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7월호

보험설계사, ‘아줌마 부업’에서 억대연봉까지

  • 박은경 < 자유기고가 >

    입력2005-05-24 13: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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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험설계사 고정순씨(교보생명·40)는 매일 아침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살림을 보살펴주는 시어머니가 계시지만 아이들 등교시키랴, 남편 출근준비 도우랴 서두르다 보면 정작 자신은 거울 볼 틈도 없이 묵직한 서류가방을 들고 남편을 따라나서기 바쁘다. 출근길에 남편이 차로 데려다주는 지하철역까지는 집에서 불과 몇 분 거리. 고씨는 그 짧은 시간에 흔들리는 차 안에서 손거울을 꺼내들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화장을 끝낸다.
    그나마 요즘은 잠시 숨을 돌린 셈이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컴퓨터와 FP(Financial Planner)교육을 받기 위해 지금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출근했다.

    “처음 회사에서 컴퓨터 교육을 받으라고 했을 때 출근시간이 부담스러워 그냥 10년 동안 쌓은 노하우로 밀고 나가려 했어요. 그런데 교육을 받으면서 내 판단이 오산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시대가 변했음을 깨달은 거죠.”

    고씨는 “보험시장은 물론이고 금융환경 전반이 워낙 급변하고 있어 자칫 영락없는 ‘보험아줌마’로 전락할 뻔했다”며 새삼 안도한다.

    오전 9시20분, 고씨가 근무하는 세종로지점 매일영업소. 소장 이하 팀장을 비롯한 설계사 전원이 모인 가운데 아침조회가 시작된다. 이 시간은 팀장이자 설계사인 고씨에게 더없이 소중한 때다. 새롭게 바뀐 보험시장 정보며 신상품 정보, 상품 특징에 따른 영업 테크닉, 금융관련 이슈 등 영업 전반에 필요한 갖가지 정보와 힌트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땀흘려 일한 대가를 위해 오늘 하루도 힘차게 출발합시다!” 조회는 매번 영업소장의 힘찬 독려와 함께 끝을 맺는다.

    아파트 시장활동으로 하루 시작



    책상으로 돌아온 고씨는 노트북을 열고 하루 일정을 점검한 뒤 외근에 앞서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사무실을 나서기 직전, 고객과 전날 잡은 스케줄을 전화로 재차 확인한다. 만약 급한 일로 고객이 자리를 비우면 그 만큼의 시간 손해가 고씨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통화가 끝나고 10시 경 사무실을 출발하면 이때부터 12시까지가 주부를 상대로 영업하는 ‘아파트 시장활동’ 시간이다.

    첫 방문고객은 결혼한 지 얼마 안된 주부. 아파트에 도착한 고씨는 딱딱한 보험 얘기 대신 결혼생활이며 아이 키우기 등 일상적 얘기를 가볍게 풀어놓는다. 분위기가 편안해지자 고씨는 준비해온 비디오테이프를 꺼내놓는다. 회사에서 설계사의 영업활동을 지원할 목적으로 제작한 테이프다. 이번 비디오테이프 내용은 특히 주부를 상대로 영업하기에 아주 효과적이다.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고 아이를 홀로 키워야 하는 주부의 눈물겨운 사연을 함께 보노라면 굳이 ‘보험이 왜 중요한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아니나 다를까. 집주인이 눈물을 글썽이며 “나중에 저희 집으로 오세요”라고 말한다. 이 정도면 확실하게 고객을 잡은 셈이다. 상쾌한 출발이다.

    연이어 근처 고객(보험가입자) 집에 안부차 들렀더니 한사코 점심을 먹고 가라며 붙잡는다. 시간은 어느 새 오후 두 시. 직장인을 상대로 영업할 시각이다. “권 과장님께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가족사랑이 각별하시다구요?” 기존 고객으로부터 소개받아 미리 정보를 입수한 뒤 만나게 되는 사람은 먼저 아는 체 할 수 있어 대면하기가 한결 편하다.

    안면을 트는 정도로 첫 면담을 끝내고 곧바로 사내 휴게실로 장소를 옮긴다. 기존 고객은 물론, 평소 보험에 대해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이 고씨를 찾아 휴게실로 들어선다. 그들 중 반가운 얼굴이 눈에 띈다. “이번에 신혼여행 다녀오셨다면서요?” 일년 전 “결혼하면 찾아오라”고 퇴짜를 놓았던 고객에게 미리 챙겨온 신혼재테크 관련 상품 정보를 내밀자 고객이 몹시 놀라는 눈치다. 고씨는 “며칠 전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오는 김에 필요한 자료를 챙겨왔죠”라며 여유 있게 또 한 건의 계약을 성사시킨다.

    보험설계사가 접근하면 사람들은 흔히 “한달 뒤에 오라” “일년 뒤에 오라”며 따돌리기 일쑤다. 고씨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메모해 두었다가 그들이 말한 시기에 다시 찾아간다. 이쯤 되면 사람들은 혀를 내두르며 계약서에 선선히 사인하게 마련이다.

    직장 상대로 영업활동이 끝나면 이제부터 상가를 돌 시간이다. 셈이 빠르고 사람을 보는 눈이 날카로운 상인을 상대하려면 ‘묵묵하고 성실한 인상’ 외에 달리 비결이 없다.

    “무배당 상품으로 보험료는 저렴하면서 개인보장이 강화되어 나온 게 있는데 자료 한번 뽑아볼까요?”

    상냥한 말투에 예의 무뚝뚝한 대답이 돌아온다. “가입해 있는 보험만도 서너 개나 되는데 무슨…” 벌써 일년째 공들인 가게 주인이라 고씨도 순순히 물러서지 않는다. “그래도 자료 뽑아 드릴테니까 잘 살펴보고 좋은 쪽으로 하세요.” 주인은 마지못해 “일부러 찾아오진 말고 지나가는 길에 들러서 자료나 주고 가요” 한다. “꼭 든다고 생각하지는 말라”는 다짐도 빠뜨리지 않는다. 그나마 자료라도 달라니까 다행이다. 앞으로 두세 군데 상가를 더 돌면 회사로 돌아갈 시간이다.

    “자료나 두고 가세요”

    오후 5시, 피곤한 몸으로 사무실에 돌아온 고씨는 곧바로 여직원을 찾는다. ‘신계약’ 서류와 수금한 돈을 입금시켜야 비로소 하루 ‘마감’이 끝나기 때문이다. 고씨는 책상에 앉자마자 노트북을 열고 신규고객 정보를 입력하느라 바쁘게 손을 움직인다. 다음날 스케줄 점검까지 마친 그는 마지막으로 몇몇 의사(고객)에게 보낼 세금정보 자료를 챙겨 사무실을 나선다. 퇴근길, 자료봉투를 우체통에 넣은 고씨는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지하철에 오른다.

    23개 생명보험사와 11개 손해보험사를 통틀어 전국 6만여 개 사업장(총국·지점·대리점·영업소 포함)에서 보험설계사로 뛰는 사람은 올 4월말 현재 총 33만5747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여성설계사가 차지하는 비율은 90% 안팎이며, 그 나머지를 남성설계사가 차지하고 있다. 한해 수십조원의 수익시장을 무대로 치열한 영업경쟁을 벌이는 보험설계사의 매일매일은 ‘조회-일정체크-필드(영업활동)-일일마감’ 순으로 고정순씨와 별반 다를 바 없이 돌아간다.

    그러나 보험설계사를 이르는 명칭은 지난 몇 년 사이 다양하게 변화했다. 보험아줌마에서 생활설계사를 거쳐, 최근에는 회사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라이프플래너(LP·Life Planner)’, ‘라이프컨설턴트(LC·Life Consultant)’, ‘파이낸셜플래너(FP·Financial Planner)’, ‘파이낸셜컨설턴트(FC·Financial Consultant)’에 이르기까지. 보험사에 따라 ‘리코(Lico·라이프컨설턴트의 약자·교보생명)’ ‘수호천사(동양생명)’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보험업법에 따르면 이들을 통칭하는 명칭이 ‘보험모집인’이다.

    한편, IMF 이후 급변한 보험시장 환경만큼 숱하게 쏟아진 보험설계사 명칭은 설계사 시장이 갈수록 세분화·전문화·다양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설계사의 경우 ‘보험아줌마’가 ‘파이낸셜플래너’로 나아가는 과도기적 상황이 이를 잘 말해준다. 이들이 한해 동안 거둬들이는 수익도 설계사에 따라 그 폭이 매우 커졌다. 500만원 미만 연봉자부터 2억∼3억대에 이르는 연봉자까지 천차만별이다. 최근에는 한 해 10억 원이 넘는 수익을 올린 보험설계사도 탄생했다.

    수익이 얼마가 됐든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설계사가 보험모집인으로 필드에서 뛰기까지 통상 거쳐야 할 관문이 있다. 첫 과정이 보험협회에서 주관하는 시험. 그 전에 보험사는 수시 또는 월별로 신인 설계사를 ‘도입’한 뒤 약 2주간에 걸쳐 시험에 대비한 교육을 시킨다. 합격자는 각 보험사가 일괄 금융감독원에 등록하면서 ‘보험모집인’으로 위촉된다. 그 후 2∼3개월 동안 보험 관련 이론수업과 필드 트레이닝을 거친 뒤 비로소 영업전선에서 뛰는 보험설계사가 되는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50여 년 보험역사 중 요즘 가장 커다란 변화를 맞고 있다”고 한다. 일선 영업소장들은 “과거 10년에 걸친 변화가 최근 일년 사이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느낌”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근 삼성금융연구소는 ‘2001년 보험산업 전망’ 보고서에서 “종신보험이 본격 판매되고 오는 7월부터 변액보험(은행과 투자신탁회사의 신탁상품과 유사한 실적배당상품)이 도입될 예정이기 때문에 개인금융자산을 놓고 금융권간 경쟁의 심화가 예상된다. 변액보험 판매 전문인 자격증제도가 신설됨에 따라 금융 전반적인 컨설팅 판매가 확산될 전망”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뿐만 아니라 지난 1997년 이후 법인 대리점조직 활성화, 텔레마케팅(TM), 사이버마케팅(CM) 기법 도입 등으로 과거 설계사에 의존하던 보험판매 채널이 갈수록 다양화하는 추세다. 따라서 앞으로 설계사간 경쟁도 지금보다 몇 배 치열해질 전망이다. 교보생명 홍보팀 우철희 대리는 “요즘 보험사마다 설계사 재교육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그 가운데 일부는 옛날 방식을 고수하겠다고 버티는 경우도 있다. 아마 2∼3년 후면 기존의 보험아줌마 식 설계사는 완전 도태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현재 베스트 설계사 대열에 있는 이들의 성공담에서도 달라진 보험영업 환경을 읽을 수 있다. 교보생명 명동지점 구암영업소의 송연옥씨(39)의 주고객은 의사 변호사 등 고학력 전문직 종사자들. 송씨는 “이들 전문직 종사자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고 분석하기를 게을리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고객의 눈높이에 맞추는 자기 개발이 필수라는 얘기다.

    LG화재 창원지점 신바람영업소의 이연이씨(55)는 LG화재 연도대상 5연패의 주인공. 이씨는 “해마다 연도상 시상식때 두세명의 설계사가 5연패 기록을 세워 상을 받는 걸 보고 속이 상해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며 “지난해부터 미리 5연패 소감문을 작성해두고 스스로 채찍질해왔다”고 말했다. 치밀한 전략 외에 근성과 끈기는 우수 설계사의 자질이라는 얘기다.

    요즘 필드에서 부딪치는 고객은 과거와 달리 녹록치 않다. 가정의 특성에 따라 노후설계, 자금설계 등 재정상태를 분석하고 미래의 재정설계를 제공하는 평생보장·맞춤보험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가 갈수록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넷 등을 통해 다양한 보험상품 정보를 꿰고 있는 소비자가 적지 않아 ‘준비된 보험설계사’가 아니면 시장 공략은 엄두도 못 낼 상황이다. 한마디로 금융·보험·재무설계 지식으로 무장한 전문 ‘재무설계사’가 최근 보험사와 소비자가 동시에 요구하는 설계사의 모습이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지난해부터 본격 등장한 것이 바로 남성 전문설계사 조직이다.

    지난 6월초 서울의 한 사무실. 30∼40대 초반 고학력 전문직 출신 남성 20명이 모여 텔레비전 화면에 집중하고 있다. 화면속 주인공은 다름 아닌, A4 용지 14장에 이르는 재무설계 자료를 고객 앞에 꺼내놓고 보험상품 설명에 열을 올리는 자신들 모습이다. 비디오테이프가 끝까지 돌아가자 강사와 교육생이 열띤 강평회를 벌인다. “보장내용 부분의 설명이 부족하다” “자신감이 없고 머뭇거려 신뢰감이 부족하다” “말투가 또박또박하지 못하다” 동료 교육생의 날카로운 비평이 쏟아진다.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넘어간다.

    삼성생명을 비롯한 몇몇 보험사에서 최근 흔히 볼 수 있는 파이낸셜플래너 교육 과정이다. 남성 전문설계사 조직은 과거 보험모집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이들은 3∼6개월 동안 하드트레이닝을 거친 뒤 전문 재무설계사로 다시 태어난다. 보험사마다 생산성 높은 보험설계사 양성과 기존 설계사의 역량강화를 목표로 뛰고 있다.

    실적만이 살길이다

    한편 영업이익을 내지 못하는 보험사는 언제든 퇴출될 수 있는 시장환경이 조성된 상황에서 보험설계사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동일 보험사 지점과 지점, 영업소와 영업소가 ‘영업실적 1위’ 자리를 놓고 각축을 벌이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한 영업소 내에서 근무하는 팀과 설계사 개개인의 경쟁마저 어느 때보다 치열한 실정이다.

    통상 보험사는 총국 밑에 전국적으로 수백개 지점을 두고, 한 개 지점 아래 15개 안팎의 영업소를 거느린 구조로 운영된다. 이외 대리점(개인사업자)을 통해 보험계약 체결을 대행케 하는 곳도 있다. 보통 영업소 한 곳에 소속된 설계사는 대략 20∼30명으로 이중 3∼5명의 지도장 또는 팀장이 5∼6명의 팀원을 거느리며 소장이 전체 조직을 통솔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팀장을 비롯한 보험설계사는 실적에 따라 다시 직급이 나눠지는 경우도 있다. 교보생명을 예로 들면 팀장 직급은 슈퍼설계사에 해당한다. ‘슈퍼’가 되려면 적어도 매달 2억4000만원의 보험수입을 올려야 할 뿐만 아니라 일정 수의 신인을 ‘도입(증원)’하는 것도 필수조건이다. 교보생명 영업소장 한성년씨는 “아무래도 실적 경쟁을 하니까 팀별로 또는 설계사간 신경전도 치열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알력이 생기기도 한다. 무리없이 팀을 이끌면서 월별, 연도별 영업실적을 달성해야 하는 소장 입장에서는 마치 정치판에 뛰어든 심정이다.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해서 조율해야 문제가 안 생긴다”고 어려움을 토로한다.

    ‘실적’은 영업전선 최전방에서 치열하게 몸으로 부딪치는 보험설계사들을 언제 ‘해촉’으로 몰고 갈 지 모르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반면 설계사의 능력에 따라 억대 연봉을 안겨주는 행운의 열쇠가 되기도 한다. 보험설계사가 어느 직종보다 이직률이 높은 것도 실적과 무관하지 않다. 과거에 비해 이직률이 많이 낮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연간 2명에 1명꼴로 보험시장을 떠나고 있다. 한편으로 신규 인력이 끊임없이 유입되고 다른 한편에선 이탈하는 사람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 보험설계사 세계에는 그들 특유의 애환이 적지 않다.

    “남편에게조차 어려움을 털어놓을 수 없다”는 일선 보험설계사의 말못할 고충은, 지난해 10월5일 결성된 전국보험모집인노동조합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언론은 하루 19시간 일하는 설계사 일년 수입이 2억이라며 엄청난 고소득이란다. 그 2억 중에 순수한 수입은 얼마나 될까? 자신의 보험료(실적을 위해 일명 가계약으로 설계사가 부담하는 보험료), 리베이트(큰 건 계약 시), 유지율(중도 해지·해약되지 않고 가입 상태를 지속하는 비율)고수, 수금 유지 등에 드는 돈을 감안한다면.”

    남편에게조차 말 못하는 어려움

    “월말이 돌아온다. 이번 달에는 또 몇 건의 (보험료)연체가 발생할지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매월 말이면 찾아오는 소화불량과 두근거림. 나는 2개월 전까지 이른바 대형설계사였다. 종신보험 팔아오라면 팔아오고 연금 팔아오라면 팔아오고…. (설계사 생활)일년하고도 5개월이 다된 지금, 카드가 연체되어 신용불량자가 됐다. 팀장이나 소장은 나의 형편은 생각지도 않고 월말 마감 때면 닦달한다. ‘이거 7회밖에 안된 건데, 이번 달 실효(해지에 의한 효력상실)되니까 당신이라도 13회차까지 끌고가요’ ‘팀 상이 걸려서 그런데 조그만 거 하나라도 (설계사가)대신 넣으면 안될까?’ 먹고 죽을래도 돈 없어요, 배 째요! 왜 진작 이렇게 세게 나가지 못했을까.”

    “(경력)5개월인 나는 상가와 직장을 돌며 영업중이지만 아직 이렇다할 계약이 나오지 않았다. 연고계약도 이미 바닥났다. 짧은 기간이지만 설계사에 대해 무한한 자긍심과 전망을 갖게 됐는데…계속 일하려면 해촉은 되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출근도 잘하고, 기본 실적에 미달되지 말아야 한다. 안되면 신인도입이라도 해야 해촉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에 해당되지 않는 보험설계사는 항상 일방적 퇴출 위험에 시달리고 있다. 의료보험은 물론이고 산재보험 적용, 퇴직금 지급 등 일반 근로자가 누릴 수 있는 혜택에서 보험설계사는 제외되어 있다.

    IMF 이후 거세게 불어닥친 보험업계 구조조정 여파로 일각에선 업체와 보험설계사 사이에 ‘근로자’와 ‘개인사업자’ 판정을 놓고 공방이 뜨거운 실정이다. 그러나 일부 열악한 근무 환경에도 불구하고 ‘능력에 따라 일한 만큼의 대가’가 돌아오는 ‘무한대의 성과급’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다. 더구나 해마다 4∼5월경 펼쳐지는 보험업계 연도상 시상식은 설계사의 발걸음을 더욱 재촉한다. 업체마다 소속된 수천 수만 명의 설계사를 제치고 ‘10위’ 안에 들어야만 설 수 있는 무대이기에.

    한편에선 수많은 생명보험설계사가 세계세일즈협회(MDRT·Million Dollar Round Table의 약자) 회원이 될 날을 꿈꾼다. 전세계 생명보험설계사들이 최고의 명예이자 영광으로 여기는 MDRT 회원 가운데 우리나라 설계사는 총 77명(99년 기준).

    이들은 연 1억 원이 넘는 수입뿐만 아니라 계약자에 대한 봉사정신이 투철하고, 분쟁 중인 계약이 단 한 건도 없어야 하는 까다로운 협회 기준을 통과한 설계사다. ‘보험계약은 사회복지사업’이라는 사명감을 안고 하루도 빠짐없이 거친 ‘필드’를 누비는 보험설계사들의 시계는 24시간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 LG화재 인천본부 강서지점 김포사업소 조주환씨 >

    “사람을 아는 설계사가 ‘고객’을 잡는다”

    LG화재 설계사로 보험계약 체결을 대리할 뿐만 아니라 개인 법인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경력 9년의 조주환씨(40)는 지난해 5억2000만원이 넘는 수익을 올려 ‘2001연도상’에서 ‘매출대상’을 수상했다. 회사측의 배려로 지난 5월 새롭게 이전한 김포사업소에 들어서자 거래업체, 고객 등이 보내준 축하화분 70여 개가 실내를 온통 빽빽히 메우고 있었다.

    김포 토박이로 농사를 짓다 보험업계에 뛰어든 그는 처음 일년 동안 자동차 영업을 하는 형을 따라다니며 필드 경험을 쌓았다. “원래 내성적인 성격 때문인지 고객과 눈도 못 맞추고 말문도 열리지 않았다”는 조씨. 형은 세일즈맨 선배로 그에게 “절대 비굴하게 영업하지 마라. 자신감을 키워라”고 충고했고, 그 때부터 조씨는 거울 보며 혼자 ‘뻔뻔해지는 연습’을 수없이 했다.

    지금은 하루 평균 10명의 고객을 만난다는 조씨. 그는 ‘사람이 재산’임을 철저히 믿는다. 그에게 있어 ‘보험을 몇 건 판매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기존 계약자로부터 몇 명을 소개받을 수 있느냐’다. “서로 믿지 못하면 기계약자는 떨어져나가게 마련이고, 일단 신뢰가 쌓이면 한 사람의 기계약자가 최소한 서너 명의 신규고객을 연결해준다.” 보험영업을 하는 한 ‘평생 마르지 않을 샘’으로 꼽을 수 있는 기계약자는 150명에 달한다. 지난 한 달 동안 그가 확보한 신규고객만도 570명이다.

    그는 특히 고객의 심리와 성격을 꿰뚫는 데 탁월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 “가령 A라는 고객을 통해 B라는 사람을 소개받을 때, 사전 정보를 얻어 고객이 왜 나를 찾는지 파악한다. 그가 원하는 정보와 자료를 갖고 첫번째 만날 때는 판매에 중점을 두기보다 정보 제공이나 상품추천 정도로 그친다. 물론 중간에 소개한 사람과 친하다는 표현은 적극적으로 해둔다. 이쯤 해두면 다음 번 만날 때 상대가 오히려 훨씬 부담이 덜한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친근하게 접근해온다.” 영업 노하우가 쌓이기까지 조씨는 책을 통해 인간의 심리연구와 성격파악에 노력했다.

    보험설계사 생활 9년 동안 매년 평균 20%의 (수익)성장률을 꾸준히 유지한 조씨는 연수익의 60%를 새로운 영업창출을 위해 재투자한다. “강원도에 민박집을 지어 보험설계사들을 위한 휴양시설로 운영하고 싶다”는 그는 앞으로 15년쯤 더 설계사로 뛸 생각이다.

    < 삼성생명 은평지점 홍은리젤 영업소 지정미씨 >

    ”치밀한 전략 · 체계화된 고객관리가 보험영업의 핵심”

    올해로 경력 5년의 지정미씨(38 ·팀장)가 국가대표 육상선수, 경남은행 근무, 교직 생활을 거쳐 다다른 곳은 전세계 생명보험설계사의 꿈인 MDRT 회원(99년 등록)이다. 1996년 10월 삼성생명에 입사한 지씨는 이듬해 연도상 시상식에서 ‘본부여왕’ 상을 수상하고 연달아 전사여왕 은상 수상, 엔젤상을 수상했다.

    보유계약자 600명을 관리중인 지씨가 가장 중요한 영업철칙으로 삼는 건 자신이 좋아하는 상품이 있어야 한다는 것.

    “판매자가 팔 물건을 좋아하지 않으면 당연히 고객에 대한 호소력이나 전달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그는 신상품이 나오면 자신을 가상고객으로 설정하고 다양한 경제상황을 만들어 재무설계를 한 다음 일일이 보험상품에 적용시켜본다.

    “보통 한 가지 상품을 놓고 10개 내지 20개 샘플을 만들어본다. 그 사이 신상품에 대해 완전히 숙지하게 되는데, 그 후 고객과 대면하면 훨씬 자신감이 생기고 계약 체결 확률도 높아진다.”

    그는 요즘 보유고객 정보를 체계적으로 전산화하는 작업에 몰두해 있다.

    “개인보험 계약자 정보파일만 완벽하게 구축되면 세계 어느 장소에서든 노트북 하나로 보험영업이 가능하다. 우선 기초자료를 입력한 뒤 앞으로 계속 축적되는 정보를 추가할 생각이다. 주소 전화번호 직업은 물론이고, 가족상황과 보험계약상황, 보험료만기시기, 연봉과 직급 변화, 회사 이동 등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작업 중이다.”

    작업에 드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최근 그는 개인비서를 채용했다.

    “보유고객은 설계사의 가장 큰 자산이다. 갈수록 고객 관리가 중요해지고 있다. 일단 기본 파일이 완성되면 고객을 등급별로 분류해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더욱 고객관리를 강화할 예정이다.”

    지씨는 이미 오래 전 고객관리의 중요성을 경험으로 체득했다.

    “신인 시절 만난 고객인데, 사업하다 자금사정이 어려워지자 그 동안 든 보험을 해약하려고 의논해왔다. 만기가 얼마 남지 않아 조금만 버티면 목돈을 쥘 수 있는데 몹시 안타까웠다. 중도해지 하면 환급금이 대폭 줄어들어 손해가 클 수밖에 없었다.”

    돈보다 사람을 잃기 싫어 눈물로 보험해지를 만류했다는 지씨. 결국 만기가 될 때까지 고객은 보험을 해지하지 않았고, 나중에 그 고객은 “당신 같은 설계사 처음 봤다”며 고마워했다.

    “그 분은 지금까지 내 고객이다. 요즘은 월 3000만원에 달하는 보험료를 한 달도 거르지 않고 제 날짜에 꼬박꼬박 입금시키고 있다.”

    ”단체보험으로 전문성 · 고수익을 노린다”

    1993년 교보생명에서 보험설계사 첫발을 내디딘 도영미씨(42·팀장)는 여성설계사로 드물게 직장·단체를 상대로 필드를 누빈다. ‘2001연도상’ 수상식에서 고객관리 부문 금상을 수상한 그는 “보험영업은 처음부터 잘할 수 없다. 어느 구름에 비가 올지 모르기 때문에 끈기 있게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길이 열리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현재 그는 금융감독원을 비롯해 관광공사, 일본종합상사, 전기안전공사 등 단체보험 (보유)고객 5곳을 두고 있다. 이외 직장인 보유고객이 300명에 이른다. 그 가운데 전기안전공사가 제일 큰 고객이라는 도씨.

    “설계사 시작하고 1년쯤 됐을 때 전기안전공사 시장개척에 나섰다. 그 때는 내부 연줄이나 인맥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들어가는 문이 어딘지 정도만 알았다. 공사가 고덕동에 있어 버스를 타고 가려면 한 시간 반이나 걸렸는데, 일주일에 두 번 무작정 가서 이런저런 자료를 건네주고 오기를 3개월 동안 꾸준히 했다.”

    도씨는 “텔레비전 홈쇼핑을 보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별로 살 필요성을 못 느끼다가 설명을 자꾸 접하면 사게 되는 심리가 있지 않느냐. 보험영업도 비슷한 것 같다. 여러 차례 꾸준히 가서 설명하고 부딪치면서 고객이 하나 둘씩 늘어났다”고 말한다.

    3개월 동안 공들인 끝에 어렵게 전기안전공사를 개척해 따낸 실적은 ‘1인당 월 보험료 3만원 이상, 전국 공사직원 2700명’이다. 줄잡아 월 8000만원이 넘는 수입보험료를 올린 셈이다. 뿐만 아니라 공사 직원들 개인보험을 여러 건 함께 따내는 소득도 있었다.

    단체보험은 통상 회사와 노동조합 측의 합의가 있어야 계약이 가능하기 때문에 설계사의 중간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단체 시장공략은 회사 전체 정보와 노조 쪽 정보를 상세히 알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회사나 직원들 분위기 파악도 매우 중요하다. 일단 기업특성 분석이 끝나면 공략 대상으로 삼을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공략한다면 언제, 어떤 분위기일 때 공략하느냐가 관건이다.

    예를 들어 인사이동이나 단체협상 등으로 미묘한 분위기가 형성됐을 때는 피해야 한다. 언제 돌발사태가 터져 그냥 발길을 돌려야할 지 모르는 곳이 바로 단체보험 시장이다.”

    교보생명에서 현재 취급하는 보험상품 종류는 19개지만 도씨는 그 중에서 종신보험, 단체보험, 건강보험, 저축성보험 네 종류만 취급한다. 갈수록 더욱 전문화된 설계사를 필요로 하는 보험시장에서 그는 일찌감치 방향을 잡은 셈이다.

    < ING생명 드림지점 최세연씨 >

    ”잠재고객의 사소한 정보가 중요한 영업재산”

    경력 3년의 설계사 최세연씨(31)는 “개인적으로 특정 부류, 특정 고객을 목표로 삼아 실적 위주로 영업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상대가 누구든 어떤 지위에 있는 사람이든 가리지 않는 것이 보험영업을 하는 사람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아직 젊으니까 실적에 급급하며 서두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때문에 그는 시장개척에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 대신 언제 어떤 자리에서 만난 사람이든 시간을 두고 믿음을 쌓아간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 이상 접촉하다 보면 서로 마음을 여는 때가 온다. 어느 정도 친근감이 들었을 때 평생에 걸친 재정 설계를 해주면 고객 스스로 보험의 필요성을 느낀다. 이쯤 되면 70∼80%는 보험에 가입한다.”

    최씨는 고객이 마음을 열기까지 몇 달 동안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는다. 이 기간은 그가 고객 정보를 하나하나 축적해 가는 시간이다.

    “예를 들어 전화 통화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월급이 얼만지, 매달 적금은 얼마나 붓는지, 아이들 과외비는 얼마나 드는지…그런 얘기를 하지 않나. 이런 통화 내용을 빠뜨리지 않고 적어두면 나중에 재무설계할 때 중요한 정보가 된다. 사람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로 항상 메모하는 습관이 있다.”

    지금까지 그렇게 쌓아온 고객이 180명에 이른다. 최씨는 보험영업을 하면서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30대 직장인이 월 10만원씩 20∼30년간 보험료를 납입한다고 가정하자. 이걸 다 합치면 2000만∼3000만원이 넘는 액수다. 그런데 보장 내용이 어떤지, 왜 자신에게 몇천만원짜리 보험이 필요한지 전혀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종종 있다. 몇만원 하는 물건 하나를 살 때도 가격이나 품질을 꼼꼼이 따지는 게 보통인데 무조건 계약서만 쓰면 되는 걸로 생각하는 고객을 만나면 답답하다.”

    요즘 ING생명에선 ‘사랑의 보험금’ 운동을 펼치고 있다. 최씨가 개인적으로 시작했던 일이 지금은 회사차원의 행사가 됐다. “보험계약자가 나중에 보험료를 탈 때 약간의 돈을 기부하면 이를 모아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다. 그런 취지에서 보험 가입 시 얼마를 내겠다고 미리 약속을 받는다.”

    보험만기가 되려면 짧게는 몇 년, 길게는 20∼30년이 걸리지만 “당장 성과를 얻자는 것보다 멀리 내다보고, 우리사회에 새로운 보험문화가 정착됐으면 한다”는 최씨. “열심히 일하다 보면 보람과 대가는 자연히 따라오지 않겠는가”라는 그의 말처럼, 현재 최씨는 연수익이 최소 1억원은 넘어야 자격이 주어지는 MDRT 회원이다. 그는 매일 서너 시간씩 할애해 그 동안 ‘메모’해둔 정보를 가지고 단 한 사람의 잠재고객을 위한 ‘인생설계’에 몰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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