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한 미성의 테너 보스트리지는 올해 봄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첫 내한 공연에서 ‘겨울나그네’를 들려준 적이 있다. 그는 이 무대에서 스물네 곡이나 되는 연가곡을 한 번의 휴식도 없이 불러 관객들을 놀라게 했다. 이러한 가창 방식은 관객은 물론, 가수에게도 대단히 부담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음반을 들어보면 보스트리지가 내한 공연에서 왜 그처럼 무리한 가창 방식을 택했는지 이해가 간다. 그는 ‘겨울나그네’에서 가사의 시적 분위기와 전체적인 곡의 흐름을 표현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그의 노래는 마치 모노드라마처럼 들리기도 한다. 보스트리지는 빌헬름 뮐러가 쓴 시의 주인공이 느끼는 슬픔과 분노를 때로 독백처럼, 때로 연극 대사처럼 읊고 있는데 이런 효과들이 음악을 듣는 재미를 한층 더해준다. 개개의 곡마다 섬세하게 바뀌는 표정, 예를 들면 11번 ‘봄날의 꿈’에서 반짝 희망에 빛났다가 12번 ‘고독’에서 짙어지는 체념의 그림자, 이어지는 13번 ‘우편마차’에서 연인을 회상하는 순간 등은 극적이면서도 아름답다.
음반의 북클릿에는 보스트리지가 직접 쓴 해설이 들어 있다. 철학박사(그는 옥스퍼드에서 역사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답게 보스트리지는 비트겐슈타인과 사뮈엘 베케트 등을 인용하며 해박함을 과시한다. 이 해설을 통해 우리는 보스트리지가 슈베르트의 필사본 악보를 이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슈베르트는 ‘겨울나그네’의 원곡에서 테너에게 적합한 높은 조성(調聲)을 사용했다고 한다. 실제로 보스트리지는 6번 ‘넘쳐흐르는 눈물’ 등 곡의 상당수를 높은 조성으로 불렀는데 바리톤의 ‘겨울나그네’에 익숙한 필자의 귀에도 어색하게 들리지 않는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의 피아노 반주다. 보스트리지는 이번 음반에서 자신의 오랜 반주자인 줄리어스 드레이크 대신 안스네스를 택했다. 독주자로도 명성을 얻고 있는 안스네스는 맑고 명료한 터치로 보스트리지의 투명한 음색을 차분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겨울나그네’의 레퍼런스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전체적으로 대단히 만족스러운 음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