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정수도 이전 위헌결정 이후 여당은 국민 여론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고 중요한 정책을 추진하려 했다는 비난을, 야당은 현실적 이해관계에 얽혀 이렇다 할 당론 없이 스스로 통과시킨 법안을 내팽개쳤다는 비난을 샀다. 모두 ‘국민과 함께’라는 정치 대원칙을 파기한 결과다. 이에 따라 정치권 분열이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2년 대선 패배 후 펴낸 저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에 이렇게 썼다.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은 ‘국민과 함께’라는 엄숙한 원칙을 숙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고상한 이념이나 사상일지라도 반드시 실패합니다.”
서울 경기 등 수도권 주민과 여의도를 중심으로 한 중앙정치 무대에선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충격이 한 달도 안 돼 거의 잊혀졌지만, 충청권 상황은 정반대다. 대전역 광장 등 충청권 도처에선 시민들이 모여 연일 격한 발언을 쏟아낸다. “서울이 수도면, 지방은 하수도냐”는 자조섞인 불만에서부터 “영·호남이었다면 벌써 폭동이 났을 것”이라는 분노, “고속도로와 철도를 점거하자”는 과격한 선동까지 마구 쏟아져나온다.
충청 3단체장 동반 탈당 시나리오
대전에서 활동하는 청와대 민정2비서관 출신 박범계 변호사는 “위헌결정 이후 거의 혁명 전야 분위기다. 행정수도 이전 원상회복 요구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고 지역 분위기를 전한다. 지방분권을 외쳐온 지역의 진보적 시민단체뿐만 아니라 자유총연맹, 새마을회 등 보수 성향 단체까지 목청을 높이고 있다. 지방분권국민운동 대전·충남·충북본부와 지역 시민단체, 기초 광역의회 관계자 200명이 시작한 ‘신행정수도건설 비상시국회의’는 300여개 단체가 참여한 비상기구로 확대됐다.
[가능성 하나] ‘충청당(黨)’의 출현
“신당 문제는 (충청권의) 원로들이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심대평 충남지사). “현 시점에서 지역 여론은 대체로 여야 모두를 비판하는 양비론이다. 그러나 소수지만 강력한 의견 중 하나는 한나라당에 더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내게도 탈당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염홍철 대전시장). “박근혜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와 120명의 한나라당 동료 의원에게 2007년 대선에서 당이 정권을 잡으려면 충청권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설득해왔다. 충청 민심은 (지난해) 신행정수도 특별법을 통과시켜주고 이제 와서 헌재 판결로 면죄부를 받은 것처럼 행동하는 한나라당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홍문표 한나라당 의원).
충청권 정치인들은 행정수도 이전 원상회복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소속 정당 구분 없이 협력하는 분위기다. 헌재 결정 다음날인 10월22일 한나라당 소속 염홍철 대전시장과 이원종 충북지사, 자민련 소속 심대평 충남지사가 긴급 회동해 “신행정수도 건설은 철회되거나 백지화돼서는 안 된다”며 공조를 다짐했고, 지금까지 시·도지사와 여야 정치인의 교차만남이 이뤄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은밀한 거래’가 시도되고 있다는 정황도 포착됐다. 다름아닌 ‘충청권 독자 신당(新黨)론’이다. 열린우리당의 경우 ‘수도이전 무산이 한나라당에 대한 충청권 민심의 이반을 재촉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한나라당과 자민련은 사정이 다르다. 한나라당은 충청권으로의 수도이전에 사실상 ‘태클’을 걸었다는 이미지 때문에, 자민련은 충청권을 위해 아무런 힘을 쓸 수 없는 정치적 한계상황 때문에 구성원들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다.
염홍철 대전시장은 최근 소속당인 한나라당을 겨냥해 “한나라당은 신행정수도 특별법이 통과된 뒤에도 명확한 당론 없이 애매하게 처신하다가 헌재 결정을 맞았다”며 한나라당의 우왕좌왕 행보를 비판했다. “나에게 탈당 요구가 계속되고 있다”는 그의 발언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심대평 지사의 행보도 관심거리다. 심 지사는 2006년에 임기가 끝나면 ‘3선 상한제’에 걸려 더는 지사선거에 출마할 수 없는 상황. 신당을 만들어 정치적 활로를 개척할 것이란 추측이 나돌던 터에 행정수도 이전 위헌결정이 나 심 지사의 행보에 탄력이 붙은 셈. 최근들어 정치권에선 심 지사가 이원종 충북지사, 염홍철 대전시장에게 동반 탈당과 함께 ‘무소속 연대’를 구축하자고 은밀히 제안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대전에 근거지를 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소속 한 변호사는 “일부 여론 주도층에서 여야 공동책임론을 주장하며 독자 신당론을 부추기고 있는 만큼 여당이나 야당이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 충청권 신당이 실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헌재 결정의 후폭풍은 노무현 정부와 여당에 우선적으로 불어닥쳤다. 노무현 정권의 국정과제 1순위이자 ‘정권의 명운’을 걸었다던 신행정수도 건설이 좌절됨으로써 노무현 정부의 모양새는 말이 아니다. 여당이 주도적으로 추진해온 4대 법안 등 각종 개혁법안의 입법 방침에도 제동이 걸리게 됐다.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은 최근 “산이 높으면 돌아가야…”라며 개혁법안 처리에 속도조절 의지를 밝혔고, 당 내에서는 개혁법안들의 우선순위 재조정 논의가 이어졌다.
문제는 이 정도에서 그칠 것 같지가 않다는 점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행정수도 이전 위헌결정은 지난 3월의 대통령 탄핵 국면보다 현 정권에 더 치명적이라는 게 중론이다. 대통령 탄핵은 여론을 무시한 야당의 자충수가 되어 제17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대통령과 정권에 오히려 승리를 안겨주었다. 그러나 이번엔 각종 여론조사에서 헌재의 결정을 지지한다는 응답이 과반을 넘고 있다.
“남은 3년 국정운영 제대로 될지…”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김세걸 교수(정치학)는 “대통령이 정권의 진퇴를 걸겠다고까지 한 정책이 좌절됨으로써 정부 여당이 입은 충격은 심대하다”며 “더구나 지금은 최악의 경제난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헌재 파동까지 겹쳐 현 정권이 남은 3년간 정책을 제대로 추진해낼지 의문이다”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번과 같은 사태가 몇 차례 반복되면 노 대통령은 급격히 힘을 잃을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이미 참여정부가 역사상 유례 없는 정권 초반 레임덕(권력누수현상)에 빠졌다는 시각도 있다.
여권은 헌재가 정권의 발목을 잡았다는 차원을 떠나 향후 정국 운영 방식을 다시 짜야 할 만큼 복잡하다. 특히 헌재의 이번 결정은 ‘노무현 정부와 여당이 주요 정책을 밀고 나갈 힘이 있는가’를 근본적으로 짚어보게 한 사건이다. 행정학이나 의회정치학을 연구한 학자들은 “이번 헌재 결정으로 노무현 대통령과 여당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큼 힘이 크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정권 초반기이지만 이 상황이 여권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물론 정권 초반기의 위기는 역대 정권에서도 있어 왔다. 정권 초반기에 개혁을 외치며 의욕과잉을 보이다가 대형 위기국면을 맞아 내리막길을 걸은 사례가 적지 않은 것.
김대중 정부 때는 집권 1년 만인 1999년에 터진 의약분업 파동으로 권력이 흔들렸다. 집권 1년동안 50~60%대를 유지하던 김대중 정권의 지지율은 30%대까지 추락했다. 의약분업 파동은 이후 4년 내내 김대중 정부를 흔들었다.
김영삼 정부도 비슷한 상황을 경험했다. 집권한 지 1년밖에 안 된 1993년 말 우루과이라운드협상(UR) 타결과 쌀 시장 개방 결정으로 정권 출범 후 최대 위기를 맞은 것. YS는 그해 12월 시장 개방 10년 유예를 골자로 하는 쌀 시장 개방 협상을 끝낸 후 대국민 사과담화를 발표하고, 이회창 국무총리 임명 등 대대적인 개각을 단행했지만 한때 90%에 육박하던 대통령 지지율은 60%대로 추락했다.
[가능성 둘] 열린우리당의 보혁갈등과 분열
집권 1년차부터 무력증을 실감한 여권 내부에선 분열의 바람이 감지되고 있다. 아직은 미풍(微風)이지만 점차 소용돌이치는 강풍으로 발전할 개연성이 다분하다는 게 정가의 시각이다.
11월1일 열린우리당 의원 28명이 참여하는 ‘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 모임’(안개모)이 공식 출범했다. 헌재의 수도이전 위헌 결정이 있은 뒤 10일 만의 일이다.
이날 안개모는 유재건(3선) 의원을 대표로, 안영근(재선)·조배숙(초선) 의원을 간사로 선출했다. 행정자치부 장관을 역임한 이근식 의원, 국방부 장관을 지낸 조성태 의원 등 장차관을 지낸 전직 관료와 권선택·유필우·조성래 의원 등 고시 출신 관료가 대부분이다. 민주화운동 경력자는 안영근·이철우 의원뿐이다.
이들은 열린우리당 내에서 가장 보수적인 축에 속한다. 언필칭 ‘중도개혁 그룹’이지만 성분이나 성향상으론 보수 쪽에 가깝다. 당연히 최근 여권이 강력히 추진해온 국가보안법 등 4대 개혁 입법과 관련해 다른 목소리를 냈고 당내 마찰도 곧잘 일으켰다.
출범식 날 조배숙 의원은 “개혁을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민생과 경제 문제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하며 방법론에도 개혁의 속도조절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2주일간의 국회 파행을 불러온 이해찬 총리의 한나라당 폄훼 발언에 대해서도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을 근거 없이 좌파로 몰아간 것은 잘못이지만, 이 총리의 발언도 총리 신분으로는 부적절했다”고 지적하는 등 당내 다른 개혁그룹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였다.
신행정수도 이전 위헌결정 이후 한나라당 내에선 강경보수 그룹과 소장파 그룹간 알력이 거세지고 있다. 사진은 개혁성향 의원들의 모임인 ‘새정치수요모임’ 행사.
진보성향의 한 재선 의원은 안개모 출범에 대해 “집권 열린우리당이 창당 때부터 삐걱거린 것은 이념과 노선이 불분명한 세력이 모여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임종인 의원은 안개모를 “노무현 대통령의 등뒤에다 대고 총질하는 제2의 후단협”이라고 했고, 유시민 의원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말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유 의원은 며칠 뒤 의원총회에서 공개 사과를 했지만, 안개모 소속 의원들에게 면박을 당해야 했다.
문성근의 ‘분당 예언’ 가시화할까
안개모 소속 의원들은 “당 내부의 갈등 요인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실용적인 개혁을 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내년 3월로 예정된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에 도전하기 위해 본격적인 세(勢) 확산을 도모할 공산도 크다. 전당대회와 관련된 힘겨루기를 시도한다면 ‘참여정치연구회’ 등 당내 개혁 그룹들과의 일전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여러 성향의 의원들이 섞여 있는 열린우리당내 노선투쟁은 이미 7개월 전 예고됐다. 4월 초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의 1등공신인 문성근 전 열린우리당 국민참여운동본부장은 “열린우리당은 ‘잡탕’이며 정체성이 다른 사람들이 섞여 있다. (나중에는) 분당(分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직후 대표적 친노(親盧) 인사인 명계남씨도 비슷한 말을 했다.
이런 돌출 발언들은 평지풍파를 낳았지만, 여권 내부에선 일종의 ‘예언’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 면에서 헌재의 행정수도 위헌결정과 안개모 출범 등 일련의 사태를 바라보면서 당내 분열을 떠올리는 이가 느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파장 셋] ‘관습 이데올로기’로 재무장한 강경 보수주의
광복 후, 특히 한국전쟁 이후 한국 보수세력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반공’이었다. 여기에 성장주의, 자유주의, 개발독재 등 부가적인 이데올로기가 가미돼 50년 가량 한국 사회를 지배해왔다.
그러나 김영삼-김대중-노무현 3대 문민화 정권을 거치며 민주화세력 또는 사회시민운동세력이 주도층으로 떠오르면서 지배 이데올로기도 개혁주의 또는 진보주의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이 속에서 보수진영은 존재의 근거가 되는 자체 이데올로기의 진화과정을 겪지 못하고 정체상태로 빠져들었다.
한동안 새로운 이데올로기적 논거를 발견하지 못하던 보수세력은 최근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관습헌법’에서 하나의 해답을 발견한다.
관습헌법론은 이데올로기적 갈증을 겪고 있던 보수진영에 한 줄기 소나기였다. 한 이데올로기 연구가는 “관습은 옛날부터 내려온 습성이자 관행, 한마디로 ‘과거’인데, 헌재가 이번에 관습론에 대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평가를 함으로써 과거에 기대는 보수진영이 큰 힘을 얻게 됐다”고 분석했다.
즉 헌재의 관습론이 특히 강경 보수주의자들의 이념적 갈증과 철학적 빈곤을 해소하는 계기로 작동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강경 보수주의자들은 헌재가 제시한 관습헌법론을 개혁과 변화에 대한 거부의 논리로 해석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과거의 대한민국은 이렇지 않았는데…”라는 논리구조다. 헌재의 결정은 반공, 성장주의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기폭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에선 수도이전 반대운동을 주도해온 강경 보수세력이 헤게모니를 잡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가능성 셋] 한나라당의 분화
강경 보수세력이 득세하면 개혁적 보수 또는 중도적 보수주의자들은 자연히 설 자리를 잃게 된다. 특히 한나라당을 합리적 보수주의의 산실로 만들고자 했던 중도 보수주의자들은 한나라당을 일탈하려 할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수도이전 논란에 관습론을 동원한 헌재의 결정은 한나라당에게는 약이자 독이다. 여권을 공격할 무기이자 내부 분열을 부추기는 도구라는 점에서 ‘양날의 칼’인 것이다.
당초 한나라당 안의 개혁적 또는 중도적 보수주의자들은 박근혜 대표를 중심으로 뭉치는 경향이 있었다.
학생운동 경험이 있는 수도권 출신 개혁 성향의 한나라당 초선 의원은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한 가장 큰 이유는 당의 수구노선”이라며 “제대로 된 정책과 비전을 생산하지 못한 채 수구적 입장에서 여권을 비판만 해온 결과가 연이은 대선 패배로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그룹에게 당내 합리적 보수주의를 대변하면서도 대중성을 확보한 인물은 박 대표였다. 실제로 박 대표가 합리적 보수주의자의 상징으로 인식되던 때가 있었다.
“관습헌법은 양날의 칼”
하지만 최근 박 대표가 개혁 또는 중도 보수가 아닌 강경 보수그룹 쪽에 가담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난다. 이는 ‘난세의 영웅은 못 된다’는 평가를 받는 박근혜 대표의 리더십 부재에서 비롯된다. 여기엔 일부 보수언론과 장외 강경 보수진영에 의한 압력도 작용했다. 헌재의 결정으로 이런 흐름과 분위기가 더욱 강해지는 분위기다.
수도이전에 반대해 강경론을 편 이명박 서울시장과 그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3선그룹, 박근혜 대표를 주축으로 하는 현 지도부와 중도 보수그룹, 수도권 소장파그룹 등 한나라당내 3개 그룹은 위헌결정 이후 경계선이 한층 선명해지고 있으며 서로에 대해 날선 공세를 펴고 있다.
한 초선 의원은 “박 대표가 당을 개혁적 또는 중도적 노선으로 이끌어나가기 바랐던 우리 그룹에서는 그의 변신이 솔직히 달갑지 않다”고 고백했다. 당이 강경 보수 쪽으로 변화하고 이것이 수도이전 무산으로 허탈해진 충청권 민심과 결합할 경우 헌재의 결정은 당의 재집권이란 전략적인 관점에서도 결코 유리하지 않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한나라당을 죽이는 싸움에 나서자”
최근 이기봉 충남 연기군수는 조치원역에서 열린 행정수도 위헌 결정 규탄대회에서 한나라당 탈당을 선언했다. 충남도의회 유환준 의원(연기)과 연기군의회 조선평·지천호 의원의 탈당도 이어졌다. 이기봉 군수는 “충청도 사람들은 모두 한나라당을 탈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소속 광역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들 중에도 시민들의 탈당 압력에 압박을 느끼며 강경 투쟁의 선봉장을 자처하는 이가 적지 않다.
충청권 3개 광역의회 의장단 항의 성명을 주도한 한나라당 소속 황진산 대전시의회 의장은 “한나라당이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이제 한나라당을 죽이는 싸움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나라당이 2006년 지방선거와 2007년 대선 때 충청권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열린우리당 박병석 의원은 “한나라당이 정치권 공동책임론으로 책임을 희석하려 하지만, 한나라당의 반대가 좌절의 핵심 원인이라는 것을 지역 민심은 잘 알고 있다”며 “이기봉 군수처럼 탈당하는 단체장, 지방의원이 속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학원 자민련 대표는 염홍철 대전시장과 이원종 충북지사를 향해 “한나라당을 탈당해 충청도민의 열망에 동참하라”고 압박했다.
열린우리당 내에서 점증하는 보혁 갈등, 그리고 한나라당 내에서 심화하는 소장파-보수파 갈등이 동반상승하는 형국이다. 여기에 수도이전 무산으로 심한 상실감과 소외감에 휩싸인 충청권 민심이 요동칠 경우 ‘지역구도+이념논쟁’을 매개로 한 정계개편 흐름이 정치권 전반으로 번질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