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온건파 의원들은 환경 보호를 주장하는 자신들의 목소리에 귀를 닫은 채 원자력 발전소 추가 건설과 석유공 시추 등 사업자들의 개발 논리 일변도로 치닫는 체니 부통령과 백악관 참모들에게 경고를 보냈다. ‘행정부가 계속해서 환경 현안에 부드러운 자세를 취하지 않을 경우, 도시 근교 유권자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할 것이며, 공화당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온건파 의원들의 입지를 위험하게 한다’는 것이 경고의 요지였다.
공화당 하원의 온건파 핵심 의원 몇몇은 5월8일 상원에 있는 체니의 사무실로 찾아가 정중하게 제동을 걸었다.
“부시의 환경정책은 내 선거구 핵심 유권자인 녹색표(green vote)의 반감을 사, 결과적으로 공화당을 위협하고 있다.”(낸시 존슨, 코네티컷)
이들의 요구는 백악관이 환경 법률안을 쉬쉬하며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말고 자신들에게도 알리면서 상의하라는 것이었다. 공화당 지도부도 나름대로 사연이 없지 않다. 클린턴이 임기 말기에 환경 현안 등 몇몇 분야에서 덫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부시의 임기 초반에 당내 보수파와 산업계의 격한 목소리를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는 클린턴 때 만들어진 규정들을 뒤집지 않을 수 없었다. 온건파들도 물론 이런 사정을 모르지 않았다.
“전임 클린턴 행정부가 물러나면서 다음 행정부를 의도적으로 곤혹스럽게 만들어 놓았다는 점은 우리도 인정한다. 하지만 부시의 몇 가지 결정은 잘못된 것이다. 캘리포니아의 에너지 위기만 봐도 그렇다. 새로운 에너지 정책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하지 않으면 동북부에도 가스 값 폭등의 위기가 곧 닥칠 것이다.”(마이클 캐슬, 델라웨어)
이들은 체니에게 온건파가 의회에서 아주 간발의 차지만 엄연히 공화당의 다수파라는 점도 상기시켜주었다. 공화당이 하원 다수당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주류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해서는 안 되며, 대다수 미국 유권자들은 정치적 이념 분포에서 극우나 극좌가 아닌 중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정치 지도도 새삼스럽긴 하지만 펼쳐 보여주었다.
그러나 부시도 백악관 참모들도 체니도 온건파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예를 들어 체니는 향후 20년 동안 최소 1300개의 발전소를 건설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고, 당내 환경보호론자들의 반발에 부딪혔으나 모르쇠로 버텼다. 교토 의정서 탈퇴, 지구 온난화 방지에 대한 무관심, 북극 국립야생생물 피난처(ANWR) 지대에 대한 석유 및 가스공 시추 지지 등도 온건파의 뒤통수를 때리는 조치들이었다.
제퍼즈를 따돌린 부시
제퍼즈 의원은 그럴수록 자신의 목소리를 더 높였다. 부시의 예산안과 감세안에 일일이 반대했다. 그러니 백악관과 공화당 지도부의 눈초리가 고울 리 없었다. 저러다 당하지 하는 귀엣말들이 떠돌았다. 제퍼즈 의원이 탈당하기 딱 열흘 전인 5월14일에 발행된 의회 관련 전문 주간지 ‘롤콜(Roll Call)’에는 ‘변절자’ 제퍼즈 의원을 ‘처벌’하는 아이디어가 백악관 내에 떠돌아다닌다는 한 칼럼니스트의 글이 실리기도 했다. 당내 보수파와 보수 언론의 논객들이 제퍼즈 의원에게 화살을 겨누고 있다는 것이었고, 이 칼럼의 제목은 ‘부시, 제퍼즈의 탈당을 부추기는가?’였다.
백악관의 공격은 이미 개시된 뒤였다. 백악관에서 열린 ‘올해의 교사’ 표창식 참석자 명단에 제퍼즈 의원의 이름이 빠진 것이다. 공교롭게도 올해의 교사는 버몬트 출신이었다. 백악관은 제퍼즈 의원의 이름이 빠진 것은 단순한 실수라고 둘러댔다. 그러나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올해 67세인 제퍼즈는 과묵한 사람이다. 버몬트에서 나고 자라 예일대학을 졸업했고 하버드 로스쿨 출신으로 전형적인 동북부 엘리트다. 버몬트 주 상원의원(1967~68)을 거쳐, 주법무장관(1969~73)을 지냈고, 연방 하원의원 생활 13년(1975~88)에 이어 1989년부터 지금까지 12년째 상원의원으로 있다. 태권도 검정띠의 유단자이며, 크로스 컨트리를 즐기고, 한때는 트렌트 로트 의원과 함께 ‘상원의원 4중창단’의 멤버이기도 했다.
그는 클린턴 대통령의 열광적인 팬이었다. 상원 표결에서 75%나 클린턴 편에 섰다. 공화당 상원의원 가운데는 초피 의원에 이어 두 번째로 민주당 편이었다. 클라렌스 토머스 대법관 임명에도 반대표를 던졌고, 클린턴 탄핵안도 반대했다. 공화당의 이단자였고 변절자였으며 몸은 공화당에 있었지만 무소속이었다.
1995년 공화당이 상원을 접수했을 때만 해도 8~10석을 민주당에 앞서 있었기 때문에 제퍼즈 의원 같은 온건파가 당론과 다를망정 독립적으로 투표를 하더라도 당 지도부는 여유가 있었다.
온건파도 독립적인 투표를 하더라도 당 지도부의 견제를 덜 받았다. 그러나 2001년의 상원은 50 대 50이었고, 8년 만에 새 행정부가 들어섰으니 당 지도부로서는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미 상원이 어떤 곳인가? 독립 입법체의 자유의지 경연장 같은 곳이고, 그것이 또한 미 상원의원의 덕목이요 정치적 실체이기도 하다. ‘상원은 자기 위주로만 움직이는 프리마돈나의 클럽 같은 곳이다. 99명의 왕과 1명의 여왕이 있을 뿐이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 헌신하는 곳이 상원이다.’(마거릿 체이스 스미스, 1971년 12월21일자 ‘뉴욕 타임스’ 칼럼)
상원의원의 지나친 독립성을 비꼬면서도 상원의 성격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버몬트 주립 대학의 개리슨 넬슨 정치학과 교수도 이런 지적을 했다. “내가 보기에 제퍼즈 의원은 상원의 개인주의 전통과 버몬트의 정치적 독립을 이해하지 못하는 백악관 참모들에게 지친 것이 틀림없다.”
결국 제퍼즈라는 상원의원은 점잖게 공화당을 걸어 나왔다. 54년 만에 백악관과 상하원을 동시에 장악한 공화당의 정치적 대승리를 눈 하나 깜짝 않고 뭉개버리면서.
여담 하나. 공화당 탈당을 발표하던 날 그는 회색 양복에 회색 넥타이를 했다. 전 미국의 주목을 받는 날이었고, 텔레비전 카메라 불빛이 쏟아지는 날이었으며, 정치판의 대변혁을 선포하는 날이었다. 다른 정치인이라면 짙은 감청색 양복에 하늘색 와이셔츠와 빨간 넥타이를 맸을 것이다. 워싱턴 정치인의 유니폼이 그런 것이었고, 더구나 그날은 독립의 날이요 반란의 순간이었으며 자유를 선포하는 날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는 회색이었다. 빨간색도 아니고 파란색도 아니었다. 한 패션 디자이너는 역사적인 ‘독립선언’을 하는 날 회색 양복에 회색 넥타이를 하고 나타난 제퍼즈를 ‘화강암 조각’ 같다고 했다. 정치 독립을 선언하는 그날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이 패션 디자이너는 제퍼즈의 회색은 ‘고결한 인간, 고매한 성품’을 표상하는 것이라고 평했다.
하기야 제퍼즈는 언론 앞에 서기조차 부끄러워하는 인물이었다. 거만과는 거리가 멀어 겸손했고, 정치 신념을 굽히지 않는 절개로 버텼다. 한 언론인은 그를 이렇게 평했다.
“남들 앞에 나서기 좋아하는 정치인들과는 다르다. 자기 절제를 할 줄 알고, 공화당 지도부처럼 자기 중심적이거나 자만하는 기색이라고는 없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하고는 더 이상 일을 같이 못 하겠다는 판단도 탈당의 한 이유가 됐을 것이다.”
공화당의 악의에 찬 분노
공화당에 있었을 때도 강경파는 제퍼즈를 별렀다. 이젠 당을 제 발로 걸어나간 마당인데 제퍼즈의 뒤꼭지만 쳐다보고 있을까? 공화당원이었다가 민주당으로 당을 바꾼 후 민주당 대통령 후보에 도전했던 마이클 포브스가 그런 제퍼즈의 정치적 앞날을 우려하는 글을 ‘워싱턴 포스트’(5월25일자)에 써 보냈다.
공화당 하원의장으로 매파 지도자였던 깅리치와 사사건건 멱살잡이를 하다 결국 공화당을 떠난 후 자기가 겪은 경험담을 들려준 것이다. 자신이 본 공화당에 대해서도 한마디 잊지 않았다. 간추리면 이렇다.
“제퍼즈 상원의원처럼 나도 GOP(공화당)는 더 이상 내가 헌신적으로 일하던 그런 당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가족들의 관심거리에 대해 실제적인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극단으로 치닫는 것이 지금의 공화당이다. 편협하고, 관용을 베푸는 법이 없고, 다수를 무시하고, 동북부 사람들과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관심은 귓등으로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노인의료보험제도와 사회보장을 사설화하려 들지를 않나, 거대한 관료 집단을 통해 납세자들의 세금만 탕진하려 든다. 오늘날 워싱턴의 공화당이라는 조직은 교육개혁과 노인보험제도, 환경 문제 같은 것에 대해서는 빈말만 잔뜩 늘어놓고 있다.
제퍼즈 의원은 이제 공화당의 악의에 찬 분노를 각오해야 한다. 신기하게도 지난 20년 사이에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당적을 옮긴 사람들은 이런 앙갚음을 당하지 않았다. 공화당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제퍼즈 의원의 기록을 왜곡하고, 인격을 깎아 내리며, 보수파 언론을 구슬려 제퍼즈 의원을 공격하려 들 것이다. 그를 파괴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들쑤셔 낼 것이다. 그들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내가 민주당으로 당을 옮긴 후, 민주당에는 나와 관련된 왜곡된 기록과 거짓투성이 정보가 수도 없이 날아들었다.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나와 함께 일하던 전 참모들을 고용해 대통령 예비선거에 나선 나를 두들겨댔다. 민주당 예비선거에 민주당 돈보다 공화당 돈이 더 많이 흘러 들어갔다면 알 만하지 않은가. 한마디로 피의 스포츠였다. 극단 과격파가 둥지를 틀고 앉아 있는 현재의 공화당에는 온건파가 비집고 앉을 자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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