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작
장작을 보면 아버지가 생각난다결 따라 패야 해아버지는 이른 가을부터 장작을 패며겨울을 준비했다처마 밑 켜켜이 쌓인 장작을 보면 든든했다펑펑 눈이 내리고 세상이 고요할 때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가 흰 눈 쌓인 집의 정적을 더했다나무들…
이희주2020년 01월 07일세 개의 돌
구르는 돌날아가는 돌경계의 돌사라지는 발밑에 나는 누구인가나는 어디 숨었나웃는 돌아픈 돌고통 받는 돌입술이 딱딱하게 굳어간다당신은 생생한 목소리로 말을 했는데뜨거운 돌미워하는 돌화난 돌지팡이에 싹이 나고 잎이 번성하고내일과 모레………
이근화2019년 12월 09일동굴
갑자기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얼마간은 그래도 비치던 희미한 빛깡그리 사라진 암흑복사꽃 피는 언덕에서 맞던 부드러운 바람황토에 뿌리박고 오른 소나무 향기계곡 웅덩이 피라미들의 완전한 자유로움아쉬운 모든 것 뒤에 두고 들어온 동…
신평2019년 11월 12일신앙
뾰족한 끝으로 누르면 터질 것 얇은 막으로 뒤덮여 부풀어 오르는 물집 같은 창빛을 따라가도 끝은 보이지 않았다뒤를 돌아보면 뿔처럼 단단한 손이등을 밀었다재촉하듯 구덩이로 밀어 넣듯청어 떼가 바다를 가르며 지나갔다진동여과장치숨반짝이는…
백은선 시인2019년 10월 13일무화과 숲
쌀을 씻다가 창밖을 봤다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그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옛날 일이다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아침에는 아침을 먹고밤에는 눈을 감았다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황인찬 시인2019년 09월 16일노련한 강물과 오늘의 슬픔
마음이 아플 땐 돌멩이를 던진다광물에 남겨진 시간을 떠서허공의 정점에 풀어놓고 싶은 것이다서로 다른 지층에 묻힌 응어리가 옹기종기 조약돌로 평화로운 정오에도물수제비뜨는 연인의 돌멩이는수면 가장 높은 곳까지 떠오른다지상에서 처음 타인…
기혁 시인2019년 08월 13일시인의 선물
줄 게 이것밖에 없어요. 길거리에서 그는 빈손을 내민다. 나는 그의 빈손을 받아간다. 빈손을 파지처럼 구겨서 주머니에 넣는다. 주머니 속에 시인의 주먹이 공처럼 불룩하다. 그의 빈손은 곧 빈 코트에 내리꽂힐지도 모른다. 그의 빈손은…
김중일 시인2019년 07월 14일위주의 삶
나는 당신을 위주로 생각한다 목성을 위주로 도는 유로파는 목성을 위주로 생각한다 벗어나고 싶을 때 가장 늦게오는 것 위주로 도는 하루를 생각한다 부은 발을 주무른다발끝을 벽 앞까지 밀었다가 당겼다 하루를 유예하면서 하루를 돌았다 도…
문보영 시인2019년 06월 15일몸과 마음의 고도
사람이 달에 가고 13년 후화곡동의 병원인공 폭포 앞을 지날 때마다 엄만 저 근처에서내가 태어났다고 말했다나는 폭포 밑에서 났다고 여겨졌다비 오는 날 켜진 폭포장구벌레는 나와 동기흘러내린다사람이 중력을 뚫고 쏘아 올려지고그걸 당연하…
시인 권민경2019년 05월 11일사탕이 녹는 동안
[신동아=김선재] 사탕이 녹는 동안, 한세상이 지나간다. 오래된 표지를 넘기면 시작되는 결말. 너는 그것을 예정된 끝이라고 말하고 나는 여정의 시작이라고 옮긴다.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될 거야. 어디서든, 어떻게든. 등 뒤에서 작게 …
시인 김선재2019년 04월 09일출입국
저는 그래서 어떻게 되나요? 사람들이 바닥에 차곡차곡 누워 있었다. 자기 옷을 덮고서 자기 가방을 베고서. 번호표를 꼭 쥐고 있었다. 내가 위험하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었다. 내가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물속에 머리를 넣…
시인 임솔아2019년 03월 10일소동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거리로 나왔다 슬픔을 보이는 것으로 만들려고어제는 우산을 가방에 숨긴 채 비를 맞았지빗속에서도 뭉개지거나 녹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려고 퉁퉁 부은 발이 장화 밖으로 흘러넘쳐도내게 안부를 묻는 사람은 없다비밀…
시인 안희연2019년 02월 11일홈
얼음의 살갗을 가진 얼굴도 있다 녹아 흐르면서 시작되는 삶도 있다아이에게 심부름을 시키고도망치듯 사라져야 하는 사람도 있다나무 탁자에 생긴아주 작은 홈이상한 기분을 가진 적 있다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싶었다가게는 멀리 있고심부름을 다…
시인 안미옥2019년 01월 13일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없다고 말하는 순간푸른 길이 열려서 잔잔한 호수가 빛으로내 마음에 스며들었다 사라진다고 말하는 순간나의 눈동자의 폭풍으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거대한 나무가시원한 바람이 되었다.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이그녀의 얼굴을 비추는 순간젊고 싱싱하…
서상훈 시인2018년 12월 16일60초의 전생
닫은 문을 도로 열고 우산을 가지러 들어가기 전문 밖을 나섰던 맨 처음의 나1분 후의 내가 1분 전의 나를 지우고1분 후의 내가 1분 전의 나를 거푸 밀고 지나가는 문간의 착시내 손에 들린 우산 하나가1분 전의 나와 후의 나를 갈라…
시인 이선영2018년 11월 11일노을처럼 살다가
친구여저녁이 오면해가 지는 들판에 나가하얀 구름으로 공을 만들어노을이 그물 쳐진 하늘에발로 뻥 차며 별을 부르자친구여가을이 오면노란 햇볕 머리에 이고코스모스 꽃잎으로 수를 놓아바람이 놀다 가는 언덕에살짝이 깔아 놓고 노랠 부르자누군…
시인 강원석2018년 10월 14일있다
기러기가 기러기처럼 모여서날아가고 있다 시커먼 물웅덩이에나타났다 사라지는 기러기들 속에거위가 다가와 주둥이를 대고 있다빗방울이 만든 웅덩이에 빗방울이 모이고 있다 하나가 수면에 닿을 때마다동심원이 점점 더 커다래지고 있다 완벽한 세…
시인 김소연2018년 09월 12일어울린다
너에게는 피에 젖은 오후가 어울린다죽은 나무 트럼펫이 바람에 황금빛 소음을 불어댄다너에게는 희망이 어울린다 식초에 담가둔 흰 달걀처럼 부서지는 희망이너에게는 2월이 잘 어울린다하루나 이틀쯤 모자라는 슬픔이너에게는 토요일이 잘 어울린…
시인 진은영2018년 08월 08일소금시
로마병사들은 소금 월급을 받았다소금을 얻기 위해 한 달을 싸웠고소금으로 한 달을 살았다나는 소금 병정한 달 동안 몸 안의 소금기를 내주고월급을 받는다소금 방패를 들고거친 소금밭에서넘어지지 않으려 버틴다소금기를 더 잘 씻어내기 위해한…
시인 윤성학2018년 07월 15일시냇가 시냇물에 넣어줘야 해
어째! 저렇게 매혹적인 결혼식도 있네!신부 치엔 진 낭자와 신랑 서 한1) 도령의 이미지를 하객의 자격으로무한정 먹고 마실 수 있는 이 떨림저런 눈빛과 미소는 저런 걸음걸이와 인사는 분명 나와는 초면이라서 더 이상은 먹고 마실 수…
박라연2018년 06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