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맨’<br>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문학동네/192쪽/9500원
12월에서 1월 사이 벼랑을 앞에 두고 매일 밤 한 장 한 장 소설을 소리 내어 읽는다. 입김이, 소리가, 시간이, 허공에서 소멸된다. 나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과 함께 잠이 들고, 나의 잠든 눈꺼풀을 살며시 누르며 새날은 밝아온다. 침대 맡에는 12월 밤마다 동행해준 소설이 정갈하게 놓여 있다. 한 사내의 옆얼굴을 뾰족한 펜촉으로 스케치한 검은 표지의 사륙배판 블랙 하드커버의 ‘에브리맨 Everyman’. 막 떠오른 새해의 눈부신 햇살 아래 소설의 첫 페이지를 다시 펼친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황폐한 공동묘지에 있는 무덤 주위에는 전에 뉴욕에서 함께 광고일을 하던 동료 몇 사람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그의 활력과 독창성을 회고하며, 딸 낸시에게 그와 함께 일했던 것은 크나큰 즐거움이었다고 말해주었다. 그가 2001년 추수감사절 이후 살았던 저지쇼의 은퇴자 마을 스타피시비치에서 차를 몰고 온 사람들도 있었다. 얼마 전까지 그림교실에서 그에게 배운 노인들이었다. 그의 두 아들 랜디와 로니도 있었다. (중략) 그의 형 하위와 형수도 있었는데, 이들은 전날 밤에 캘리포니아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다. 그의 세 명의 전 부인 가운데 두 번째이자 낸시의 어머니인 피비도 있었다. 그리고 물론 낸시도 있었다. 낸시는 아버지의 장례식을 준비한 사람이며, 여기 나타난 사람들에게 연락을 한 사람이었다. (중략) 초대받지 않고 온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다. (중략) 오래전 고인이 심장 수술을 받았을 때 돌봐주던 개인 간호사 모린이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필립 로스, 정영목 옮김, ‘에브리맨’, 문학동네)
처연한 노년이야기
연말연초, 모두들 마지막 일몰을 보려고 서해로 달려가거나, 첫 일출을 목격하기 위해 동해로 달려가는 마당에 한 남자가 늙어 죽은 이야기라니! 나로 말하자면, 노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만, 노년의 삶을 들여다볼 나이는 아직 아니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나를 사로잡은 것은 애틋하고 처절한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고독하게 삶을 마무리하는 처연한 노년이야기였다. 44년을 함께 살아온 부부 그랜트와 피오나에게 어느 날 갑자기 닥쳐온 불행과 그 불행에 대처하는 노부부의 가슴 아픈 삶을 그린 ‘어웨이 프롬 허 Away from her’(2006)는 요 몇 년 사이 가장 인상 깊게 본 영화 중의 하나다. 아름다웠던 아내 피오나는 어느 날 알츠하이머병에 걸리고, 남편 그랜트는 모습은 똑같으나 전혀 다른 행동을 하는 낯선 아내에 충격을 받는다. 그랜트는 아내의 돌발 행동을 담담하게 견디며 끝까지 함께하려고 하지만 잠시 정상의 의식으로 돌아온 피오나는 자신의 변화에 괴로워하며 요양원에 입원할 결심을 하고 이별을 단행한다. 사랑하지만, 떠남으로써 남편에게 짐이 되지 않고, 아내로서의 품위를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아내를 존중하여 요양원에 그녀를 입원시키고, 요양원의 규칙에 따라 한 달에 한 번 정장을 하고 꽃을 들고 아내를 찾아가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오직 자신을 사랑하는 아내가 아니라, 다른 남자에게 온갖 정성을 기울이는 노년의 낯선 여인일 뿐이다. 피오나는 전생에 대한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 요양원에서 만난 남자(노인)에게 연민을 느끼고 사랑의 감정에 빠진 것. 그랜트는 두 번 아내를 잃은 심정으로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오고, 어김없이 한 달이 되면 한 가닥의 희망을 가지고 요양원으로 향한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내에게 찾아온 새로운 사랑을 그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의 고뇌는 비단 아내라는 한 여자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 전체(everyman)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캐나다의 광활한 자연과 설원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이 이야기는 삶의 끝에 도달한 노부부의 애틋한 영화로 볼 수도 있고, 죽을 때까지 찾아올 수 있는 사랑의 숭고한 감정에 대한 러브스토리로 볼 수도 있다.
인간은 모두 죽는다
인간은 모두 죽는다. 우리는 그동안 한 번 사는 인생 어떻게 사느냐에만 너무 골몰해왔다. 영화 ‘어웨이 프롬 허’와 소설 ‘에브리맨’은 바로 이 지점을 박차고 나가 한 번 죽는 인생 어떻게 죽느냐, 그러니까 삶의 끝에서는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에브리맨’은 필립 로스가 2006년 73세의 나이에 발표한 그의 27번째 장편소설로 한국에서는 정식으로 처음 번역 소개되는 작품이다. ‘노년은 전투가 아니라 대학살’이라고 명명하며 철저하게 한 남자의 죽음을 둘러싼 노년의 삶을 노작가 특유의 통찰이 묻어 있는 문장으로 그려 보인다. 중편 소설 정도 길이의 경장편이지만 아포리즘에 가까운 간결하고도 명징한 문장이 던져주는 울림이 깊다.
어린 시절의 가장 좋았던 순간을 기억할 때마다 그의 마음이 맴돌곤 하는 원들의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가장 좋았던 순간을 기억하며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겠는가? 노년의 가장 즐거운 시간을 즐겨야 하는 것 아닐까? 혹시 노년의 가장 좋은 순간이란 것이 바로 그것 아닐까 - 어린 시절의 가장 좋았던 순간을 갈망하는 것? (‘에브리맨’)
‘에브리맨’의 작가 필립 로스는 한국 독자에게 생소한 작가다. 그런데 현대 영미 쪽 소설계에서 그의 비중은 매우 크다. 이렇게까지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연유가 궁금할 정도로 필립 로스의 위치는 독보적이다. ‘미국의 목가’로 퓰리처상을 받았으며, ‘에브리맨’은 세 번째 펜/포크너 수상작이다. 그는 미국에서 ‘불멸의 독창성과 뛰어난 솜씨를 지닌 작가’에게 수여한다는 ‘펜/나보코프’상과 ‘지속적인 작업과 한결같은 성취로 미국 문학계에 큰 족적을 남긴 작가’에게 수여한다는 ‘펜/솔벨로’ 상을 70세를 넘긴 나이에 받았다.
1933년생으로 1959년에 소설가로 데뷔하여 2006년까지 50년 가까이 창작의 업을 이어오고 있는 그의 소설 ‘에브리맨’을 읽고 있자니,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1970년 ‘나목’이라는 아름다운 장편소설로 여성동아 공모에 당선된 40세 신인 박완서. 박완서 선생은 2007년 77세의 연세로 신작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를 발표했는가 하면, 최근 신작 단편 ‘빨갱이 바이러스’(문학동네, 2009년 가을호)를 발표해 문단은 물론 독자에게 행복한 놀라움을 선사해주었다.
필립 로스는 매년 노벨문학상 수상 영순위 후보이자 현역 작가로 활동 중이다. 우리에게는 박완서 선생이 있고, 또한 나란히 최일남, 현기영 선생이 같은 길을 가고 있다. 다양한 연령대의 작가들이 제 위치에서 창작력을 발휘하고, 특히 노년에도 왕성한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한 국가의 대외적인 국가 경쟁력만큼이나 중요한 문학의 힘을 보여주는 소중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예외 없이 알고 있는 진리
모든 인간은 죽는다. 이 말은 인류의 삶을 총정리한 ‘사생활의 역사’를 주도하고 집필한 프랑스 아날학파의 거장 필립 아리에스가 ‘죽음 앞의 인간’에서 공표한 명제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문자로 명시하기 전에 인류가 시작된 이래 누구나 예외 없이 알고 있는 진리이며, 죽을 때까지 한번 이상 경험하는 사실이다. 필립 아리에스의 ‘죽음 앞의 인간’이 죽음과 대면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다루고 있다면,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은 우리 주위에 있었던 평범한 한 사람이 늙고 병들고 죽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작가들은 소설 속에서 시간을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한다. 시간의 운용 방법에 따라 독자의 감상이 달라진다. 필립 로스가 ‘에브리맨’에서 사용한 것처럼 순차적인 시간의 법칙을 따르는 소설이 있는가 하면, 현대 미국 소설을 대표하는 피츠제럴드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사용한 것처럼 죽음 직전의 노년으로 태어나 점점 젊어졌다가 점점 어려지고, 더 어려지고 어려져서 태아로 소멸해버리는 모래시계형의 시간 운용도 있다. 또한 20세기 현대소설의 기념비적인 작품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르셀 프루스트는 소설 속에서 흘러가는 시간을 계속 뒤로 되돌리는 회상의 변주법을 사용한다.
‘에브리맨’ 이후 필립 로스의 다음 소개 작품이 궁금하다. 필립 로스처럼 작가의 명성에 비해 번듯한 번역서가 없는 경우가 있는데, 놀랍게도, 헤밍웨이의 작품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인간은 죽는다, 그러므로 위대하다. 이 죽는다는 엄연한 사실이 없다면, 인간이 그토록 처절하게 삶을 응시하고, 무엇을 만들어내고, 소통하고, 남기려고 할 것인가. 삶에 대한 치열한 경험과 모험, 그러니까 한 번뿐인 인생의 길목 길목에서 말을 걸어오고, 뒤돌아보게 하고, 돌아본 만큼 다져진 마음으로 한발 앞으로 내밀 수 있게 힘을 주는 소설,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발명품 중 윗길에 속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른 12월 마지막 날 밤에 내가 도달한 생각의 정처(定處)이다.
그는 쓰러지는 것과는 거리가 먼, 불길한 운명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느낌으로, 다시 충만해지기를 갈망하며 밑으로 내려갔지만, 결국 다시 깨어나지 못했다. 심장마비. 그는 이제 없었다. 있음에서 풀려나,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처음부터 두려워하던 바로 그대로. (‘에브리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