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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를 반복해선 안된다”

독일교과서의 역사관

“아우슈비츠를 반복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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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의 과거사 교육을 이해하는 첫번째 열쇠는 죄의식의 대물림이다. 두번째는 아우슈비츠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범죄사실에 집중할 때 비로소 범죄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978년 서독 교육부는 이 주장을 채택해 역사교과서 뿐만 아니라 윤리·사회·종교·독일어(국어)·영어교과서 등 사실상 인문·사회교육 전반에 적용하고 있다.
1989년 동독 시민들은 공산당 강압 통치에 반대하며 차가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자유를 갈망하는 그들의 절망적인 목소리는 “독일은 하나의 조국을 원한다”는 희망의 외침으로 바뀌었고, 자유의 상징 ‘서독’을 향한 대탈출이 시작되었다.

이 물결은 마침내 30년 가까이 동서독을 굳건히 가로막고 있던 장벽을 무너뜨렸다. 통일의 구호가 전 독일을 가득 메웠고, 통일 독일의 출현을 둘러싼 세계 열강들의 힘겨운 줄다리기 소식이 급전을 타고 세계 각지로 전해졌다.

이렇게 독일 통일의 용광로가 거친 열기를 뿜어내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는 전후 서독의 45년을 관통하는 일련의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1990년 봄 서독 프랑크푸르트에서는 현 독일연방 외무장관 요시카 피셔를 비롯한 녹색당과 사민당의 일부 정치인이 참여한 ‘반통일’ 데모가 한창이었다. 당시 사민당 당수 오스카 라퐁텐은 집권 기민당 헬무트 콜 총리에 비해 인기도에서 20% 앞서고 있었다.

정권교체의 희망을 한 몸에 안고 있던 그는 “서독은 그 뿌리를 ‘아우슈비츠(Auschw itz)’에도 갖고 있다. 이를 망각하는 것은 비도덕적일 뿐 아니라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우리는 분단을 역사적 죄과의 산물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분단을 독일인의 ‘죄과’로 해석했다. 거부할 수 없는 역사의 흐름으로 여겨지던 ‘통일 기류’에 정면으로 맞선 것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귄터 그라스도 1990년 한 연설에서 “독일의 현재를 숙고하거나, ‘독일의 정체성’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하는 이는, ‘아우슈비츠’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며 반통일 운동 대열에 합류했다. 이렇게 당대를 대표하는 정치인, 지식인들이 앞장서 통일을 반대할 만큼, 나치의 전쟁 범죄에 대한 ‘죄의식’은 독일인의 머리 속 깊이 새겨져 있었다.



아우슈비츠, 모든 과목 언급

전후 1세대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죄의식’의 뿌리는 그들의 학창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소년기 이들이 학교에서 배운 ‘나치의 만행’은 말을 잊게 하는 충격 그 자체였고, 이는 다시 학교에서 가정으로 논쟁의 장소를 옮겨 이어졌다. 그들의 부모세대는 어떠한 형태로든 나치정권과 관계를 맺은 세대였다. 청년당원으로, 군인으로, 또는 방관자로 어두운 과거를 가슴속에 묻고 살아가는 부모세대에게는, 자신들의 과거를 화두로 삼는 것이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전후 1세대는 마치 부모가 지하실 창고에 ‘시체’라도 숨겨둔 것처럼, 범죄 사실을 추궁하며 달려들었다.

이런 가운데 가능하면 침묵하고자 했던 부모와, 부모의 고백을 듣고자 했던 자식 간에 ‘죄의식’이라는 공통분모가 자라났다. 양 세대에게 과거사에 대한 기억은 바로 죄에 대한 고백을 의미했다. 이러한 전쟁세대와 전후 1세대간의 갈등은 이후 ‘1968 사회운동’의 한 배경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독일의 과거사 교육을 이해하는 두 개의 열쇠 중 하나가 앞서 설명한 ‘죄의식’의 대물림(유산)이라면, 1969년 발간된 독일계 유대인 사회학자인 아도르노의 저서 ‘아우슈비츠 이후의 교육’에서 그 두 번째 열쇠를 찾을 수 있다. 그는 “모든 정치·역사 교육은 ‘아우슈비츠’가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이는, 범죄 사실에 직면하는 데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이 테마에 집중할 때에만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1978년 서독 교육부는 이 주장을 학교교육의 ‘규범적 요청’으로 채택한다. 이후 이 ‘재발 방지’라는 ‘규범적 요청’은, 단지 역사 교과서에 국한하지 않고 윤리, 사회, 종교, 독일어(국어), 영어 교과서 등 사실상 인문·사회교육 전반에 적용되고 있다.

1996년에 발간된 독일 함부르크 주정부 교육청의 ‘교육지침’을 살펴보자. 초등학교 6학년 ‘종교’ 교과서는 기독교 생성 문제와 관련하여 ‘역사적 예수’라는 장에서 유대인의 역사를 처음으로 소개한다. 유대인이 유럽 땅에 정착하는 역사적 과정과 그들에 대한 인종차별 역사를 다루고 있다. 고등학교 1학년까지 이어지는 ‘종교’수업에서는, ‘신나치(극우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등 시의적절하고 폭넓은 주제를 포괄하고 있다.

‘종교’수업을 대치하여 선택할 수 있는 ‘윤리’과목의 교과서에서는, 유대인의 역사를 소개할 뿐만 아니라, 나치 시대 ‘개인의 선택’과 이 선택이 가져온 참혹한 사회적 결과를 학생이 되돌아보게끔 한다. 전쟁 범죄에 참여했던 사람을 적극적인 범죄자와 소극적인 방관자로 나누고, 방관자도 나치 범죄의 동조자나 협력자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특히 이들 동조자 중에 오스카 쉰들러와 같이 결국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유대인을 도와주는 사람으로 변모했던 이들의 심리를 분석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돋보이는 부분이다.

중학교 1학년 독일어(국어) 교과서에는 세계적 명작 ‘안네 프랑크의 일기’가 등장한다. 이어 2학년과 3학년 교과서는, ‘나는 노란 별을 달았네’, ‘당시에는 평화로웠습니다’ 같은 청소년 시각에서 당시의 참혹한 나날을 묘사한 글을 싣고 있다. 스필버그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직접적 소재로 다루고 있는 중학교 3학년 영어 교과서에서도 독일인들의 과거사에 대한 식지 않는 반성의 태도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역사 교과서를 살펴보자. 먼저 독일에서 역사 교과서는 일차로 주정부 교육청이 선택하는데, 민간 출판사에서 발행한 교과서 중 7~8종을 결정한다. 이 테두리 안에서 각 학교가 최종 선택권을 행사한다. 중학교 3학년 역사 교과서부터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의미하는 ‘홀로코스트(Holocaust)’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홀로코스트 교육’으로 표현되는 역사 교과과정은 크게 기초단계와 심화단계로 나뉜다.

고등학교 1학년까지의 기초단계에서는 ‘독일 내 유대인의 역사’라는 소제목 아래 다음의 내용이 담겨 있다. ▲ 중세 시대, 유대인의 유랑과 억압, ▲ 근세 시대, 계몽과 해방, ▲ 독일 제국에서의 유대인, ▲ 바이마르 공화국에서의 유대인 등이다. 기초단계에서는 나치 집권 이전의 과거사 중심으로 ‘사실 전달’에 집중하고 있다.

심화단계에서는 ‘민족주의와 2차 세계 대전’이라는 소제목 아래 다음의 테마를 의무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 유대인 차별과 유대인 강제 이주 정책 ▲ 인종주의와 인종주의 법령과 제도들 ▲ 강제수용소와 인종청소의 체계 ▲ 죽음의 공장, 아우슈비츠 ▲ 전통적인 반(反)유대인주의와 홀로코스트: 범인들의 동기와 자기변명들 ▲ 관계 개선의 어려움과 유대인에 대한 추모 등이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두 개의 선택 주제가 제시된다. 하나는 나치의 정치 선동과 관련한 ‘선동과 현실’이라는 주제이고, 나머지 하나는 ‘신나치주의와 현재’다. 이중 하나를 학생 스스로 선택하여 사고하게 해서 역사와 현재를 접목하고 있다. 심화단계에서는 단순한 ‘사실 전달’에 집중했던 이전 과정과 달리, 다양한 시각을 비판적으로 읽는 능력과 토론 능력을 습득하는 것이 학습목표로 설정되어 있다.

1996년 이후 발행된 독일 및 폴란드의 역사 교과서에는, 히틀러 나치 정권의 피의 학살정책에 저항했던 ‘유대인 투쟁사’가 등장한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에 ‘항일투쟁사’가 실린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일 것이다. 이는 1970년대 이후 계속 추진된 폴란드, 이스라엘, 독일 역사학자 및 역사교과서 저자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공동 작업한 결과다. 나치 정권의 전쟁 범죄가 중심적으로 서술되던 지금까지의 교과서에서는 유대인은 피해자로서 무력하고 수동적인 모습으로 그려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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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수 < 베를린자유대 박사과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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