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아프게 피지 않는 꽃은 없다모진 겨울 없으면 백매화도 없다혹독한 눈보라 있어서 산수유꽃도 있는 것이다사무치고 사무쳐 꽃 한 송이 피는 것이다봄 사월에도 눈발 쏟아질 때 있고황사와 흐린 빗줄기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순간 순간 치열하…
2011072011년 06월 21일사라지는 의자
2011052011년 04월 21일풍문
2011042011년 03월 22일진또배기
젊은 날, 해변을 떠돌다 진또배기를 만나면 반가웠다 푸른 하늘에는 새가 날아다녔지만 사람이 깎아 만든 새가그토록 정다웠던 이유를 몰랐다, 새를 쳐다보며아득히 외로웠던 이유를 몰랐다 …
2011032011년 02월 22일卒
어머니 묘소에 큰절하고 비석 뒷면을 살펴보니생몰연월일 앞에 한자로 生과 卒이 새겨져 있다生은 그렇다 치고 왜 死가 아닌 卒일까 궁금해 하다인생이 배움의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렇다,사람은 태어나자마자 이승이라는 학교에 …
2011022011년 01월 20일배달의 달인
100달러 50달러짜리 지폐를 다 내놔라영웅이 될 생각은 말아라한 남자가 은행 출납창구 직원에게 다가가 커다란 꽃다발과 함께 건넨 카드에 쓰여 있던 배달의 말이다 모두 440달러(52만원쯤이라지)를 건네받은 후 꽃다발을 출납창구에 …
2011012010년 12월 22일활엽수 곁에서
오늘은 등 뒤에서 오는 발소리만으로도 안다네오는 너 때문에 내 쪽이 환해지네 그것은 멀리 맴돌며 간절했었다는 뜻실로 우리는 얼마나 잦게 기다리고 외롭고 왜소한가활엽수 곁에서오늘은 가을의 가녀린 소리에 맞춰우리네 모양 잎사귀 지는 것…
2010122010년 12월 03일해 질 무렵
해 질 무렵엔우리 모두조금 더 고요한 눈길로하늘을 본다 지는 해를 안고집으로 돌아가는 이들의발걸음은 따뜻하다 가족을 다시 만나 건네는 정겨운 웃음 속에 깃드는노을의 평화 아픈 것이 낫기를 바라지만결코 나을 수가 없는사랑하는 이를 언…
2010112010년 11월 02일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물었다
한 발짝 가까워진다는 것은 한 발짝 멀어진다는 것 名作과 名畵에서 정의가 반드시 승리하는 것 나의 따뜻한 밥상 나의 따뜻한 이부자리 나의 빛나는 순간을 제 새끼에게도 공짜로 줄 수 없는 것 저쪽은 아프게 사는데 나는 아프…
2010102010년 10월 05일떠도는 가을
차 안에 음악이 흐르는데 음악을 찾아 자꾸 채널을 더듬는다이런 것을 뭐라고 하나차 마시면서도 차 마시고 싶다고 생각하고 인도풍의 시인도 아닌데 그대가 곁에 있어도 그대가 그리운 것을강물에 뜬 아파트들이 불안한 유령처럼 나를 따라오…
2010092010년 09월 02일불꽃
숨어 있는 열정이터질 때 발목 날리고남은 인생 파멸시키는지뢰 같은 것 아니라면,지루함 엉겨 붙은 밤하늘 어느 한구석적막 제치며 맹렬히 한순간 타오르다사라져버리는폭죽 같은 것이라면,소멸의 징후 온몸으로 감지하며남은 열정 잔잔히 고르는…
2010082010년 08월 04일가로수
꿈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때로 재앙일 수 있다는 것을생생한 실물로 보여주는 저 붙박이 생들올해도 지루하게 동어를 반복하고 있다후천성 일급 장애로 봄이면 버릇처럼, 악착같이, 수평 향해 가지를 뻗어보지만번번이, 욕망은 잔인하게 진…
2010072010년 07월 06일목련
어찌 다 푸르러지려고 저리 희단 말인가 허리 잘록 잘록 허리 신발 벗어 들고 사뿐히 온 봄 손님들 저리 많단 말인가 환한 걱정에 수북 머리에 인 구둣주걱들
2010062010년 06월 04일변명
오늘 나의 두 번째 미소는 거짓이다. 그것은 마치 오래 신은 양말이 조금씩 흘러내리는 것처럼 불편하게 이루어진다. 나는 일부러 모른 체한다. 한밤중에 당도한 손님처럼 부끄럽게 얼어붙은 두 다리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염치없는 …
2010052010년 05월 03일구멍
제 어미가 무가당주스라도 되는 듯 빨고 있는 아이,가슴에 안겨 가슴을 착취하고 있다 졸아드는 건 조바심이나 멀미만이 아니다 수량(水量)이 다하면 어미는 모래톱처럼 드러누우리라다른 곳에 배를 대는 아이의 손은 강건하겠지얼굴 뒤에 숨는…
2010042010년 04월 06일강설기
수천 수만 년 동안하늘로 올라간 조상의 영혼들이이 무렵 은가루 되어따으로 되돌아오는 것일까남과 북, 동서의 구별 없이전국 방방곡곡에 내리는 눈송이마다 모양은 다르지만익숙한 몸짓으로 사뿐히 내려앉는다낮은 지붕과 장독대 위헐벗은 나뭇가…
2010032010년 03월 04일겨울 묵시록
빙하가 떠내려온다. 이 밤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먼 바다에서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떠내려오고 있다. 그 빙하는 우리가 몸을 누인 이 땅에 부딪쳐올 것이다. 순식간에 두 조각이 난 땅 위로 성난 바닷물과 얼음가루가 쏟아져내릴 것이다.…
2010022010년 02월 03일보리, 혹은 물고기
그의 몸에선보리 냄새가 났다두 번의 낮이 지나고 또 한 번의 낮에그가 무릎을 꿇고 낫을 목에 두르자끊어진 보리 모개가 대신발밑에 수북이 쌓였다, 꼬물꼬물개미떼는 쉼도 없이 어디론가 가고해가 중천에 떠서울고 있는 그를 내려다보았다왼쪽…
2010012010년 01월 11일신열 身熱
창밖에 서 있는 한 그루 나무비오는 날 가지에 매달린 물방울이 눈물 같아 내 마음 애달프지만네게 건넬 적당한 말이 없다흰 눈이 내리는 날 하얀 눈을 쓰고 눈사람인 양조심조심 내 앞에 서더라도받아 안은 흰 눈이 네 애틋함의 무게로 휘…
2009122009년 12월 09일시월이 가기 전에 낙엽은 지고
광화문 네거리 저물 무렵급작스러운 경적이 요란하다경적만큼 요란하게 안테나를 꽂은 무슨 구조대 차량이다른 차 한 대를 급정거시킨다거기서 왜 끼어들어! 죽고 싶어 환장했어?……야, 이년아! 운전이나 똑바로 해! ……광화문 네거리차를 세…
2009112009년 11월 0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