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니나 다를까. 개봉 20일 만에 940만 관객을 돌파하며 무서운 기세로 인기몰이 중인 ‘도둑들’에서 전지현은 최대 수혜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존재감이 그만큼 돋보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전문 분야가 다른 10명의 도둑이 뭉쳐 마카오에 숨겨진 300억 원짜리 다이아몬드를 훔치는 과정을 그린다. 전지현은 이들 중 유일하게 사랑이나 인정에 얽매이지 않는 줄타기 전문 도둑 ‘예니콜’ 역을 맡았다. 예니콜은 “어마어마한 쌍년” “이렇게 태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키스하려면) 입술에 힘 좀 빼” 같은 발칙한 언사로 폭소를 자아내는가 하면 농염한 몸짓과 아슬아슬한 줄타기로 관객을 숨죽이게 한다.
7월 20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스위트룸에서 그를 만났을 때 기자를 놀라게 한 건 ‘자연미인’으로 정평이 난 그의 미모가 아니다. 신비주의라는 소문과 달리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가감 없이 풀어내는 언변과 예니콜을 빼닮은 담백한 성격이다.
“발랑 까지진 않았죠?”
▼ 이번에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아요.
“최동훈 감독님이 예리하세요. 예니콜 역으로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내가 잘할 수 있는 부분을 모아놓은 것 같아서 놀랐어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던 부분까지 파악하고 있었거든요.”
▼ 극중 캐릭터가 실제 성격과 닮았나요?
“제가 발라당 까지진 않았죠. 기본적으로…(웃음).”
▼ 거침없는 면은 비슷하지 않나요?
“성격상 그런 면이 좀 있어요. 무모하게 도전하거나 무모한 일을 벌이지는 않지만 생각보다 행동이 앞설 때가 많거든요. 생각할 때 이미 몸이 그걸 표현하고 있어요. 좀 피곤하죠. 어떤 일을 결정할 때도 심사숙고하는 편이 아니에요. 그런 점이 비슷하다고 할까. 무엇보다 예니콜을 연기할 때 굉장히 속 시원했어요. 평소에는 배우로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데 예니콜은 ‘나 아니면 다 쓸모없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내키는 대로 속 시원하게 말하고 행동하잖아요. 철저히 개인주의고, 인생에 아쉬울 것도 없고. 그런 게 대리만족이 되더라고요. 마카오 박(김윤식 분)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든 궁금한 게 있으면 다 물어보고, 자기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슬쩍 찔러보고, 그런 것들이 재미있더라고요.”
▼ 최동훈 감독의 부인(안수현 케이퍼필름 대표)과 친분이 있다면서요?
“네. 잘 알죠. 2003년에 ‘4인용 식탁’이라는 영화를 같이 작업했어요. 당시 (안수현) 언니는 제작프로듀서였어요. 그 영화가 인연이 돼 영화계 선후배로 친하게 지내다가 언니가 감독님과 결혼하면서 저도 자연스레 감독님에게 호감을 갖게 됐어요. 한국 영화계를 이끄는 흥행감독 중 한 명이고 최고의 이야기꾼이잖아요. 당연히 배우로서 같이 작업하고 싶었죠. 그러던 중 감독님이 ‘도둑들’이라는 영화를 기획하고 있다는 것을 언니를 통해 알게 됐고, 제가 영화에 관심을 보이면서 서로 같이 작업하자는 무언의 사인이 오갔었죠.”
▼ 그럼 예니콜은 애초부터 본인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개릭터인가요?
“감독님께 여쭤봐야죠. 영화에서 마카오 박(김윤석 분)이 예니콜을 보면서 ‘여자가 치마는 짧고 머리는 길어야지’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감독님이 시나리오 작업할 때 그 부분에서 ‘이거 전지현이 안 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을 하셨대요. 대사마다 감독님의 기발한 발상과 재치가 담겨 있죠. 정말 대단한 분이세요.”
스타파(派)의 선두주자
배우들의 대사 중 일부는 최 감독의 실제 경험담이다. 극중 잠파노(김수현 분)가 예니콜에게 기습적으로 키스할 때 예니콜이 담담한 어조로 내뱉는 “입술에 힘 좀 빼”라는 대사는 최 감독이 연애 시절 아내에게 들었던 말이라고 한다.
▼ 이번 영화에서 데뷔 15년 만에 첫 키스신을 찍은 거라면서요?
“하하. 그래요? 미처 의식하지 못했어요. 아무래도 여성 캐릭터 위주의 영화나 판타지 요소가 들어간 영화에는 스킨십이나 키스가 어울리진 않죠. 그런 영화를 주로 하다 보니 공교롭게도 키스신을 이제야 찍었네요.”
▼ 상대가 연하의 꽃미남 김수현 씨였는데 기분이 어땠나요?
“그 친구가 ‘해를 품은 달’을 하기 전에 이번 영화를 찍었는데 당시에도 인기가 있었어요. 하지만 키스신이라고 해서 특별한 감정이 들진 않았어요. 다만 그 친구는 이미 한두 번의 전적이 있었으니 제가 밑진 셈이죠(웃음). 사실 기억에 남는 건 따로 있어요. 재미있는 대사들이 자주 생각나요. 웃긴 대사가 참 많거든요. 그 맛을 살리고 싶었어요. 너무 엉뚱하고 재미있어서 딱 봐도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았어요. 육두문자가 섞인 대사나 태연하게 잘난 척할 때가 재미있었어요. 대신 비어, 속어가 많으니까 가벼워 보이지 않으려고 고민 좀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