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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EA 핵사찰, 뜨거운 현안 될 것”

“IAEA 핵사찰, 뜨거운 현안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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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원하는 것은 엄격한 상호주의가 아니라 북한의 긍정적인 태도입니다. 검증은 부시 행정부와 클린턴 행정부 모두가 중시해온 것이었고요. 거듭 말하지만 우리는 김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지지하고 있으며, 북한과 언제 어디서든, 어떤 전제조건이나 확정된 의제 없이 대화를 시작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대화를 받아들이느냐는 여부는 결국 북한에 달려 있다는 겁니다.”
9·11 테러가 일어나기 얼마 전 주한미국대사관측은 담장 옆 가로수에 흉물스러운 모양의 시위방지 장비를 설치해 시민의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그만큼 미국 대사관은 평소에도 경비가 엄중한 편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런 평소보다도 경비가 훨씬 강화된 상태다. 출입구 주변에 소총을 어깨에 메고 서성이는 군인들 모습만으로 일반인은 주눅이 들기에 충분해 보인다.

테러 발생 시각에 한국 부임

이건 미국, 아니 세계를 강타한 9·11 테러 참사가 불러온 세계 공통의 현상 중 하나다. 토머스 C. 허바드(Thomas C. Hubbard) 신임 주한미국대사는 바로 그 9월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이 사상 초유의 비행기 테러를 당하던 바로 그 시각쯤에 인천공항에 내렸다. 아마도 태평양을 건너는 비행기 안에서 신임대사로서 이런저런 구상을 했을 그는 트랩을 내리면서 곧바로 21세기의 세계구도를 바꿀 수도 있는 빅뉴스와 맞닥뜨린 셈이다.

“제가 인천공항에 도착한 것은 한국시각으로 밤 10시였는데, 뉴욕과 워싱턴시각으로는 같은 날 아침 9시였습니다. 그러니까 테러가 자행되던 바로 그 시각에 비행기에서 내린 셈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소식을 접하고 나를 비롯해 모든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공항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차안에서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타깃이 됐다는 소식을 접했고 곧이어 펜타곤 건물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로서는 가장 먼저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게 한국에 거주하는 미국인들과 대사관 직원들의 안전문제였어요. 다행히 한국측에서 신속하게 대처를 해줘 숙소에 와보니 경찰이 이미 추가 배치돼 경비를 서고 있더군요.”

─가족들은요?



“그때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워싱턴에 있었습니다. 아내는 전화를 통해 충격에 싸인 워싱턴의 분위기와 연기에 휩싸인 국방부의 모습을 전해주었어요.”

새로운 잣대, 반테러

과거의 예로 볼 때 신임 주한미국대사가 서울에 부임해온 초기에 우리 언론과 갖는 인터뷰는 대체로 ‘백화점식’인 게 일반적이다. 정치 군사 대북문제 등 한미관계 전반에서 시작해 한미 통상마찰 등 경제문제, 한국민의 미국 비자신청 문제에서 반미감정, 한미행정협정(SOFA)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사항을 두루 짚는 방식이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엔 좀 다를 수밖에 없다. 미국의 테러사태 및 반(反) 테러전쟁의 여파가 앞으로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짧은 인터뷰 시간을 비교적 ‘사소한’ 질문들로 소비할 수는 없겠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로서는 이번 사태가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초미의 관심사 아닌가.

국제정치 차원에서 조금 과장해 말한다면, 9·11 테러참사 이후 세계는 더 이상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그 세계가 아니다. 탈냉전 이후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21세기의 밑그림을 그려가고 있던 미국은 테러리즘이라는 새로운 적과 맞닥뜨렸다. 하지만 그 적은 과거의 적과는 아주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고, 거기에 대응하는 전쟁의 모습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적의 실체가 분명하게 보이는 것도 아니고 명확하게 구분되는 전선(戰線)이 있는 것도 아니며 시간적 개념 또한 모호한 새로운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한마디로 21세기는 우리를 포함해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에게 불투명한 미래다.

─한 달을 넘긴 미국의 아프간 공습 및 테러전쟁이 장기전으로 갈 공산이 커 보입니다. 대사께서는 이번 테러사태 및 아프간에 대한 공습이 장기적으로 미국의 외교정책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십니까. 일각에선 미국이 이번 테러 참사를 계기로 전세계를 미국의 입장에 동조하는 그룹과 동조하지 않는 그룹으로 구별하고, 이는 세계질서의 재편을 부를 새로운 잣대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만….

“이제 전세계가 새로운 잣대를 갖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말씀처럼 세계가 테러리즘을 지원하거나 반대하는 국가들로 양분됐다는 점에서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으로 갈렸던 냉전시절과 비교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 상황을 냉전시절과 비교하는 것이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닙니다. 테러에 대항하고 있는 와중에도 우리는 테러와는 무관한 그외의 수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반도만 해도 남북관계, 인도주의적 사안을 비롯해 여러가지 문제가 있어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 반테러라는 새로운 잣대가 생겼고, 미국은 이에 따라 반테러 연대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는 점입니다.”

─마침 부시 대통령은 최근 “테러와의 전쟁은 단순한 지지가 아닌 책임과 행동이 필요하다”며 동맹국들이 행동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말이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지 부연해서 설명해 주시지요.

“부시 대통령의 말씀이 어떤 특정 국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 한국을 비롯해 여러 동맹국들이 보여준 지지의 종류에 대해 말씀한 것이겠지요. 한국의 경우 도덕적, 물질적 차원의 지지와 함께 인도주의적, 군사적 차원의 지지를 보내주었습니다. 항공기와 선박, 의료팀도 지원했지요. 우리는 한국측의 지원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상호주의’ 표현은 부적절”

─얼마 전 한 국내 언론에 따르면 미국측이 한국 정부에 전투병력 파병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비전투요원 파견 및 물적 지원에 그친다는 것인데, 사실 여부를 확인해 주시지요.

“미국이 한국측에 그런 요구를 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 한국군 대표들이 미국 호놀룰루에서 태평양사령부 대표들과 만나 앞으로 한국이 미국을 도울 수 있는 방법들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반면 일본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자위대법을 개정하고 아프간에 전함을 보내는 등 매우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일본의 움직임에 대해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변국에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요. 미국은 궁극적으로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군사적 역할을 확대하고 미 군사력의 보완적인 역할을 맡아주기를 바라고 있는 겁니까?

“우리는 일본이 앞으로 이 지역에서 더 큰 역할을 맡도록 한다는 계획은 갖고 있지 않아요. 일본은 자체적으로 자위대의 역할 확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것이고, 다른 모든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테러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일본이 미국을 돕는 데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은 자신의 책임감 있는 행동을 반영한 것이며, 이것이 이웃 국가들을 위협한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사실 허바드 대사는 한국인들에게는 비교적 낯익은 인물이다. 김영삼 정부 초기부터 국무부 동아태 담당 부차관보로서 한국에 자주 들락거렸고, 1994년 북한 핵문제가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로 치달을 당시에도 실무 책임자로서 막후에서 활동했었다.

하지만 그는 이번 인터뷰에서 한국 언론에 대해 아직 낯설어하는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 외교관답게 한치도 빈틈을 보이지 않는 ‘정답’ 외에는 대화가 곁가지로 새는 것을 극력 피하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신참자’로서의 조심성이었을까? 아무튼 인터뷰는 시종 ‘공식적인’ 수준을 넘지 못했다.

─한국 입장에서 보면 이번 테러사태 및 전쟁이 앞으로 한반도문제 및 북미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가 가장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른 한편 올 들어 아직까지도 북미관계는 좀체로 진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얼마 전 미국은 북한에 대해 중동의 테러집단에 관한 정보제공 등에서 협조해줄 것을 요청한 적이 있는데, 과연 미국은 북한이 거기에 진지하게 응해 오리라고 기대하고 있는 겁니까?

“우리는 모든 나라가 우리의 반테러 노력에 동참해 주기를 요구하고 있는데, 유독 북한에 대해서만 정보를 제공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북한이 중동의 테러관련 정보를 갖고 있고, 이를 우리와 공유한다면 크게 도움이 되겠지요. 한편으로 우리는 북한이 테러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을 환영하며, 테러방지를 위한 유엔협약에 가입할 의사를 표명한 것도 환영합니다. 이는 분명 긍정적인 조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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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홍 < 동아일보 논설위원 >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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