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보험업계에 새 바람이 불고 있다. 저금리 시대와 외국계 보험사의 약진, 그리고 방카슈랑스, 변액보험제 등 새로운 제도의 도입이 새 바람의 골자. 이같은 변화의 바람이 보험업계에 얼마만큼 영향을 끼칠지 알 수 없지만, 이미 발빠른 선두주자들은 보험시장의 환경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고 있다.
대형 생보사들도 변화의 소용돌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국내 최고의 보험사인 삼성생명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영업부의 파워에 눌려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자산운용부를 기존 10개 부에서 12개 부로 늘리면서 부장과 차장급 5명을 이사급 팀장으로 승진시켰다. 삼성생명 고위 관계자는 “이런 일은 삼성생명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며 상당히 놀라워했다. 분명히 혁명적인 변화다.
보수적인 인사관행으로 유명한 삼성생명에서 이렇듯 젊은 부·차장들을 주요 포스트에 전진 배치시킨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저금리 시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저금리 시대에는 영업보다는 자산운용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생보사들이 운용하는 자산 규모가 수십조원에 이르기 때문에 세밀한 자산운용에 온 신경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 보험 설계사들이 애써 벌어들인 보험료를 자산운용의 실패로 까먹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 금리가 낮은 은행에 맡겼다가는 역마진으로 오히려 손해가 날 수도 있다. 따라서 자산운용부를 강화한 것은 위험관리를 철저히 하겠다는 의미다.
자금운용이 성패 좌우
삼성생명은 국내 최대의 보험사답게 운용하는 자산만 45조원이 넘는다. 이처럼 막대한 자산을 관리하는 데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을 놓고 고민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예컨대 삼성생명은 재무기획팀을 포트폴리오 운용팀과 위험관리(Risk Management)팀으로 분리했다. 또 주식운용팀과 채권운용팀은 팀장에 30대 부·차장급을 과감하게 기용했다. 주식운용팀의 경우 런던지점에서 근무했던 차장이 팀장으로 올라왔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컴퓨터 모니터를 보면서 증시 동향을 체크하고 투자종목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에 체력과 순발력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젊은 팀장을 발탁한 것이다.
삼성생명이 운용자산의 유형을 바꿔가는 것도 중요한 변화다. 수익률 차이가 많은 부동산, 유가증권보다는 현금화가 가능하고 안정적인 수입원에 관심을 쏟고 있다고 한다. 이자수입 등이 그 예다. 또 저수익 자산을 줄이고 임대수입은 늘리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신용등급이 낮은 곳에 대해 대출을 회수해 위험을 줄이고 있다.
국내 시장점유율 2위를 달리고 있는 교보생명 역시 자산운용부를 강화하고 있다. 26조원의 자산을 운용하다보니 영업 쪽에서 수입이 많아도 자산운용에서 실패하면 수익에 막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과거 성장시대 ‘볼륨(Volume)’ 중심의 경영에서 수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밸류(Value)’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또 리스크관리와 투자부문을 보강하기 위해 외부 인사도 영입, 자산운용부 개혁을 진행중이다. 실제 교보생명은 최근 미국 푸르덴셜에서 자산 운용을 맡았던 오익환씨를 상무로 스카우트했다. 오상무는 미국 계리사 자격증과 재무분석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는 전문가로 지난 6월부터 교보생명에서 리스크 관리 및 경영기획 등 핵심 역할을 맡았다. 이를 계기로 교보생명은 해외 투자 및 특수금융을 확대하는 등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는 쪽으로 자산 포트폴리오를 다시 짤 계획이다.
이에 앞서 흥국생명은 지난달 자산운용부문 총괄 부사장에 외국계 금융회사 출신의 이백씨를 영입했다. 이 부사장은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딴 후 뱅크오브아메리카, 트러스트뱅크, 살로먼스미스바니증권 등에서 경력을 쌓아온 미국통이다. 이 부사장은 장기 투자를 해야 하는 자산의 특성을 고려, 앞으로 해외 투자를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중이다.
신한생명도 최근 이사회를 열고 신한은행 양석승 상무를 자산운용 담당 상무로 선임했다. 재정경제부(옛 재무부) 출신인 양상무는 지난 1982년 신한은행으로 자리를 옮겨 줄곧 자산운용 등 관련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 왔다. 이밖에 SK생명도 투신사 출신 채권 펀드매니저 박종진 부장을 영입해 자산운용 조직을 강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저금리 시대로 접어들면서 생보사들의 최대 화두가 실적경영을 통한 생존으로 모아지자 조직개편과 과감한 구조조정을 병행하고 있다. 맥킨지로부터 경영 컨설팅을 받은 삼성생명은 최근 전체 8000명 직원 가운데 30%를 감축하기로 하고 세부작업에 들어갔다. 또 7월부터 1400여 명에 달하는 삼성생명의 현장소장을 모두 계약직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종신보험 등장으로 달라진 보험시장
다른 생보사들의 현실도 이와 비슷하다. 국민생명을 인수한 SK생명도 경영난을 타개하는 방안의 하나로 최근까지 대규모 명예퇴직을 실시했다.
사옥 매각을 추진중인 흥국생명은 이참에 회사 전체를 내다파는 작업을 진행한다. 이 역시 저금리와 주식시장 침체로 적자가 눈덩이처럼 확대되고 자산운용이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산운용부를 강화하는 또 다른 이유는 국내 보험계약자 수가 전 인구의 83%에 이르는 등 포화상태에 있다는 현실 인식과 맞물려 있다. 신규 계약자를 유치하는 것보다 보험금을 손실이 나지 않게 운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런 국내 업체들의 움직임에 외국계 보험사들은 반발하고 있다. 푸르덴셜은 이런 움직임이 오히려 거꾸로 가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제 막 보험의 본격적인 시대가 열리고 있는데 영업보다 자산운용에 회사의 역량을 집중한다는 것은 ‘분명한 퇴행’이라고 못박는다. 그래서 푸르덴셜의 올해 목표도 영업인력(푸르덴셜은 종신보험을 설계한다는 의미에서 영업사원을 Life Planner라고 부른다)을 30% 늘리는 것이다. 현재 영업인력은 1024명이다.
푸르덴셜이 주장하는 신 보험시대의 골자는 종신보험의 증가다. 종신보험은 피보험자가 사망할 때까지 보험금을 내는 상품이다. 따라서 보험금 혜택은 유가족에게 돌아간다.
국내 생명보험사들은 사업초기부터 저축성 보험 등을 판매했기 때문에 소비자들이나 보험사에서조차 종신보험이란 상품은 낯설었던 게 사실이다. 푸르덴셜, ING생명 등 외국계 보험사들이 공격적으로 이 시장에 진입해 좌판을 벌이자 뒤늦게 국내 보험사들도 이 판에 끼어들면서 시장이 형성됐다. 그러나 아직도 국내 시장에서 종신보험이 보험상품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에 불과하다.
하지만 미국시장은 국내 현실과는 정반대다. 지난 1999년 미국 생명보험 보험료 현황을 살펴보면 개인시장의 경우 종신보험(Permanent Insurance)이 88.7%, 기간이 명확히 표시된 정기보험이 11.2%, 그리고 연금보험이 0.1%를 차지한다. 이를 근거로 푸르덴셜 강원희 상무는 “종신보험은 틈새시장이 아니라 주류시장”이라고 주장한다. 언제쯤 국내 시장에도 종신보험이 주류로 자리잡을지는 모르지만, 개인의 소득이 높아지고 사회가 선진화될수록 더욱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한다.
국내 보험사들이 서둘러 종신보험 시장에 진출하려는 이유도 이런 금융 추세가 이미 국내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실례로 교보생명은 지난 5월 판매한 상품 중 50%가 종신보험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1억∼2억원에 불과했던 계약고가, 지난 5월 80억원을 넘는 등 폭발적인 신장세를 나타냈다. 교보생명은 5∼6개의 종신보험 설계사조직을 올해 말까지 12개로 늘려 시장 팽창에 대응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종신보험이 인기를 끌고 있는 요인은 간단하다. 보험의 목적에 가장 잘 맞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1000개가 넘는 보험상품이 있지만 이를 목적별로 분류하면 3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가장이 일찍 죽었을 때를 대비해 가입하는 생명보험, 둘째는 가장이 다치거나 아플 때를 대비한 건강상해보험, 그리고 반대로 가장이 너무 오래 살 경우를 대비한 연금보험 등이다.
소비자가 점차 상품 그 자체보다는 상품의 효용성과 기능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보험상품 역시 보험이 갖고 있는 미래 대비성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종신보험은 그야말로 보험의 목적에 딱 들어맞는 상품이면서, 전문적으로 훈련된 설계사들이 고객을 방문, 1대1로 보험상품을 설계하고 재정안정 프로그램을 짜주기 때문에 수요는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국내 시장에서 푸르덴셜과 ING생명이 차지하는 시장점유율은 각각 0.5%와 1%다(표1 참조). 삼성생명과 교보생명이 40%와 21%의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과 비교하면 시장에서 영향력이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러나 종신보험이라는 단일 상품으로 연간 2000억∼4000억원의 보험료 수입을 얻는 외국계 보험사의 약진은 아무래도 국내 보험업계로서는 여간 부담스러운 존재가 아니다. 특히 외국계 보험사들은 고학력의 남자 설계사들에게 전문 훈련을 시켜 소위 중상층 시장을 공략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종신보험 유치 전쟁
지난해부터 벌어진 종신보험 유치 전쟁은 일단 삼성생명이 푸르덴셜에 한 수 배우는 것으로 일단락됐는데, 그 과정이 흥미롭다. 지난해 4월 삼성생명은 종신보험료를 15% 가량이나 내렸다. 삼성생명 상품군에서 종신보험이 차지하는 비중은 0.6% 정도. 따라서 보험료를 낮춰도 회사 전체로서는 별로 타격이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종신보험이 상품의 전부인 외국계 보험사의 경우 보험금의 가격 하락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다른 보험의 보험료는 그대로 두고 종신보험료만 내린 것은 아무래도 외국 보험사를 의식한 처사로밖에는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상황은 예측한 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일례로 푸르덴셜은 지난해 영업에 별 영향을 받지 않았다. 보험료를 내린 삼성생명의 종신보험 계약자는 늘었지만, 가격을 내린 탓에 별로 이익을 얻지 못했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다 둘 다 놓쳤던 것이다. 사정이 이렇자 삼성생명은 올해 다시 보험료를 15% 인상하면서 외국계 보험사와의 한 판 전쟁을 서둘러 마무리했다.
이처럼 종신보험의 경우 가격경쟁과 단순한 영업만으로는 시장장악이 어렵다고 판단되자 삼성생명도 고학력 남자설계사를 육성하기 시작했다. 라이프 컨설턴트(Life Consultant)로 불리는 삼성생명의 남자설계사는 현재 250명. 이들은 주로 과·차장급의 중견 사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합숙훈련, 1대1 개인 교습 등을 통해 전문화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있다.
또 전국에 퍼져 있는 영업망을 통해 종신보험을 판매하기 위해 여성 설계사들에게도 교육을 시키고 있다. ‘아줌마 설계사’를 뛰어넘어 종신보험 설계사가 되기 위해서는 회사에서 시행하는 재무과정을 이수해야 하며, 이들 이수자에 한해 FC (Financial Consultant) 자격을 줘 종신보험 영업을 하도록 한 것이다. 내년까지 2만4000여 명의 FC를 양산할 계획인 삼성생명은 남성 설계사들과 FC들을 주축으로 종신보험 시장을 공략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사실 삼성생명은 1990년 초부터 젊은 여성 설계사를 주축으로 ‘리젤’이라는 특수 조직을 두었다. Insurance와 Angel의 합성어인 리젤은 대부분 대학졸업 학력을 소유한 여성들로 대기업 직장인들을 주고객층으로 삼아 영업활동을 벌였다. 아는 사람을 통해 영업하는 이른바 연고영업을 타파하고 적극적으로 시장을 개척하자는 취지에서였다. 그러나 삼성생명의 노력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삼성생명은 변호사, 의사, 전문직업인 등 중상층 고객을 타깃으로 한 종신보험의 세일즈를 강화하기 위해 남성설계사 조직을 새로 만들었다. 심지어 외국계 보험설계사를 강사로 초빙해 그들의 노하우를 습득하기도 한다. 비록 경쟁자지만 시장을 선점한 이들의 경쟁력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외국사간 경쟁도 치열
외국사 간의 경쟁도 볼 만하다. 푸르덴셜과 ING생명은 종신보험으로 국내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업체들이다. 수입보험료나 신계약액 기준으로 보면 ING생명이 푸르덴셜보다 앞선다(표1,2참조). 그러나 푸르덴셜이 사실상 국내에 종신보험을 개척한 선발주자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ING생명이 초기 국내 진출할 때 푸르덴셜 직원들을 스카우트해서 영업조직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도 업계가 인정하는 부분이다.
심지어 ING생명은 최근 광고에서도 1998년에 푸르덴셜이 사용했던 광고 컨셉을 일부 이용했다(사진 참조). 비슷한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는 있지만 전체적인 내용이나 사진의 구도가 예전 푸르덴셜이 사용하던 광고와 비슷해 보인다는 사실이 이채롭기까지 하다. ING생명측도 “1998년에 푸르덴셜이 이런 광고를 사용한 것은 알고 있지만, 올해 영업목표는 고객에게 집중한다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이 광고를 제작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후발주자였던 ING생명이 공격적인 경영으로 영업실적 면에서 푸르덴셜을 따돌리자 푸르덴셜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푸르덴셜의 LP에 해당하는 ING생명의 FC는 현재 3000여 명에 육박한다. 푸르덴셜 설계사의 두 배가 넘는 규모다. 푸르덴셜측에서는 “성장속도가 빠를수록 조직을 관리하는 것이나 수익을 내는 데는 오히려 좋지 않을 수 있다”고 애써 그 의미를 축소하지만 내심 긴장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LP의 숫자를 늘리는 것이 영업력과 수익력을 강화하는 지름길임을 푸르덴셜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조직의 견고함을 비교해 보면 푸르덴셜이 낫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례로 푸르덴셜은 4년제 정규 대학 졸업자 중에서 직장 경력 2년이 넘은 사람만을 대상으로 LP를 선발한다.
LP는 실적에 따라 여러 단계로 나뉜다. 연간 보험계약건수별로 나눠보면 시니어 150건, 컨설턴트 300건, 시니어 컨설턴트 450건 그리고 이규제큐티브는 600건을 넘어야 한다. 한 주에 10건 이상의 계약을 진행해야 이규제큐티브에 오를 수 있고, 회사 내에서는 영웅 대접을 받는다. 전문가들은 ING생명이 장기간 영업실적이 좋은 설계사 수에서는 푸르덴셜에 미치지 못한다고 보고 있다.
‘방카슈랑스’가 보험업계에 몰고 올 파장도 만만치 않다. 우선 국내에서는 전혀 시행된 적이 없는 데다, 외국계 금융기관에만 혜택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국내 보험업계에선 반대하고 있다.
방카슈랑스는 은행과 보험을 합친 개념으로 은행에서도 보험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이 제도는 특히 프랑스에서 유행한 것으로, 이 제도의 도입으로 프랑스 금융업계가 일대 지각변동을 일으킨 바 있다. 그러나 영국 독일 등은 프랑스와 같은 유럽권 국가지만 방카슈랑스 제도가 정착되지 않았다.
이처럼 해외에서도 평가가 엇갈리는 방카슈랑스를 왜 한국에 도입하려는 것일까. 정부는 2003년까지 이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는데, 업계에서는 정부가 은행권 구조조정의 수단으로 방카슈랑스를 이용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은행권의 부실로 공적자금이 투입되면서 대부분이 정부 소유의 은행이 되자 이를 외국기업에 매각하는 등 효과적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매입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고 판단, 이 제도를 도입했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다.
은행이 보험영업도 할 수 있도록 허가해주면 국내 은행의 가치가 높아지고, 이에 따라 정부는 좀 더 비싼 값에 은행 지분을 매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험업계가 이 제도를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은행과 보험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이 최근 세계적인 추세임을 인정하면서도 은행이 보험영업을 하는 것은 허락하면서, 반대로 보험사가 은행업무를 할 수 있는 방안이 함께 논의되지 않는데 강한 불만을 느끼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보험사들 사이에서는 ‘역차별’이란 말도 나온다.
그러나 이 제도가 국내 보험업계에 이슈로 등장하면서 외국계 금융기관이 보여준 발빠른 행동은 국내 보험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일례로 알리안츠라는 독일계 금융기관은 제일생명을 인수, 알리안츠제일생명을 세웠다. 또 하나은행에 출자, 이 은행의 대주주로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알리안츠제일생명은 여의도에 있는 KTB사옥을 인수한다고 밝혔다. 알리안츠는 보험시장 점유율 목표를 10%대로 끌어올리는 등 국내 거대 보험사들과 일전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이미 알리안츠 제일생명은 삼성, 교보, 대한생명에 이어 시장점유율 3.7%를 기록해 4위에 올라 있다.
알리안츠제일생명의 이런 공격 경영은 최근 그룹 이미지 통일 프로젝트로 집중되고 있다. 사장직속기구인 ‘변화과제 관리팀’은 사내 핵심적인 과제 36개를 추진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새로운 재무지원환경이 구축돼 경영진에게 세밀한 성과지표를 제공하고 투자자에게 투명한 재무정보를 제공하게 된다.
또 독일식 성과주의 제도를 도입, 업무성과에 따라 보상하는 임금체계를 준비중이다. 독일 알리안츠 본사의 인사제도를 본 뜬 이 제도는 개인의 시장가치를 측정해 그에 합당한 연봉을 주는 것이 골자다. 또 관리자는 기존 통제자라는 역할에서 벗어나 코치 역할을 담당하게 하며 역시 시장가치에 따라 연봉을 준다. 알리안츠제일생명은 앞으로 2002년 전체 임금 인상분의 50∼70%를 개인의 시장가치에 따라 차등 인상하고 지급할 계획이다.
이처럼 알리안츠가 공격적으로 보험·은행기관을 인수하고, 부동산을 사들이며, 사내 직급과 연봉체계까지 개혁하면서 노리는 것은 국내 금융기관의 변화될 미래모습 때문이다. 방카슈랑스 역시 알리안츠가 염두에 두고 있는 사업이다.
푸르덴셜도 보험영업에 집중하겠다는 발표와는 달리 변화된 금융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다각도로 사업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푸르덴셜은 최근 제일투자신탁증권에 1억달러 출자를 완료했으며, 향후 51%의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추가 투자에 나설 예정이다. 또 메리츠증권에도 출자, 증권업에도 진출했다. 결과적으로 푸르덴셜은 보험 증권 투자신탁업에 진출, 금융그룹으로서의 위상을 다지고 있는 것이다.
보험과 투자 혼합 상품도 등장
외국계의 경영다각화 변신에 국내 생보사도 ‘손놓고’ 있지만은 않았다. 세계적인 금융 트렌드인 ‘원스탑뱅킹(One stop Banking)’을 위해 삼성생명도 은행과 제휴를 추진하는 등 다각도로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이와 병행해 수익이 생기는 곳이라면 은행과 손잡고 해외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삼성은 올해 경영목표를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으로 잡았다.
이를 위한 실천전략은 대략 3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상품개발의 변화다. 이제까지 확정금리형 상품위주였다면 이제부터는 변동금리형 상품을 개발할 계획이다. 또 변액보험상품을 7월부터 내놓는 등 보험과 투자의 개념을 통합한 상품도 출시할 예정이다. 변액보험을 두고 푸르덴셜과 삼성생명의 고객유치전도 앞으로 볼 만할 것이다. 국내 생명보험 역사상 처음으로 투자 개념이 들어간 보험상품이 출시된다는 의미가 있고,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하는 영업인 만큼 두 보험사의 영업력을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변액보험은 기본적으로 보험이지만 주식투자처럼 투자수익률에 따라 받는 보험금액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특징. 물론 투기의 성격을 없애기 위해 보험금 지급액 한도가 설정돼 있다. 그러나 보험사에서 운용하는 자산운용 실적에 따라 보험금 지급에 차이가 발생한다. 말 그대로 보험과 투자의 성격을 섞어놓은 것으로 보면 된다.
교보생명의 경우 교육자료, 상품, 전산시스템 등이 아직 완비되지 않아 시판시기를 다소 늦출 방침이다. 대한생명도 TF팀을 구성, 상품 및 판매채널 구축 작업을 추진중이나 업계동향을 보아가면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메트라이프생명과 푸르덴셜도 적극적이다. 메트라이프생명의 경우 이미 상품개발과 판매전략 수립을 마친 상태. 다만 판매방식과 판매 후 민원발생 시 대응책 등 후속대책을 마련중이다.
푸르덴셜은 판매조직과 고객의 로열티 측면에서 가장 우위에 있다고 판단, 미국시장의 상품형태와 판매조직을 모델로 6월부터 변액보험 시판에 나설 계획이다.
ING생명의 경우 처음엔 국내 변액보험 시장 규모가 작고 특별계정 분리 운용에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로 판매를 보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었으나, 국내사 대비 경쟁력 우위 및 향후 시장흐름의 변화 등을 감안, 변액보험판매가 불가피하다는 현실론 때문에 조기 판매대열에 가세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변액보험 판매 등 날로 변화하는 금융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삼성생명은 올해 기존 설계사 위주의 판매방식에서 텔레마케터, 사이버 판매 등으로 판매채널을 다양화할 계획이다. 현재 200명의 텔레마케터를 단계적으로 늘려나갈 방침이다.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 판매의 경우 전자인증, 또는 전자서명제도가 아직은 고객들의 호응을 얻지 못해 확산되지 않는 실정이다. 그러나 앞으로 인터넷을 통한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될 경우 그 분위기를 틈타 이 분야의 영업도 강화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삼성생명 홈페이지에 가입한 200만명의 회원을 통해 데이터베이스 마케팅과 고객관계관리를 강화할 방침이다.
유능하고 젊은 FC들을 꾸준히 양성해 그 숫자를 더욱 늘려간다는 것이 삼성생명의 방침이다. 조직의 고급화는 수익 향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들에게 설계사용 고급 PDA 등 첨단기기를 제공하고 있다.
요즘 삼성생명 내부에서는 일본연구가 한창이다. 한 때 “일본 생명보험사를 본받자”며 열심히 그들의 영업 방식을 배우던 것과는 달리, 요즘엔 왜 일본 생명보험사가 비틀거리는지 그 실패를 연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1980년대 말 호경기 시절 일본 생보업계는 앞다퉈 영업조직 확대, 상품 개발, 경쟁사 속출 등 규모 확대 전략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지금은 제때 구조조정으로 몸집을 줄이거나 자산운용 안정화를 통해 리스크 관리를 하지 못한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는 형편이다. 일본의 실패를 통해 배울 것은 배우자는 움직임인 셈이다.
삼성생명 교보생명을 위시한 국내 거대 보험사들과, 국내 금융기관을 무차별 매입하면서 공격경영을 선언한 알리안츠 등 외국계 금융기관, 그리고 푸르덴셜, ING생명 등 나름대로 틈새시장을 교묘하게 파고들면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외래 보험사들간의 한 판 전쟁은 향후 보험시장 재편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 와중에 생존을 최대목표로 뛰고 있는 중소 보험업체와 곧 매각일정을 밟게될 대한생명까지 보험시장의 변수로 꼽는다면 좀더 복잡해진다. 그러나 상품보다는 상품이 주는 기능성, 서비스 등을 중시하는 최근 보험업계 영업 형태의 변화로 소비자들은 다양한 보험상품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소비자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서비스와 상품을 제공할 경우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고객만족 경영은 이제 더 이상 구호로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