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후 4시, 강화도 동막리를 찾은 가족 여행객들이 해안선을 따라 드넓게 펼쳐진 갯벌을 걷고 있다. 강화도의 갯벌은 물떼새, 도요새, 저어새 등이 찾아오는 철새도래지다.
강화여행의 출발지는 갑곶이다. 한 구석이 부서져나간 돈대(墩臺)의 물결이 먼저 손님을 맞는다. 돈대는 외적의 침입을 막고 적을 관찰할 목적으로 쌓은 방어시설.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부터 경술국치까지 질곡의 역사를 감내해온 이 땅은 내딛는 발걸음마다 왠지 서럽다.
갑곶 돈대는 고려가 강화로 도읍을 옮긴 뒤(고려 고종 19년·1232년) 몽골과 싸움에서 강화해협을 지켜낸 수문장이다. 갑곶을 지나 남쪽으로 뻗은 해안순환도로를 달리면 해안선을 따라 돈대와 철조망의 행렬이 이어진다. 용당돈대, 화도돈대, 오두돈대,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 조선 말기, 미국과 프랑스를 상대로 신미양요와 병인양요를 치러낸 피비린내 나는 격전지는 고요한 산책길로 변했다.
죽음의 흔적과 태동하는 생명은 기이하게 맞닿아 있다. 돈대에 올라 눈을 돌리면 초지리에서 동막리까지 끝도 없이 펼쳐진 싱싱한 날것의 갯벌과 마주하게 된다. 갯벌 속엔 꿈틀대는 생명이 신선한 숨을 몰아쉰다. 바지를 걷어붙이고 갯벌에 한 걸음 내디뎌본다. 발가락을 간질이는 갯지렁이와 농게. 아스라이 검은 뻘에 반사된 은빛 햇살. 발이 쑥쑥 빠지는 갯벌을 손 꼭 잡고 걷는 연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