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호

‘천재 양산 시스템’ 활성화가 국가경쟁력 강화의 길

  • 글: 박성수 서울 명지고 교장박성수 서울 명지고 교장

    입력2004-11-24 14: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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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열강이 국가경쟁력 강화를 외치며 엘리트 교육에 열성을 쏟는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교등급제·내신 부풀리기 논쟁은 다분히 소모적이다.
    • 지금 우리 교육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인재를 선별할 평가제도를 만들고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천재를 길러내는 일이다. 현행 평준화 제도와 특수목적고교로는 무한경쟁시대를 주도할 ‘일당백’의 인재를 키워내기 어렵다.
    ‘천재 양산 시스템’ 활성화가 국가경쟁력 강화의 길

    학교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수하는 데서 벗어나 신사고·신기술·신산업 창출의 기틀이 돼야 한다. 사진은 부산 영재과학고의 영어 수업.

    최근 일부 상위권 사립대학이 2005학년도 입학수시전형에서 학생생활기록부 성적을 공정하게 평가하지 않고 고교간 등급을 적용, 일부 고교에 특혜를 주었다 해서 적지 않은 논란이 일었다. 교육인적자원부(이하 교육부)는 일부 대학의 입시전형에 대한 감사를 실시해 고교등급제의 정체를 어느 정도 밝혀냈다. 그리고 고교등급제 금지조치를 재천명함으로써 논란은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그럼에도 고교등급제를 채택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현행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과 내신만으로는 우수한 학생을 선별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고교등급제를 적용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고교간 학력 격차가 점점 심화되고 있기에 이를 반영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논리다. 경쟁이 치열한 대학일수록 이러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고교등급제는 지방 학교나 상대적으로 경제적 지위가 낮은 지역의 고교에 재학중인 학생을 크게 차별하는 정책이라고 비난하는 이들도 있다. 가난을 대물림하는 또 다른 ‘연좌제’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일부에서는 고교등급제가 민주적 평등을 깨뜨리는 아주 나쁜 정책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일부 상위권 대학들이 입시전형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응시자 중 동점 탈락자가 너무도 많다는 것이다. 학생생활기록부에 적혀 있는 모든 자료를 다 동원해도 타당하고 공정한 평가기준을 찾아내기가 어렵다. “수십 명의 학생이 모두 전과목 ‘수’를 받고 다양한 수상경력을 갖고 있어 누구를 뽑아야 할지 난처하다”는 것이 대학 관계자들의 호소다.

    상식적으로 납득되고 전문적으로 타당한 기준을 찾아낸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결국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학교간 격차를 인정하고 이를 전형자료로 활용하려는 시도에서 고교등급제가 나왔다고 본다. 대학측의 이러한 고충을 이해한다 해도 고교등급제를 시행한 것은 그 객관성이나 신뢰성 또는 타당도 등을 고려하면 성급한 결정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소모적인 고교등급제 논쟁이 아니라 능력을 갖춘 인재를 선별할 공정한 평가기준을 확립하는 일이다. 이념논쟁으로 비화된 고교등급제 논란은 교육에도, 국익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한국형 교육논쟁’에 머물러 있는 동안 세계 각국은 나라를 이끌어갈 엘리트 교육 강화에 골몰하고 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공정한 학생선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다. 경쟁률이 높은 대학에서 탁월한 능력을 갖춘 학생들을 골라낼 수 있는 입시전형 방법은 무엇일까. 본고사나 논술고사가 아닌 또 다른 평가방안은 없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과외나 학원 등 사교육 수요를 늘리지 않고 우수한 실력을 갖춘 학생을 선발할 수 있는 제도는 무엇일까.

    수십만 수험생 중에서 상위 1% 또는 5% 이내의 학생을 선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정상권 대학들은 상위 0.1% 이내 혹은 그 이하 비율 안에 드는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려 한다. 이러한 욕구도 충족시키면서 현재의 수능을 급격하지 않은 방식으로 전환해 선진국에 버금가는 입학 제도를 마련할 길은 과연 없는 걸까.

    고교등급제 대안 ‘표준화 평가’

    지능검사 결과 나온 IQ 지수는 누구나 신뢰한다. 토플(TOEFL)이나 GRE시험 결과도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를 통해 사람의 지능이나 실력을 집단 내에서 비교할 수 있고 과거에 응시한 집단과도 비교할 수 있다. 어느 나라 사람의 지능이 더 높은지, 또 몇년도 응시자가 더 실력 있는지도 알 수 있다. 검사가 표준화되어 있기 때문에 신뢰도와 타당도가 높으며 가비교성이 대단히 높다.

    지능이나 학력을 측정하는 표준화 검사는 고도의 전문적 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많은 연구와 비용이 소요된다. 문항 하나하나가 척도이기 때문에 정밀하게 검증된 문항 난이도 지수가 있고, 관련된 수많은 변인을 고려하고 통계적 분석도 해야 한다. 문제은행식 출제가 아닌 표준화 검사는 하나의 검사가 여러 개 문항으로 구성돼 여러 개의 배터리로 얼마든지 제작할 수 있다.

    이러한 표준화 검사로 학생의 학력을 평가한다면 우리 입시제도는 큰 전환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모든 학년의 표준화 학력검사가 마련되면 홈스쿨링이나 검정고시 같은 제도에도 상당한 변화가 올 것이다. 학교의 학력관리는 물론 교육행정제도의 혁신을 통한 선진국 수준의 교육도 가능해질 것이다.

    현행 수능을 표준화 학력검사로 대치하면 ‘학력관리 개선’과 ‘공정한 입시관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다. 본고사, 논술 등 대학별 추가 학력평가의 진행 여부도 재론될 여지가 없다. 표준화 학력검사의 타당도와 신뢰도만 높이면 다른 학력평가의 필요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응시자가 학교설립 이념이나 개별분야의 특수한 요구를 충족하는지 알아보고 싶다면 면접과정을 거치도록 하면 된다.

    학생의 내신성적과 표준화 학력검사 결과를 근거로 대학이 자율적 학생 선발권을 갖는다면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표준화 학력검사 결과를 소수점 이하 두 자리까지 표시하면 1만명 가운데에서도 석차를 뚜렷이 알 수 있다. 통계적으로는 10만명 이상의 집단에서도 석차를 가릴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석차의 차이가 갖는 현실적 의미가 크지 않기 때문에 다른 변인들을 고려해 학생을 선발하도록 할 수 있다.

    고부가가치 창출 교육

    우리 국민 대부분은 학교에서 성실하게 생활하고 열심히 학업에 전념하면 그것이 곧 출세의 길이라고 믿고 필승의 신념으로 정진해왔다. 학교를 마치고 사회에 진출했을 때 과거에는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만 하면 됐다. 농업이 주산업이던 시절에도, 공업이 주류를 이루던 사회에서도 성실과 근면은 최고의 덕목이었다.

    그러나 20세기 말 이후 이보다 더 중요한 덕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른 나라에 없는 새로운 기술로 고부가가치를 지닌 신상품을 개발해내는 것이다. 이동통신, 반도체, PDP, 조선, 자동차 등 첨단기술 분야는 지금과 같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우리 경제가 뒷걸음치지 않고 플러스 성장을 지속할 수 있도록 만든 힘이다.

    이제까지 우리 교육은 조상들의 문화적 유산과 선진국의 문물을 전수하기에 급급했다. 전수와 계몽, 깨달음과 성숙 이 교육의 화두였다. 선진국의 제도를 도입하고 과학기술을 학습해 그것으로 산업을 일으키고 무역을 하면 충분했다. 그러나 이제는 신기술, 신상품, 신서비스를 개척하는 첨단 지식과 기술이 우리 경제를 지탱해주는 힘으로 자리잡았다.

    발명과 발견이 소수 엘리트의 천재적 창조물이라 존경받던 시대는 가고, 그것이 다중(多衆)이 실천하는 일상적 활동으로 여겨지는 시대를 맞고 있다. 단순히 공부 잘하는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인재를 얼마나 길러내느냐에 교육의 성패가 달려 있다. 그러나 우리 교육계는 아직 전근대적 시대의 꿈에 깊이 빠져 새 시대의 도전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교육경쟁력은 주로 우수한 대학 진학이나 각종 국가고시 합격, 일류기업 취업률 같은 것으로 평가돼왔다. 국내 학교간 경쟁이 전체 경쟁의 범위였다. 그러나 세계는 이미 국제 경쟁사회로 변모했다. 교육도 세계 강대국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 그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럼에도 한국은 아직까지 농업사회의 교육구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공업화 이전에도 치열한 입시경쟁이 있었다. 초등학교 상급반 학생들이 별을 보고 집을 나가 자정이 지난 뒤에야 집에 들어오는 처절한 입시경쟁을 벌였던 것이다. 이 같은 입시 병폐를 해결하기 위해 취한 정책이 결국 평준화로 계속 발전해왔다.

    하지만 평준화는 입시과열의 병리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었지,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은 아니었다.

    평준화 제도 한편으로 국제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서 마련한 정책이 바로 과학고, 체육고, 예술고,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나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고등교육기관을 설립한 것이다. ‘시험을 잘 보는 인재, 취직을 잘 하는 인재를 얼마나 길러냈는가’가 기준이 된다면 이들 학교는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공부 그 자체만을 잘하는 것이 아니다. 각각의 분야에서 세계적인 성취를 이뤄내는 것이다.

    독일의 ‘엘리트 업’ 프로젝트, 월반(越班)을 허용하는 영국의 교육개혁안, 미국 시카고 교육위원회의 학교구조조정안 등 교육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교육개혁안들이 앞다퉈 쏟아지고 있다. 이러한 세계 교육의 흐름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대목이다.

    고교등급제니 본고사 부활이니 하는 논란은 국가 비교적 전략 차원에서 보면 특별한 의미가 없는 소모적 논쟁이다. 내신과 수능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관료제도의 기능적 자율성 속에서 이뤄지는 관행적 업무의 반복일 뿐이다. 그러한 반복은 우리나라가 국제적으로 직면한 위기와 도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

    세계는 중국의 부상을 주목하고 있다. ‘중국이 한국을 삼키는 건 간단하다’는 조롱도 들려온다. 일본은 어떤 분야에서든 한국이 자기들보다 앞서가는 것을 막으려고 애쓰고 있다. 세계 열강의 틈에서 생존하고 부강한 나라로 발전시키려면 모든 분야에서 국가전략을 새롭게 수립해야 한다. 우리가 중국의 13억 인구와 겨루어 이기려면 국민 개개인이 한 명당 30명 정도의 힘을 발휘해야 한다. 일본에게 이기려면 한 명당 3명 몫을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선조는 ‘일당백’을 해내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다. ‘일당천’을 감당하는 인재인들 못 길러낼 까닭이 없다.

    성실하고 평범한 사람 1만명보다 뛰어난 천재 한 사람이 더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는 시대의 교육은 어떠한 것이어야 할까.

    이 시대의 교육은 개인이 잠재능력을 실현하도록 돕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아울러 정치 경제 과학 교육 사회 문화 종교 등 모든 분야에서 세계 정상이 될 만한 새로운 것을 창출, 전세계가 이를 구매할 수 있도록 국가 비교 차원에서 수월성을 갖춰야 한다. 수월성을 추구하는 교육은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인간이 잃어버린 신의 형상을 되찾도록 돕는 것이다. 결국 교육이 경쟁력을 갖추는 길은 수월성을 추구하는 데 있다.

    학교교육은 단순하게 지식을 전수하는 데 머물지 않고 신사고, 신지식, 신제품, 신제도 등 참신한 것들을 창출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학생 모두가 자아를 실현하고 각자의 잠재력을 최고로 발휘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은 학교의 당연한 임무다. 그동안 국내 교육계의 고질이었던 과외, 학원수강, 입시제도, 학교 붕괴 등의 문제는 농경사회나 공업사회의 틀에서 이루어진 교육적 인습이 반복되며 생긴 것이다. 신지식, 신기술, 신산업 사회에서는 천재를 양산하는 학교 교육체제를 얼마나 잘 갖추느냐에 따라서 나라의 명운이 달라진다.

    천재는 결코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새로 학습해야 한다. 새로 학습한다는 건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이 평생을 두고 해야 하는 일이다. 천재 양성은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이 하나의 통합체제로 움직일 때 가능하다. 또한 직장마다 천재성을 발견하도록 지원하는 체제를 갖출 때 새로운 문명의 꽃이 피어나게 될 것이다.

    우리 교육계가 서둘러 마련해야 할 과제는 바로 천재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학교교육체제를 마련하는 일이다. 그 토대가 선다면 우리나라는 어떤 강대국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강한 역사를 펼쳐나가게 될 것이다.

    일제시대 교육 뛰어넘자

    현재 우리의 교육관행은 대부분 일제 식민시대의 유전이다. 생활지도와 교과지도의 원형이 바로 일본 군국주의 시대의 교육에 있다. 숱한 변화를 겪고 발전도 이뤘지만 큰 틀에서 보면 과거의 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런데 일본, 중국, 한국이 거의 동일한 교육 틀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기이하다. 황인종의 교육제도라고 불러야 할까, 사각문자인 한자문화권의 틀이라고 해야 할까. 문제는, 교육에만 관련해 보면 이 틀로는 세계의 정상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이다. 명백한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뛰어넘으려면 새 틀을 짜야 한다.

    새 틀을 마련하는 것은 몇천 년을 두고 지탱해온 인습의 틀을 벗어나는 것이다. 정든 옷을 벗어버리는 일이다. 낯설고 불안한 새 지경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미지의 땅에 미지의 적들이 언제 기습 공격을 해올는지 알 수 없는 전쟁터로 나가는 일이다. 그러나 승리는 포화와 창칼을 뚫고 험한 지리와 궂은 기후의 공격을 이겨낸 사람에게 주어지는 게 아닌가.



    모든 사람을 천재로 길러내고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뛰어난 천재를 대량으로 배출하는 교육시스템이란 공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고 눈앞의 시련을 극복하려면 그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문명의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무력이 아니라 창조력일진대, ‘천재 양산제도’ 외에 학교 교육체제의 대안이 또 있겠는가. 일당백이 아니라 일당백만이라도 너끈히 감당할 ‘천재의 대량 배출시대’가 도래해야 한다.



    교육&학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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