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가 끝난 밀밭 사이로 난 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100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도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순례자들이 산티아고를 향해 길을 떠납니다. 종교적 이유, 이국문화 체험을 위한 여행, 혹은 자기성찰을 위한 시간 등 다양한 목적으로 고행에 나섭니다. 각자가 떠나온 이유는 다르지만 순례자들은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며 만나고 헤어집니다. 800km의 긴 여정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 아름다운 풍경, 그 모든 것에 대해 애써 훗날의 만남을 기약하지도 헤어짐을 슬퍼하지도 않습니다. 흘러가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제 갈길, 제 있어야 할 곳에 내버려두는 일, 산티아고에서 새삼 느끼는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이치입니다.
흘러가는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묵묵히 길을 걷습니다. 눈앞엔 앞으로 가야 할 머나먼 길,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면 이미 추억이 된 지난 시간이 보입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카미노를 걸으며 지난날을 성찰하고 현재의 나를 살피며 앞으로 가야 할 내 생의 의미를 생각해봅니다. 즐겁다 해서 마냥 머물고 힘들다 해서 돌아갈 수 없으며 짐이 무겁다 해서 버릴 수 없음은 인생과 카미노의 공통점입니다. 어차피 져야할 짐이고 가야 할 길이라면 가벼운 몸과 마음, 웃음 띤 얼굴로 그 길을 가야겠지요.
산티아고 가는 길은 여러 경로가 있지만 가장 일반적인 코스는 스페인과 접경한 프랑스의 생 장 피드포르를 출발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의 자치구인 나바라, 라 리오하, 카스티야 레온, 갈리시아를 거쳐 산티아고에 이르는 길입니다.
1 순례자의 땅끝 마을 피스테라. 산티아고가 아쉬운 순례자는 100km 남짓한 거리의 피스테라에 도착해 함께해온 신발을 태우고 지는 해를 바라보며 상념에 젖는다.
2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피레네산맥의 푸른 초원.
3 갈리시아 산골마을 언덕 위의 십자가.
4 순례자 전용 숙소인 알베르게.
1 목적지인 산티아고 대성당 앞 광장에서 한 달여 고행길의 감회에 젖은 순례자들.
2 포도축제가 열린 로그르뇨에서 만난 가장행렬.
3 포도밭, 밀밭길 지나 해바라기가 가득 피어난 9월 하순의 평원.
4 세탁물을 말리며 길을 걷는 순례자.
5 산티아고 가는 길은 자전거 애호가에게도 각광받는 여행코스다.
6 순례자의 길을 걷는 젊은 여성들. 이들에게 카미노는 세계 각지의 친구를 만나는 사교의 장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