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호

음모론적 시각으로 본 세계사

  • 고승철│저널리스트 koyou33@empas.com│

    입력2010-01-11 11: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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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모론적 시각으로 본 세계사

    ‘비밀결사의 세계사’<br>김희보 지음/ 가람기획/ 390쪽/ 1만8000원

    드라마 ‘아이리스’가 왜 인기를 끌까.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아이리스’라는 비밀결사(結社)에 대한 궁금증도 작용했으리라. 미국 소설가 댄 브라운의 최신작 ‘로스트 심벌’이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도 마찬가지다. 브라운은 2003년에 ‘다빈치 코드’라는 작품에서 시온 수도회라는 비밀결사의 내막을 소재로 삼아 재미를 본 적이 있다.

    비밀결사…. 듣기만 해도 뭔가 신비롭고, 등골이 오싹해지지 않는가? 피 끓는 어느 젊은이는 “나도 가입할 수 없을까?”하는 호기심이 생기리라. 청소년 폭력조직인 ‘일진회’만 해도 주먹이 근질거리는 10대 소년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자 동경의 대상 아닌가. 비밀결사는 대체로 반(反)사회적 이미지를 가졌지만 독립운동단체, 자선단체 등 공익 목적 조직도 적잖다.

    1970년대에 왕성하게 활약했던 소설가 이병주 선생은 “햇볕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월광(月光)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라는 명구를 남겼다. 비밀결사에 얽힌 이야기는 달빛에 물든 신화가 대부분이다. 황당무계하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그럴듯하다. 원인을 검증하기 어려울수록 야릇한 신비주의가 기승을 부린다.

    비밀결사가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은 역사를 움직인 여러 사건이 인위적으로 ‘기획’됐다고 본다. 프랑스혁명, 러시아혁명, 제2차 세계대전 등이 그렇다는 것이다. “2008년 여름에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도 모종의 음모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유명인사의 죽음과 관련해서는 음모론이 더욱 판을 친다.

    지난 10여 년 사이, 음모론이 확산되는 데에는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겸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가 한몫을 했다. 그의 출세작 소설 ‘장미의 이름’은 중세 시대 의문의 피살사건으로 시작한다. 이 작품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이를 흉내 낸 아류가 쏟아져 나왔다.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이 결합된 ‘팩션’ 소설이라면 으레 도입부에서 의문의 변사체가 등장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으니 범인을 비밀결사 멤버로 몰아세우는 것이 유행이 되다시피 했다. 소설이 영화와 드라마로 확대 재생산되면서 관중은 사실과 허구를 혼동하게 됐다.



    문학평론가 겸 소설가인 김희보 선생이 쓴 ‘비밀결사의 세계사’는 비밀결사의 과거와 현재를 풍부한 사례를 들어 소개한 책이다. 저자는 ‘소설 창세기’ ‘쿰란의 두루마리’ 등 기독교 관련 서적을 여러 권 냈으며 월간 ‘기독교사상’ 주간으로 활동했다. 역사상 여러 비밀결사가 주로 종교와 관련되므로 저자의 전문성이 발휘된 것으로 보인다.

    美 대통령 22명이 프리메이슨?

    이 책은 비밀결사에 관한 동서고금의 사례를 망라했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닌다. 제목에 붙은 ‘세계사’라는 말이 과장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다양한 내용을 포함했다. 단행본이지만 작은 백과사전 같다.

    비밀결사의 유래는 인류 역사와 궤를 함께한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권력자와 성직자가 비밀 종교의식을 가졌다. 이들은 신전의 밀실에서 오시리스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도 신들에게 비밀리에 제사를 올리는 경우가 잦았다. 중국에서는 BC 1세기 무렵에 도교의 영향을 받은 ‘적미(赤眉)’라는 비밀결사가 생겼다. 회원은 눈썹을 붉게 칠했기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이들은 압제자에 대항하는 지하조직으로 암살 집단이었다고 한다.

    11세기에는 카스피 해 남쪽 산악지대에 ‘아사신’이라는 암살 교단이 생겼다. ‘하산’이라는 교주가 창시했는데 암살 요원은 교단의 권위를 상징하는 뜻에서 암살할 때 단검을 사용했다. 하산은 35년 동안 산에 은둔한 채 암살지령을 내린 전설적인 인물이다. 자객을 뜻하는 ‘아사신’이라는 단어는 이때 생겼다. 가수 비가 주연한 할리우드 영화 ‘닌자 어쌔신’도 1000년 전의 비밀결사에서 제목이 나온 셈이다.

    비밀결사 이야기가 나오면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단체가 프리메이슨(Freemason)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 시절에 예루살렘 성전을 지을 때 일한 석공(mason)들이 만든 비밀조직에 뿌리를 두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1717년 영국 런던에서 본부가 결성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 1737년 영국 황태자가 가입하면서 유럽의 왕족, 귀족, 예술가들이 줄지어 입회했다고 한다. 음악가 모차르트, 독일의 문호 괴테와 러시아의 문학 대가 톨스토이도 회원이라고.

    사회개혁을 꿈꾸는 프리메이슨은 프랑스혁명과 미국 독립전쟁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혁명에서 주요 역할을 한 오를레앙 공(公)과 미국 독립전쟁에 기여한 라 파예트 공이 프리메이슨의 프랑스 지부(그랜드 로지)의 핵심 간부였다는 것이다.

    미국 독립전쟁의 사령관이자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과 측근 인물들이 프리메이슨 회원이었다고 한다. 미국의 1달러짜리 지폐 뒤편에 인쇄된 ‘프로비던스의 눈’은 프리메이슨의 상징인 ‘만물을 보는 눈(All seeing eye)’이란다. 미국의 36대 역대 대통령 가운데 프리메이슨 회원은 무려 22명이라는데…. 저자는 “이 글을 쓰는 시점에 43대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관한 정보는 얻지 못한 상태이지만, 거의 100% 메이슨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의회, 사법부, 군, 재계에도 유력한 프리메이슨이 수두룩하다고 한다. 거대 재벌인 록펠러 가문이 대표적인 회원이라는 것. 미국에서 출판된 ‘록펠러 제국의 음모’라는 책은 “록펠러 가문이 미국 정권을 잡으면 프리메이슨이 지구상의 거의 모든 재물을 긁어모으는 시대가 시작된다”고 주장했다. 현재 미국에는 400만명 이상의 프리메이슨이 있으며 전세계 회원은 700만~1000만명이라는 것. 조직의 최상층부에는 유럽의 로스차일드 일가와 미국의 록펠러 가문이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며 가진 의문점은 프리메이슨 회원 숫자가 이렇게 많아서야 어떻게 비밀이 유지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비밀결사란 소수 정예로 구성되어야지 회원수가 1000만명의 거대조직이라면 ‘비밀’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회원으로 가입할 때 갖는 비밀스러운 의식도 실제로 이루어지는지 의문이다. 호사가들이 지어낸 ‘신비주의 콘텐츠’가 아닌가 하는 의문마저 든다. 또 여러 역사적 사건의 배후에는 프리메이슨의 음모가 개입됐다고 하는데 별다른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프리메이슨 회원으로서 세계통일 전략에 일조하기 위해 연방을 해체했다는 주장도 뚜렷한 근거가 없다. 유럽 통합도 프리메이슨의 세계통일 전략으로 추진됐다는데 이 주장도 설득력이 모자란다. 물론 이 책의 내용은 저자의 주장이라기보다는 기존의 여러 자료를 집대성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나 일본에는 프리메이슨과 관련한 온갖 출판물이 나와 있다. 세계의 저술가들은 프리메이슨의 활동상과 영향력을 부풀리는 데 골몰하는 듯하다.

    유대인 음모설도 단골메뉴

    2000여 년 동안 세계를 떠돌며 살아온 이스라엘 민족(유대인)에 대한 편견은 뿌리 깊다. 이들이 소수이면서도 금융, 언론, 학문, 예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자 이들이 세계를 지배하려는 음모를 추진한다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유대인의 우수성과 관련해서는 ‘0.25%=25%’라는 등식으로 흔히 설명된다. 세계 인구에서 차지하는 유대인 비율은 0.25%이지만 노벨상 수상자는 무려 25%라는 사실이다. 역사상 유명한 유대인의 명단을 나열하면 화려하기 그지없다.

    이 책은 유대인의 세계 지배 전략이 AD 70년부터 설계된 원대한 공작이라 설명했다. 러일전쟁 때 미국계 유대인이 거액의 일본 채권을 사들여 일본을 지원했고, 1차 세계대전에서는 러시아혁명을 공작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유대인이 미국과 소련을 배후에서 지배해 세계 경제의 70%를 주무르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원자폭탄의 개발과 일본 투하도 유대인의 공작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유대인이 노리는 1차 대상은 자신들을 억압했던 로마 가톨릭 후손 국가들, 즉 유럽이다. 유대인 모험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유대인들의 미국 정착이 이루어졌고 미국에서 유대인들의 성공신화가 실현됐다. 유대인의 다음 공략 대상지역은 아시아, 호주, 뉴질랜드 등 ‘환태평양 경제권’이라고 한다. 이 지역을 장악하면 유대인의 세계 지배는 완성되는 셈인데 그 목표 시기는 21세기 상반기라는 것.

    프리메이슨 회원 가운데 상당수가 유대인이라고 한다. 그래서 유대계 로스차일드 가문은 세계 지배 음모론과 관련해 이래저래 구설에 오른다. 유대인의 세계 지배 전략을 담은 ‘시온 의정서’가 독일의 히틀러 손에 들어간 일화도 소개됐다. 히틀러는 무자비한 전쟁을 통해서라도 세계를 지배한다는 계획을 담은 이 문서를 보고 그대로 추진하려 했다는 것.

    이 책에 따르면 세계화 물결이 두드러진 요즘, 이를 추진하는 배후에는 ‘300인 위원회’라는 비밀결사가 있다고 한다. 이 위원회도 유대인에 의해 주도된다고 한다. 하부 조직으로는 예수회, 각 보도기관, 그린피스, CIA, 프리메이슨, 브리티시 석유, 홍콩 상하이은행 등이 있다는 것.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인 모사드가 다이애나 영국 황태자비의 자동차 사고 사망과 관련됐다고 한다. 다이애나는 지뢰 없애기 캠페인에 열성적이어서 군수산업체에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는 것.

    이 책의 장점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음모론적 시각으로 본 세계사’라 할까. 저술하는 데 참고한 자료 목록을 밝히지 않았고, 별도의 색인이 없는 점은 아쉽다. 외국인명, 지명 표기에 오류가 적잖이 보여 보완해야겠다.

    민심이 흉흉해지면 도참설, 개벽설 등이 횡행한다. 비밀결사에 관한 관심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정통파 이론보다 음모론이 득세하고 사이비 선동가들이 선지자 행세를 하며 날뛴다. 특히 사이비 종교는 규명되지 않은 이적(異蹟)을 내세우거나 종말론으로 교세를 확장한다. 야릇한 신비주의에 현혹되지 말고 냉정한 이성을 찾아야 난세를 이겨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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