빨리 좋아졌다고 생각한 듯도 하다. 다행이다. 하여간 옻독을 잘못 처치한 탓에 필자도 교훈을 적잖이 얻었다. 옻독은 될 수 있는 한 빨리 밖으로 뿜어내는 것이 치법(治法)이다. 신통한 효과가 있다고 선전하는 것에 혹하지 말자 등등이다. 앞으로 칠해목만큼은 안 쓰겠다.

신동아 2012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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