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처리’ 먹사니즘, 경제에 도움 안 된다

[노정태의 뷰파인더] 여의도 대통령 이재명 먹사니즘이 공허한 까닭

  •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jeongtaeroh@ries.or.kr

    입력2025-03-06 17: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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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칭 ‘실용주의자’의 뜬금없는 ‘중도 보수’ 선언

    ● 자본주의는 악인 되지 않아야 이익되는 시스템

    ● 합리적‧안정적 민주 질서가 경제 발전의 토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월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월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미국발 관세 위기 타파를 위해서, 종전에 수차 말씀 드린대로, 국회 통상 지원 위원회 구성을 서두릅시다. 국민의힘이 우리가 하자면 일단 무조건 반대하고 보는 것 같은데, 이런 것 열심히 하면 국민들께서 지지하십니다. 누가 주장했냐가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2월 26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 대표가 한 말이다. 스스로를 ‘실용주의자’로, 더불어민주당을 ‘중도 보수 정당’으로 선언한 그가, 이제는 경제와 민생 문제에 집중하자며 국민의힘을 쏘아붙였다. 요컨대 ‘경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것이다.



    이재명의 경제 드라이브는 미국발 관세 위기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이 대표는 “상법 개정안 통과는 대한민국 주식 시장이 선진 자본시장으로 향하는 첫걸음”이라며, 회사의 이사가 충실 의무를 다해야 하는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것을 뼈대로 한 상법 개정안에 국민의힘이 협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생 챙기는 민주당?

    이 대표의 논리는 비슷한 방식으로 전개됐다. “집권 여당이 법사위 전체회의와 본회의에서 의결되기도 전에 이 상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부터 들고 나왔는데, 야당 발목만 잡아서야 되겠나”며 ‘민생 챙기는 민주당’ 대 ‘무조건 반대하는 국민의힘’ 구도를 제시했다. 중도층, 특히 주가의 행방에 민감한 개미 투자자들을 겨냥하고 있는 경제 드라이브라 볼 수 있다.

    이 대표의 경제 드라이브는 그 뿐만이 아니다. 국민연금 개혁안에서도 같은 대립 구도가 이어지고 있다. 보험료율(내는 돈)을 9%에서 13%로 올리는 데에는 여야가 합의하고 있지만, 소득 대체율(받는 돈)에서 의견이 갈린다. 민주당은 2024년 현재 40%인 소득 대체율을 44%로 끌어올리자는 입장인 반면, 국민의힘은 42%로 현상 유지하자는 입장이다. 이 대표가 워낙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으니 43%로도 합의가 가능하다는 여지를 열어두었다. 하지만 이 대표와 민주당은 가능한 빨리 국회 본회의에서 단독 처리한다는 입장이다.

    이렇다보니 ‘이재명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기본소득에 대해서도 과연 그가 그것을 포기했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탄핵 정국 이후 민주당과 이재명의 지지율이 정체돼 이념보다 경제를 앞세운 실용주의 포지션을 차지하려는 과정에서 ‘기본소득 포기론’이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국민의힘에 제시하고 있는 추경안에는 여러 이름과 명분을 둘러쓰고 있을 뿐 ‘25만원을 지역화폐로 제공한다’는 내용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전후 맥락을 따져보자. 이 대표는 실용주의의 깃발을 들고 경제 문제 해결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적어도 그런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그가 변화를 택한 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으니 당장 성공과 실패를 논하기에는 이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장 가시적인 호응이 없거나 부족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국민들은 이재명표 ‘경제 드라이브’에 그리 열렬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다. 왜일까.

    2월 20일 국회에서 국민연금 모수개혁(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개편) 방안이 논의됐지만 끝내 결론을 내지 못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국민연금공단 지역본부의 모습. [뉴스1]

    2월 20일 국회에서 국민연금 모수개혁(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개편) 방안이 논의됐지만 끝내 결론을 내지 못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국민연금공단 지역본부의 모습. [뉴스1]

    모든 학문 분야가 고도로 전문화된 오늘날, 정치학과 경제학은 별개의 분야로 인식된다. 하지만 공산주의 뿐 아니라 자본주의, 자유시장 경제체제 하에서도 정치와 경제는 완전히 동떨어진 분야라 말하기 어렵다. 서로 막대한 영향을 주고 받으며 공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갓 태동하던 무렵에는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정치와 경제는 별개의 분야가 아니었고, 따라서 정치학과 경제학도 별개의 학문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17세기와 18세기에 이르러 학자들은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이라는 이름 하에 다양한 연구를 해나갔다. 독일 태생의 미국 경제학자인 앨버트 허시먼은 그의 주저 중 하나인 ‘정념과 이해관계’에서 당시 지적 분위기를 이렇게 전달하고 있다.

    “경제성장과 정치의 연관성에 대한 이론은 경제 확장의 초창기, 특히 17세기와 18세기에 만개했다고 나는 추측하고 있다. 경제학과 정치학이라는 ‘분과 학문’이 아직 존재하지 않던 시기였기에 넘어야 할 학문 분과 간 경계도 없었다. 그 결과 철학자들과 정치경제학자들은 자유롭게 분과를 넘나들며 주저 없이 평화를 위한 상업의 확장이나 자유를 위한 산업의 발전이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는 결과에 대해 거리낌 없이 추측해볼 수 있었다.”

    인간은 ‘정념’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 길을 개척한 이들은 여럿이지만 오늘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고 후대에 큰 영향을 미친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몽테스키외의 논의를 살펴보도록 하자. 몽테스키외는 흔히 ‘법의 정신’을 통해 삼권분립을 주장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몽테스키외의 영향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초기 발전 단계에서 자본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제시되고 있던 대단히 중요한 담론의 이정표를 세우기도 했다.

    몽테스키외는 프랑스의 절대왕정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다. 그를 비롯한 계몽사상가들은 상인 계층이 부를 축적하고 힘을 쌓아나가는 것을 지지했다. 한 사람의 군주가 절대적 권력을 지니는 체제는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왕의 권력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선한 임금이 다스린다면 왕정은 바람직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하지만 자질이 부족하거나 악한 사람이 군주가 된다면 왕국은 비참을 면할 수 없다. 설령 임금이 착한 사람이라 해도 문제는 남는다. 아무리 선한 의지와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해도 그 또한 사람이다. 인간이기에 당연히 희로애락에 휘둘리며 애정, 혐오, 욕정의 노예가 되기도 한다. 요컨대 종잡을 수 없는 인간적 감정, ‘정념(passion)’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가령 인도하면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유적 중 하나인 타지마할을 생각해 보자. 무굴 제국의 황제 샤 자한은 세상을 떠난 아내 뭄타즈 마할을 추모하며 타지마할이라는 거대한 무덤이자 예술작품을 만들어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영부인 김정숙 여사를 비롯해 전 세계인이 어떻게든 한번쯤 찾아가고파하는 역사적이면서도 로맨틱한 세계의 불가사의다.

    문제는 타지마할의 건설이 단지 로맨틱한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뭄타즈 마할이 죽기 전까지 샤 자한은 그야말로 성군이었다. 무굴 제국의 영토를 넓히고 나라를 안정시켰다. 하지만 역사 혹은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샤 자한은 아내가 죽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실성한 사람처럼 울부짖고 국정을 모두 내팽개친 채 타지마할의 건설에만 매진했다. 결국 그는 타지마할의 맞은편에 지으려던 자신의 무덤을 짓지 못한 채 아들에게 권력을 빼앗기고 유폐당한 후 쓸쓸한 생을 마무리했다.

    바로 이것이 몽테스키외를 비롯한 정치경제학자들이 고민했던 문제 중 하나다. 군주가 절대적인 힘을 휘두르는 정치 구조 속에서 그 군주의 변덕스러운 정념을 어떻게 제어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을 좀 더 길게 풀어보자. 예측 가능한 삶 위에서 번영과 풍요를 꾀하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정치경제학자들은 상업의 힘에 주목했다. 앞서 말했듯 그들이 살던 17세기와 18세기는 국제 무역과 식민지 개척으로 인해 자본주의가 태동하던 무렵이었다. 몽테스키외는 종교적, 정치적 이유로 박해 당하던 유대인의 행보에 주목했다. 중세의 기독교 교회에서 금지하던 상업과 고리대금업에 종사하던 유대인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돈을 모을 뿐 아니라, 돈을 빼앗기지 않을 방법도 고안해낼 수밖에 없었다. 환어음을 발명해낸 것이다. ‘법의 정신’ 제4부, 제21편에 등장하는 설명은 다음과 같다.

    “각국에서 차례로 추방된 유대인은 자신의 동산을 지키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 방법으로 그들은 자신의 모습을 영원히 숨길 수 있었다. 그들을 쫓아내고자 하는 군주도 그들의 돈을 쫓아 낼 생각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환(換)어음을 발명했다. 그리고 이 방법에 의해 상업은 폭력을 모면하고 어디서나 유지될 수 있었다.”

    이렇게 모든 가치가 땅에서, 농업에서 나오던 시대와는 완전히 상황이 달라졌다. 변덕과 폭력으로도 빼앗을 수 없는 돈, 국경을 넘어 돌아다니는 초국적 자본이 탄생한 것이다. 그러자 정치권력도 변화한 현실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정념에 휘둘려 상업에 종사하는 자본가들을 무턱대고 탄압하거나 변덕을 부리는 것은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군주들은 현명해졌다. 혹은 현명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 군주들은 그들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현명하게 통치해야 했다. 권위를 휘두르는 것이 몹시 분별없는 짓이라는 것이 사건을 통해 드러났고, 번영을 가져다주는 것은 올바른 통치밖에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변화를 쭉 설명한 후,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 제4부 제21편을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마무리 짓고 있다. 자본주의로 인한 경제의 발전이 정치의 긍정적 변화를 이끄는 모습을 단 한 줄에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정념(情念)은 악인이 되라고 부추기지만, 악인이 되지 않아야 이익이 되는 상황에 있다는 것은 인간에게는 다행한 일이다.”

    정치 안정과 경제 발전의 상관관계

    물론 자본주의 발전이 반드시 인간의 정념을 억누르고 더 이성적인 방향으로 사회를 이끈다고만 이야기할 수는 없다. 몽테스키외의 바로 다음 세대라 할 수 있는 애덤 스미스만 해도 그렇다. ‘국부론’을 통해 자본주의 원리를 설파했지만, 그 자본주의 세계를 살고 있는 것은 여전히 사람이며, 그 사람들은 다양한 정념에 이끌린다는 점을 잊지 않았기에 ‘도덕감정론’을 썼던 것이다. 20세기 가장 대표적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한 걸음 더 나가 자본주의란 이윤을 추구하는 ‘동물적 정신(animal spirit)’이 없으면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정념은 자본주의로 인해 억눌리게 되었을까, 아니면 자본주의 역시 어떠한 인간적이며 격렬한 정념의 산물인 것일까. 모 아니면 도 식으로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경제 발전과 정치 안정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경제 발전이 정치 안정을 이끄는지, 아니면 정치 안정이 경제 발전의 토대가 되는 것인지, 양자간의 인과 관계를 무 자르듯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실이 있다. 경제 발전과 정치 안정은 손에 손을 잡고 함께 간다는 것이다. 좋은 정치가 반드시 좋은 경제적 결과로 이어진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쁜 정치는 반드시 나쁜 경제를 낳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차베스 정권이 등장한 후 10여년만에 라틴아메리카의 부국에서 빈곤국으로 전락한 베네수엘라 뿐 아니라, 그와 유사한 사례를 우리는 역사 속에서 숱하게 발견할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 보자. 이재명 대표의 ‘경제 드라이브’는 왜 기대만큼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을까. 이 대표가 경제 성장을 앞세우고 있는 것은 맞지만, 경제 성장의 토대가 될 정치적 안정을 제공할 의사가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은 아닐까.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월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먹사니즘 전국 네트워크 발대식에서 참석자들과 손피켓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월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먹사니즘 전국 네트워크 발대식에서 참석자들과 손피켓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이 글을 시작하며 거론했던 ‘경제 드라이브’의 요소들을 떠올려 보면 분명 그렇다. 미국발 관세 위기, 상법 개정안, 국민연금 개혁안, 25만 원을 국민들에게 나눠주기 등은 최근 2~3주 사이에 이 대표가 쏟아낸 경제 관련 안건들 중 일부다. 이 각각은 경제 문제, 돈 문제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하지만 공통점은 딱 거기까지다.

    이 대표가 띄우고 있는 경제 안건에는 일관성이 없다. 미국발 관세 위기에 대응하려면 국내 제조업체에 보조금을 지급해 관세 폭탄의 빌미를 주지 말아야 하지만 이 대표는 정반대의 해법을 내놓고 있다. 친기업적 입장을 취하겠다며 '우향우' 논란을 불러일으키다가, 9개 경제 단체가 반대하는 상법 개정안을 밀어붙이는 것 또한 느닷없다. 국민연금 고갈을 늦추기 위해 소득 대체율을 낮춰도 모자랄 판에 높이겠다는 국민연금 개혁안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현금 살포 정책은 결국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타협은 인류가 도달한 최선의 시스템

    더 큰 문제가 있다. 이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이 이 모든 안건을 ‘단독 처리’하려 들고 있다는 것이다. 정당 간의 토론과 합의, 타협은 안정적 정치를 위해 인류가 도달한 최선의 시스템이다. 민주당은 그것을 무시하며 모든 것을 ‘단독 처리’하려 든다. 몽테스키외가 ‘법의 정신’에서 비판하고 있는 정념에 휘둘리며 변덕스럽게 자신만의 탐욕을 추구하는 군주와 크게 다르지 않다.

    먹고 사는 문제 앞에서는 여야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여의도 대통령’이 과반 의석의 힘으로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휘두르려 드는 것은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민이 잘 먹고 잘 사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면 더 열린 태도로 이견을 드러내고 좁혀나가야 한다. 합리적이고 안정적인 민주 질서가 경제 발전의 토대인 것이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칩 워’ ‘인간의 본질’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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