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변동은 S자를 그리며 폭발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정치인은 유권자 내부의 변화를 읽는 데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유권자들이 지역주의 투표를 계속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모든 정치인이 지역주의에 편승하는 상황에서 지역 이외의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적 결과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제도는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소선거구제에서는 민주당의 실정에 실망한 사람들이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한나라당을 지지할 수 있는 것이다.
2000년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한나라당에 던진 표는 이회창 총재나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와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 당시 변수는 DJ에 대한 평가였다. 다소 감정적인 면도 있었겠지만, DJ가 잘못하고 있다고 느낀 영남의 유권자들이 한나라당에 몰표를 던진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지역주의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했다. 이처럼 대안은 고려하지 않은 채 정치인은 지속적으로 지역주의를 이용해왔고, 이에 식상한 유권자는 기권을 택함으로써 우리 정치는 장기간 플레토 상태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왜 이 시점에서 갑자기 민주당이 국민참여경선제를 채택했고 이변이 나타나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살펴보자.
정치변동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변화를 갈망하는 유권자의 욕구가 있어야 하며, 이 욕구에 불을 댕기는 정치인이나 정당이 등장해야 한다. 유권자의 욕구는 최근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다. 다만 정치인들이 이를 제대로 읽지 못했을 뿐이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 유권자는 이부영씨를 비롯하여 당시 민주당으로 출마한 재야인사 12명을 당선시켜 제도권으로 진입시켜 주었다. 정주영씨가 이끄는 신생정당(국민당)이 창당하자마자 선전한 것에서도 새로운 정당에 대한 유권자의 바람을 읽을 수 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는 서울에서 처음으로 김영삼 대통령이 이끄는 여당(신한국당)이 승리를 이끌어 냈다. 많은 이들은 이것을 보고 수도권 유권자들이 보수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개혁의 상징이던 이회창씨와 박찬종씨를 앞세운 YS의 전략이 지지를 받은 탓이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는 총선연대가 주도한 낙천 낙선운동이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57.2%라는 최저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언론은 낙선운동이 정치불신을 부추겼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낙선대상 후보가 출마한 지역은 그렇지 않은 지역에 비해 투표율이 평균 2.5%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다시 말해 변화에 대한 유권자의 욕구는 민주화 이후 지속적으로 존재해왔다고 할 수 있다.
끝으로 주요 정당이 국민참여경선제를 도입한 것은 민주주의를 공고화하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작금의 변화는 아래로부터의 압력에 의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위에서 주도된 타협안이라는 데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아래로부터의 압력이 충분히 성숙하기 전에 제도가 도입되는 바람에 정당이 내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장치를 충분히 갖추지 못한 것이다. 총재직과 하향식 공천제도를 폐지한 것은 큰 소득이지만, 과거의 정당원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공천권을 주었기 때문에 더 큰 폐해와 시행착오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이제는 정당이 내적으로 근본적인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공무원과 교사를 비롯하여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정당활동에 참여하도록 허용함으로써 정당의 내적 성숙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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