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시 대통령의 한반도 정책은 부시대통령 고유의 정책이 될 것입니다. 상황이 변하고 사람이 바뀌었으니 이전 행정부의 정책과 똑같을 수는 없지 않겠어요? 그러나 기본적으로 한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나갈 것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런가 하면 국내 언론은 1월20일 부시 행정부 출범 이래 하루가 멀다 하고 미국의 한반도정책에 대한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부시 외교안보팀의 강성(强性) 이미지와, 그것이 우리의 대북 포용정책과 빚을지도 모를 불협화음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지만, 다른 일각에선 조심스러운 낙관론도 없지 않다.
다른 한편, 전임 스티븐 보스워스 주한 미국 대사는 3년2개월간의 서울 근무를 마치고 2월11일 미국으로 떠났다(그는 보스턴에 있는 터프츠 대학의 플레처 외교대학원 학장으로 취임할 예정이다). 서울을 떠나면서 가진 일련의 인터뷰에서 보스워스 전 대사는 “한·미관계 전반에는 전혀 문제가 없으며, 부시 행정부는 지금까지 유지해온 억지정책에 바탕을 둔 포용정책을 계속 끌고가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누차 강조했다. 전임자의 마지막 립 서비스(lip service)였을까.
아무튼 요즘은 정·재계의 온 촉각이 한미 관계에 쏠려 있는 형국이다. 정부 안팎의 대북정책 관계자들은 미국의 대북정책이 향후 어떻게 펼쳐질지 워싱턴의 ‘입’만 바라보고 있고, 기업인들은 또 그들대로 경기하강 국면으로 접어든 미국의 대한(對韓) 통상 압력이 거세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아마도 이런저런 궁금증은 3월7일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게 되면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다. 그러나 그 때까지 기다리기엔 궁금한 게 너무 많다. 예를 들면 향후 수 개월 사이에 김정일 서울 답방을 비롯해서 한·러, 북·러, 미·일 등 동북아에서 다채롭게 펼쳐질 정상(頂上) 외교를 감안하면, 부시 새정부하에서 전개될 한미관계의 추이가 새삼 관심사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지난 2월14일만 해도 모 언론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조기 답방설을 1면 톱으로 오보(誤報)하는 바람에 정부와 언론이 한동안 난리를 쳤다. 남북 정상회담이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열린다는 것은 대부분 전문가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심대한 의미’를 가진 일이기 때문이었다.
‘신동아’가 이런 시기에 에반스 리비어(Evans J.R. Revere) 주한 미 대리대사를 인터뷰한 것은 그를 통해서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견해’를 듣기 위해서였다. 스티븐 보스워스 대사가 이임(離任)한 뒤 주한미국 대사관은 차기 대사가 부임해올 때까지 리비어 대리대사(보스워스 대사 시절에는 부대사였다)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인터뷰는 2월13일 오후 광화문 미국대사관에서 진행됐다.
“미국의 한반도 이해관계는 불변”
─서울 근무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시지요?
“32년 전 오산 공군기지에서 3년간 근무한 것이 한국과의 첫 인연입니다. 1997∼98년에는 한국어를 공부하려고 서울에 와 있었고, 그 뒤 3개월 정도 대사관에서 임시로 근무했습니다. 그러니까 정식 근무는 이번이 처음인 셈이지요.”
그는 2000년 8월 주한 미국 부대사로 부임했다. 서울 근무 전에는 국무부 한국담당 데스크로서 미국과 남북한간의 관계를 담당했고 제네바 기본합의 실행 관련 협상, 금창리 사찰 협상 등에서 차석 대표로 활동했으며, 1999년 5월 윌리엄 페리 특사의 평양방문에도 동행했던 국무부의 한반도통이다. “당신이 지금 대사관 건물에서 넘버 1 아니냐”고 농담을 던지자 그는 “차기 대사가 부임할 때까지 마운드를 지키는 구원투수일 뿐”이라며 사람좋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마침 인터뷰하던 날 오전에 보도된 임동원 국정원장의 방미 사실에 대해서 “사전에 알고 있었느냐”고 묻자 그는 “전혀 몰랐다”며 시치미를 떼기도 했다.
─차기 주한 미국대사에 대해서 이런저런 인사들이 물망에 오르고 있습니다. 현재로는 많은 분이 더글러스 팔 아시아태평양정책연구소(APPC) 소장을 거명하더군요. 차기 대사가 언제쯤 부임할지 워싱턴 소식을 듣고 계십니까?
“그런 소문에 대해서 제가 이렇다 저렇다 말할 위치는 아닌 것 같군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서울 대사관이 전세계 미국 대사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곳 중 하나라는 점, 한국은 정부나 민간 차원에서 미국과 중요한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라는 점, 그리고 미국 정부는 주한 미대사의 임명을 최우선 순위로 꼽고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차기 대사가 결정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잘 아시다시피 국무부 시스템이란 게 매우 복잡해요. 후보자를 지명하고 상원에서 인준하여 정식으로 임명받기까지 거쳐야 할 과정이 많습니다. 아무튼 국무부가 이 일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미국 새 정부의 한반도 정책에 대해서 요즘 많은 한국인이 우려하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물론 새 행정부가 한반도 정책을 검토하는 데에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겠지만, 미국 내에서도 이와 관련해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부시 외교안보팀이 클린턴 시절의 대북정책을 승계할 것이라고 보는가 하면, 일각에선 더 강경한 대북 협상자세를 점치기도 하는데요.
“그 문제와 관련해서는 파월 국무장관를 비롯한 정부내 인사들이 한반도 정책과 관련해서 해온 공식 발언에 주목해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발언들 속에 기존 정책과 함께 현재 논의·수립 중인 정책의 기조가 언급돼 있기 때문이지요. 파월의 국무장관직 수락 연설이나 최근 한미 외무장관 회담에서 나온 공동발표문 등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발표를 면밀하게 살펴보면 정책의 지속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이 지역에 있어서 미국의 이해관계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한국과의 긴밀하고 협력적인 파트너십, 지역 내 다른 국가들과도 굳건한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것,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 한반도의 공동 안보, 특히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에 대한 안보 유지 등이 미국이 지닌 이해관계이며, 이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따라서 향후 정책의 방향성도 과거처럼 강력한 동맹관계 및 억지정책을 유지하고 동맹들과 긴밀한 대화를 해나가는 것이 핵심이 될 것입니다.”
─지금 한미공조에 대해서 많은 분이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부시 새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해서 힘과 권위를 앞세우는 정책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NMD(국가미사일방어) 추진도 그런 예가 되겠지요. 이런 점에서 미국이 클린턴 시절과는 달리 북한에 대해서 좀더 강경하고 엄격한 자세를 견지하지 않을까, 또 한국의 대북 포용정책과 상충되지 않을까, 이게 사람들이 걱정하는 핵심입니다.
“한미관계에 대한 걱정, 힘과 권위를 바탕으로 한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 기조, NMD 문제, 클린턴 행정부와는 다른 정책으로 인해 한국과 불협화음을 일으킬 가능성 등 몇 가지 질문을 한꺼번에 주신 셈인데, 하나씩 답변하지요.
우선 TMD(전역미사일방어) 및 NMD는 공격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가 않아요. 어떤 정부든 기본적인 의무는 자국민 및 국익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지금 논의중인 NMD의 전략 및 개념은 미국의 국익과 국민, 해외주둔 미군 및 미국의 동맹국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다음, 미국의 외교정책이 힘과 권위에 기초하고 있다는 말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은 물론 강한 나라이고 우방들과 함께 평화와 안보에 기여하고 있다는 데에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미국이 그 힘을 호전적으로 쓰지 않겠는가라는 의미의 질문이라면, 저는 단연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겠습니다.
마지막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현재 한국과 미국 사이에는 어떤 대립도 없습니다. 우리는 친구이고 동맹으로서 어떤 문제든 솔직하게 열린 자세로 논의하고 있어요. 이러한 협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전략적·전술적 차원에서 양국간에 이견은 없습니다.”
─말씀 중에서 NMD에 대해서는 사실 러시아와 여러 유럽 국가들이 반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부시 새 정부는 NMD를 계속 추진하겠다고 천명하고 있고요. 한국인들로서는 북한 미사일 문제가 NMD 추진에 하나의 배경이 되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저는 북한의 미사일 개발 및 수출 문제가 TMD 및 NMD 추진의 유일한 이유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특정 국가로부터의 위협 때문에 미국이 이러한 전략을 추진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아무튼 (NMD 추진 발표로 인해) 미국을 향해서 탄도 미사일을 쏠 수 있는 적국의 위협으로부터 미국과 미국민, 해외주둔 미군 및 동맹국들을 보호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게 됐다는 믿음이 미국 내에 널리 확산되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배치 및 수출, 그리고 이것이 한국과 주한미군, 주일미군 등에 사용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NMD 구상과 북한 미사일 문제를 하나로 묶어서 생각하지는 말아줬으면 해요.”
─얼마 전 미국의 한 신문에서 부시 새 정부가 80년대 레이건 행정부의 정책과 스타일을 이어받으려 한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당시 레이건 행정부는 소련에 대해서 매우 강경한 자세를 견지했었지요.
“그 질문은 미국의 역대 행정부를 비교 분석할 수 있는 역사학자들에게 더 어울리는 것 같군요(웃음). 어떤 대통령이든 일단 취임하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문제들에 직면하게 마련입니다. 지금 미국의 새 대통령이 직면하고 있는 상황은 20년 전인 80년대와는 크게 다르지 않은가요? 또, 부시 대통령은 선거운동 때나 취임 초기에 줄곧 자신의 독자성을 분명히 밝혀왔습니다. 10∼20년 세월이 흐른 후 역사학자들이 미국의 대외정책을 비교하는 것은 흥미로울지 모르지만, 지금 대통령의 정책이 다른 누구의 것과 비슷하다고 예단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해요.
참고로 NMD 및 TMD에 대해서 몇 마디 덧붙이고 싶습니다. 러시아 등 여러 나라가 미국의 NMD 추진 계획에 반대 혹은 우려를 표명했다고 했지만, 미국은 계속해서 유럽, 러시아 및 중국 등과 이 문제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이런 논의를 통해서 미국의 의도와 관련 기술 등을 설명할 기회를 갖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런 대화는 계속될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게 될 것으로 믿어요.”
“북한 재래식 무기, 새로운 제안 아니다”
─미국은 그동안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문제를 대북 협상에서 최우선 과제로 설정해왔고, 최근에도 부시 행정부의 고위 관료들은 북한이 미사일 문제를 먼저 푸는 자세를 보여줘야만 북미관계가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여기에 더해서 최근 재래식 무기도 새롭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좀 더 강경한 쪽으로 정책이 바뀌는 거라고 볼 수 있는 신호 아닐까요?
“미국은 그동안 줄곧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즉 미사일 발사체제 및 부품 수출 등에 대해서 우려를 표명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그리고 그건 북한의 재래식 무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사실 북한의 재래식 무기는 미국이 우려해온 핵심 사안 중 하나였습니다. 페리보고서에도 이 부분이 언급 돼 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논의하기 위한 대화 채널을 수립했던 것입니다. 4자회담이 바로 그것이지요. 4자 회담의 목적에는 한반도에 긴장을 완화하고 항구적인 평화를 구축한다는 것 뿐 아니라 이런 재래식 무기 문제를 다루겠다는 의지도 있는 겁니다. 우리는 앞으로 몇 주 이내에 북한이 이런 대화 채널에 다시 호응해오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미국은 항상 북한의 재래식 무기에 대해 우려해왔다는 점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도 3만7000명 이상의 주한미군을 유지해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체제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군사적) 균형에서 변화가 있어야 하고, 북한의 재래식 무기 문제를 다룸으로써 그런 과정이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년 말 클린턴 전 대통령의 평양방문 얘기가 나왔을 때 일각에선 북미간에 미사일 문제가 상당히 진전했기 때문에 그런 얘기까지 나오지 않았겠느냐고 짐작했습니다. 그러나 클린턴 방북은 끝내 무산되고 말았지요. 이것 역시 부시 행정부의 강경노선을 예고하는 사례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작년에 북한 조명록 차수가 미국을 방문해서 공동 관심사에 대해 논의하는, 혹은 논의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매우 중요한 진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북한을 방문해서 대화를 이어나간 것 역시 중요한 변화였습니다. 이미 공개된 내용이지만, 당시 북한의 미사일 개발 및 수출문제가 밀도있게 논의됐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전망이 있었기 때문에 콸라룸푸르에서 전문가 회담을 계속하기로 합의했고, 또 실제로 회담이 열렸던 겁니다.
올브라이트 장관의 방북 목적에는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여러 가지 이유로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은 성사되지 못했지요.
이제 새 행정부가 대북정책을 마련하고 있으며 몇 주일 이내에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과거의 성과와 성공을 계승하는 정책이 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어요. 이 지역에서 미국의 국익은 변하지 않았고, 한국 정부와 긴밀하게 협조 및 공조를 해나간다는 최우선적인 과제에도 변화가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몇몇 한반도문제 전문가는 부시 행정부가 조정기간을 거쳐서 클린턴 시절의 대북정책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합니다만….
“부시 대통령의 한반도 정책 및 대북정책은 부시 대통령 고유의 정책이 될 것입니다. 상황이 변하고 사람이 바뀌었으니 이전 행정부의 정책과 똑같을 수는 없지 않겠어요? 또, 전임 행정부의 정책과 현 정부의 정책을 비교하는 것은 공평하지도 않고 적절하지도 않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기본적으로 저는 미국 새 정부가 한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출범한 지 이제 몇 주일밖에 안된 시점에 이미 한국에 대한 존경과 확신을 표명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을 말해주지 않습니까? 양국 대통령은 이미 전화로 대화를 나누었고, 외무장관 회담도 열렸으며, 앞으로 계속 많은 대화가 있을 겁니다.”
─주한미군에 대해서 질문하고 싶습니다. 얼마 전 크레이그 토머스 미 상원 외교위원회 동아태 소위원장은 “주한미군을 포함해서 해외주둔 미군을 감축하라는 압력이 미국 내에서 거세질 것”이라고 말했는데, 부시 행정부하에서 주한미군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서 말씀해주십시오.
“미국 정부는 정기적으로 해외주둔 미군 및 국방 소요(defense requirements) 등을 검토해오고 있습니다. 이건 어떤 급진적이거나 혁신적인, 혹은 특별한 움직임이 아니라는 거지요. 한반도에서 강력한 억제정책을 견지해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은 변함이 없으며, 동맹으로서 한국에 대한 의무를 이행해갈 것이라는 점에도 변화가 없습니다.
그러나 장래에 어떤 일이 전개될지 미리 추측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아무튼 현재로서 한미 동맹관계는 매우 굳건하며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김대중 대통령도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에 대해서 언급했지만, 미국 정부는 이런 김대통령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제 화제를 경제 쪽으로 돌려보지요. 미국이 기침 한번 하면 한국은 독감이 걸린다고들 합니다. 그만큼 미국 경제가 한국민에게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요즘 미국 시사지들을 보면 경기침체, 실업률 증가 등 그다지 낙관적인 것 같지 않습니다만.
“누가 저에게 제 시각에 대해서 물으면 저는 항상 구제불능인 낙관주의자라고 대답해요(웃음).
통계자료 등으로 볼 때 저는 미국 경제가 지금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있다고 표현하고 싶어요. 그러나 한국 경제처럼 미국 경제 역시 매우 다이내믹합니다. 지난 10∼20년 동안에 수많은 신업종, 신기술, 전혀 새로운 영역들이 발전해왔고, 놀라운 성과를 거두어왔습니다. 지금은 다소 성장이 둔화되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런 잠재력은 여전하다고 믿습니다. 경제학자들에게 미국 경제가 비포장 도로를 벗어나 다시 포장도로를 달릴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은 ‘그렇다’고 대답할 겁니다.”
─미국 새 행정부의 경제정책도 한국의 기업인이나 관료들에게는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공화당 정부는 출범 후 국내적으로는 감세안을 내놓아서 빈익빈 부익부를 초래한다는 얘기도 있지만, 대외적으로는 통상 압력이 더 거세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부시 새 정부는 우선적인 과제 중 하나로 다이내믹하고 강력한 미국 경제를 유지하겠다고 제시했습니다. 부시 대통령이 이른 시일 내에 감세(減稅)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천명한 것도 이를 위해서입니다. 이런 세금 감면책으로 다른 계층도 물론 혜택을 받겠지만, 경제학자들은 특히 중산층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부시 행정부는 또 교역정책에 있어서 개방된 자유교역을 유지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조만간 가시화될 부시 행정부의 경제정책이 개방적인 자유무역 체제와 이를 위한 국제기구들을 옹호하는 데에 초점을 두리라는 건 분명합니다.”
─얼마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내정자인 로버트 죌릭씨가 한국의 현대그룹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정부가 현재전자의 채권을 사주는 것은 시장경제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라는 것이었지요. 이것을 미국 새 정부의 대한(對韓) 통상압력이 거세질 것이라는 시그널로 받아들인 사람이 많은데요.
“그의 발언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국이 볼 때 그 일은 세계무역기구(WTO)의 원칙과 의무조항에서 벗어난 것이었고 거기에 대해서 우려를 표명했을 뿐이지요. 죌릭 대표 뿐만 아니라 다른 관계자들도 비슷한 우려를 표명한 적이 있습니다.”
─부시 행정부에 입각하거나 관계하고 있는 인사들 중 일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의 유용성에 대해서 회의를 갖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얘기는 앞서 말씀하신 개방적인 자유교역 원칙과는 좀 다른 맥락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미국에는 항상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하며, 각종 보고서 등의 형태로 그런 의견이 발표됩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진정한 힘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다시 말하지만, 미국의 새 정부는 개방경제 체제를 유지하는 역을 맡아 온 국제기구들을 지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고, 이런 내용은 앞으로 각종 증언과 보고서 등을 통해서 좀 더 분명하게 제시될 것으로 봅니다.”
리비어 대리대사는 한국어 뿐 아니라 중국어, 일본어에도 능통한 아시아통이다. “32년 전 한국에 처음 왔을 때부터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전체와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는 그는 인터뷰 내내 강력한 한미 관계의 지속성을 역설했다.
“파월, 아미티지, 켈리, 월포위츠 등 부시 행정부에서 외교안보 관련 주요 직책에 임명된 분들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저는 이분들과 함께 일해본 경험이 있는데, 모두 성실과 명예를 존중하는 분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을 잘 아는 분들이며, 김대통령을 존경하고 한미관계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파월 국무장관만 해도 미국의 역대 국무장관 중 유일하게 한국에서 군복무를 한 경험이 있는 분입니다.이런 분들이 새 행정부의 진용을 구성하고 있는 한 한미 관계는 탄탄대로를 걸을 거라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