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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스의 축복' 티티카카湖에서 영혼을 씻다

‘안데스의 축복' 티티카카湖에서 영혼을 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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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사람들은 물질적으로는 몹시 가난하다. 국민소득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아이티 다음으로 낮은 최빈국이다. 하지만 인디오가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볼리비아는 17세기 스페인 지배 시절 포토시란 곳에서 대규모 은광이 개발돼 유럽의 웬만한 나라 못지않게 번성을 누렸다. 그런데도 지금은 너무나 낙후돼 있다.

하지만 경제적 낙후가 인간성의 낙후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볼리비아인들은 어느 민족보다도 친절하고 순수하다.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한국 여행객들을 상대로 하숙집을 운영하는 한 교민은 “그동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칠레 페루 볼리비아 등 여러 나라를 전전했지만, 한국 교민들이 가장 잘 뭉치고 화기애애하게 사는 곳은 볼리비아”라고 했다. 볼리비아는 살기가 하도 힘들어 ‘한건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흘이 멀다 하고 이집, 저집에서 “밥 먹으러 오라” “좋은 트루차(trucha, 티티카카 호수에서 잡히는 송어)가 있으니 한잔 하자”는 전화가 걸려오곤 한다는 것.

그러나 페루는 사정이 다르다고 했다.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데다 삶의 조건도 나쁘지 않아 어중이떠중이들이 다 모이고, 그러다 보니 남에게 고의로 피해를 입히는 사람이 생겨서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가 페루에 살 때는 한인교회에 나간 지 몇 년이 되도록 누구 한 사람 “우리 집에 가서 한잔 하자”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고 했다. 볼리비아의 교민사회가 이럴진대 여기에서 태어나 평생을 사는 정통 볼리비아인들이야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한가로운 풍경은 카시니를 떠난 지 꼭 30분 뒤에 티티카카 호반 최대의 도시 코파카바나(Copacabana)가 나타나면서 곧바로 사라졌다. 브라질의 미항(美港) 리우 데자네이루의 아름다운 해변의 이름에서 유래한 코파카바나는 호수에 떠있는 ‘태양의 섬’과 ‘달의 섬’으로 가는 길목으로, ‘호수의 어머니’를 모신 성녀의 궁전이 있는 곳이자 ‘호수의 검은 성모제’라는 큰 축제가 벌어지는 곳이다.

숙소를 구하고 짐을 내려놓자마자 시내 한복판에 있는 성녀의 궁전으로 달려갔다. 궁전은 화려했고, 찾아온 사람들도 많았다. 그렇지만 이들을 상대로 벌여놓은 좌판이 길게 이어져 주위는 어수선했다. 그리고는 부두로 가 태양의 섬으로 가는 배편을 알아봤다. 오후에 떠나는 것은 없고 다음날 오전 8시에 출발하는 것만 있었다.



다음날 아침,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데도 동력선 티티카카호에는 20여 명의 승객들로 만원이었다. 인디오로 보이는 한 가족과 나를 제외한 승객은 모두 백인이라 관광선이 분명했다. 배가 얼마쯤 나아가자 구름이 걷히고 태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도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시야를 가로막고 나선 태양의 섬을 조망하기 시작했다.

티티카카 호수엔 모두 41개의 섬이 있는데, 태양의 섬은 그중에서 가장 크다. 폭은 좁지만, 남북으로 길다란 섬의 중앙에는 마치 등뼈처럼 높다란 산이 뻗어 있어 험악해 보였다. 수르(Sur, 南)에서 노르테(Norte, 北)로 달리면서 섬의 형상을 속속들이 보여준 배는 노르테의 찰라란 작은 마을에 승객들을 풀어놓았다.

섬의 역사를 보여주는 미니 박물관에서 ‘성스런 돌(Sacred Rock)’의 위치를 확인한 우리 일행은 곧장 산행에 들어갔다. 간간이 돌로 지은 외딴집과 돼지를 키우는 우리들이 나타났지만, 좁고 험한 길의 연속이라 연신 비지땀을 흘려야 했다.

그렇게 40여 분쯤 걸었을까. 우리네 무덤 앞에 흔히 놓이는 상석(床石)같이 생긴 네모난 성스런 돌이 나타났다. 이리저리 살펴봤지만 정교하게 다듬었다는 것과 주위에 그보다 작은 네모난 돌 몇 개가 뒹구는 것 말고는 별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다. 잉카인들은 태양의 신을 이 세상과 인간을 만든 창조자라며 ‘인티(Inti)’라 불렀다. 인티는 그들에게 지고(至高)의 것이라 인티라미(태양제), 인티우와타나(해시계) 등 그들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에는 모두 인티라는 말을 붙었다.

산중의 산 이이마니

그런 인티가 아들 망코 카파크와 딸 마마 오크요(카파크의 아내이기도 하다)를 지상으로 내려보낸 게 바로 이곳이다. 그때 카파크의 손에는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인티는 그를 북쪽으로 향하게 하고는 지팡이가 저절로 꽂히는 곳에 도읍지를 건설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곳이 잉카제국의 400년 도읍지인 쿠스코다. 망코 카파크는 쿠스코로 가면서 안데스 사람들에게 농사짓는 방법을 가르쳐 잉카문명을 일구게 했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이곳은 잉카민족의 탯줄이라 해도 무방하리라. 따라서 잉카인들이 이곳에서 제사를 드렸다 해서 이상할 게 없고, 성스런 돌이 우리네 상석을 닮았다고 해서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닌 것이다.

일행 중 누군가는 성스런 돌 뒤의 커다란 바위벽에 인티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며 보라고 했으나 워낙 심하게 마모돼 알아보기 힘들었다. 성스런 돌을 둘러본 일행은 이웃한 친카나 유적에서 한동안 시간을 보냈다. ‘친카나’가 미궁(迷宮)이란 뜻이어서인지는 몰라도 돌로 된 축조물 안에는 방들이 많았고, 그곳으로 찾아드는 복도도 좁고 꼬불꼬불했다.

그곳에서 티티카카 호수를 내려다보며 그 옛날 망코 카파크가 강림하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도 신단수 같은 나무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온 것일까. 내 머릿속엔 단군신화가 스쳐 지나갔다. 하늘에 사는 환인(桓因)이 고난에 처한 인간들을 구원하도록 지상에 내려보낸 아들 환웅(桓雄)의 손에는 천부인(天符印) 3개가 쥐어져 있었다. 그것은 하늘에서 강림했음을 뜻하는 증표로서, 당시 신기(神器)로 여겼던 거울, 칼, 구슬이다. 그래야만 인간들을 효과적으로 다스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망코 카파크의 손에도 황금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황금은 잉카 왕권의 상징이자 부의 원천이기도 했다. 쿠스코의 왕궁이자 신전이었던 코리칸차는 온통 황금으로 뒤덮였으며, 죽은 왕의 얼굴에 영생을 기원하기 위해 씌우는 가면도 황금제다. 뿐만 아니라 이곳의 성스런 돌 주위에도 황금의 사원이 있다. 제국 최후의 순간 스페인 정복자들이 그것까지 손에 넣고자 달려온다는 소식을 들은 잉카인들은 그것만은 도저히 넘겨줄 수 없다며 그 모두를 수장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금도 간혹 그때 수장된 황금유물을 건져 올리려는 탐험대가 이 호수에 나타나곤 한다.

각자가 준비해 온 음식으로 서둘러 점심을 해결하고는 곧장 달의 섬으로 향했다. 1시간 정도 걸렸다. 배가 닿은 곳에는 둥글둥글한 자갈이 끝도 없이 깔려 있었는데, 표면에는 파란 이끼가 묻어 있어 누군가가 파랗게 색칠을 해놓은 것처럼 아름다웠다.

거기에서 고개를 들어 라파스가 있다는 볼리비아쪽을 바라보자 흰 눈을 뒤집어쓴 안데스의 준봉 이이마니(해발 6452m)가 모든 것을 어루만져줄 듯한 자세로 이쪽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해발 3810m의 티티카카 호수에서 바라봐도 그 모습이 별천지인 양 신비스러운데, 만약 그보다 훨씬 낮은 곳에서라면 아마 눈이 부셔서 이이마니를 제대로 바라볼 수 없을 것이다.

산중의 산 이이마니는 날씨를 좌지우지하는 기상의 신 투나푸가 사는 성지(聖地).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며 살아가는 잉카인들에게는 투나푸가 좋은 기분을 갖는 것이 중요했기에 짝을 만들어줄 생각으로 이이마니에서 잘 보이는 이곳에다 지모신(地母神)을 모시는 달의 신전을 세웠다. 그래서 이 작은 섬의 이름도 달의 섬이 됐다.

인디오 처녀의 미소

배에서 내려 몇 개의 돌계단을 넘어서자 곧바로 신전이 나타났다. 벽만 남아 있어 그 전모를 상상하기는 쉽지 않았으나 웬일인지 그 넓은 벽면에는 격자형 홈이 여러 개 패어 있었다. 이곳의 지모신전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들이 아들을 낳게 해달라며 자주 찾는 곳이다. 달은 물의 신을 겸해 출산과 생산을 관장한다고 믿어서다.

신전은 말 그대로 신의 거소다. 인간은 여기에 모신 신에게 제사를 올린다. 그러나 이것이 일방적인 ‘봉사’는 아니다. 거기에는 자신이 가진 최고의 것을 바쳐 자기가 갖지 못한 또 다른 최고의 것을 구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잉카인들이 섬김의 대상으로 삼은 해의 신과 달의 신은 그들의 생사를 좌지우지하는 존재임에 틀림없으나, 그들은 한편으론 해와 달의 신을 움직일 수 있는 제사와 기도를 가졌기에 미래에 대한 불안을 떨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스페인 정복자들이 자신들을 해치려 나타났는데도 구세주로 여겼던 것이다. 그렇다면 해와 달의 신이 함께 사는 티티카카 호수는 그들에게 과연 어떤 존재였을까.

배는 다시 태양의 섬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노르테가 아니라 수르의 솔(Sol, 태양)이 목표였다. 부두 앞으로는 더러 이가 빠졌으나 100개도 넘는 계단이 45°경사를 이루면서 위로 이어졌다. ‘잉카계단’이란 이름이 붙은 그 계단을 몇 차례나 가쁜 숨을 몰아쉬고서야 겨우 올랐다. 정상에는 목을 축일 수 있는 ‘성스런 샘(Sacred Fountain)’이 있어 다행이었다. 아니, 샘이 있기에 계단을 만들어둔 것이다. 잉카인들은 그 샘물을 마시면 영원한 젊음과 복을 누릴 수 있다 하여 순례하듯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바위를 타고 졸졸 흘러나오는 샘은 수량이 풍부해 아무리 많은 사람이라도 충분히 목을 축일 수 있을 정도였다. 사람뿐 아니라 라마와 알파카(낙타과의 일종으로 등에 혹이 없다) 같은 가축도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나도 잉카의 정기를 맛보고자 그 대열에 섰다. 물맛은 무척이나 시원했다.

성스런 샘 위쪽으로 작은 마을이 있다고 해서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하고 코파카바나로 돌아가는 일정은 다음날로 바꾸었다. 좁다란 산길을 따라 걷다 하얀 털스웨터를 가볍게 걸친 젊은 인디오 처녀들을 만났다. 때묻지 않은 순수한 그들의 환한 미소를 카메라에 담고 싶어 포즈를 취해 달라고 하자 못 이기는 체하며 살짝 내쪽을 쳐다보았다. 고운 미소가 가슴에 깊이 꽂혔다.

이어서 계단식 밭이 나타났다. 좀더 올라가자 ‘포사다 델 잉카’란 이름을 내건 호텔도 보였다. 현대식 시설에다 아름다운 정원까지 딸려 한눈에 고급이겠다 싶었다. 그게 마음에 좀 걸리긴 했으나 달리 방법이 없을 것 같아 방이 있냐고 물었더니 아닌게 아니라 들려온 대답은 “예약 없이 찾아온 손님은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곳은 라파스-티와나코-티티카카-코파카바나를 잇는 ‘크리온(Crillon) 투어’를 운영하는 회사 소유의 특급 숙박시설이었다. 티티카카 호수에 작은 동력선이 아니라 공기 부양선을 띄울 만큼 상품은 고급이라고 했다.

더 높은 곳으로 올랐다. 민가라도 보이면 무조건 하룻밤 신세지자고 할 참이었다. 얼마후 다행히 ‘민박’이란 작은 팻말이 보였다. 그것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 올라가니 외딴집 한 채가 나타났다. 해 지기 얼마 전이었는데,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주인 부부는 집앞 텃밭에서 쟁기질을 하고 있었다. 소의 힘을 빌리지도 않고 나무로 만든 아주 원시적인 형태의 삽으로 그 일을 해내고 있었다.

하룻밤 숙박비는 5볼리비아 노스. 미화로 단돈 1달러다. 이제까지 인도를 포함해서 세계 각지를 돌아다녔지만 그렇게 싼값에 숙소를 얻기는 처음이다. 방안에는 침대 하나만 달랑 놓여 있을 뿐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만약을 위해 작은 초 한 자루를 주는 게 전부였다. 거기서 저녁을 먹고(따로 돈을 냈다) 내 평생 처음으로 모든 소리로부터, 모든 빛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밤을 보냈다.

영혼을 씻어준 안데스 소년

그 부부에겐 여덟 살 난 아들이 하나 있다. 내가 그 소년을 본 것은 집에 들어설 때였으나 제대로 알게 된 것은 다음날 아침, 그곳으로부터 3km쯤 떨어진 필코카이나 유적을 찾기 위해 길잡이로 삼으면서였다. 길 같은 길이 없다는 말을 들은 데다 먼길을 다녀오려면 아무래도 말동무가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부부에게 양해를 구하고 소년과 길을 나섰다.

돌부리가 연신 발에 차이는 좁은 길을 따라 작은 언덕을 넘고 넘어 목적지에 이르는 동안 아이는 서툰 스페인어로 대화를 이어가는 내가 행여 넘어지지나 않을까 몹시도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 그러다가 목적지가 눈앞에 나타나자 나보다도 더 반갑게 손가락으로 필코카이나를 가리켰다. 소년은 ‘필코’가 달의 여신이라고 했다. 그래서 필코카이나는 달의 섬을 잘 볼 수 있는 곳에 세워졌다는 것이다. 정말 그곳에선 태양의 섬보다는 작지만 길다란 달의 섬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나는 작고 동그란 입으로 설명을 이어가는 소년이 하도 기특해서 누구에게서 그런 걸 배웠냐고 물었다. 소년은 매일 아침 배를 타고 통학하는 코파카바나의 학교에서 오래전에 배운 것이라고 했다(그때는 마침 방학이었다). 귀여운 꼬마 가이드는 유적 관리인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고 필코카이나에서도 줄곧 내 뒤를 따라다녔다.

하루 숙박비로 겨우 1달러를 내고 그 소년과 인연을 맺었으나 나는 그로부터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따뜻한 마음을 선물 받았다. 그저 가난하고 외딴 곳에서 살아가기에 사람을 그리워해서 나를 친절하게 대해준 것은 아닌 듯했다. 팁 같은 것을 바라서는 더더욱 아니었다. 높은 지대에 사는 안데스인들은 원래 마음의 여유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다. 소년은 그런 민족의 후예였다. 안데스의 연봉(連峰)이 어려 있는 티티카카 호수의 물살을 가르고 그곳을 떠나온 지 이미 여러 해가 지났건만, 나는 지금도 가끔 그 아이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떠올리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내 영혼도 맑아지는 듯하다.

소년과 헤어지고는 곧바로 솔 부두로 내려가 코파카바나로 돌아가는 동력선에 몸을 실었다. 호텔에 맡겨둔 짐을 찾고서 올라탄 라파스행 버스 안에는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벨기에 등 유럽에서 온 젊은이들로 가득 차 영어가 마치 공용어처럼 돌아다녔다.

내 옆자리에는, 안데스의 고봉을 보고는 “우리나라에 온 기분이 든다”고 한 스위스 처녀 리다가 앉았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녀는 인도에서 6개월을 보냈고, 이미 이스라엘 이집트 브라질 칠레 볼리비아를 여행했으며, 앞으로 아르헨티나와 칠레, 남태평양의 타히티를 거쳐 뉴질랜드 호주 홍콩을 돌아보고 스위스로 돌아가는 원대한 여행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라파스에 머물다 태양의 섬을 보기 위해 코파카바나를 찾았다면서 라파스에 숙소를 예약해 두지 않았다면 자신이 묵고 있는 라 레푸블리카 호텔에 머물라고 권했다. 하루 숙박비가 10달러에 불과하고 식사와 서비스도 ‘그만’이라면서.

호수와 비탈진 계곡을 한동안 교대로 보여주던 버스는 티키나란 곳에 이르러 멈춰 섰다. 호수 가운데서 폭이 가장 좁은 이곳에서 호수를 건너기 위해서다. 버스와 사람은 따로따로 건넜고, 뱃삯은 승객들이 개인적으로 냈다. 실질적으로는 이곳이 국경역할 하는지 여권도 검사했다. 도강시간은 15분 정도. 승객이 먼저 건넜기에 한동안 배를 기다려야 했는데, 그 사이에 우리는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아이스크림으로 더위를 식혔다.

100km 정도 떨어진 라파스까지는 줄곧 평탄한 고원이 계속됐다. 푸노에서 보았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광활했다. 알티플라노(Alti plano)라 부르는 이 거대한 고원은 고도가 해발 4000m라 나무는 자라지 않고 풀마저도 겨우 바닥에만 납작하게 엎드려 있을 뿐인데, 안데스 사람들은 그것으로 양과 알파카, 라마 등을 기르며 살아간다. 그래서 양떼를 몰고 가는 인디오들의 모습이 간간이 나타나곤 하여 여행길은 꽤 낭만적이었다. 길이 포장되지 않아 먼지가 일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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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삼윤 < 문화비평가 > tumi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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