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호

국익 수호의 최후 전사, 외교관 사용 설명서

[백승주 칼럼] 이스라엘 부대사 ‘발품 외교’로 본 외교 전쟁

  •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장·前국회의원

    입력2025-09-0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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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청받지 않은 행사에 ‘적극’ 참여하라

    • 한국의 사회 안정·튼실한 방공망 ‘널리’ 알려라

    • 자발적 국가 간 협력 ‘자연스럽게’ 유도하라

    • 양국의 구체적 발전 방안 마련 ‘먼저’ 제시하라

    • 허세 버리고 ‘겸손하게’ 다가가라

    이스라엘 방공 시스템 아이언돔. 뉴시스

    이스라엘 방공 시스템 아이언돔. 뉴시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있다. 이스라엘 접경지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는 포성과 비명을 일상적으로 듣고 있다. 태국과 캄보디아에서도 대포 소리가 나고 있다. 이들 국지전쟁 뉴스보다 우리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전쟁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벌이는 외교 전쟁이다. 

    동맹 중 동맹인 미국을 상대로 한 외교를 전쟁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조금은 조심스럽다. 그 말을 꼬투리 잡아 한미동맹을 훼손할 수 있는 용어라고 모진 비판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쟁도 핵심 국익을 지키기 위한 국가 행위이고, 외교도 국가 이익을 지키기 위한 일이기에 외교와 전쟁은 화학적으로 쉽게 결합한다. 

    지금 세계는 외교 전쟁 중이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 러시아, 중국,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글로벌 차원에서 냉전시대 직후와 같은 외교대전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각국 역시 크고 작은 외교 전쟁을 치르고 있다. 모든 외교 전쟁에서 각국 지도자와 정부는 국익을 내세운다. 도대체 국익이란 무엇인가. 

    국익의 네 가지 계급 

    6월 2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미군이 이란 핵시설을 공습한 직후 연설하고 있다. 뉴시스 

    6월 2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미군이 이란 핵시설을 공습한 직후 연설하고 있다. 뉴시스 

    국익에도 계급이 있다. 미국 고위공직자 교육훈련을 담당하는 ‘미국 연방행정연구소’에서 국제정치를 강의한 도널드 뉴엑터라인(Donald Nuechterlein) 교수는 국익 보호를 위한 군사력 사용 유무와 정도에 따라 국익 계급을 분류하면 크게 네 가지로 범주화할 수 있다고 했다. 첫 번째 계급은 사활적 이익(vital interest)이다. 모든 국가에서 사활적 이익은 영토와 국민 안전이다. 이를 지키기 위해 국가가 가진 모든 군사수단, 군사동맹을 활용해서라도 지켜내야 할 국가이익이 사활적 이익이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침공에 맞서서 지키려는 이익은 사활적 이익이다. 우리가 6·25전쟁에서 지키고자 했던 영토와 자유민주주의 가치가 바로 대한민국 이승만 정부의 사활적 이익이었다. 

    두 번째 계급은 핵심적으로 중요한 국가이익(extremely important interest)이다. 국가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이익으로 군사력 일부를 동원해서라도 지켜야 하는 이익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설정한 국가이익으로 볼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크라이나에는 ‘사활적 이익’이 되고, 러시아에는 ‘극도로 중요한 국가이익’으로 평가할 수 있다. 



    세 번째 계급은 중요한 이익(important interest)이다. 군사력을 제외한 모든 외교·경제적 수단을 동원해 지켜내야 할 이익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비군사적 수단을 통해 얻으려고 동맹국은 물론 모든 세계를 상대로 얻고, 지키려는 이익이다. 트럼프의 관세정책도 그러한 범주의 국가이익으로 볼 수 있다. 현재 미·중 관계에서 압도적 우위를 차지·유지하려는 트럼프의 입장은 두 번째 이익과 세 번째 이익의 경계선에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네 번째 계급은 부차적 이익(secondary interest)이다. 호혜적 외교협상을 통해 지켜내야 할 이익이다. 강압적 수단보다는 협상, 설득, 거래에 의해 얻고 지켜야 할 이익이다. 각국이 추진하는 호혜적 FTA 협상을 통해 얻으려는 국익이 이 범주에 속한다. 

    이처럼 범주화한 계급적 국익이 충돌할 때는 우선순위에 따라 국가정책이 결정된다. 생존권 이익과 경제적 이익이 충돌하면 생존권 이익을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국익을 분류하고 계급장을 붙이는 사람은 누구인가. 정치지도자다. 현실에서는 정치지도자가 국익 계급을 인식해 전쟁을 치르고, 외교관들이 국익을 배분·확정하고, 후일 역사학자들과 국제정치학자들이 국익 배분 결과를 평가한다. 정치인들이 결심한 전쟁, 분쟁을 마무리하는 데는 외교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나폴레옹은 수많은 전쟁을 지휘했지만, 마지막까지 프랑스와 관련 국가들의 국익을 배분한 것은 당시 외교부 장관 역할을 했던 탈레랑(Charles Maurice de Talleyrand)과 그를 도운 외교관들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가자지역 분쟁, 태국-캄보디아 전쟁도 결국 외교관에 의해 정전과 휴전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다듬어질 것이다. 외교관은 국익 수호의 최후 전사다. 외교관들의 태도가 국익 구현에 매우 중요하다.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장(왼쪽)과 바락 샤인 주한 이스라엘대사관 부대사가 7월 22일 만나 환담을 나누고 있다. 전쟁기념사업회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장(왼쪽)과 바락 샤인 주한 이스라엘대사관 부대사가 7월 22일 만나 환담을 나누고 있다. 전쟁기념사업회

    이스라엘 부대사의 ‘발품’ 외교

     7월 중순 이스라엘대사관은 같은 달 25일에 개최할 예정이던 ‘이스라엘-이란 전쟁과 한반도 안보’라는 주제의 전쟁기념사업회 학술회의에 옵서버(observer·회의 따위에서 특별히 출석이 허용된 사람. 발언권은 있으나 의결권이나 발의권이 없어 정식 구성원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다)로 참가하겠다고 알려왔다. 그런데 갑자기 7월 22일 바락 샤 인 주한이스라엘대사관 부대사가 전쟁기념사업회를 방문했다. 그는 공식적으로는 ‘6·25전쟁과 유대인의 지원’이라는 민간단체의 학술회의 참석차 전쟁기념관을 방문, 필자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필자는 그와 대화하면서 대화 내용 자체보다 이스라엘 외교관의 발품 외교, 적극 외교를 절절히 체험했다. 필요하다면 초청하지 않더라도 이스라엘 관련 학술회의를 찾아가고, 대화 기회를 얻어 이스라엘 입장을 설명하고, “양국 관계 협력을 다짐하자”고 제안하는 주한 이스라엘 부대사의 모습에서 우리 외교관이 지향해야 할 자세를 생각해 봤다. 

    그가 필자에게 언급한 내용 일부를 공유하면 이스라엘 외교관들이 외교 최전선에서 이스라엘 정부의 입장을 얼마나 치열하게 설명하며 국제적 공유를 위해 노력하는지 알 수 있다. 첫째, 이스라엘의 사회 안정이다. 2023년 10월 하마스와 전쟁을 시작한 시기와 비교하면 분쟁은 확산됐지만 사회 안정은 완전히 복원됐으며, 이스라엘 정부가 전략적으로 잘 대응하고 있다. 지속적인 전쟁으로 국가와 사회가 극도로 불안할 것이고, 전쟁 피로로 인해 이스라엘 정부에 대한 국민 불만이 있을 것이라는 인식을 불식하려 했다.

    둘째, 이스라엘이 개발해 배치한 아이언돔과 방공 시스템은 이스라엘 영토와 국민을 지켜주는 생명줄 같은 존재다. 주변국과 벌인 전쟁에서 빠른 속도로 안정을 복원하고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방공망, 군사 대비 태세가 철저해서 가능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전쟁으로부터 사회가 안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군사 대비가 철저했다는 주장을 통해 사회안정론의 확고한 근거를 제시했다.

    셋째, 한국 정부의 독자적 방공 시스템 개발이 2030년 완공을 목표로 순탄하게 진행 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중국에서 공부하고, 일본과 한국에서 근무하면서 동북아 각국에 대해 상당한 정보를 갖고 있음을 보여줬다. 

    넷째, 이스라엘은 ‘아이언 빔’이라는 레이저 요격 시스템을 개발해 전장의 새로운 게임체인저인 드론에 대한 요격 체제를 발전시키고 있다. 1기당 3달러밖에 들지 않은 가성비 높은 요격 체제를 통해 새로 등장한 드론을 군사적으로 무력화하고 있다. 군사기술의 자신감, 자국 방산의 우수성을 홍보하면서 향후 한국과 이스라엘의 협력을 기대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다섯째, 부산 유엔공원 묘지에 잠든 유대인 병사, 파주 홀로코스트 전시관 방문 경험을 통해 한국와 이스라엘의 역사적 유대를 강조했다. 6·25전쟁 때 이스라엘은 벤구리온 총리가 파병을 선언했지만 의회에서 부결해 참전하지 못했고, 대신 10만 달러 상당의 전쟁 비용을 지원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소환해 양국 간 우의를 다지고자 했다.

    기승전결의 형식을 빌리지 않았지만, 바락 샤인 부대사의 발언 내용은 현재의 총리인 베냐민 네타냐후가 이끄는 이스라엘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 국민, 글로벌 네티즌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 제안, 정보를 적극적으로 확산하는 역할을 했다. 이스라엘 부대사와 대화한 내용은 필자에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필자는 그의 발언 내용이 아니라 외교 업무 수행 태도가 부러웠다. 초청하지 않은 장소에 찾아가는 것은 전통적 외교관의 모습이 아니다. 묻지 않은 주제를 언급하는 것도 ‘외교스럽다’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 국익을 위해 발로 뛰는 발품 외교를 실천한 것이다.

    우리 외교관, 발품 외교 점검해야   

    우리 외교관들도 발품 외교를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필자가 만난 전·현직 외교관들로부터 “무용담에 가까운 발품 외교로 외교의 지평을 넓히고 국익을 지켜낸 사례”를 많이 들었다. 그러한 노력을 인정한다. 그러한 노력의 일부가 오늘의 국제화한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그러나 일반 국민, 전문가들이 느끼는 평가는 반드시 그렇지 않다. 국내 정치에 함몰돼 외교관들이 복지부동한다는 가혹한 평가도 있다. 외교부 간부들은 덕담보다는 가혹한 평가를 있는 그대로 들어야 한다.

    이스라엘 부대사의 전쟁기념관 방문과 성과를 기준으로 우리 외교관들의 발품 외교를 평가해 보자. 첫째, 초청받지 않은 코리아 관련 국내외 학술회의에 참석한 적은 있는가? 참석한 행사에 얼마나 있었고 경청했는가? 둘째,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행사 관련자에게 옵서버 자격 참석을 알리고, 사전에 대화를 시도한 적이 있는가? 셋째, 행사에 참여하여 양국 관계 관심사를 진지하게 알린 적이 있는가? 넷째, 자발적으로 자국 산업의 장점을 설명하고 협력을 유도하려 한 적이 있는가? 다섯째,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구체적으로 발전 방안을 마련해 제시한 적이 있는가?  

    트럼프2기 행정부와 우리 정부는 통상·안보 문제를 패키지로 해 외교 전쟁을 벌이고 있다. 트럼프 정부 입장에서는 국가이익 계급 체계상 ‘중대한 이익’일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사활적 이익이다. 이 전쟁에서 우리가 더욱 유리한 입장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현장 외교관들의 발품 외교 역량이 발휘돼야 한다. 현장 외교관들이 그들이 초청하지 않은 행사에 발품을 팔고, 한국의 입장을 열정적으로 설명하고, 한미 관계의 동맹 자산과 미래를 설명해야 한다. 주미 대사관 소속 외교관들은 물론 외교부 모든 외교관이 이러한 외교 전쟁 현장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매일 스스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허세 버려야 국익 지킬 수 있어

    나폴레옹 등장 이후 근대 유럽 국제관계가 정립된 빈체제(Congress of Vienna)를 설계했던 탈레랑은 “외교 역량을 키우려면, 허세를 버려라”라고 했다. 허세를 버리고 겸손한 외교가 발품 외교의 진수다. 키가 작은데 하이힐을 신거나, 발끝으로 걸으면 오래 걸을 수 없다. 허세 외교로는 국익을 지킬 수 없다. 탈레랑은 “사자가 이끄는 100마리의 양 떼가, 양이 이끄는 100마리 사자보다 무섭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의 말을 외교 업무 수행 절차에 대입하면 답은 명확해진다. 사자는 외교 지도자다. 지도자는 국익 설정을 정확하게 하고 강하게 주장해야 한다. 100명의 양 떼는 일선 외교관이다. 외교관들은 외교 지도자들이 설정한 국가이익을 발품 외교로 구현해야 한다. 네티즌 시대는 모든 국민이 외교관이다. 발언 하나, 댓글 하나, 유튜브 영상 하나가 국익 구현에 영향을 미친다. 전 국민의 발품 외교로 외교 전쟁에서 이겨야, 지속 가능한 번영을 보장받을 수 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이란, 시리아에서 전쟁을 치르면서 아이언돔 방공망, 미국과의 동맹그물망으로 국민을 지켜내고 있다. 아이언돔보다 부러운 것은 일선 외교관들이 24시간 현지 여론 동향을 모니터링하면서 친이스라엘 분위기를 만드는 모습이다. 필자 앞에서, 이스라엘 안보 태세와 방산 기술을 설명하는 주한 이스라엘대사관 부대사가 전장의 야전사령관처럼 느껴졌다. 

    백승주
    ‌●1961년 출생
    ●부산대 정외과 졸업, 경북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
    ●국방부 차관, 20대 국회의원
    ●現 전쟁기념사업회 회장, 국민대 석좌교수, 한중안보평화포럼 회장
    ●저서 : ‘백승주 박사의 외교이야기’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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