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호

지금 국민의힘이 해야 할 일은 국민 ‘공감’

[신율의 정치격파] 극우, ‘정치 다양성’ 명목으로 포용해선 안된다

  •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2025-08-18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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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족주의 신봉 극우, ‘반공’이 중요한 가치 중 하나

    • 계엄 옹호 세력? 최소한 ‘극우적 사고’ 가진 이들

    • 정치는 국민 ‘계몽’시키는 존재 아냐

    • ‘부정선거’ 음모론 역시 극우 포퓰리즘 한 단면

    • ‘공감’ 능력 발휘 못하면 반드시 국민 심판 받아

    8월 8일 전한길 전 한국사 강사가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 참석해 ‘배신자’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8월 8일 전한길 전 한국사 강사가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 참석해 ‘배신자’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독일 여성 영화감독 레니 리펜슈탈은 본래 배우였으나 아돌프 히틀러의 눈에 띄어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녀는 다큐멘터리 영화 ‘의지의 승리(Triumph des Willens)’로 명성을 얻었다. 이 작품은 특정 이데올로기를 영화 기법으로 탁월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영화사적으로 중요한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동시에 나치즘을 영상으로 구현했다는 이유로 비난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었다. 파시즘의 하위 개념인 나치즘 특성을 영상으로 보여준 이 영화는 독일에서 비교적 최근까지 상영이 금지됐다. 

    이 영화를 언급하는 것은 최근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극우’라는 단어가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특정 인사들을 향해 극우라는 표현이 사용되기도 하고, 이에 반발하는 당내 구성원들도 존재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만약 국민의힘 내부에 극우적 성격을 지닌 인사가 있다면, 이를 ‘다양성’이라는 명목으로 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극우나 극좌 같은 극단적 정치세력을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과연 극우라고 불릴 만한 인사가 실제로 존재하는지부터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민족, 반공, 이상향, 음모론…극우 특징

    극우라는 개념은 이탈리아의 파시즘에서 기원한다. 파시즘은 이탈리아어 ‘파쇼(Fascio)’에서 파생했으며, 그 어원은 라틴어 ‘파스키스(fascis)’다. ‘파스키스’는 본래 ‘묶음’ ‘다발’, 혹은 ‘집단’을 의미함과 동시에 ‘힘’이나 ‘권력’을 표현하는 데도 사용됐다. 이를 통해 파시즘의 어원이 본질적으로 권력, 또는 힘이라는 개념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파시즘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파시즘, 독일의 나치즘, 일본의 군국주의 형태로 전개됐다. 파시즘을 논할 때 가장 주의할 점은 얼핏 보면 파시즘과 좌파 이데올로기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독일 나치당의 정식 명칭은 ‘민족사회주의 독일 노동당(Nationalsozialistische Deutsche Arbeiterpartei)’, 약칭 NSDAP이다. ‘민족’이라는 단어를 제외하면 ‘사회주의 독일 노동당’인데, 이렇게만 보면 확실한 좌파 정당으로 보인다. 그러나 ‘민족’이라는 단어가 포함됨으로써 극우 정당임을 분명히 알 수 있게 된다. 

    여기서 극우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민족’ 또는 ‘민족주의’임을 확인할 수 있다. 독일 나치즘의 민족주의는 유대인 학살이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사건으로 이어졌고, 이탈리아 파시즘은 로마제국의 위대함을 강조했다. 일본의 군국주의는 일본 민족주의를 넘어 인종주의 영역까지 확장해 제국주의적 행위를 정당화했다. 일본 군국주의의 민족주의 성향은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에서 극명하게 드러났고, 인종주의는 이른바 ‘대동아공영권’과 같은 주장에서 확인된다. 



    이러한 특징에서 두 번째 핵심 특성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바로 ‘반공주의’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는 민족 개념을 부정하기 때문에 민족주의를 신봉하는 극우는 ‘반공’을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로 내세운다. 더 나아가 극우 세력은 사회주의자들이 국가를 전복하려 한다고 주장하며 이들을 탄압한다. 자신들이 수호해야 할 가치를 ‘민족의 우수성’에 기반한 ‘민족의 자유’라고 역설하면서도 실제로는 권위주의 체제를 구축한다. 이는 자유를 가장한 독재의 추구로 요약될 수 있다. 

    세 번째 중요한 특징은 극우 이념이 ‘이상향’을 과거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가장 이상적인 국가나 사회 형태를 아득한 과거에서 탐색하며, 현재 사회 문제의 해결책도 과거에서 찾으려 한다. 독일 나치당은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강조하며 그들의 영광을 재현하겠다고 주장했고, 이탈리아 파시즘의 목표는 ‘로마제국의 영광 재현’이었다. 일본 군국주의의 경우, 우리나라를 강제 합병하면서 ‘내선일체’를 내세웠는데, 이는 날조된 역사인 임나일본부설에 근거를 둔 주장이었다. 이는 현실의 갈등을 역사로부터 해결하려 드는 극우의 전형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2024년 12월 3일 밤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회에 출동한 계엄군이 국회 본청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뉴스1

    2024년 12월 3일 밤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회에 출동한 계엄군이 국회 본청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뉴스1

    극우의 또 다른 특성은 그 지지기반에 있다. 바로 이 지지기반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은 좌파와 극우를 혼동하기도 한다. 극우는 좌파와 마찬가지로 대(大)자본에 반대한다. 또한 극우 역시 좌파처럼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을 중요한 지지기반으로 삼는다. 따라서 얼핏 보면 극우 집단이 좌파 집단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극우는 소(小)자본가(petit bourgeois) 또한 지지기반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좌파와 차이를 보인다. 

    극우의 또 다른 특징은 ‘음모론’에 입각한 선전·선동이다. 이는 포퓰리즘과 극우가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우리는 포퓰리즘을 돈을 살포하는 등의 선심성 정책 정도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포퓰리즘 특징의 극히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포퓰리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바로 ‘음모론’이다. 포퓰리즘은 일반적인 사회 위기와 갈등에서 비롯되는 불안을 인위적으로 증폭시킨다. 이러한 ‘불안 증폭’의 목적은 국민으로 하여금 권력자에게 의지하게 만드는 데 있다. 그러므로 포퓰리즘은 “불안을 통한 정치”라고 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이 바로 ‘음모론’이다. 그들은 국가와 사회에서 나타날 수 있는 모든 불안의 원인을 음모론적으로 해석한다. 합리적이라면 위기의 원인을 사회구조에서 찾아야 하지만,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력에 의해 불안이 증폭되는 것처럼 여기게 만든다. 

    여기서 포퓰리즘과 극우의 ‘조우(遭遇)’가 이뤄진다. 가장 대표 사례로 독일 나치가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부를 빼앗아 간다는 음모론을 유포하고, 이를 기반으로 독일인을 결집해 극악한 범죄를 자행했던 것을 들 수 있다.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 군국주의가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고 방화를 저지르며 폭동을 일으켰다는 음모론을 퍼뜨려 학살을 자행한 것 역시 그러한 사례다. 또한 고전적인 외교 이론처럼 음모론을 통한 외부 위기감 조성은 내부 모순을 덮어버리게 되기 때문에, 극우 권력자들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극우, 대의민주주의 적대시

    극우의 또 다른 특징은 대의민주주의를 적대시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의민주주의를 ‘엘리트들의 정치 질서’로 간주하며, 엘리트의 지배 수단으로 전락한 대의민주주의가 특정 집단의 이익만을 추구할 뿐 전체 국민의 이익은 안중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을 통해 극우는 대의민주주의를 무력화한다. 대의민주주의를 무력화하기 위해 극우 권력 집단은 군, 경찰, 그리고 정보기관을 동원하기도 한다. 이 부분은 ‘파쇼’가 곧 ‘힘’과 ‘권력’을 의미한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런 과정을 통해 무력화된 대의민주주의 대신, 권력자 자신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거나 ‘유사 의회’를 만들어 민주주의를 가장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죽음에 대한 찬미’ 등을 극우의 중요한 특징으로 들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가미카제(神風)’가 가장 대표적 사례이며, 국민의 뇌리에 ‘죽음에 대한 찬미’를 심어주기 위해 나치는 주로 밤에 행사를 치렀다. 즉 밤이라는 어둠과 횃불의 조화를 통해 무의식중에 국민의 뇌리에 죽음에 대한 찬미를 심어주려 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어둠과 빛의 조화’는 국가권력이 국민을 압도하고 있음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게 만들어 국민을 순종적으로 만든다. 이는 앞서 언급된 레니 리펜슈탈의 ‘의지의 승리’라는 영화에서 잘 표현되고 있다.

    현재 존재하는 극우 정당에서 이러한 극우의 특징 전부를 발견할 수는 없다. 극우라는 이데올로기는 포퓰리즘과 마찬가지로 다른 이데올로기에 비해 매우 ‘원시적’인 이념이어서 형태가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안토니오 그람시의 대학 동창이던 안젤로 타스카는 “파시즘의 정의를 말하는 것은 파시즘의 역사를 쓰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만큼 파시즘의 형태는 다양하다는 것인데, 따라서 앞서 언급한 극우의 특징 중 일부만 나타나거나, 다수의 특성을 포함하더라도 이를 교묘히 포장하는 경우에는 극우 정당 혹은 극우 정치인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현재 존재하는 극우 정당들을 보더라도 그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독일의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Alternative fur Deutschland)’의 경우를 보더라도 과연 극우가 무엇인지 헷갈린다. 해당 정당은 러시아에 매우 우호적인데, 아직까지 사회주의적 잔재가 ‘풍부한’ 러시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사실은 ‘독일을 위한 대안’ 정당이 극우 정당인지 혼란스럽게 만드는 부분이다. 하지만 민족주의 성향과 외국인에 대한 배타성이 매우 강하다는 점에서 이들은 극우의 중요한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의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RN·Rassemblement National)’ 역시 외국인에 대해 매우 배타적 태도를 보인다. 이번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두드러진 약진을 보여준 참정당(参政党·산세이토)도 외국인, 특히 재일 중국인에 대해 매우 적대적이다. 

    이들 정당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공통점은 포퓰리즘적 특징이다. 각종 음모론을 활용하고 국민에게 ‘퍼주기’를 약속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대표적인 극우의 특징을 보면, 이 정당들이 극우 정당임을 알 수 있지만, 만일 다른 다양한 특성에 주목하면 이들 정당이 극우 정당인지를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다.

    국민의힘이 직면한 한계이자 딜레마

    이러한 특성을 중심으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고 있는 ‘극우 논란’을 평가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정당 모두에서 앞서 언급한 극우의 특성을 최소한 하나 이상은 발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대부분의 정당을 극우 정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서 극우 정당이 아닌 것은 아니다. 지금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그러한 계엄을 옹호하면서도 자유민주주의를 부르짖는 역설을 서슴지 않는 것은 확실한 극우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비상계엄이라는 것 자체가 군대가 동원될 수밖에 없으며, 이를 통해 권력을 장악하거나 이미 가지고 있는 권력을 연장 혹은 확대하려는 것이므로 앞서 언급된 ‘파쇼’의 어원과 아주 잘 부합한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비상계엄 당시 국회에 군을 동원한 사례는 대의민주주의를 무력화하기 위해 군을 동원한다는 극우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계엄을 옹호하는 세력이 있다면 그들을 극우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최소한 극우적 사고를 가진 이들이라고 결론 내릴 수는 있다. ‘부정선거 주장’ 또한 일종의 ‘음모론’이라고 할 때, 이를 주장하는 것 역시 극우 포퓰리즘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극우라는 단어에 특히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가 군사독재라는 이름의 극우 정권의 혹독함을 직접 경험한 데 있다. 특히 필자의 나이 또래 국민은 과거 전두환 정권 당시 대학가를 휩쓸었던 ‘파쇼 타도’라는 구호를 뇌리에 깊숙이 새기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극우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독재의 공포’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과거 군사독재 정권 또한 자유와 정의를 외쳤지만, 실제로는 ‘공포를 통한 통치’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극우라는 단어와는 완전히 결별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현재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드러나는 모습이 과연 우리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이것이 바로 국민의힘이 직면한 한계이자 딜레마다.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국민의힘 지지율의 지속적인 하락 또한 결국 ‘극우와의 완전 결별’이라는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아무도 죽지 않았기 때문에 계엄이 합리화되는 것도 아니며, 그것이 극우의 낙인을 뗄 수 있는 근거도 될 수 없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해야 할 점은 정치는 국민을 ‘계몽’시키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민도가 높은 국민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국민을 이끌려하기보다는, 국민이 왜 그들을 극우라고 생각하는지부터 면밀히 되짚어 봐야 한다. 현재 국민의힘 내부에도 위험을 감수하고 계엄 해제에 앞장섰던 한동훈 전 대표, 안철수 의원, 그리고 조경태 의원 같은 정치인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가 다른 목소리에 가려질 경우 국민의힘은 앞으로 그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지금 국민의힘이 해야 할 일은 국민과의 ‘공감’이다. 공감 능력이 사라진다면 반드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된다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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