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개 민족, 13억 인구의 거대한 대륙. 문화현상과 생활관습이 지역마다 서로 다르고, 얼굴과 옷차림만 보아서는 그들의 진면목을 알기 힘들다. ‘만만디(慢慢地)’와 ‘차부둬(差不多)’로 요약되는 대륙기질에서 남녀관계 언어생활 식생활 음주습관에 이르기까지 중국문화의 내면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주잉제(朱英杰·48) 주한 중국문화원장은 스스럼없이 한반도가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하는 지한파(知韓派) 중국인이다. 헤이룽장(黑龍江)성 출신으로 대학졸업 후 북한으로 유학, 평양무용음악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중국 문화부 아시아처에 근무하면서 한반도를 담당했고 1989년부터 1992년까지는 평양주재 중국대사관에 근무하기도 했다. 2003년부터 한국근무를 하고 있는 주 원장은 오는 12월 중국문화원 개원을 앞두고 있다.
먼저 중국인의 특징적인 기질을 중심으로 그들의 겉모습과 내면세계의 진면목을 살펴보자.
-중국이 워낙 넓고 크다 보니까 사람들도 지역에 따라 다르다고 합니다. 그래서 산둥 사나이(山東好漢)니 원저우 장사꾼(溫州商人)이니 하는 식으로 각 지역 사람을 일컫는 별칭이 많습니다. 대개 지역에 따른 사람들의 생김새나 기질의 차이를 어떻게 분류할 수 있습니까.
“중국은 56개 민족으로 이루어져 있고 땅이 넓기 때문에 각 지역마다 여러 면에서 차이가 납니다. 기후가 더운 남쪽 사람들은 키가 북방인에 비해 작고 습기가 많아 피부색이 하얀 편입니다. 반면 추운 지역인 북방사람들은 키가 크지만 피부색이 남쪽사람처럼 희지 않습니다. 북쪽은 날씨가 춥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주 움직여야 하지만 남쪽은 더우니까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 편입니다. 자연히 생활습관과 성격도 서로 달라서 북쪽 사람들은 성격이 밝고 급한 편인데 비해 남쪽 사람들은 느긋한 편입니다. 이런 차이점이 있어서인지 중국인끼리는 처음 만난 사이라도 금방 상대방이 북방인인지 남방인인지 알아차립니다.”
중국인의 감정 표현
-중국인의 얼굴만 보아서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알기 어려운 것 같아요. 그리고 옷입은 것만 보고 신분을 짐작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한마디로 겉모습만 봐서는 어떤 사람인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중국 사람들의 감정표현 방식은 어떤 것인가요.
“사실 오늘 인터뷰가 있어서 이렇게 양복을 입었습니다만, 평소엔 점퍼에 청바지 입고 일할 때가 많습니다. 무슨 공식행사 아니면 양복 정장을 잘 입지 않습니다. 한국인이나 서양사람들처럼 옷차림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습니다. 양복을 입으면 움직이기 불편하다는 게 중국인 대부분의 생각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겉모습에 신경쓰기보다는 편리한 옷을 입는 쪽을 택하는 것이지요.
옛날부터 중국에서는 특히 돈 많은 사람들이 비싼 옷으로 티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가난한 사람보다도 더 허름한 옷을 입기도 했습니다. 며칠 전에 대학에서 한 학생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는데요. 지금 중국의 부유층 규모가 한국 전체인구보다 많다고 하는데, 중국사람들을 겉으로 봐서는 누가 부자인지 도저히 모르겠더라는 겁니다.
감정의 표현에선 대체적으로 북쪽사람들이 한국인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얼굴에 감정상태가 잘 드러나지요. 반대로 남쪽지방에 가면 사람들이 좀 복합적인 모습이라고 할까요, 겉으로만 봐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이 안갈 때가 많습니다. 중국인들은 역사적으로 전쟁과 혼란의 시기를 무수히 겪었기 때문에 안전하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급적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게 몸에 배었다는 겁니다. 일리있는 분석인 것 같아요.”
-중국인의 모호성은 언어생활에서도 엿보입니다. 예를 들어 ‘차부둬(差不多)’라는 말은 크게 모자라지 않다, 대충 비슷하다는 뜻으로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이는 표현인데요. 정확히 어떻다는 것인지 불투명하게 들릴 때가 많아요. 이런 사례가 무수히 많습니다. 이 같은 언어습관은 좋게 말하면 중용지도의 일종으로 볼 수도 있고, 중국인의 모호한 태도랄까 보신(保身)주의적 처신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모호성이 분명히 있습니다. 상대방이 저한테 ‘원장님 이러이러한 걸 도와주십시오’라고 했는데, 그때 제가 가타부타 대답하기 곤란하면 ‘커이바 차부둬’(可以? 差不多)라고 해버립니다. 그런데 이 말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아주 모호한 대답이지요. 한마디로 ‘대강주의’라 할 수 있어요. 중국말에 이런 모호한 표현이 많은 것은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더라도 자기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요령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옛날부터 전쟁이 많아 혼란스럽고 곤궁한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에 자연히 이런 보호본능이 생긴 게 아닌가 합니다. 또 자신이 없을 때 그런 모호성이 나타납니다. 어떤 일을 스스로 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으면 그런 식으로 얼버무려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 사실 저희 중국사람끼리도 상대방의 진정한 의중을 판단하기 힘듭니다.”
‘만만디’는 신중의 의미
-중국인 하면 ‘만만디(慢慢地)’를 떠올릴 정도로 한국에서는 중국인이 느긋하고 느린 기질을 가진 민족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가 급속도로 변화하면서 이런 만만디 현상도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한 통계를 보면 중국인이 운전하는 자동차의 브레이크 패드 마모율이 한국인이 운전하는 경우보다 30%나 높다는 것입니다. 급브레이크나 급회전이 심하다는 것이지요. 만만디 기질도 이제 변한 것인가요, 아니면 그동안 잘못 알려졌던 겁니까.
“이런 질문을 참 많이 받는데요. 제가 보기에 중국 사람들이 일할 때 결코 만만디하게 하지 않습니다. ‘만만디’라는 게 느리게 한다는 뜻이 아니라 신중히 처리한다는 뜻이에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그동안 사용해본 적이 없는 새로운 제품을 구입하면 주위 사람들이 ‘만만디 보십시오, 만만디 처리하십시오’라고 거듭니다.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그 새 제품에 대해 잘 모르니까 신중히 조작해라, 잘 작동시켜봐라는 것이지 천천히 하라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동작을 만만디 하라는 말이 아닌 것이지요. 이처럼 ‘만만디’는 아주 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침착하게 잘 처리하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만만디’라는 말의 의미가 잘못 전해져 중국인의 행동이 느린 것으로 오해하게 된 게 아닌가 합니다.”
-중국인이 권모술수에 매우 익숙하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그래서 1920년대에 중국인의 권모술수와 모략에 관한 이면적 사고들을 종합해 체계화를 시도한 리쭝우(李宗吾)의 ‘후흑학(厚黑學)’이 지금도 중국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라는 것입니다. 중국인의 권모술수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또 중국인이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바둑이나 마작을 즐기는 것도 이 같은 권모술수의 기질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권모술수와 연결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중국 사람들이 바둑이나 마작을 좋아하고 삼국지나 손자병법 같은 각종 지략이 출몰하는 책을 좋아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바둑이라는 게 천 번, 만 번을 둬도 똑같은 경우가 한 번도 없거든요. 변수가 너무나 많고 거기에 따른 대처방법과 임기응변이 다양하기 짝이 없는데 이런 걸 중국인이 좋아하는 것을 보면 지략을 짜내는 일에 흥미를 느끼는 게 사실인 듯합니다.”
-바둑과 마작 이야기가 나온 김에 중국인의 일상생활에서 이런 오락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아마 중국인의 거의 대부분이 마작을 할 줄 알 겁니다. 바둑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역시 많이들 하지요. 농촌이건 도시건 저녁에 할 일이 없을 때는 네 명이 만나면 마작을 하는 게 아주 흔한 일입니다. 밤을 새우면서 말입니다. 한국인들이 고스톱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그런 경우겠지요. 재미있는 건 바둑전문대학이 있고, 두뇌운동이라고 해서 스포츠로 간주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신문을 보면 스포츠면에 바둑기사가 실립니다.”
중국인의 시간관념·공간관념
-땅이 넓은 탓인지 시간관념과 거리관념도 한국과는 크게 다른 것 같습니다. 중국에서 여행을 하면서 목적지까지의 거리를 물어보면, “아주 가깝다” “다 왔다”고 하는데도 실제로는 두세 시간 이상 걸리기 일쑤거든요. 일상생활에서 중국인의 시간관념과 거리관념에 대해 말씀해주시지요.
“시간과 거리에 대한 감각이 한국인과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제 고향이 북쪽의 하얼빈인데요, 도시와 도시 사이가 보통 차를 타고 4, 5시간은 가야 닿을 정도로 떨어져 있습니다. 마을과 마을도 멀리 떨어진 경우가 흔하고요. 그런 상황이니까 두세 시간 걸려 갈 수 있는 곳이면 가깝다고 여기는 것이지요. 그래서 중국인에게 서울서 대전까지의 거리 정도면 아주 가깝다는 느낌이 드는 겁니다. 며칠 전에 영화배우 송일국씨를 만났는데, 그 분이 중국 신장(新疆)지역에 가서 영화촬영을 하고 왔다고 해요. 그런데 한번 촬영하려면 차 타고 8시간씩이나 걸리는 곳에 가기 일쑤라는 겁니다. 중국에서는 이런 일이 보통이거든요.
베이징의 톈단(天壇) 공원에서 중국 전통춤 공연을 앞두고 연습하는 사람들.
-중국인의 숫자관념도 흥미롭습니다. 중국인이 8자를 좋아한다는 것쯤은 한국사람들도 많이 알고 있는데요. 홀수와 짝수, 그리고 각 숫자에 얽힌 중국인의 의식을 살펴보면 어떤 것일까요.
“중국인은 짝수를 좋아합니다. 짝수는 안전하다고 여기는 것이지요. 기본적으로 하나는 불안하지만 둘은 평형을 이루니까 안정감이 있다는 그런 의식이 깔려 있어요. 선물을 짝수로 하는 오랜 관습도 좋은 일이 반복되기를 바란다는 뜻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8은 돈 번다는 뜻인 파차이(發財)의 파와 발음이 비슷해서 좋아하고, 6은 리우리우다순(六六大順)이라는 말처럼 일이 아주 순조롭다는 의미로 쓰여 좋아합니다. 중국정부가 베이징올림픽을 2008년 8월8일에 개막하기로 한 것도 8을 선호하기 때문이지요. 9는 숫자 가운데 가장 크고, 발음이 ‘오래가다, 영원하다’는 뜻의 지우(久)와 같아서 좋아합니다. 반면에 4는 ‘죽을 사’자와 발음이 비슷해서 꺼리는 숫자입니다. 그런데 숫자에 대한 이런 선호관념도 지역에 따라서는 또 다릅니다.”
중국은 하나의 나라지만 지역에 따라 면모가 전혀 다르다. 사람들의 생김새와 문화 언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기 짝이 없다. 지역색이 뚜렷한 만큼 자연히 지역간 대립의식도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역’을 둘러싼 중국인의 또다른 세계를 들여다본다.
-한국도 그렇습니다만, 중국도 각 지역간 대립의식이 강한 것 같습니다. 상하이에 가서 베이징 사람 티내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반면에 타지에서 고향사람을 만나면 각별한 애정을 보인다고 하는데요. 지역간 대립의식이나 동향의식은 실제로 어느 정도입니까.
“실제로 북쪽사람들이 상하이 사람들을 싫어합니다. 일할 때 너무 세세하고 짜다고 보기 때문이죠. 반면 상하이 사람들은 북방사람들이 예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러나 직장에서 일하면서 지역색 차이로 갈등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저희 사무실에도 랴오닝성, 톈진, 상하이 등 각지 출신들이 함께 근무하고 있습니다만 지역의식이 별 문제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지역에 따라 기질이나 개성이 다르기는 하지만 이것이 함께 일하는 데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고향사람에 대한 애정은 중국이나 한국이나 다 마찬가지겠지요. 중국의 경우 특히 해외의 화교들이 고향사람들에 대해 강한 유대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화교가 전세계적으로 9000만명 정도 되는데요. 각 출신 성(省)별로 단체가 조직돼 상부상조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홍콩갑부 리자청(李嘉誠)을 배출한 광둥성 차오저우(潮州)사람들은 타지에서 동향인을 만나면 그가 성공할 수 있도록 세 번까지 사업밑천을 대주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혈연·지연·학연과 관시
-서울에도 중국대사관을 비롯해 여러 기관에 중국인이 다수 나와 있는데요. 고향사람들끼리 서로 연락해서 자주 만나고 합니까.
“따로 그룹을 만들어 만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런저런 모임에서 만나면 아무래도 같은 성 사람들이 다른 지방 사람들보다는 친하게 느껴지지요. 그런 정도입니다.”
-한국사회에서는 혈연이나 지연 학연이 매우 중시됩니다. 중국의 경우에도 사회생활에서 관시(關系)의 중요성이 매우 크지 않습니까. 이런 관시를 맺는데는 혈연 지연 학연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크게 작용하나요.
“중국에서는 같은 학교를 졸업했다고 해서 한국처럼 사회생활에서도 특별한 관계로 여기지는 않습니다. 중국말에는 한국어의 선배와 후배 같은 말이 없습니다. 물론 업무상 만나서 일을 처리하다가 같은 학교 출신인 것을 알면 아무래도 쉽게 친해지고 일처리에 편리한 점이 있기는 하지만, 한국처럼 끈끈한 유대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흔히 중국사회가 관시를 매우 중시한다고 합니다만, 관시를 만들어나가는 데 있어 학연이나 혈연 혹은 지연에 의존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아는 사람이 많아지고 인간관계를 넓혀가는 식입니다. 그래서 중국말에 ‘처음엔 낯설지만, 두 번째는 익숙해지고 세 번째 만나면 친구가 된다(一回生, 二回熟, 三回就是老朋友)’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가까워지는 것이 무슨 학연이나 지연 같은 특별한 인연에 의해서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쑨원(孫文) 선생이 일찍이 “중국인은 쟁반 위에 흐뜨려놓은 모래”라고 한탄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또 “중국인 한 명은 한 마리의 용이지만 세 명이 함께 있으면 한 마리의 벌레에 불과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중국인은 매우 총명하지만 단결력이 약하다는 뜻입니다. 이런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특히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던 시기에 중국인은 단결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중국민족 자체가 단결하지 못하는 민족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지역에 따라서는 그런 현상이 있는 것 같아요. 이 문제는 각자의 시각에 따라 평가가 다른 것 같습니다.”
지역 사투리와 보통화
-중국어의 경우 지역별 사투리가 심해 같은 중국인끼리도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만, 실제로 원장께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지역 사투리가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상하이 사람들끼리 상하이 말로 얘기하면 저 같은 타지역 사람은 아예 알아듣지 못합니다. 제 고향이 북쪽 하얼빈인데요. 동북3성이나 베이징은 상대적으로 가까우니까 그곳 사람들의 대화는 대강 다 알아들을 수 있지만 상하이나 광둥성 푸젠성 저장성 같은 남쪽 말은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래서 마오쩌둥 주석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뒤 가장 중시했던 게 바로 보통화(普通話)로 언어를 통일시키는 일이었다고 해요.
지금은 표준중국어라 할 보통화가 전국적으로 보급돼 있기 때문에 어느 곳을 가든 의사소통에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에요. 각 지역마다 사투리가 있어 자기들끼리는 사투리를 쓰다가도 타지역 사람이 보통화로 말하면 역시 보통화로 대답하는 겁니다.”
-남북한 사이에도 언어의 이질화 현상이 심각합니다. 중국과 대만의 경우도 비슷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지 않을까요. 휴대전화를 중국에서는 서우지(手機)라고 하고 대만에서는 싱둥뎬화(行動電話)라고 한다던데요. 양안간 언어의 차이가 어느 정도입니까.
“제가 대만에 가봤습니다만, 물론 다른 점이 있기는 합니다. 택시도 중국에서는 추주치처(出租汽車)라고 하는데 반해 대만에서는 디스(的士)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그렇게 심하지는 않은 편입니다. 대만에서도 국어(國語)라고 해서 중국대륙과 마찬가지로 베이징어를 기준으로 하는 보통화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문제는 말보다 글자에 더 심각합니다. 중국대륙에서는 간체자를 쓰는데 비해 대만에서는 정자를 쓰고 있어 말보다도 문자가 통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요. 대만사람들은 간체자를 읽기 힘들어 하고, 대륙사람들은 정자체를 잘 몰라 언어생활에 거리가 생긴다는 것이지요.”
-말씀하신대로 중국이 현재 사용하는 한자는 정자(正字)가 아닌 간체자(簡體字)입니다. 그렇다면 요즘 중국인들은 한국인이 사용하는 정자체의 한자를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정자체를 읽고 쓸 수 있나요.
“아마 보통 중국사람이라면 3000 내지 5000자 정도의 한자를 구사할 수 있을 겁니다만, 젊은이 중에는 정자체를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온 중국 젊은이가 정자로 써놓은 한자를 못읽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군요. 간체자는 예전부터 있어 왔습니다만,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출범하면서 국가정책으로 채택돼 이제 완전히 뿌리내렸습니다. 그래서 나이든 사람들은 과거에 정자체를 배웠으니까 어느 정도나마 알고 있지만 젊은이들은 정자체를 배울 기회가 없었던 거죠. 아마 현재 대부분의 중국인은 정자체에 어려움을 느낄 겁니다. 저도 정자체를 많이 배우지 못해 고전을 볼 때는 어렵습니다. 어떤 글자는 잘 모르겠구요.”
장유유서의 현주소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평등주의 이념이 강조되면서 전통적 관념과 행동양식에 커다란 변화를 겪었으나 개혁개방 이후 또다시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다. 자본주의 마인드가 뛰어나다는 사회주의국가의 중국인, 그들의 문화와 인간관계는 어떤 모습일까.
-한국문화의 특징을 흔히 은근과 끈기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중국문화의 특성을 간단히 설명한다면 어떤 표현이 가능할까요.
“저는 중국문화의 특성을 한마디로 스펀지와 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스펀지가 물을 얼마나 잘 흡수합니까. 중국어만 봐도 콜라를 커커우커러(可口可樂)라고 해서 뜻과 음을 교묘히 결합시킨 단어로 만들어 받아들였지 않습니까. 중국인은 외래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렇게 중국화해 새로운 말로 만들어버리는 겁니다. 덩샤오핑이 중국식 사회주의라는 말로 개혁개방의 논리적 토대를 만들어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주의라는 외래사조를 중국식으로 변용한 것이죠. 이 역시 스펀지처럼 강한 흡수력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런 강한 흡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가진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유교문화의 핵심은 장유유서에 토대를 둔 예(禮)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요즘 중국에서는 장유유서가 사라진 것 같아요. 특히 중국어에는 한국어와 달리 경어(敬語)가 따로 없어서 한국사람이 보기에 중국인들은 나이에 관계없이 서로 맞먹는 것 같아 낯설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실제로 나이든 사람과 젊은 사람, 지위가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사이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한국에 비해서 상하간 관계가 아주 평등합니다. 예를 들어 상대가 장관이라고 하더라도 업무상으로는 상급자니까 존중합니다만, 일상적인 생활에서는 격의 없이 대합니다. 함께 식사하고 술 마시는 것은 보통이고 담배도 나누어 피우니까요.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언어생활에서 따로 경어를 쓰지 않습니다. 그저 상대에 따라 호칭이 구분되는 정도입니다. 그것도 성에다가 직위를 붙여 김 교수니 이 국장이니 하고 부르거나 자기보다 나이든 사람 성 앞에 라오(老)를 붙여 라오왕(老王) 라오리(老李) 하는 정도입니다. 한국처럼 장관님 교수님 하는 존칭이 없어요. 다만 상대가 아주 어려운 경우 영어의 유(you)에 해당하는 니(훏) 대신에 존칭의 의미가 있는 닌(훜)이라고 부르는 정도입니다. 이처럼 언어생활을 비롯해 전반적으로 장유유서의 전통이 오히려 한국에 더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에는 유교(儒敎)와 도교(道敎) 그리고 불교(佛敎)의 전통과 가치관이 혼재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 중국인의 의식과 행동양식에서 이 같은 종교나 학문의 영향이 어떻게 배어나고 있다고 보십니까. 어느 특정종교가 주도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아니면 경우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옛날부터 유교, 도교, 불교가 많이 싸우기도 했습니다만, 청나라 시기에 이르러 대립이 많이 완화돼 서로 융화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유교사상이 중국인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중국이 사회주의체제를 받아들인 후 평등을 외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유교의 가르침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 저와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고 계십니다만, 이런 좌석 배치 하나하나에도 유교적인 관습이 상당히 작용하고 있어요. 어떤 분들은 오히려 한국에 유교의 전통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만, 중국에서도 유교적인 전통이 남아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봅니다.”
-전통종교 이외에도 중국에 기독교인이 3000만 내지 5000만이라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기독교나 가톨릭이 중국인의 종교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요.
“서양종교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역사와 전통이 다르니까 중국사회에서 아직은 기독교나 가톨릭의 교세가 전통적인 종교보다는 미약합니다. 좀 엉뚱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중국에서 왜 한류(韓流)현상이 나타났겠습니까.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유교적인 분위기가 남아 있습니다. 이걸 중국사람이 보면서 동류의식이랄까 비슷한 감정의 교류를 느끼는 겁니다. 거기다가 한국배우의 연기도 좋으니 금방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지요. 서양종교와 유교사상에 대한 중국인의 태도를 이렇게 비유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에서 중국인들의 평등한 인간관계에 대해 언급하셨는데요. 요즘 한국에서는 평등의 논리를 둘러싸고 사회적 갈등이 빚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육평준화정책을 둘러싼 최근의 논쟁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이에 비해 중국은 중점대학을 선정해 우수대학과 우수학생을 집중육성하고 있지 않습니까. 또 중국인은 부자들이 집을 여러 채 사들여도 한국과는 달리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고 하던데요. 이런 경우 한국에선 주변의 부담스런 시선을 피하기 힘들거든요. 자본주의체제하의 한국인보다도 더 자본주의적 마인드가 발달했다는 중국인은 이른바 평등의 문제에 대해 어떤 생각과 태도를 지니고 있나요.
“중국인은 평등의 개념이 강한 게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서 저희 사무실에서 제가 가장 상급자이지만 업무를 제외하면 직원들과 아주 평등한 관계입니다. 그러나 평등한 인간관계와는 관계없이 경쟁을 통해 우수한 사람을 뽑아 육성하고, 이들이 남보다 앞서가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편입니다. 공부 잘하는 사람이 베이징대학 가고 칭화대학 가서 지도자로 출세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지요. 제가 음악을 전공했습니다만, 유명한 음악대학이나 무용대학 입학시험 때 보면 50명 뽑는데 4000~5000명씩 응시합니다. 100명 가운데 1명꼴로 우수한 사람을 뽑아서 인재로 키워내는 것이지요.
또 부자들이 집 사는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중국 사람들은 돈있는 사람을 두고 뒤에서 손가락질하는 법이 없습니다. 돈 있는 사람이 돈 쓰고 투자하는 것을 보면 왜 나는 저렇게 못하나 하면서 배우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직책의 고하에 관계없이 평등한 관계로 서로 대하지만 실력있는 사람이 좋은 대학 가고 능력 발휘해서 돈벌고 쓰는 것에 대해서는 흔쾌히 인정한다는 것이지요.”
중국인들이 가장 즐기는 오락인 마작.
“중국도 과거에는 남존여비(男尊女卑)사상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49년 건국한 다음에 남녀평등 정책이 본격화됐어요. 그때부터 여성들이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했는데, 지금 여성들이 시장 성장 장관을 하고 있을 정도로 사회적 지위가 높아졌습니다. 가정에서도 남녀평등이 자리잡아 가고 있습니다. 집안일을 하는 데 있어서도 남녀가 완전히 평등합니다. 저희 집에서도 저나 집사람 중 일찍 퇴근하는 사람이 밥하고 저녁식사 준비를 합니다. 이렇게 남자들과 대등하게 살다보니까 여자들의 목소리도 커진 것이지요. 어떤 때는 남자들이 불쌍해보일 정도로 여성이 거세게 몰아붙이고, 목소리도 실제로 더 높은 경우가 흔합니다.”
-여성의 지위가 상당히 강화된 것으로 비쳐지고 있습니다만, 사회적 권력을 남성이 장악하고 있어 진정한 남녀평등의 실현은 아직 멀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사실 남녀평등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직장에서 직원을 뽑을 때도 가급적 남자를 우대하는 경향이 있어요. 이게 몇천 년 전부터 내려온 것이니까 몇십 년 만에 완전히 바뀌기는 힘들겠지요. 높은 지위에 올라간 여성이 많아지긴 했어도 아직도 무슨 장 자리가 붙은 지위에는 역시 남자가 많죠.”
-주한 중국대사관의 경우 여직원이 얼마나 됩니까.
“정식 외교관 포함해서 아마 30~40%는 될 겁니다. 중국문화원의 경우는 10명의 직원 가운데 4명이 여성입니다.”
-중국인의 성(性)문화가 한국에 비해 좀더 개방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최근 홍콩 ‘문회보’는 중국대학생을 상대로 한 조사결과 92%가 혼전 성관계에 긍정적 답변을 했다고 보도했어요. 중국인의 성의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중국인의 성의식이 그렇게 개방적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중국사람들은 이런 성격이에요. 누가 선물을 사들고 집으로 찾아오는 경우가 있잖아요. 방문객과 함께 식사하고 시간을 보내면서도 그 선물을 풀어보지 못하는 게 중국사람입니다. 서양인들은 이런 경우 그 자리에서 선물을 풀어보고 좋아합니다만, 중국인은 반드시 손님이 돌아간 뒤에 혼자 남았을 때에야 풀어봅니다. 이게 적절한 비유가 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성과 관련된 사고방식도 이런 식입니다. 겉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자기만의 세계를 간직하려는 함축적인 자세를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중국사람들은 성에 대해 아직은, 방금 말씀하신 그런 조사결과처럼 개방적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저희 세대만 해도 혼전 성관계는 생각하기도 어려웠습니다.
물론 시대가 변함에 따라 젊은이들의 성의식과 표현이 대담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요즘 중국에서는 젊은이들이 대낮에 길가에서 포옹하는 장면도 자주 목격돼 이제는 이상하게 생각지도 않는 분위기입니다. 제가 한국에 와서 보니까 여기 젊은이들은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젊은이들의 개방적인 행동은 중국만이 아닌 전세계적인 흐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중국의 종교는 식교(食敎)
중국문화를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요리문화다. 다양하기 이를 데 없는 각 지역 특색의 요리는 물론이고 술에 얽힌 이야깃거리도 무궁무진하다. 잘 알고 있는 듯하면서 혼란스러울 정도로 복잡한 중국 식문화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의식주를 중국에서는 식의주라고 합니다. 또 중국의 종교는 식교(食敎)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만큼 식생활을 중시한다는 것이지요. 중국인이 먹는 것에 관심이 큰 이유는 어디에서부터 유래한 것일까요.
“중국은 인구가 워낙 많은 데다가 해마다 자연재해를 겪어왔기 때문에 먹는 문제의 해결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처럼 섬긴다(民以食爲天)’라는 말도 있듯이 역대 황제의 가장 큰 과제가 백성을 먹이는 것이었으니까요. 지금은 좀 달라졌지만 과거에는 사람을 만나면 먼저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하는 게 아니고 ‘식사했습니까’라고 묻는 게 일반적이었어요. 그래서 무엇보다도 먹는 일, 즉 식(食)이 우선이다는 의식이 형성된 것 같습니다. 앞에서 중국인이 옷입은 것만 보아서는 신분을 짐작하기가 어렵다고 했습니다만, 이런 현상이 생긴 바탕에는 먹는 것을 중시한 반면, 옷이나 집 같은 외관을 꾸미는 데는 별로 치중하지 않는 식의주 의식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어요.”
-중국음식은 다양한 재료와 조리법 등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고 있는데요. 지역에 따라 차이도 크지 않습니까. 중국의 각 지역별 요리의 특징이랄까 대표적인 요리를 간단히 분류해보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지역에 따라서 4대 요리니, 10대 요리니 하지만 그 특징은 간단합니다. 북쪽 사람들이 짠맛을 좋아하고 남쪽 사람들은 단맛을 좋아하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하나 더 추가하면 쓰촨(四川)성 사람들이 매운 것을 좋아하고요. 쓰촨성에서 나는 고추는 맛이 아주 매운데 그 매운 고추를 많이 먹습니다. 그 주변의 후난(湖南)성 후베이(湖北)성 윈난성 사람들도 맵게 먹습니다. 단것을 좋아하는 대표적인 지역이 광둥(廣東)성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바다를 끼고 있어서 해산물요리를 즐겨 먹는데 달착지근한 맛이 특징입니다. 이처럼 짠맛 단맛 매운맛을 기본으로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다양한 방법으로 만드는 게 중국요리라고 이해하면 간단합니다.
지역에 따라 요리의 재료도 크게 다릅니다. 북방에서는 주로 쇠고기, 돼지 양고기 등 육류에다가 콩 고량 옥수수 밀가루를 주식으로 삼고 있어요. 그래서 한국인도 잘 알고 있는 만두나 자장면 국수 같은 것들이 모두 북방요리에 해당됩니다. 이에 반해 남방에서는 강이 많고 평야가 발달해 쌀과 생선이 풍부합니다. 자연히 해산물 요리가 발달한 것이지요.
조리법은 남방이든 북방이든 볶거나 튀기거나 삶는 세 가지 방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중국요리에는 한국처럼 날것으로 먹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다못해 배추도 삶지 않으면 튀겨 먹으니까요.”
중국 술과 한국 술의 차이
-식당이 아닌 일반가정에서도 그처럼 다양한 메뉴의 요리를 직접 만들어 먹습니까.
“집에서 각종 요리를 직접 만들어 먹기도 합니다. 귀한 손님이 오는 경우엔 20가지 이상의 요리를 만드니까요. 그러나 전문음식점에 나오는 것처럼 다양한 중국요리를 직접 해먹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희귀한 재료는 구하기도 힘들고요. 요리과정에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요리를 보통사람이 하기는 어렵지요. 그래도 중국인들은 집에서 요리를 잘 해먹는데요. 재미있는 것은 여자보다 요리를 더 잘하는 남자가 많습니다. 어릴 때부터 집에서 아버지가 요리하는 걸 보고 자라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는 것이지요.”
-중국인의 음주문화는 한국과는 여러 면에서 다른 것 같습니다. 그중 한 가지가 독한 술을 마시면서도 취해서 몸을 가누지 못하거나 주정을 부리는 사람을 거의 보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중국에는 ‘술이 백약(百藥)의 으뜸이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적당히 술을 마시면 약을 먹는 것처럼 몸에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턱대고 술을 마셔대 추태를 부리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게다가 중국 술은 빨리 깨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이 드문 게 아닌가 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중국 술은 도수가 높아서 마시면 금방 취하지만 30~40분 지나면 술이 깨 회복이 빠릅니다. 좀더 자세히 설명드리면 중국 술을 마시면 먼저 다리부터 취합니다. 그래서 술을 꽤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다리가 비틀거리게 됩니다. 그러니까 술 마시는 도중에 다리에 힘이 빠지는 듯하면 아, 내가 지금 술에 취하는구나 하고 느낄 수가 있어요. 이때 잠시 술잔을 내려놓고 쉬면서 대화를 하다보면 얼마 안가 거짓말처럼 술이 깹니다.
반면에 한국 술은 머리부터 취하는 것 같아요. 도수 높은 술 마시는 데 익숙한 중국사람이 한국 술을 마시면 도수가 약해서인지 두 병 세 병 휙 마셔버립니다. 그러면 어느 사이에 머리부터 취하면서 한국말로 필름이 딱 끊어진다는 겁니다.”
-한국에서는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을 주당(酒黨)이라고 합니다만, 중국에서는 주귀(酒鬼)라고 하더군요. 술귀신이라는 것이지요. 요즘도 주귀로 불릴 만큼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술 많이 마시는 사람을 세 가지로 분류합니다. 주귀는 아무 술이나 마시고 취하는 사람, 주선(酒仙)은 아무리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고 정신이 말짱한 사람, 주성(酒聖)은 눈을 감고서도 술을 조금만 마시면 어떤 술인지 다 아는 사람을 말합니다. 주성이 술에 관한 한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입니다. 역사적으로 주선이나 주성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의 일화가 무척 많습니다. 한고조 유방의 부하였던 번쾌라든가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 도연명과 이태백 같은 문인들, 은둔생활을 했던 죽림칠현 등등이 모두 술 마시는 데 있어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지요.”
-술의 종류도 무척 많아 혼란스럽기까지 한데요. 흔히 중국의 술을 백주(白酒)와 황주(黃酒)로 나누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백주에 해당되는 술을 고량주(高粱酒)나 배갈(白干兒)이라고도 부르지 않습니까. 중국 술은 어떻게 구분하나요.
“술의 종류가 많은 것 같습니다만, 빚는 방식에 따라 크게 백주와 황주로 구분됩니다. 백주는 말 그대로 백색투명한 술인데 증류주이기 때문에 알코올 도수가 30도 이상인 독한 술입니다. 수수로 만드는 각종 고량주나 중국의 최고 명주로 알려진 마오타이주(茅台酒)가 바로 백주에 속합니다. 주로 북방사람들이 즐겨 마십니다. 반면 황주는 한국의 탁주와 같은 발효주로 그다지 독하지 않습니다. 사오싱주(邵興酒)가 대표적인데 저장성 등 남방에서 많이 마십니다. 이밖에 미주(米酒)는 술에다 각종 식물이나 약재를 넣고 함께 증류시켜 독특한 맛과 향기를 내게 한 술인데요. 한국인도 잘 알고 있는 죽엽청주와 오가피주가 여기에 속합니다.”
광둥성 지역에서 발달한 딤섬 요리.
“사람마다 평가가 다르겠지만, 저는 역시 마오타이주가 최고의 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오타이주는 국제대회에서 금상도 많이 받았는데, 이 술이 생산되는 구이저우(貴州)성의 마오타이진(鎭)의 물이 다른 곳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습니다. 마오타이주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1915년 파나마운하의 개통을 축하하기 위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파나마 만국박람회에서 금상을 차지하면서부터입니다. 그후 마오쩌둥 주석이 닉슨 미국대통령과 다나카 일본총리를 접대할 때 내놓았다고 해서 더욱 유명해졌지요. 이 술은 유명한 만큼 가짜도 많은데요. 심지어는 마오타이주를 생산하는 공장 앞에서 가짜 마오타이주를 판다는 말이 나돌 정도입니다.
물론 요즘 우량예(五糧液)나 지우구이(酒鬼), 수정방 같은 비싼 술이 많이 나왔습니다만, 마오타이의 명성을 능가하지는 못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술 마시는 주법도 한국과는 많이 다른 것 같은데요. 어떤 점이 다른가요.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이 한국에서는 술잔을 돌리는데 중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잔에 술이 남아 있으면 잔을 완전히 비우기 전까지는 다시 채우지 않는데 비해 중국에서는 상대방의 술잔에 술이 얼마나 남아 있건 관계없이 부단히 첨잔을 하는 것이 예의입니다. 또 술을 마실 때 한국에서는 자기 혼자 마시고 내려놓아도 크게 실례되는 일이 아니지만 중국에서는 자기가 마시고 싶더라도 반드시 상대에게 술을 권해야만 합니다. 건배의 의미도 한국과 중국이 전혀 다릅니다. 중국어로 ‘간베이’라고 하는 건배(乾杯)는 한국에서는 별뜻없이 하는 소리지만 중국에서는 잔을 완전히 비우라는 뜻이니까 남기면 안 되는 것이지요.”
-먹고 마시는 음식이나 술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게 중국의 차(茶)문화인 것 같습니다. 중국인이 기름진 음식을 많이 섭취하면서도 비만한 사람이 드문 것은 차를 많이 마시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 말이 맞습니까.
“네, 차를 마시면 소화가 잘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차에는 기름기를 없애주는 성분이 있어 중국음식을 먹은 뒤 차를 마시면 아주 개운합니다. 중국에 뚱뚱한 사람이 적은 것은 분명히 차를 많이 마시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차에는 갈증을 해소하고 몸의 분비작용을 촉진시키며 숙취를 제거해주고 정신을 맑게 해주는 기능이 있습니다. 그래서 차 마시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진한 차를 마시면 잠을 잘 이루지 못하게 된다고 합니다. 아무튼 차는 중국음식과 궁합이 아주 잘 맞고 건강에 좋은 점이 많은 것 같아요.”
중국요리와 차(茶)의 궁합
-한국에 와서 한국식 식사도 많이 해보셨을텐데요. 중국과는 어떤 차이가 있다고 느끼십니까. 질이나 양, 맛 등을 비교한다면.
“한국음식이 저한테 맞는 것 같습니다. 한국 근무하기 전에 혈압이 높았는데, 여기 와서 한국음식을 먹었기 때문인지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중국음식과 비교해보면 한국음식에는 기름을 많이 쓰지 않는 편입니다. 저는 매운 것을 좋아해서 한국음식이 입에 맞죠. 아주 흡족합니다만, 한 가지 문제는 양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일인분이라고 나오는 음식의 양이 중국인 한 사람이 먹기에는 부족한 것 같아요.”
-중국사람들이 손님을 초대해 만찬을 베풀 때 보면 항상 연설을 하는데, 정말 말을 잘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또 연설하면서 유명한 시구를 인용한다든가 고사를 인용하기를 좋아하더군요. 이처럼 말하기 좋아하고 또 잘하는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학교에서부터 그렇게 말하는 법을 배워서 그런 건가요.
“지금은 회의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전에는 정말 회의가 많았습니다. 공산당이 회의를 많이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조직구성원간에 서로 평등하게 의견을 내서 토론하는 일이 많았던 것이지요. 아무튼 회의를 하면 돌아가면서 모두 발언을 하니까 자연히 연설솜씨를 익히게 됩니다. 특히 간부로 승진한 사람들일수록 회의를 자주 하고 말을 할 기회가 많으니까 말을 잘하게 된 게 아닌가 합니다. 학교에서 특별히 연설하는 훈련을 쌓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연설하면서 시를 자주 인용하는 것은 학교에서 철저히 교육을 받은 덕분인 것 같아요. 요즘 학생들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희가 공부할 때는 보통 300수 이상은 외웠으니까요. 천가시(千家詩)라고 해서 1000명의 유명한 시인의 시를 공부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다 잊어버리고 기억나는 게 별로 없습니다.”
중국 최고의 명주로 꼽히는 마오타이주 홍보행사.
“아마 10수 될 겁니다. 자주 써야 하는데 요즘은 안 쓰니까 거의 다 잊었습니다.”
아시아 최초의 중국문화원
북한유학을 시작으로 한반도와 인연을 맺은 지 18년이 된 주잉제 원장은 한국말이 유창할 뿐 아니라 한국에 대한 이해가 깊다. 어려서부터 조선족 친구들과 교분이 두터워 한민족의 기질과 문화에 접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그가 초대 주한 중국문화원장이 된 것은 아주 자연스런 일인 듯도 하다. 마지막으로 중국문화원의 운영방향에 대한 구상을 들어보았다.
-주한 중국문화원이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설립되는 중국문화원이라고 들었습니다. 주로 어떤 시설들을 마련하고 있는지 소개해주십시오.
“말씀하신 대로 아시아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에 중국문화원을 설립합니다. 서울 내자동 서울경찰청 바로 옆에 있는 7층 건물인데요. 현재 준비작업이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원래는 10월에 개원하려고 했는데, 내부를 중국식으로 꾸미려고 자재를 전부 중국에서 배로 운반하다 보니 시간이 꽤 걸리는 바람에 늦어져 12월28일 개원할 예정입니다.
주요시설은 우선 지하에 소극장이 있어서 영화도 상영하고 소규모 공연도 열 것입니다. 1층은 로비이고 2층에 전문전시관을 마련해 한국그림과 중국그림 서예작품 등의 기획전시를 하게 됩니다. 3층 강의실은 주로 중국회화, 중국서예, 중의학, 중국무술 등을 보급하는 활동공간으로 쓰입니다. 컴퓨터실도 있습니다. 4층 도서관에는 중국책 1만5000권을 비치할 것입니다. 5층과 6층은 사무실이고 7층은 중국요리를 배울 수 있는 시설을 갖추었습니다.”
-중국에 관심있는 한국사람이 꽤 많은데요. 이들이 앞으로 중국문화원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중국에 대한 유학정보나 관광정보 등 무료로 제공할 계획입니다. 이런 자료들을 지속적으로 얻어보려면 중국문화원 인터넷 홈페이지(www.cccseoul. org)를 방문해서 회원가입을 하면 좋을 겁니다. 또 중국문화원 명예기자 같은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것도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중국문화원의 운영 방향을 어떻게 구상하고 계신지 말씀해주시지요.
“역사를 놓고 볼 때 중한 두 나라의 문화에는 공통점이 많습니다. 옛날에 중국문화가 한국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요즘은 한국문화가 중국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지 않습니까. 문화교류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의 문화가 일방적으로 영향을 주기보다는 서로 고르게 오가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 중국문화를 한국에 소개하는 일은 물론 한국문화를 중국에 소개하는 데에도 힘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