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던 중 눈길 끄는 장면 하나가 펼쳐졌다. 자동차 한 대가 중심을 잃고 뱅그르르 돌았고, 이 차를 피하려던 다른 차와 함께 트랙을 벗어나 잔디밭에 처박혔다. 그 뒤로 ‘또 언제 저런 멋진 장면이 펼쳐지나’, 사고가 나기를 바라며 경기를 집중해서 보게 됐다. 자동차를 전혀 몰랐던 필자에게 ‘포뮬러 원 그랑프리’(F1)는 그런 스포츠였다. 왜 수만 명이 운집했는지, 왜 경기장 아나운서가 흥분했는지,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뒤로 25년 가까이 지났다. 그 사이 F1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를 접했고, 경기장을 찾아 현장을 취재했다. 하지만 여전히 내게 F1은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포츠는 아니었다. 문화적 차이로 인해 대다수의 한국인에게 F1은 프로야구나 WBC, 올림픽, 월드컵과 같이 ‘피부에 와 닿는’ 스포츠는 분명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다. 유럽, 미국인들이 주로 열광하는 스포츠라고 해서 한국인도 따라서 열광해야 할 이유도 없다. 이는 마치 ‘유럽인들은 크리켓이나 럭비에 열광하는데 무식한 한국인들은 이 게임의 진면모를 모른다’고 비난하는 것과 같은 논리다.
F1과 프로야구
하지만 올해만큼은 다르다. 10월22~24일 사흘간 전남 영암에서는 ‘F1 코리아 그랑프리’가 열린다. F1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자국에서 펼쳐지는 특급 스포츠 이벤트를 강 건너 불구경한다면, 이는 개인적으로도 크나큰 손실일 수밖에 없다. 물론 경기 수개월 전부터 방송과 신문 잡지는 F1 관련 기사나 리포트로 할애된 시간과 지면을 ‘도배’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독자는 F1에 대해 본의 아니게 ‘주입식’으로 상당한 지식을 얻을 것이다. 축구 월드컵이 열리는 동안 이런저런 스타들의 이름과 인상이 익숙해지는 것과 같은 메커니즘이다.
하지만 대회 기간에 임박해서야 스타플레이어의 진면모와 게임 보는 재미를 겨우 알게 된다면 대회 전부터 게임의 묘미를 알고 있던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손해 보는 ‘재미’의 양은 클 수밖에 없다. 더욱 절망적인 경우는 경기가 다 끝나고 나서야 뉴스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면서 ‘아, 맞다 저 사람이 있었지’ 뒷북치는 사람들. 개기일식, 1988년 서울올림픽, 2002년 한·일월드컵 못지않은 빅 이벤트. 고시공부 하듯 머리 싸매지 않고 F1을 즐기는 방법은 없을까?
F1을 즐기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프로야구 보듯 F1을 감상하는 것이다. 한국의 프로야구, 미국의 메이저리그처럼 F1에는 선수가 있고 코칭스태프가 있고, 장비를 생산하는 업체가 있다. F1드라이버 중에는 야구의 추신수·이승엽·박찬호 같은 스타플레이어들이 있으며, 레이스 도중 차량의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정비하는 스태프들이 조범현·김인식 감독, 이만수 코치 같은 역할을 한다.

F1 슈퍼스타 미하엘 슈마허.
프로야구에는 나이키, 미즈노 등 운동용품 제작사가 경기에 필요한 용품을 제공하듯이 F1에는 페라리, 메르세데스 벤츠, 도요타, 브리지스톤과 같은 자동차 엔진과 차체, 타이어 제작회사가 뒤에 있다. 프로야구의 경우 어느 팀 소속의 어느 감독 밑에서 어느 선수가 어떤 기량을 발휘하며 리그에서 △전체 팀 순위 △홈런, 타율, 도루 등 선수 개인 성적 순위가 관심을 모으고, 부수적으로 이 선수가 착용하는 신발과 사용하는 글러브, 배트의 브랜드가 화제가 되기도 한다. F1도 똑같다. 어느 팀 소속의 어느 스태프와 함께하는 어떤 선수(드라이버)가 어느 정도의 기량을 발휘하는지, 이 드라이버가 운전하는 차량은 어느 회사 차량인지가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