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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여, 논어 맹자 다시 공부하라”

한 원로학자의 충고

“일본인이여, 논어 맹자 다시 공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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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 여론이 돌변한 이유를 밝히는 것이, 왜 일본이 동양의 맹주가 되지 못했는가 하는 문제를 푸는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것은 태평양전쟁이 해방전쟁이 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문제를 이해하면 독도 문제는 자연스럽게풀릴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1904년 한국여론의 변화 이유를 정확히 밝혀야 한다.

19세기 말 일본에 대한 조선인들의 태도에는 몇 차례 변화가 있었다. 1876년 개항 후에 한국의 진보세력 또는 개혁파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극구 찬양했다. 일본의 개혁과정을 배워야 한다고 외쳤다. 그러나 그들은 소수였다.

1894~1895년에 있었던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였다. 그에 따라 서양문명을 배척하던 수구세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종전 직후 3국간섭으로 일본은 중국에 랴오둥(遼東)반도를 반환하는 등 러시아의 압력에 밀리게 됐다. 그런 와중에 일본이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일으킴으로써 조선에서는 반일 사조가 강해졌다.

하지만 1900년대에 들어 만주와 조선반도를 에워싸고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전운이 감돌자, 조선은 두 나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진보세력은 당연히 일본을 지지했고, 조선 정부도 그랬다. 많은 지식인이 전쟁이 끝난 후에 조선은 승자에게 굴(屈)하고 주권을 상실할 것이라 예측했음에도, 러시아보다는 ‘동족(同族)’인 일본이 승리하기를 바랐다.

러시아는 타민족을 정복한 후 야만적으로 압제한다고 알려진 것도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일본 사람들이 1890년대부터 부르짖어온 ‘대동연합론(大東聯合論)’에 기대를 건 사람이 많았던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은 1904년 3월, 전권대사 자격으로 고종을 만나 “동양 나라들은 형제같이 뭉쳐야 한다. 아니면 서양 나라들에게 먹혀버릴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고종을 비롯한 조선인들은 이 말을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선정부는 자진해서 일본군을 도왔다.

그랬는데도 한국사람들이 돌변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일본인들의 행동이 너무나 무도하고 야만적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앨런의 보고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1904년 4월14일. 일본은 조선반도 전역에서 거의 무제한적인 어업권을 요구했다.

(2) 6월28일. 그들은 지금 조선 내 모든 황무지를 점거하고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했다.

러시아군과 일본군의 차이

(3) 많은 수의 일본인 불량배 노동자들이 조선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일본 당국은 최근 조선으로 몰려드는 일본인 불량배들이 범하는 무도한 행위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 조선 관리들은 여인들, 심지어 가마에 탄 귀부인까지도 서울 근교의 경의선(京義線) 철도공사 작업 현장을 희롱 당하지 않고 지나칠 수 없을 정도고, 많은 여인이 철도 부설 작업을 하는 노무자들에게 겁탈당했다고 본인에게 전했습니다. 조선 남자들, 심지어 양반들도 그곳을 지나다가 잡혀서 노동을 강요당하는데, 이들이 일을 하는 동안 일본인 노무자들은 손을 놓고 쉬고 있다는 것입니다.’

(4) 8월27일. 선교사들에 의하면 일본 군대가 노역을 시키기 위해 조선인들을 붙잡아가고 있다고 한다.

‘본인은 만주에서 군수품을 수송할 노무자를 강제로 징용함으로써 야기된 조선 토착주민들의 고통과 관련된, 평양에 사는 장로교 선교사 모펫 목사(Rev. Dr. S. A. Moffett)의 이달 15일자 서신 사본을 동봉합니다. … 일본 당국은 조선 정부에 약 8000명의 노무자를 제공하라고 요청했으며, 높은 임금을 약속했으나 토착민들이 겁을 내 전쟁터에 가는 것을 거절하자, 노무자를 강제로 붙잡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일본인에 대한 조선인들의 원한은 커지게 되었고 내륙에서 소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5) 10월11일. 일본군은 절도를 했다는 죄목으로 조선인들을 무도하게 처형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달 21일 있었던 계엄령하에서의 조선인 세 명을 총살한 사실을 들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일본군이 군용철도를 설치하는 바람에 빼앗긴 자기 땅에 대한 대가를 받으려는 의도에서 다소의 철도자재를 훔쳤습니다. (이러한 범죄에 대해) 어느 정도 교훈이 필요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만, 농부들이 배상을 받으려는 의도에서 일을 저지르면 무참하게 죽이는 한편, (일본의) 군인이나 헌병들이 이유 없이 (조선) 사람들을 살상한 것을 고발하면 무시해버리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6) 러시아 지휘관들은 군기를 엄중하게 준수하고 접근하기 쉬우나 일본군은 비행을 고발하려는 조선인들을 접근시키지 않고, 그들을 학대하고 있다.

‘러시아 지휘관들은 접근하기가 쉽고, 토착민에게 자행된 어떠한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그들의 군인을 처벌하는 데 가장 엄중하다고 합니다. 북쪽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 선교사들로부터 본인이 들은 바입니다. 반면 조선 사람이 일본군 본부에 고발하러 가면 쫓아내버린다고 합니다. 이 두 군대로부터 받는 대접의 차이는 한국사람들에게 매우 잘 알려져 있으며, 러시아인들을 선호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보고와 당시 선교사들의 기록을 보면 왜 조선사람들이 일본에 가졌던 환상에서 벗어나 일본을 증오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일본사람들은 째임새 있게, 그리고 능률적으로 모든 일을 했고, 혁혁한 성과를 내기는 했으나, 그들이 점령한 조선반도의 민심은 급격히 이반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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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 < 연세대 용재 석좌교수 ·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명예교수(정치학) >cslee@sas.upenn.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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