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 가곡 ‘가고파’의 고향
- ‘기업이 떠나는 도시’에서 ‘기업이 찾아오는 도시’로
- 경제효과 3조7000억원 로봇랜드 유치
- ‘디즈니랜드’ 능가할 구산해양관광단지
- ‘마산·창원·진해’ 통합으로 인구 110만 ‘메가 시티’ 건설
이은상은 이곳에서 뛰놀던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물 나면 모래판에서 가재 거이랑 달음질하고/ 물 들면 뱃장에 누워 별 헤다 잠들었지’라고 했다. 마창대교 위에서 만난 마산의 첫인상은 그의 시만큼이나 서정적이었다.
그러나 평화로운 감상은 오래가지 않는다. 다리를 건너 마산 쪽으로 다가서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가포동 율구만 수역에서 진행 중인 대규모 토목공사가 첫 신호탄이다. 마산시는 이곳에 2만~3만t급 컨테이너선 5척이 동시에 정박할 수 있는 부두를 만들고 있다. 상당부분 진행된 토사 매립으로 율구만 지역에는 거대한 황토 나대지가 생겼다. 2011년 공사가 끝나면 1899년 개항한 마산항은 110여 년 만에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바뀔 것이다.
시가지에 들어선 뒤에도 공사장은 곳곳에서 눈길을 잡았다. 시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국책사업인 로봇랜드 조성 공사를 비롯해 해양신도시 조성, 마산밸리 건설, 진북산업단지 조성 등 10여 개의 대형공사가 동시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요즘 마산에서는 해머 소리가 멈출 날이 없지요. 동부지역 관문인 구암동부터 진주시와 경계지역인 진전면에 이르기까지 동서남북에 걸쳐 도시 구조에 대변화가 생겼습니다.”
끝없는 공사 행렬에 혀를 내두르는 기자에게 황철곤(56) 마산시장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2001년 시장 당선 후 3선을 하며 10년째 마산 개발을 이끌고 있는 그는 이 ‘해머 소리’의 지휘자다.
6+6 프로젝트
“마산은 1970년대 이후 쇠락을 거듭했어요. 정치 경제의 중심이 수도권으로 옮겨가고 경남도청 등 도 단위 기관이 창원으로 이전하면서 도시 전체가 침체의 늪에 빠졌죠. 제가 시장에 취임했을 때는 외환위기 후유증까지 겹쳐 시민들의 자신감이 땅에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급선무였지요.”
그는 ‘드림베이(Dream Bay) 마산’ 비전을 선포하고 ‘새로운 마산 건설’을 기치로 내걸었다. 천혜의 자연환경에 첨단 산업을 접목시켜 ‘꿈의 도시’를 만들겠다는 포부였다. 이를 위해 시작한 것이 ‘마산비전 6대 전략사업’과 ‘드림베이 6대 성장동력사업’, 곧 마산 변신 프로젝트다. 마산 전역에서 대규모 공사가 시작된 것은 이때부터다.
“마산항 개발은 ‘마산비전 6대 전략사업’ 가운데 하나입니다. 마산항을 항만과 도시 기능이 조화된 남해안권의 물류거점으로 만들기 위한 공사죠. 이외에도 내서읍·우산동·봉암동 일원에 지능형 홈산업 네트워크와 로봇산업단지를 건설하는 ‘마산밸리’ 조성, 진북면 신촌·망곡리 일원에 업종 전문화 산업단지를 세우는 ‘진북산업단지’ 조성, 구산면에 4계절 체류형 종합관광 단지를 만드는 ‘구산해양관광단지’ 조성 사업 등이 진행 중이에요.”
마산의 목가적인 풍경을 만끽하며 달린 마창대교도 알고 보니 ‘마산비전 6대 전략사업’ 중 하나로 추진해 2008년 7월 개통한 다리였다. 이 사업과 더불어 진행 중인 ‘드림베이 6대 성장동력사업’은 규모가 좀 더 크다. 로봇랜드 건설, 창포 임해산업단지 조성, 마산자유무역지역 산업구조 고도화사업 등이 이 카테고리에 속해 있다. 하나같이 마산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대 역사(役事)다.
마산시 가포동 율구만 마산항 개발 현장. 공사장 뒤편으로 2008년 개통된 마창대교가 보인다.
한 가지만 하기에도 힘에 부칠 법한 사업들을 이처럼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는 이유는 뭘까. 황 시장은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서”라고 했다. 항만 건설과 산업단지 조성, 도로 건설과 관광단지 조성이 맞물려야 ‘새로운 마산’이 건설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마산은 달라지고 있다. 가장 쉽게 확인되는 것은 관내 기업과 노동자 수의 변화다. 2001년 536개에 불과하던 마산의 기업체 수는 이후 증가세로 돌아서 2009년 7월 1000개를 돌파했다. 2009년 10월말에는 유럽지역 2위의 자동차부품 공급업체인 포레시아가 신성델타테크(주)와 합작 투자한 ‘신성포레시아’도 마산에 둥지를 틀었다. 세계 유수의 기업이 마산에 뿌리내린 것이다. 노동자 수는 같은 기간 1만1749명에서 2만2500명으로 늘었다. 황 시장은 “마산이 오랜 정체 상태에서 벗어나 미래를 향해 도전하기 시작하면서 ‘기업이 떠나는 도시’에서 ‘기업이 찾아오는 도시’로 변모하게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마산은 한때 우리나라 7대 도시 가운데 하나로 꼽힐 만큼 번성했어요. 1970년 국내 최초의 외국인 전용 공단 ‘마산자유무역지역’이 조성되면서 수출의 전진기지 구실도 톡톡히 했지요. 이제 그 영광을 다시 누릴 시기입니다.”
황 시장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그가 말하는 ‘마산 도약의 발판’은 ‘로봇랜드’다. 로봇랜드는 로봇을 주제로 하는 새로운 개념의 테마파크. 2007년 정부가 첨단기술 육성을 목표로 추진한 국책사업이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공모 결과 마산시와 인천광역시가 사업자로 선정됐다. 마산지역에 들어서는 로봇랜드는 2014년 완공을 목표로 구산면 구산해양관광단지 안에 건설 중이다. 국비 560억원, 도비 1000억원 등 총 70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황 시장은 “사업 공고가 난 뒤 전국 10여 개 지방자치단체가 유치전에 뛰어들 만큼 경쟁이 치열했다. 기초자치단체에 불과한 마산시가 이 사업을 맡게 된 건 모든 시민과 공무원이 똘똘 뭉쳐 이뤄낸 성과”라고 했다.
“저도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등 관련부처부터 타당성 용역 기관인 KDI, 청와대, 국회까지 안 찾아간 곳이 없어요. 1년8개월간 마산-서울을 오간 거리를 합치니 지구 2바퀴 반을 돈 정도가 되더군요.”
미래 성장 동력, 로봇
그가 로봇랜드 유치에 전력을 기울인 것은 이 테마파크가 머지않아 우리나라 로봇 산업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기 때문이다. 용역 결과에 따르면 로봇랜드가 시 경제에 미칠 파급효과는 3조7000억원에 달한다. 로봇랜드가 완공되면 새로운 일자리도 3만4000개 더 생길 것으로 예측됐다. 중소기업 1000개를 유치하는 것에 버금가는 효과다.
“2020년이 되면 세계 로봇시장이 5000억달러 규모로 성장해 자동차산업을 능가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 정부도 로봇산업을 중점 발전시켜 2013년까지 세계 시장의 15%를 차지하는 로봇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어요. 로봇랜드는 로봇 관련 산업 수요를 창출하고,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로봇을 알리며, 신개발 로봇의 시험대 구실을 하기 위한 곳이지요. 이런 인프라를 갖춘 도시가 우리나라 로봇산업의 중심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닙니까.”
황 시장의 집무실 책상 옆에는 로봇랜드 추진 현황과 발전 방향이 적힌 대형 패널이 걸려 있다. 마산시가 이 사업에 걸고 있는 기대가 한눈에 읽혔다.
마산시는 로봇랜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KAIST, 경남대, 한국생산기술연구원, 한국전기연구원, 한국로봇산업협회 등과 ‘마산 로봇산업 육성·발전을 위한 협약’을 맺었다. 경남도는 이미 전국 산업용 로봇 생산의 40%를 점유하고 있는 국내 최대의 로봇산업 집적지. 그 중심 역할을 하는 경남거점로봇센터가 마산에 있다. 황 시장은 “마산의 로봇산업 경쟁력을 더욱 높이기 위해 두척동 일원에 로봇산업 클러스터가 입주할 ‘도시첨단산업단지’를 조성하고, 내서읍·우산동·봉암동 지역에는 지능형 홈 산업 네트워크와 로봇산업단지가 될 ‘마산밸리’를 짓고 있다”고 밝혔다.
인근 도시인 사천, 거제, 창원 등과의 산업 교류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현재 남해안에서는 부산과 거제를 잇는 거가대교가 건설 중이다. 2018년에는 마산과 거제를 잇는 이순신대교도 완공될 예정이다. 로봇랜드는 이미 개통한 마창대교와 이 두 다리가 이루는 트라이앵글의 한 축에 자리한다. 황 시장은 “세 다리가 모두 이어지면 마산의 로봇산업은 사천의 항공·우주산업, 거제의 조선산업, 창원의 기계산업과 결합돼 막강한 시너지 효과를 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09년 10월 ‘가고파 국화축제’에 전시된 명품 국화 다륜대작. 한 줄기에 1315송이의 국화꽃이 피었다.
로봇랜드는 마산이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부상하기 위한 도약대이기도 하다. 황 시장에 따르면 로봇을 앞세운 테마파크는 아직 세계 어느 곳에도 없다. 해외관광객의 시선을 끌 수 있는 차별화된 아이템인 셈이다. 게다가 마산에는 가곡 ‘가고파’를 탄생시킨 그림 같은 해상 유원지가 있다. 황 시장은 “로봇랜드가 들어서는 구산해양관광단지는 2016년 완공을 목표로 1조4440억원을 들여 조성 중인 휴양타운”이라며 “맑고 잔잔한 남해 풍경과 워터월드, 골프랜드 등 다양한 관광 시설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소개했다.
“마산은 151㎞ 해안선 전부가 절경인 해양·항만도시입니다. 다른 도시에서 로봇 테마파크를 만든다고 해도 우리가 가진 천혜의 자연환경은 흉내 낼 수 없지요. 용역 조사 결과를 보면 로봇랜드가 완공될 경우 연간 500만명의 관광객이 마산을 찾을 것으로 보입니다. 디즈니랜드를 능가하는 세계적인 테마파크가 되는 거예요.”
황 시장은 일단 2012년 여수 세계엑스포에 맞춰 로봇랜드의 시설을 일부 개장해 해외관광객을 마산으로 유치하겠다고 밝혔다. 또 구산면 반동리 옥녀봉 중턱에 50m 높이의 로봇타워를 설치하는 등 ‘마산=로봇, 로봇=마산’ 이미지를 굳건히 하기 위한 방안도 추진 중이라고 했다.
황 시장은 경남 창원에서 태어나 마산고등학교를 졸업한 이 지역 토박이. 1976년 행정고시 합격 뒤에도 줄곧 경남에서 근무했다. 그래서인지 말 마디마디마다 지역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묻어났다. 특히 마산의 빼어난 풍광과 문화적 자산에 대해 얘기할 때면 절로 목소리가 높아졌다.
“마산은 기후가 좋고 먹을거리가 풍부해 예로부터 ‘복 받은 땅’이라고 불렸어요. ‘가고파’의 작사가 이은상,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을 비롯해 조두남, 반야월, 방학기 등 수많은 예술가가 이곳에서 태어났지요.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화운동인 ‘3·15의거’와 ‘부마항쟁’도 마산에서 시작됐습니다. 산업, 역사, 정신의 뿌리가 깊고 굳건한 도시예요.”
황 시장은 마산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동성동, 남성동, 신포동에 걸쳐 있는 어시장을 추천했다. 푸른 물결 위로 진홍빛 물고기가 솟아오르는 모양의 입갑판을 지나자 비릿한 바다 냄새와 각양각색의 생선들, 상인들의 호객 소리가 눈코귀를 잡아끌었다. 생선 골목, 젓갈 골목, 건어물 골목 등으로 나눠진 시장길을 따라 2000여 개의 어물전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1760년(영조 36년) 조창(漕倉)이 설치되면서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공간. 황 시장 취임 후 천장을 설치하고 대리석 소재 공중화장실을 짓는 등 현대화 공사를 벌였지만, 재래시장 특유의 흥겨운 분위기와 사람 냄새는 여전했다.
마산+창원+진해
마산 앞바다에서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는 돝섬도 마산 관광의 중심지다. 시내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면 10분 거리. 작은 섬 가득 소나무숲과 국화밭이 조성돼 있어 그윽한 향기가 풍긴다. 매년 가을이면 이곳에서 ‘가고파 국화축제’가 열리는데, 2009년 10월 축제는 전국에서 40만명의 관람객이 찾을 만큼 성황을 이뤘다. 황 시장은 “마산의 관광 자원은 아직 제 가치에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마산 창원 진해가 행정구역 통합을 이루고, 통합시가 남해안 지역의 중심도시로 성장하면 우리 지역의 매력과 아름다움이 새롭게 조명 받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행정구역 통합은 어쩌면 마산의 미래를 결정지을 가장 큰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다. 마산은 삼국시대부터 이어 내려온 1000년 역사의 도시. 일제강점기인 1914년 창원군과 마산부가 분리되고, 1955년 창원군에 속했던 진해읍이 진해시로 승격 분리되기 전까지, 창원과 진해는 마산과 더불어 하나의 도시로 긴 세월을 함께했다. 최근 세 도시의 통합이 확정된 데 대해 황 시장은 “한 뿌리, 동일한 역사를 가진 형제자매도시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2001년 마산시장에 당선된 뒤 3선 연임하며 시정을 이끌어온 황철곤 시장.
황 시장은 2006년 지방선거 당시 ‘마창진 통합’을 공약으로 내걸었을 만큼 일찍부터 행정구역 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현대는 도시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티노믹스(citynomics)’ 시대이며,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중소도시가 결합해 인구 100만명 이상의 ‘메가 시티’로 변신해야 한다는 행정가로서의 소신 때문이었다.
황 시장은 지방자치제가 실시되기 전인 1994년 관선군수로 창원에 부임해 창원군 5개 면과 마산시의 통합을 이끈 경험이 있다. 1995년 사천군수 시절에는 사천군과 삼천포시의 통합을 이뤘다. 특히 사천군과 삼천포시의 경우 불과 1년 전 주민투표에서 부결됐던 사안이 그의 취임 이후 가결로 바뀌어 전국적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마산 창원 진해의 통합으로 그는 세 차례나 행정구역 통합을 성공시킨 ‘통합의 달인’ 별명을 얻게 됐다.
“마산 창원 진해 세 의회의 통합 찬성으로 이제 통합시 출범은 행정 절차만 남겨두게 됐습니다. 세 개 시가 합쳐져 만들어질 새로운 도시는 인구 110만명의 대도시가 됩니다. 면적은 737㎢로 서울(605㎢)보다 넓고 예산은 2조2000억원 규모로 울산(2조6000억원)과 맞먹는 수준이 되지요. 명실상부한 메가 시티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영해 시민들의 이익을 늘리고 도시 경쟁력과 브랜드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활력 넘치는 해양 명품 도시
황 시장의 마산시장으로서의 임기는 2010년이면 끝난다. 그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6+6 프로젝트’와 ‘마창진 통합’의 결과는 그 후에나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황 시장은 2015년을 ‘드림베이 마산 건설’ 비전의 실현 시점으로 삼았다. 그 무렵이면 통합 작업이 완성되고, 로봇랜드가 완공되며, 현재 마산시가 추진 중인 각종 대형공사도 대부분 마무리돼 마산이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요즘 마산에는 활력이 넘칩니다. 시민들 사이에도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득하지요. 그래서 저는 마산의 밝은 미래를 확신하고 있어요. 2015년이 되면 마산은 ‘21세기를 선도하는 해양 명품 도시’‘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역동적인 도시’로 탈바꿈해 있을 겁니다. 그 무렵 통합 마산이 우리나라의 미래를 선도하는 ‘경쟁력 1등 도시’가 된 모습을 보는 게 제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