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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패권 이어 우주패권도 잡는다

미국의 우주 개발사

  • 정홍철 / 스페이스스쿨 대표 wrocket@chol.com

지구패권 이어 우주패권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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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남긴 가장 큰 로켓은 1940년에 만든 길이 6.7m, 무게 107kg짜리였다. 적은 인력과 적은 자금이 지구 반대편에서 진행된 독일의 V-2로켓(길이 14m, 무게 12t)과 현격한 차이를 만들었다. 하지만 고다드가 미국 우주 개발에 미친 영향을 부인할 수는 없다. 달 로켓 발명가로 미디어에 소개되면서 공개된 그의 연구내용과 논문은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던 아마추어 로켓 연구를 확산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1930년 미국로켓협회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들은 폐쇄적인 성격의 고다드와 정보를 교류하지 못했다. 미국로켓협회에서 만든 로켓도 보잘것없었다. 하지만 1938년 제임스 와일드가 만든 재생냉각형(2겹의 연소실벽 사이로 연료를 흘려보내는 방식) 엔진은 모든 로켓 개발자에게 골칫거리였던 엔진 냉각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와일드를 비롯한 미국로켓협회 회원 일부가 1941년 세계 최초로 로켓엔진 개발 회사를 설립했다. 제너럴 모터스를 본떠 ‘리액션 모터스(Reaction Motors)’로 사명을 정했다.

미국 동부에 아마추어 로켓협회가 있었다면 서부에는 프로페셔널에 가까운 조직이 있었다. 캘리포니아공과대학의 구겐하임 항공연구소(GALCIT)가 그 것이다. 미국이 우주 개발의 터전을 마련하는 데 구겐하임재단의 역할은 매우 컸다. 구겐하임 항공연구소는 고다드보다도 이후의 미국 우주 개발에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연구소의 중심인물은 헝가리 출신의 항공역학자인 테오도르 폰 카르만(Theodore von Karman)이었다. 이 연구소는 미 육군의 도움으로 파사데나 계곡의 땅을 빌려 ‘자살특공대’란 별명을 얻으며 위험한 로켓 연소 실험을 해나갔다.

이들의 연구 목적은 미 육군으로부터 의뢰받은, 비행기 이륙보조용 추진장치(JATO) 개발이었다. 1943년 제트추진연구소를 설립한 이들은 고체추진제 연구에서 오늘날 복합추진제로 불리는 연료의 토대를 놓았으며 액체추진제 연구에서는 상온 보관이 가능하고 자동점화 기능이 있는 하이퍼골릭(Hypergolic) 추진제의 기반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 연구는 독일에서 급속히 진행된 연구에 비하면 아마추어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외국 수혈통해 급성장



미국이 걸음마를 하던 1940년대 독일은 놀라운 진보를 이뤘다. 주인공은 우주여행을 꿈꾸던 아마추어 로켓동호회 출신의 베르너 폰 브라운(Wernher von Braun)이었다. 그는 국가 차원의 지원을 받았기에 세계 최고의 로켓 전문가가 되었다. 고다드는 최대 5명을 데리고 연구했지만 독일 정부의 지원을 받은 폰 브라운은 3000여 명의 인원을 거느렸다. 많은 대학과 연구소, 회사들도 동원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1944년 탄생한 것이 V-2였다. 그러나 독일의 패망으로 이 기술은 고스란히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폰 브라운을 비롯한 120여 명의 핵심 인력이 미국 망명을 선택한 것. 이때 상당량의 자료가 소련으로도 넘어갔다. 미국은 소련보다 먼저 V-2 제작 공장이 있는 노르트하우젠과 미텔베르크에 도착해 V-2 100여 기를 만들 수 있는 완성품과 부품을 획득했다. 미국은 V-2 연구원들이 몰래 숨겨둔 설계도도 입수했는데 이것이 미국 우주 개발의 핵심 토대가 되었다.

미국 항공회사들은 V-2 기술을 나사 하나까지 복제해가며 익혔다. 그리고 성능을 개선해가며 V-2 파생품을 만들어갔다. 그렇게 해서 나온 첫 번째 작품이 미국 최초의 우주발사체가 되는 레드스톤 미사일이다. 이 미사일 개발에는 6·25전쟁이 기여한 바 크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은 탄도미사일의 전략적 가치를 간과해, 탄도미사일을 시급히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에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폰 브라운은 텍사스 주 포트 브리스에서 V-2 복원 발사를 하는데 자문을 하며 허송세월하고 있었던 것이다.

6·25전쟁을 계기로 미사일 필요성을 절감한 미 육군은 폰 브라운을 앨라배마 주 헌츠빌의 레드스톤 병기창에 전속 배치해 미국형 V-2인 레드스톤을 개발하게 했다. 그러나 폰 브라운은 미사일이 아니라 우주선을 실어 나르는 우주발사체 제작을 꿈꾸고 있었다. 1951년 폰 브라운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 V-2 세례를 받았던 런던에서 열린 제2회 국제우주대회에 참석해 유인 화성 탐사에 대한 논문을 제출하기도 했다(2009년 한국은 대전에서 이 대회를 개최했다). 사거리 325km의 레드스톤 미사일이 완성되기 전 그는 화성 여행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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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철 / 스페이스스쿨 대표 wrocket@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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