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당]형태를 완성하기
이응을 연습합니다.이응 이응 이응 이응굶지 않고 잠 잘 자고 입추 아침 바람 입안에 넣고이응 다음 넘어가면미음 미음 미음 미음이응에 못을 네 개 이응 안에 박고 멀어져라 멀어져 미음을 만들 겁니다.나의 단단한 못물려받은 뼈를 사용할…
김복희2021년 10월 10일[시마당] 음소거된 사진
이 사진은 음소거되었다밖에서 개들이 미친 듯이 짖어대고 있지만들리지 않는다두 명의 사제가 천개(天蓋) 아래 담요를 덮고곤히 잠들어 있을 뿐그 옆에 개 한 마리 몸을 말고함께 잠들어 있을 뿐발전기의 소음 들리지 않는다풀벌레 소리도 들…
황유원2021년 09월 05일[시마당] 키 작을 왜, 작을 소
잔잔했던 바다가 돌연 해안선을 덮치고뻐꾸기 소리 다정하던 뒷산이 문득 인가로 무너져 내린다.집요하게 내린 비에 강이 넘치고 마을이 잠긴다.손쓸 수 없이 확산되는 감염병 속에서 사망자가 폭증한다.화재와 홍수, 산사태와 감염병 속에서덮…
이현승2021년 08월 14일[시마당] gleaming tiny area
세상에 분노하는 온도얼굴과 몸가짐이 은퇴한 운동선수처럼 아름답다고 생각하던 사람의 뒤를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따라가고 있었다. 그 사람이 이끈 곳에는 어디에서나 잘 자라는 나무 한 그루가 있고 줄기로부터 처음 몇 년의 검은 지지대를…
김연덕2021년 06월 08일[시마당] 건강과 직업
몸무게를 앞에 두고 헬스트레이너가 묻는다 하시는 일이 뭡니까? 시를 씁니다 직업이 시인이세요? 시인은 직업이 아니라 상태입니다 머릿속에서 단어들이 불법주차를 한 상태, 뜨거운 문장을 들어올려야 하는데 냄비 손잡이가 다 타버린 상태,…
임지은2021년 05월 09일[시마당] 머무르는 동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아직 밝고 따뜻하다한낮에도 켜진 가로등이 있다물웅덩이를 밟은 언니의 발이 거기에 들러붙어 있던 물방울들을 꺼낸다벤치에 앉은 여자의 무릎 위에 잠든 아기가 인형을 자꾸 떨어뜨릴 때마다언니는 엉덩이가 바닥에 거의 …
이기리2021년 04월 12일[시마당]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우리는 불행의 서사에 익숙하다 정규 방송 시간이 끝난 후 검은 화면에 비친 자신을 발견하는 사람이라면 드라마 주인공의 불행은쉽게 바뀌는 상점의 간판들처럼 또 다른 주인공의 불행으로 얼굴만 바뀌는 것국수집이 어느 날 사라지고 국수집 …
김지녀2021년 03월 15일그믐
그믐이면 숨 옆에 숨을 가지런히 두고 강을 하나 만들고 싶었지, 발원은 같지만 서로 다른 곳으로 흘러갈, 그 물에 단출한 점심과 서운한 오후와 유난히 말수가 많았던 저녁을 띄우고, 단번에 끊긴 것 같았던 날들은 사실 단번에 끊긴 것…
박준2021년 02월 18일404 Not found
오늘은 회사에서 아무것도 안 했어요. 방에 나 혼자. 메밀 소바와 만두를 점심으로 먹었어요. 맛집이라고 줄을 서던데 모르겠어요. 돌아와서는 두 발을 의자에 올리고 조금 잤어요. 잠깐 사이 슬픈 꿈을 꿨는데 모르겠어요. 니체의 생애를…
강혜빈2021년 01월 12일알기 쉬운 그림으로 대류현상을 설명하는 페이지
거센 바닷바람 맞으며 절벽에 사람이 서 있군요.너무 낮게 그려진 태양에 어깨가 닿을 것 같은,알아보기 쉬우라고 삽화가가 부러 크게 그린 남자로군요.아슬아슬한 절벽에 서서 그가 페이지 바깥을 쳐다보는데(한여름 바닷가에 부는 바람은 우…
김상혁2020년 12월 07일때때로 어떤 벽은 새벽 같습니다
바위 너머로 누군가 오는데바다 너머로는 아무도 오지 않습니다내게 오는 길 잊었는지 파도도 오지 않습니다사실 내게 오는 길이란 없습니다그저 바다의 많은 부분을 걸러내고 도려내면작은 부분이 남게 되는데그 공간이 나일 뿐이지애초에 내게 …
이원하2020년 11월 09일계피와 붉음
가을은 시작이니,이제 끝내는 걸로 하십시다새들이 빠져나가는 소리와그 틈에 바람이 흥흥대는 장면 앞에가을이 왔으니,이제는 모르는 게 낫지 싶습니다오 님이시여,님뿐인가 합니다만,얼룩덜룩한 손이 건네주는모서리 깨진 버터 쿠키와봉지째 휘휘…
심민아2020년 10월 05일재활
강은 죽은 자들의 영혼으로 흐르고 있다. 끝없이 꽃으로 뒤덮인 들판을 걸으며. 너는 이곳이 천국 길이라고 말했지. 강물의 속도로 우리라는 인간이 떠내려간다. 가라앉는 꽃잎은 젖은 소매와 얼마나 닮았을까. 그렇다고 영혼을 비웃은 건 …
양안다2020년 09월 10일거울에게 전하는 말
너는 바보 아니었을까 함부로 영혼에 걸었으니까 누가 그런 것을 좋아한다고 비스킷을 먹으면 꼭 소파에 비스킷 가루를 흘려놓는 칠칠치 못한 사냥꾼처럼여기는 어디일까 너는 껍질을 뒤집어쓴 만큼만 존재했음에도 생물 사물이 허락하는 만큼만 …
유계영2020년 08월 11일뒤로 걷는 사람
그에게 세상은 한발자국씩 넓어지는 것이었다한발자국씩 멀어지는 것이었다이를테면 그가 걸을 때 옆에서 커다란 사과나무 한그루가 나타난다한발자국, 사과나무는 불타며두발자국, 사과나무는 검게 식으며세발자국, 사과나무는 썩은 사과 한 알이 …
박세미2020년 07월 11일밀랍 양초를 켜둔 청록색 식탁
계단이 쌓여가는 것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 싸움의 목적. 식탁에서 먼저 일어나는 당신의 의자가 바닥을 긋는 소리. 시간에 반듯하게 자르고 싶은 절취선이 생긴다. 가장 소중한 것을 꺼내오고 싶은 것. 그렇게 우리는 기울어져…
서윤후2020년 06월 14일누와 누
누와 누왈츠를 출 땐긴 방귀를 나눠 뀌는 법을 알던 누와 누누와 누기울어진 목과 달싹이는 얇은 귀서로의 장면 속으로 희망을 던지며누가 좀 도와줘누가 좀 도와줄게관광객이 가득한 광장에서 자는 낮잠누, 꿈을 꾸고 싶다관광객들이 꾸는 그…
배수연2020년 05월 15일우리말사전
누굴까요 맹물을 타지 않은 진한 국물을 꽃물이라고 처음 말한 사람은 며칠 굶어 데꾼한 얼굴의 사람들은 숨을 곳을 먼저 찾아야 했습니다 마을을 잃어버린 사람들 한데 모여 마을을 이뤘습니다 눈 내리면 눈밥을 먹으며 솔개그늘 아래 몸을 …
현택훈2020년 04월 14일블루투스 기기 1개가 연결되었습니다
영국은외로움을 관리할 전담 장관을 뽑았다고 한다파란빛이 도는블루투스 문양을 따라 그린다이런 무늬는 누가 만들었을까바쁘시죠,내가 먼저 묻는 건기꺼이 외로움을 선택하고 싶어서혼자 밥을 잘 먹고일기장을 버릴 수 있고책에서 가붓하다라는 단…
김은지2020년 03월 06일오는 봄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중력이었다사과한알이떨어졌다.지구는부서질정도로아팠다.최후.이미여하한정신도발아하지아니한다.*가도 가도 봄이 계속 돌아왔다* 이상의 시 ‘최후’에서
이은규2020년 02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