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한나라당 부총재는 최근 차기 대선 구도와 관련해서 주목을 받고 있다. 박 부총재가 여야 정치권으로 관심을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정희 전대통령의 맏딸이라는 후광을 벗어나 독자적인 정치인으로 홀로서기를 할 수 있을까. 박 부총재를 만나 대권도전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현재 재선 의원(대구 달성)인 박근혜 부총재가 이처럼 주목받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언론에서는 박 부총재를 이미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한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 정치 지형이 이념이나 노선보다는 지역정서에 의해 좌우되는 상황에서 박 부총재는 유권자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영남권의 유력한 후보가 될 수 있다는 것. 따라서 여야 정치권에서는 박 부총재의 정치적 행보에 대해 관심이 많다.
이번 인터뷰에서 박 부총재는 개헌문제와 관련, 4년 중임 정부통령제보다는 4년 중임 대통령제를 선호하고 있음을 분명히 밝혔다. 정부통령제는 정계개편과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개헌 의도에 대해 의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박 부총재는 대통령이나 부통령 출마 여부에 대해서는 속내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국민이 지지한다면’ ‘큰 뜻’을 펼칠 의지가 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을 한 다음날인 1월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내 사무실에서 박근혜 의원을 만났다. 파스텔톤의 짙은 초록색 상의와 긴 치마를 입은 박의원은 다소곳한 자세로 소파에 앉았다. 인터뷰의 첫 화제는 김대중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이었다.
“국민은 없고 당리만 있어”
―김대중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하는 것 보셨죠?
“예. 다 봤습니다. 참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당의 ‘의원 꿔주기’와 구 여당의 안기부 예산 불법 전용 의혹사건, 영수회담의 결렬 등으로 여야가 극렬한 원색 용어로 상대편을 공격하는 아수라장에서 야당의 부총재가 ‘아쉽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이색적으로 들렸다. 아쉽다라는 표현에는 뭔가 기대를 했는데 실망했다는 안타까움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 김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을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했다는 박의원은 그 실망의 이유를 하나씩 열거하기 시작했다.
“집권당이 일을 하다 보면 시행착오나 잘못이 있을 수 있거든요. 그건 국민들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솔직하게 인정하고 계획을 바꿔서 잘해 나가겠다고 하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위기를 야당과 언론의 잘못 때문이라는 식으로 많이 말씀하셨는데, 그런 것은 곤란하지 않나 싶어요.”
―강한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작심하고 한 기자회견인데 잘못했다는 말이 쉽게 나오겠습니까.
“경제 문제도 4대 개혁만 잘 되면 다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4대 개혁 그 자체가 문제가 되고 있거든요. 금융 부문에 그렇게 엄청난 공적 자금을 넣었는데도 금융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흑자 도산을 하는 일이 벌어지고, 공공부문도 낙하산식으로 비전문가들을 인사하는 바람에 도덕적 해이 문제가 생기지 않아요? 경제 개혁이 잘되려면 노사 문화가 정착되어야 하는데 정작 중요한 노사 부문의 개혁은 손도 못 대고 있거든요. 그리고 국민들이 체감하는 경기가 이렇게 나쁜데, 언론이 보도를 잘못해서 그렇다고 하면 오히려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믿음을 갖기 보다는 대통령의 인식이 정확하지 않다는 의혹을 일으키게 되거든요.
또 대북문제도 끌려다닌 적이 없다고 하지만 많은 국민들이 그동안 저자세로 일관했다고 느끼고 있다면 이렇게 엄청난 시각 차이에 대해서 좀 생각해봐야 되는 것 아니에요? 국정의 총책임자는 대통령이거든요.”
박의원은 ‘야당대변인’을 맡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조근조근 말했다.
―최근 여야 정치인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높습니다. ‘의원 꿔주기’를 하지 않나, 국고 예산을 ‘불법 전용’했다는 의혹을 받지 않나 등의 문제로 정국이 시끄러운데요. 15대와 16대에 양대 국회를 거치면서 정치인에 대한 생각은 어떻게 변했습니까.
“정치라는 게 그럴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막상 들어와서 더 느끼게 됐어요. 정치의 근본적인 목적이 국민을 위한 것이거든요. 편안하게 더 잘살게 하는 것이 최고의 목적인데 정당 정치의 중심에 국민은 빠지고 당리가 중심이 되다 보니까 자꾸 당리당략으로 흘러서 신뢰까지 잃고 불신을 받게 됐다고 봅니다. 정당 정치가 제대로 되려면 정책 정당으로 거듭나야 된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국민을 중심에 둬야 정책 대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4년 중임제로 개헌해야
―당리당략 정도면 괜찮은데 1인 중심의 보스 정치에 명색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이 줄 서는 풍경 아닙니까.
“우리나라 정치는 태생적으로 잘 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정치에 들어오는 첫 관문이 공천이거든요. 그런데 이게 투명하지가 않아요. 밀실 공천이란 얘기가 많잖아요. 공천 때부터 그런 식으로 되기 때문에 당에 들어와서도 국민을 중심에 놓기 보다는 보스를 중심에 놓게 되죠. 이처럼 사당화가 되다 보니까 당리당략으로 가게 되고요.”
―3김 정치의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알고 3김 정치 척결을 외쳤던 이회창 총재에 대해서도 한나라당 내부에서 비판하는 소리가 있는데 박의원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당화의 정치 행태에서 벗어난 정당이 없죠. 저는 그 문제에 대해서 부총재로서 얘기를 많이 했어요 회의 때도 하고… . 물론 정당에는 당직자들이 있죠. 그러나 당직자들만의 정당이 아니거든요. 그 밑에는 많은 당원들이 있고, 더 중요한 것은 당원들 바깥에 이 당을 지지하는 국민들이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사당이 아니라 공당이라고 부르잖아요. 공당이기 때문에 그런 의견들을 다 수용해서 이끌어나가야 될 의무가 있거든요. 그런데 몇 사람이 주물럭 주물럭해서 정당을 이끌어가면 안되죠. 그래서 민주적인 정당으로 의견수렴을 해서 나가야 된다는 얘기를 부총재로서 많이 해왔는데 지금 그걸 고쳐나가는 중이라고 봅니다.”
―현재의 헌법이나 정당 구도가 국민들의 욕구를 반영하기에는 상당히 문제점이 많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개헌이나 정계개편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이와 관련해서 박의원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
“4년 중임 개헌 문제가 이슈가 되다 보니까 제 얘기가 자꾸만 언론에 실리는데, 몇 달 전에도 그런 질문이 있었어요. 그때도 저는 4년 중임제 얘기를 했거든요. 우리가 단임제를 몇차례 해봤지만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나지 않았어요? 단임제는 한번에 끝나니까 책임 정치가 안되고, 몇 년 후에 레임덕이 오니까 속수무책이거든요. 대통령이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계획을 세워야 되는데 그건 불가능하거든요. 그렇게 해서 나라의 경쟁력이 자꾸 떨어진다고 하면 그 손해는 결국 국민들이 입게 되는 거니까 그런 차원에서 개헌을 하자는 거지요.”
―그러나 정가에서 개헌은 정계개편을 위한 음모라는 시각도 있잖아요. 이회창 총재부터 개헌을 반대하는 입장이고… .
“이런 문제가 나오면 꼭 정계개편이라는 이야기가 끼어 들어와서 개헌논의와 맞물려서 돌아가는 바람에 순수성이 흐려지죠. 그러니까 정치권에서 발목을 잡는 거예요. 지금 단임제의 문제점을 알고 있으면서 5년을 또 그런 식으로 보낸다는 건 시간이 너무 아깝거든요. 정계개편 문제가 나오는 것은 4년 중임제보다는 정부통령제 때문에 나오는 것 같아요. 그러면 이번에는 4년 중임제만 하고 정부통령제는 안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4년 중임제만 하면 야당이 여당 갈 이유도 없거든요.”
―박의원은 앞으로 더 ‘큰 뜻’을 품고 있을지 모르지만 만약 4년 중임 정부통령제로 헌법이 개정되고 차기 대권 후보로부터 런닝메이트가 되어줄 것을 요청받는다면 응할 생각이 있습니까.
“어디서요?”
박의원의 이 반문이 흥미로웠다. 한나라당 부총재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그는 ‘어디서요’라고 반문을 던졌다.
―야당은 당연하지만 여당에서도 박의원을 꼽는 의원들이 있습니다만… .
“우선 당이 다르면 안되죠. 제가 한나라당 소속이고, 탈당한다는 얘기도 안했는데… . 지금 런닝메이트 얘기도 정부통령제로 개헌된다는 전제인데, 저는 4년 중임제만 해서 권력구조를 국민들에게 좋게 바꾸자고 얘기하는 거죠.”
―개헌과 별도로 현재 정당 구도가 지역 분할구도라는 것은 모두다 아는 사실 아닙니까. 정계도 정책이나 노선에 맞게 개편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글쎄요… 다음 지도자는 어느 한 지역의 지도자다 이렇게 되면 곤란하겠죠. 그래도 여러 지역으로부터 골고루 지지를 받고 있는 지도자를 만들어내는 게 우리 시대의 의무죠. 제가 어떤 해법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나라당도 그런 얘기는 하고 있잖아요, 거국내각 얘기를 여당에서 하면, 대통령이 당적을 떠나서 초연하게 한다면 참여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여야 영수가 감정대립을 한다는 것은 국민이 보기에 얼마나 불안해요. 이렇게 돼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정권을 다시 찾자, 재집권한다, 이런 목표로 여야가 싸워서 이기는 건 정치가 아니거든요. 국민의 마음을 먼저 얻어야지, 여야 지도자가 감정대립까지 하는 상황이 지속된다고 하면 국민 마음은 떠나는 거죠. 그리고 어쨌든 난국을 푸는 열쇠는 여당이 갖고 있지 않겠어요.”
―여야 영수회담에서 풀어줘야 되는데, 김대통령의 자세가 변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고 이회창 총재가 대법관 출신이어서 그런지 정치적 화법이 서툴러 대통령의 심기를 상당히 불편하게 했다는 지적도 있는데… .
“제가 보기에는 이총재가 한나라당내의 다양한 목소리를 잘 이끌어 오셨는데, 때때로 대여 관계에 있어서 너무 강하게 나가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김대통령과 이총재한테 각각 난국을 풀 수 있는 해법을 주문한다면… .
“집안에서 부모님이 감정대립으로 싸우면 어린이들이 불안해서 어디다 마음을 붙여야 될지 모르죠. 더군다나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데 여야 지도자가 감정대립을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대화로써 풀고 국민이 불안하지 않게 해야 되지 않겠어요”
박의원의 눈에는 똑똑한 ‘노인’의 고집과 꼿꼿한 ‘대법관’의 감정대립이 훤히 보이는 모양이었다.
―대권 출마를 주변에서 요청한다면 박의원은 받아들이겠습니까?
“언론에서 그런 질문을 많이 하는데 제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할 뿐입니다. 그런 판단은 국민이 하는 것이죠. 소위 권력이라는 것은 쟁취하는 거란 말도 있지만 저는 그게 21세기의 바람직한 지도자의 리더십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인위적으로 뺏는 것은 잘될 리가 없습니다. 국민이 편안하게 잘 살기 위해서 맡겨봐야 되겠다, 위임하고 싶다고 해서 창출되는 리더십이 바람직하지 않겠어요. 그러려면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야 되겠죠. 제가 그런 지지를 받는 건 아니니까 제 일을 열심히 할 뿐입니다.”
―일을 열심히 한다는 것은 어떤 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죠.
“우리나라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꿈을 이야기하자면 경제적으로 부국이 돼야 되겠죠. 어려운 현상을 타파하고 경제 부국이 돼서 국민 생활이 풍요로워지고, 남북 문제에 있어서는 평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풍요와 평화의 바탕 위에서야 문화대국이 될 수 있거든요.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하는데 우리에게는 5천년의 문화민족으로서 노하우가 얼마나 많아요. 그걸 개발해서 세계에 알려야죠. 이게 조국에 대한 저의 꿈입니다.”
박의원은 이미 우리나라에 대한 큰 청사진을 마련한 것처럼 보였다. 어떤 리더십으로 그 청사진을 실현해 나갈 것인가. 우회적인 질문을 던져보았다.
―지금 세계 각국을 보면 여성 정치인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데요, 인상적인 분이 있습니까?
“여성 정치인 중 가장 인상적인 분이라면 역시 영국의 대처 수상입니다. 정치인은 인기에 영합하거나 편하게 가고 싶은 유혹을 받기가 쉽거든요. 박수만 받고 싶겠지 비난 받고 싶겠어요. 그러나 정말 조국을 사랑한다면 당대의 비난을 감수하는 거예요. 당시에는 욕을 먹더라도 나중에 평가받겠다는 자세가 필요해요. 조국을 살리겠다는 애국심에서 자기를 희생하는 거죠. 그 당시 영국이 재정 적자, 실업, 인플레 등으로 구조적인 경제 문제가 심각했는데 대처 수상이 그때 욕을 많이 먹고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원칙을 세우고 지속적으로 밀고 나가서 경제병을 치유해서 오늘의 영국이 됐잖아요.”
―요즘 페미니즘 논의가 상당히 활발하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여성 정치인으로 활동하기에 불편한 점이 많을 텐데요.
“여성 정치인이나 지도자가 많이 나타나는 건 세계적인 추세거든요. 우리 나라도 제가 듣기로는 남녀공학에서 항상 남성만이 학생회장으로 뽑혔는데 최근에 여러 대학에서 여성 회장도 나왔잖아요. 여성들이 상생 화합에 더 강하거든요. 21세기의 리더십이 그런 쪽으로 많이 기대가 되기 때문에 제가 정치하면서 불편한 것은 못 느꼈습니다.”
―박의원은 어떤 정치인으로 인식되고 싶습니까?
“국민의 편에 서서 소신을 가지고, 국가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사심없이 일하는 정치인으로 인식되고 싶습니다. 제가 그렇게 노력하고 있어요. 그게 정치인으로서 마땅히 걸어야 될 정도라고 생각하거든요. 사심을 갖게 하면 정치를 하면 안되고 다른 일을 해야 돼요.”
―앞으로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신뢰를 얻으려면 어떤 자질을 갖춰야 되는지 나름대로 설정한 기준이 있습니까.
“우선 국가관이 확고해야죠. 국가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 이런 게 희미하면 곤란하죠. 믿을 수가 없으니까. 나라를 위해서 기꺼이 희생하고 봉사하겠다는 정신도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기준에서 보면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정치인들 중에 마음에 드는 정치인이 있습니까. 가령 여권에서는 이인제 김근태 민주당 최고위원이나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 등이 거론되잖아요.
“그분들에 대해서 지상을 통해서 보게 되는데, 제가 얘기한 것하고 부합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말할 수 없죠. 제가 다 보고 있지만 아직은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죠.”
사심없는 정치 배워
박근혜 부총재는 한나라당을 대표해 부시 미국 대통령 당선자 취임식에 참석한다. 하와이는 다녀온 적이 있지만 미국 본토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시 당선자가 앨 고어 후보와 힘겹게 겨루는 모습을 보고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해서 느낀 점이 있을텐데요.
“민주주의라고 하면 미국 영국을 떠올릴 정도로 대표적인 나라인데 그런 나라도 선거 과정에 그런 문제가 생길 수 있구나 하는 점을 새삼 느꼈어요. 그런데 문제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혼란으로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법에 의해서 질서를 찾아가는 것은 민주주의의 저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버지인 부시 전대통령에 이어서 이번에는 아들이 대통령이 되지 않았습니까. 우리 나라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상황이었겠죠.
“미국 대통령은 이제 40여대째 내려오니까 그런 일도 있을 수 있겠죠. 어쨌든 대를 이어서 미국과 같은 큰 나라를 이끌어가고 나라에 봉사할 수 있게 됐다는 건 부시 가문으로서는 큰 영광이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박의원은 돌아가신 어머님 대신 아버님을 도와드리면서 알게 모르게 정치 수업을 받았을텐데요.
“아버지가 정치하시는 걸 옆에서 직접 보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그 역할을 대신 하면서 그런 분위기에 익숙해졌어요. 아버지를 모시고 지방에도 다니고 손님도 만나고 그랬으니까 아버지 가까이에서 보면서 배운 게 많죠.”
―아버지의 어떤 점을 배운 겁니까.
“사심 없이 정치하셨다는 것,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절대 타협을 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어떤 일을 지시하시면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체크하고 끝까지 챙겨서 완성될 때까지 정확하게 하신다는 것이 좋은 교훈이 됐어요. 저는 정치에 사심이 끼어 들면 망한다고 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제가 그런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느낀 점이 있다는 거예요. 아버지는 그 시대에는 권력의 최정상에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 주위에 있다가, 돌아가신 후에는 돌아서서 매도를 하는 권력의 극과 극을 보면서 느낀 게 굉장히 많습니다. 권력의 속성이랄까, 권력이라는 게 과연 뭐냐, 이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정치를 하게 된 마당에 저로서는 그런 경험들이 큰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극과 극을 오가는 권력의 속성을 알았다면 정치에 대해 염증을 느낄 법도 한데….
“오히려 역설적으로 우리 나라 정치가 편안하게 잘 되고, 경제도 잘 풀리고 그랬으면 제가 정치를 택했을 것 같지가 않아요. 자유로운 일을 택해서 부담없이 살았을 것 같은데… . 조국이라는 게 뭔지… 자기 나라를 사랑할 수밖에 없잖아요. IMF사태를 맞고 나라가 망한다니까 그때는 그런 느낌이 아주 절박했어요. 이 나라가 다시 서야지 하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지금 일할 수 있는 나이에 뛰어들지 않고 미적 미적 편안하게 지내다가 나중에 늙어서 일도 못하게 되고 세상을 뜬다고 할 때 스스로 제 가슴을 치게 될 것만 같았어요. 그랬기 때문에 오히려 정치를 택했죠. 권력의 속성이랄까, 권력과 연관해서 일어나는 극과 극을 다 봤기 때문에 오히려 자리나 권력에 연연하는 건 별로 없어요. 더 바랄 것도 없어요. 다만 정치적 역량이 있어야 나라에 대해서 뭘 해볼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저는 정치를 완전히 수단으로 생각합니다.”
정치인이면 누구나 조국에 대한 사명감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내세우지만 박의원의 경우는 ‘강도’가 더욱 세어 보였다. 어려서부터 자란 환경이 아기자기한 사생활보다는 국민들을 상대로 하는 공적인 활동에 더 익숙한 것이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의 정치적 입문은 ‘권력 추구’가 아니라 ‘구국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발언에서 ‘종교적’ 분위기마저 얼핏 풍겼다. 정치 권력의 한 자락이라도 잡아보려고 온갖 권모술수를 부리는 정치꾼과는 구별되려는 ‘결벽성’도 엿보였다. 그러나 그의 정계 입문에는 다른 동기도 있지 않았을까.
―박의원이 정치에 입문하게 된 것은 한나라당의 필요성과 아버님의 명예를 회복해야 되겠다는 동기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 아닙니까.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한다는 차원 보다 IMF가 직접적인 동기가 됐어요. 아버지가 생전에 노심초사하시던 그 모습이 생각났어요. 예전에는 북한 보다도 우리가 못 살았잖아요. 최빈국 중에 하나였던 나라를 아버지와 새마을 지도자 등 국민 여러분들이 노력해서 일으켜 세웠는데 공든 탑이 무너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IMF사태 때는 거리를 돌아다니면서도 울컥하면서 눈물이 솟고 그랬어요. 아주 절박하게 받아들였거든요. 아버지가 사랑하셨던 조국이고, 그런 역사를 거쳐서 어렵게 일으켜 세운 나라인데 주저앉을 수 없다는 생각이 많았죠. 또 이왕 정치에 들어왔으니까 아버지가 못다 하신 일을 완성해서 세계 속에서 돋보이는 나라가 되도록 역할을 해야 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습니다.”
―IMF라는 어려운 계기를 통해서 국민들이 박전대통령에 대한 이미지가 부정 일변도에서 공과를 따져보자는 식으로 조금씩 변화되면서 ‘경제개발’에 대한 평가를 해줬기 때문에 박의원도 정계에 진출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럴지도 모르죠. 그러나 그런 움직임은 사회 분위기, 즉 역사의 산물이에요.”
박정희 전대통령에 대한 사회 분위기의 변화는 기념관 설립 문제에 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박 전대통령의 정적이었던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나서 기념관 건립을 국고로 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대한 반대여론도 만만찮지만 지난해 연말 기념관 건립에 관한 예산이 국회를 통과한 상태이다.
“혼자 사는 게 편해”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건립 문제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국회 예결위에서 이번에 100억 원이 통과됐기 때문에 작년 것과 합하면 200억 원입니다. 그리고 모금을 많이 해야 되는데 경제 사정도 어렵고 해서 늦추고 있는 것 같아요.”
―기념관 건립문제에 대해서는 TV토론도 있었습니다만, 아직까지는 박정희 정권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상당수 있고, 실제로 피해를 당했던 사람도 있는데 구태여 국고 지원을 받아야 할까요. 민간 차원에서 기념관 건립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모금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80년대에 민간인 차원에서 기념관을 건립해보려고 노력을 했고 준비도 했지만 안됐죠. 저는 정치적으로 이 기념관과 관련된 적은 없어요. 20주기를 계기로 해서 언론사 잡지사 할 것 없이 여론조사를 많이 했는데 아버지에 대한 좋은 평가가 확인이 됐잖아요.
기념관 건립은 김대중 대통령이 이런 민의를 보고받고 발의한 것으로 저는 알고 있어요. 각계에 원로나 대표되는 분들을 중심으로 해서 공식적인 기념사업회가 발족된 거죠. 제가 직접 나서는 것은 아니고 공식 기구에서 하는 것이고, 예산도 국회에 상정이 됐으니까 공식기구나 대통령이 발의해서 하는 걸 제가 끼어들어서 이래라 저래라 할 입장은 아니죠.”
―박의원과 같은 당 소속인 김홍신 의원도 국고 지원을 반대하는 편지를 박의원에게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
“정수장학회 주식을 팔아서 기념관을 건립하면 되지 않느냐는 얘기를 했는데 그건 모르고 하는 얘기예요. 왜냐하면 장학회 기금이 개인재산이 아니거든요. 교육부 소관이고 나라에서 그 재산을 관리해요. 그렇기 때문에 개인이 마음대로 팔아서 이렇게 쓰고 저렇게 쓰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 돈이죠. 그런데 그걸 개인 것으로 잘못 알고 얘기하는 거죠.”
―그러면 아버님께 개인적으로 물려받은 유산은… .
“신당동 집 뿐입니다.”
―정치권에 옛날 운동권 출신들이 많이 들어와 있잖습니까. 박정희 정권에 반대해서 투옥됐던 분들도 있는데 대화가 됩니까.
“그분들하고도 대화가 잘 돼요. 만나서 식사도 같이 하면서 얘기도 하고요. 그분들도 그때의 생각과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달리 생각하는 것도 있어요. 어차피 우리가 이 시대에 같이 정치권에 몸 담으면서 나라를 위해서 일해보자 하는데 과거의 자기 소신에 따라서 이런 저런 길을 걸었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분들은 기념관 짓는 것에 대해서 반대하죠?
“반대하는 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어요.”
인터뷰 내내 ‘조국에 대한 사랑과 사명감’을 너무나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박의원에게 사생활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은 것 같았지만 몇가지 사항을 물어보았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는 박의원이 상당히 소극적이고 사람을 경계했는데 국회의원이 되더니 굉장히 변했다는 얘기를 하는 의원도 있습니다. 많이 변했습니까.
“지금의 제가 본래 저의 모습이겠죠. 제가 조용히 살 때는 그랬어요.”
―한때는 피해의식도 있었을 터인데… .
“정신적으로 많은 고통을 당하니까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평범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랐긴 하지만 혼자서 산다는 것이 힘들지는 않습니까.
“결혼을 하겠다는 생각이 없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어요. 저는 대학에 들어가자 마자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아버지 옆에서 보좌해드린다고 정신 없이 보냈고, 돌아가신 후에는 기념사업을 하고 아버지의 의혹을 벗기는데 신경을 쏟다보니… . 그런 과정에서 습관은 ‘제2의 천성’이라고 했듯이 혼자 그렇게 지내다 보니까 그렇게 지내는 게 자연스럽고 편해요.”
―노래를 부른다든지 영화를 볼 정도의 여유는 갖고 삽니까.
“극장에 가본지는 오래되고요. 노래는 부를 때가 있어요. 명절 때 농촌에 내려가면 즐겁게 놀아요. 분위기가 이루어져서 노래하라고 하면 부르지요. 예를 들어서 ‘짚세기 신고 왔네’ 그런 노래도 부르고, 젊은이들이 있을 때는 ‘I’m still loving you’ 같은 팝송도 부릅니다.”
박근혜 의원이 ‘한결같이 사랑하는 조국’이 그녀에게 어떤 ‘사명’을 부여할 지는 좀더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