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5월호

금융권·재계 주름잡는 ‘맨손성공’ 동문 2만8천

노무현과 부산상고 인맥

  • 김기영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des@donga.com

    입력2004-09-03 11: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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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수별로 자발적 후원금 마련
    • 금융계·재계 진출 동문 상당수
    • 자수성가형 졸업생들의 끈끈한 결속력
    • “동문 80%는 노무현 지지할 것”
    • ‘상고출신’ 발언에 2만8000 졸업생 발끈
    부산상업고등학교(부산상고)는 얼마 전까지 지방의 조용한 실업고등학교였다. 부산이 연고가 아닌 일반인에게는 야구나 축구 잘하는 학교 정도로 알려졌던 실업계 고등학교, 그 부산상고가 지금 중앙 무대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부산상고는 노무현(盧武鉉) 민주당 대선후보의 모교(母校)다. 최종학력이 고졸인 노고문이 이 학교 출신이라는 사실은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부산상고가 새삼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은 얼마 전 언론에 공개된 서울대 동창회보 4월호에 실린 만평 때문이다.

    만화가 이원복 덕성여대 교수가 그린 만평에는 안경을 끼고 장대를 든 운동복 차림의 남자가 서 있다. 그의 가슴에는 서울대 로고가 그려져 있다. 그 맞은편에는 한자로 ‘商高’라는 장벽이 버티고 있다. 그리고 주인공의 머리 위에는 ‘1차, 2차’가 표시된 박스가 있고 1차 아래에는 × 표가 쳐져 있다.

    그러니까 ‘상고 장애물 넘기’ 1차 시도에서 실패한 서울대 출신의 도전자가 이번에도 상고의 장벽을 뛰어넘으려 한다는 것이 만화의 메시지다.

    조금 더 들어가보면 1차 도전에 실패하고 2차 도전에 나선 사람은 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 전총재인 것으로 보인다. 만화 주인공이 낀 안경과 이미지가 이 전총재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고로 대표되는 장애물은 노무현 고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여당의 대선주자 가운데 상고 출신은 노고문이 유일할 뿐 아니라 가장 유력한 후보이기 때문이다. 좀더 상상력을 발휘해보면 1차 도전에서 이회창 전총재에게 실패를 안겨줬던 인물은 목포상고 출신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만화가 공개된 직후 여론은 들끓었다. 언론사에는 상고 출신 일반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민주당도 이례적으로 논평을 내고 “특권의식과 학벌주의는 국민을 분열시킬 뿐”이라고 주장했다. 인터넷도 이 문제로 시끌시끌했다.

    그러나 이 만화로 부산상고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부산상고는 어떤 학풍을 이어온 학교이고 학맥은 어떤지, 과연 이 학교는 이회창 총재의 모교인 경기고와 이인제(李仁濟) 고문의 모교인 경복고와는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부산상고가 배출한 인물들은 누구인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부산상고동창회는 최근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민주당의 국민참여 경선이 시작된 직후인 지난 3월13일 부산상고동창회는 이사회를 열고 ‘동창회원’ 명의로 ‘노무현 동문을 지지하는 결의문’을 발표했다. 결의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개교 107년을 맞이하는 우리 부산상업고등학교는 유구한 역사와 빛나는 전통 속에 수많은 인재를 배출해 나라와 지역사회에 크게 공헌해온 것은 이미 자타가 공인하는 주지의 사실이다.

    이는 우리 동문들의 단합된 힘과 탁월한 역량을 표출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팽배한 물질만능 사상과 깊어진 지역감정, 빈익빈 부익부 사회현상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때마침 모교 제53회 졸업생인 노무현 동문이 나라의 혁신과 사회정의 실현을 외치면서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 나서 유력한 대권후보로 발돋움하고 있음은 우리 동문 전체의 영예이며, 모교의 명예를 드높이는 것이다.

    이제 우리 전체 동문들은 노무현 동문이 그 뜻을 이룰 수 있도록 모든 정성과 뜻을 결집하여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을 약속하며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동창회가 밝힌 ‘물심양면의 지원’을 위한 구체적 행동지침은 다음과 같다.

    ‘1. 우리는 노무현 동문이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승리를 쟁취하도록 합심하여 노력한다.

    2. 우리 전체 동문들은 각 기별 회장단을 중심으로 국민선거인단 2000명 이상 확보하는 데 적극 참여한다.

    3. 우리 전체 동문들은 노무현 동문의 열악한 재정 사정을 감안하여 각 기별 회장단을 중심으로 재정적 지원에 적극 동참한다.

    4. 우리 동창회 이사회와 전체 동문들은 깊은 관심과 애정으로 노무현 동문이 대통령후보로 선출될 때까지 항상 지켜보며 홍보에 앞장선다.’

    이에 대해 이양한 재경동창회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솔직히 말해 동창들 100%가 노무현 고문을 지지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전체의 15%는 그들이 처해있는 환경이나, 성장배경 등 이런저런 이유로 동문이지만 노고문을 지지하지 않는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생각을 어떻게 강요해 바꾸라고 하겠습니까. 그런 생각을 가진 동문들은 또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노고문을 보는 시각이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는 겁니다. 2000년 노고문이 DJ당 소속으로 부산에서 출마하자 동문 사이에서도 노고문 욕하는 사람들 많았습니다. ‘서울 종로에서 국회의원하지 뭣하러 왔느냐’며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동창회에서 공식적으로 노고문 지지를 선언했지만 그 결정에 대한 반발은 없어졌습니다. 한번 밀어보자는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 거죠.”

    이회장은 부산상고 출신의 입장에서 노고문이 ‘뜬’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솔직히 실업학교 출신들은 홀대받아왔습니다. 지금까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달라진 교육정책도 줄곧 실업학교의 설 땅을 없애는 쪽으로 진행돼 왔습니다. 홀대받아온 상고출신이다보니 노고문이 노동자들의 편에 서게 된 것 아닐까요. 고교에도 특권의식은 분명히 있습니다. 서울의 명문고교 출신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특권의식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특권의식 없는 보통 사람들이 대한민국 인구의 80% 아닙니까. 노고문은 그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겁니다.”

    노고문의 한 측근은 “부산상고 출신이라도 생각이 같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부산상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를 졸업한 동문과 고졸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동문들과는 노고문을 바라보는 정서가 조금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대 출신 동창들이 이런저런 연으로 노고문 지지에 회의적인 반면, 다른 동창들은 사심 없이 노고문을 지지해주는 편이라고 한다.

    동창회의 노무현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분명 과거와 달라진 것 같다.

    그러면 동창회의 노무현 지지에 대해 당사자인 노고문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노고문은 “최근 동문들이 예전과 달리 호의를 갖고 도와주려는 분위기인 것 같다”며 흡족해 했다.

    홍경태 후원회 사무국장은 “노고문은 오래전부터 동창회 부회장직을 맡아 일해왔다”고 말한다.

    “100%는 아니지만 시간이 되는 한 동창모임에도 참석해왔습니다. 동창회 임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해온 거죠. 노고문은 어디에서고 학연 얘기는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도와달라고 요구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도와주는 동문들이 많았습니다. 지금도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은 노고문의 부산상고 동기생들입니다.”

    아무튼 부산상고 동문들이 노무현 고문에게 적지 않은 원군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동창회 사람들은 “부산에 사는 2만명 가량의 동문들만 뛰어주면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고 장담한다. 당장 민주당 부산경선에서 그 위력을 보여주겠다는 태세다.

    과연 부산상고는 이회창 총재의 2차 도전을 가로막을 막강한 장애물이 될까. 결과가 궁금하다.

    요약하자면 ‘우리 동문 전체의 영예이며 모교의 명예를 드높이는’ 노고문에게 재정적 지원은 물론, 대통령후보 선출 때까지 홍보로 도와주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부산상고총동창회는 노고문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민주당 경선에서 노무현 바람이 일면서 동창회의 노고문 지지 움직임은 보다 구체적으로 바뀌었다.

    3월25일 부산상고 재경동창회(회장 이양한 서울시의원)도 서울 빅토리아 호텔에서 임시 이사회를 열고 노무현 고문을 돕기 위한 재경동창회 차원의 행동지침을 결정했다. 이사회에서 동문들은 노풍(盧風)의 확산을 위해 구전홍보로 힘을 보태는 것은 물론, 기수별로 별도의 후원금을 마련해 노고문을 지원하기로 결의했다. 또 서울, 경기지역에서 치러지는 민주당의 국민경선에 적극 참여해 노고문을 돕기로 했다.

    4월6일 민주당 인천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함으로써 노고문이 수도권에서도 만만찮은 지지를 얻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뒤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노무현 돌풍이 전국을 강타하자, 부산상고 동문들의 마음은 한결 바빠졌다.

    4월10일 저녁 6시30분 부산 롯데호텔 크리스탈 볼룸에서 열린 부산상고 총동창회 정기총회는 부산상고 동창들의 노무현 지지바람이 어느 정도인가를 가늠할 수 있는 자리였다.

    행사장 한편엔 ‘100년의 전통, 백양의 자존심, 노무현 동문을 청와대로 보내자’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내걸렸다. 이날 마련된 좌석은 450여 개, 그러나 두 배에 가까운 900여 명이 몰려 대성황을 이뤘다. 9시30분까지 세 시간 동안 진행된 이 행사는 시종 열기로 가득했다.

    동창회의 한 관계자는 “수십 년 동창회에 참석해봤지만 그날 같은 열광적 분위기는 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400명 참석을 예상하면 그 절반이나 채울까말까 했는데 행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발 디딜 틈 없이 동문들이 들어차 행사 진행요원들도 깜짝 놀랐다”며 당시의 열기를 전했다.

    이날 총동창회는 43회 졸업생인 신상우 전의원을 11대 동창회장으로 뽑았다. 10대 동창회장은 박안식 대창단조 사장(45회). 통상 동창회는 기수별로 회장을 선출한다. 그런데 총동회장의 박안식 전회장 보다 2회 선배인 신상우 신임총장으로 기수가 역행한 것도 동문회사상 처음 있는 사건이다. 신임 신상우 동창회장은 노무현 고문의 부산지역 후원회장으로 민주당 경선이 치러지기 전부터 사실상 노고문 지지를 선언한 정치인이다.

    이 관계자는 “이처럼 회장의 기수가 거꾸로 가면서까지 신상우 동문을 동창회장으로 선출하는 데 동문들의 반대가 없었던 것은 곧 동문들 사이에 노고문 지지 여론이 대세로 자리잡았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부산상고 동문들은 이번 민주당 국민선거인단 공모에 부산·경남 지역에서 수만 명을 모집했으며, 재경동창회와는 별도로 기수별 자금도 갹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기수별로 적게는 수백만원, 많게는 수천만원의 지원금을 모았으며, 그 가운데 일부는 노고문 측에 전달된 것으로 전해진다.

    경선 초기 출마 비용조차 마련하지 못해 허덕이던 노고문 진영에서도 최근 “돈 가뭄은 어느 정도 해결된 것 같다”는 소문이 들리는데, 그 배경에는 부산상고동창회와 같은 자발적 후원세력들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노고문과 부산상고 사이의 가교역할은 노고문의 부산상고 후배인 노무현후원회의 홍경태 사무국장(61회)이 맡고 있다.

    홍국장은 “107년 역사를 가진 학교인데도 이제야 비로소 대통령후보가 나오니까 동문들이 많은 관심을 갖는 것은 사실”이라며 “동문들의 십시일반 도움에 적지 않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홍국장은 “하지만 과거 부산상고 출신들이 은행에 많이 있었는데 외환위기와 은행 구조조정을 거치는 과정에 명예퇴직 등으로 직장을 많이 떠나 재력가 동문은 많이 줄어든 편”이라고 아쉬워했다.

    대선이 임박해서인지 부산상고뿐 아니라 부산지역 다른 고교 동창회에도 ‘정치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부산의 4대 명문고교하면 보통 경남고와 부산고, 부산상고와 동래고를 꼽는다. 이 가운데 최근 부산고, 부산상고, 동래고 동창회가 총회를 열고 각각 새로운 동창회장을 선출했는데 그 결과가 눈길을 끈다.

    부산고 총동창회장에는 김진재 한나라당 부총재가, 동래고 총동창회장에는 박관용 한나라당 총재권한대행이 각각 선출됐다.

    부산고와 동래고가 한나라당 소속 현역 정치인을 총동창회장에 선출한 것은 노풍이 거세긴 하지만 아직도 부산은 한나라당의 아성이라는 현실을 간접적으로 보여준 것으로 풀이된다.

    이들 두 동창회에 이어 부산상고 총동창회가 신상우씨를 새 총동창회장에 선출함으로써, 부산의 3대 명문고 총동창회는 새로운 진용을 갖추게 됐다.

    부산을 대표하는 명문고는 김영삼 전대통령이 나온 경남고와 부산고다. 하지만 역사와 전통에서 부산상고는 이들 인문고교보다 한수 위다.

    부산상고는 1895년 5월 부산개성학교로 창립됐다. 올해로 개교 107년째인 부산상고보다 역사가 앞선 학교는 배재 양정 등 서울지역의 몇몇 사학뿐으로, 부산지역에서는 부산상고가 가장 오래된 학교다. 개성학교는 1909년 공립부산실업학교로 이름을 바꿔 공립학교로 정식 개교했다. 부산상고 교사(校史)에는 이날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공립학교가 등장한 날로 기록돼 있다.

    일제시대 부산상고는 가난한 조선인 학생들의 배움터였다. 이 때문에 조선인 학생들이 일제와 맞서는 저항운동의 진원지가 되기도 했다. 1940년 이른바 ‘노다이(乃台) 사건’으로 불리는 부산학생반일운동의 주역이 바로 부산상고생들이었다.

    노다이 사건이 터진 날은 1940년 11월23일이었다. 이날 부산공설운동장에서는 제2회 경남 학도전력증강 국방경기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일본인 심판관인 노다이 대좌(대령)는 행사 내내 조선인 학생들이 다니는 부산2상(부산상고의 전신)과 동래중학(동래고의 전신)에게 불리하게 판정하거나 부당한 판결을 내렸다. 행사가 있기 이틀 전에 벌어진 군사훈련 때도 노다이 대좌는 일본인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와 달리 부산2상과 동래중학 학생들을 가혹한 조건에서 훈련받도록 해 학생들의 원성을 샀다.

    결국 일본인 심판관에 의해 온갖 승부조작이 난무한 끝에 일본인 학생들이 다니는 부산중학이 대회에서 우승했다. 그러나 결과에 불만을 품은 부산2상과 동래중 학생들은 폐회식에서 일본국가 대신 아리랑을 합창하면서 “노다이를 죽여라” “왜놈 죽여라”하는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이어 학생들은 돌을 던지며 일본인에 맞섰다. 마침내 학생시위대는 노다이 대좌의 집으로 몰려가 돌을 던져 목재 관저의 외등과 유리창 등을 박살내고 말았다.

    단 하루의 항일 거사였지만 학생들이 입은 피해는 엄청났다. 사건 다음날부터 불어 닥친 검거선풍에 200여 명의 부산2상과 동래중 학생들이 경찰서로 연행됐고 그 가운데 주동자로 지목된 15명이 구속됐다. 두 학교 자체 징계 결과 21명이 퇴학됐고 정학이 44명, 견책이 10명이었다. 부산상고와 동래고는 노다이 사건을 ‘광주학생운동’에 버금가는 영남지역의 반일 학생운동으로 기록하고 이를 기념해 양교 친선체육대회를 열고 있다.

    해방 후, 지금의 부산상업고등학교로 이름을 바꾸고 신입생을 모집했는데, 부산상고는 남부지방의 대표적 실업학교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이양한 부산상고 재경동창회장(48회)은 “부산은 물론 밀양 울산 양산 김천 등 인근 지역, 그리고 나주 목포 순천 여수 등 부산과 뱃길로 연결된 호남지역에서도 많은 학생들이 부산상고에 유학을 왔다”며 “노무현 고문이 지역통합을 선거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고 있는데 부산상고는 오래전부터 남부지역, 즉 부산·경남과 전남 일대의 저소득층 수재들이 모여들어 함께 공부하며 영호남 통합을 실천한 학교였다”고 말했다.

    1960~70년대 상고를 졸업한 뒤 은행 등 금융권에 취직하는 것은 저소득층 자제들의 대표적인 입신양명(立身揚名) 코스였다. 부산상고 졸업생들은 부산·경남 금융권과 기업체 경리분야 책임자로 속속 뻗어나갔다.

    요즘도 시중은행에는 부산상고 출신들의 친목모임인 ‘백은회(白銀會)’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은행원들 사이에 백은회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 정도인데, 한때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산상고의 상징나무는 백양목인데 백은회라는 이름은 바로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작고한 고태진 전 축구협회회장(26회)이 조흥은행 행장으로 있을 무렵, 조흥은행은 물론 상업 제일 서울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행장이 부산상고 출신으로 채워진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한국의 돈의 흐름을 부산상고 출신들이 좌지우지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얘기다.

    세월이 흘러 상업고교 자체의 존립기반이 무너진 요즘에도 기업체 경리파트에는 부산상고 출신들이 막강한 실세로 자리잡고 있다.

    이양한 재경동창회장은 “동문들의 면면을 보면 거대한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데 이는 동문들 대부분이 가난한 집안 출신이다보니 졸업 후 취업에 급급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이회장은 “없는 집안의 수재들이 모인 학교다보니 자연스럽게 자수성가(自手成家)의 전통이 학풍으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이런 환경 탓에 부산상고 출신들은 대체로 고집불통이고 독립심이 강하다는 평가를 듣는다. 민주당 경선이 시작되기 전 노무현 고문이 그를 따르는 현역의원 한 사람도 없이 혈혈단신 선거운동을 펼쳤는데 이런 노고문의 스타일에도 부산상고 특유의 기질과 정서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게 동창회 사람들의 생각이다. 동창회 한 관계자는 “아마 부산상고 출신 중 노고문보다 더 고집 세고 독립적인 기질이 강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고문은 부산상고 53회 졸업생으로 1963년도에 입학해 1966년에 졸업했다. 부산상고 졸업생들의 면면을 보면 1960년대 초반에 입학한 기수들에 유난히 인물이 많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 무렵 동창회에서 운영한 백양장학회라는 장학기금이라고 한다.

    당시 동창회는 120명의 우수한 신입생에게 3년간 학비전액을 제공하는 장학사업을 벌이면서 부산과 인근지역 중학교를 상대로 학생을 모집했다. 김해의 가난한 집안 출신인 노무현도 이 소식에 귀가 솔깃했던 것 같다.

    김철수 삼성열린정보연구원장(50회)은 “노무현 고문과 한동네에서 자랐는데 하루는 노고문이 장학금 소식을 듣고 찾아와 ‘정말 3년간 학비전액을 대주냐’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중학교시절 노고문은 전교 1등을 맡아놓고 했다. 노고문은 ‘김해의 수재’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머리가 좋았다고 한다. 노고문은 동창회 장학금 외에도 국가장학금을 받으며 금전적 어려움 없이 ‘무사히’ 부산상고를 졸업할 수 있었다.

    그러면 부산상고 출신 저명인사들을 살펴보자. 동창회 관계자들이 소개한 부산상고 출신 유력인사들의 명단을 보면 부산상고 출신들은 금융권과 재계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학계나 관계에는 학교의 전통에 비해 저명인사의 수가 많지 않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문화계와 언론계 등 여론 주도층에도 부산상고 출신은 별로 없다. 노고문이 기성언론과 그리 ‘친하지 않은’ 배경에는 학연(學緣)으로 연결지어볼 만한 부산상고 출신 언론인들이 별로 없다는 점도 한몫을 한 것 같다.

    또 하나, 사회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부산상고 출신 저명인사들의 특징은 대부분 ‘고령’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해방 직후부터 나라가 어렵던 1970년대 중반까지 부산상고는 ‘가난한 인재’들의 요람이었으나 그 후로는 경제형편이 좋아지면서 지역의 우수한 인재들이 인문고교로 몰리게 됐고 자연, 부산상고에 진학하는 실력있는 인재들도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구체적으로 경남의 명문 실업고교인 마산상고와 김대중 대통령이 졸업한 목포상고가 이미 인문고교로 전환해 새로운 활로를 찾아 나섰다.

    이런 현상은 부산상고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대부분 명문 실업계 고교들이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고 나름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게 현실이다.



    서울의 명문 실업고교인 선린상고는 선린인터넷고라는, 교명(校名) 속에 동서양이 뒤섞인 ‘퓨전 고교’로 변신했다. 덕수상고도 덕수정보고로 교명을 바꾸고 새출발을 했다.

    부산상고도 지금 고민중이다. 2000년에 학칙을 바꿔 남녀공학으로 변신했고 2001년에는 정보처리학과, 정보경영학과, 시각디자인과, 상업외국어과 등 미래지향적인 학과를 설치해 신입생 유치에 나서는 등 꾸준한 변신을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한계가 있다는 게 동창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목포상고나 마산상고처럼 인문계 고교로 전환하지 않는 한 ‘실업계 부산상고’는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이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아울러 동창회 일각에서는 노고문이 대통령이 되면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 줄 것으로 기대하는 이들도 있다.

    부산상고 출신들은 금융계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왔다. 권경수 전 서울은행상무(33회), 최연종 전 한국은행 부총재(43회), 안시환 전 삼성생명 사장(45회), 유평렬 일은증권 고문(48회) 등이 원로급 부산상고 출신 금융계 인사들이다.

    금융계에서는 노고문의 두 해 선배인 51회 졸업생들이 특히 돋보인다. 김지완 부국증권 대표이사, 옥치장 증권거래소 감사, 이성태 한국은행 부총재보, 정형배 한국산업은행 조사부장 등이 부산상고 51회를 대표하는 금융계 인사들.

    또 김옥평 한미은행 부행장(54회), 이수희 서울은행 상무이사(55회), 이세연 국민은행 구미지점장(55회)과 김충곤 퍼스트유니온내쇼날뱅크 서울지점장(56회) 등도 두각을 나타내는 부산상고 출신 금융인들이다.

    이밖에도 김수룡 메리디엔파트너즈그룹 회장(57회), 최재익 아멕스뱅크 서울지점장(57회), 김광현 KC월드 대표이사(58회), 설경윤 BOA서울지점 부지점장(59회), 이상복 신한은행 인천국제공항지점장(61회), 천창환 한빛은행 연수원 교수(62회) 등이 부산상고 동문들이다.

    재계에서는 오너보다 전문경영인이 많은 편이다. 스스로 사업을 이루기보다, 소속한 직장에서 능력을 발휘해 CEO의 자리에 오른 인물들이 많은데, 이는 부산상고의 학풍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부산상고를 대표하는 재계 인사로는 이학수 삼성구조조정본부장(52회)을 꼽을 수 있다. 이본부장은 노고문의 한 회 선배로 52회인데 이본부장 외에도 52회 졸업생으로 CEO로 성공한 인물이 적지 않다. 송장식 동원수산 대표이사와 양천구 남성해운항공 대표이사가 이본부장과 동기생들이다.

    김찬두 두원회장(39회)은 재계와 정계에 두루 얼굴을 알린 인물이다. 김회장은 14대 국회에서 신한국당 전국구 의원으로 의정활동을 한 바 있다. 그가 회장으로 있는 두원그룹은 두원정공, 두원중공업, (주)두원, 두원공조 등의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기업.

    장상건 동국산업 회장(41회), 신문석 농심부회장(42회), 김영재 한국후지필름 대표이사(42회), 배광우 일양익스프레스 회장(43회), 오용한 롯데월드 대표이사(45회) 등도 재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부산상고 동문들이다.



    신상우 전의원에 앞서 총동창회장을 맡아온 박안식 대창단조 회장(45회)도 빼놓을 수 없는 부산상고의 재계인맥이다. 대창단조는 자산 1000억원 규모의 상장기업으로 중장비용 레일 등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황두열 SK(주) 부회장과 정종순 KCC부회장은 부산상고 49회 동기생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기업의 전문경영인으로 활동하며 동문들의 자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4·19가 나던 1960년에 부산상고에 입학한 50회 졸업생들의 활약도 눈부시다. 오의명 아티우스 사장, 오의조 아티프랜 대표이사, 김대수 월드전자 사장, 김성학 이오전자 사장, 차영호 대성산업 대표이사 등이 50회를 대표하는 재계 인사들이다.

    이밖에도 신근철 신라해운 대표이사(54회), 김종열 우모콜렉션 부사장(54회), 문병욱 빅토리아관광호텔 사장(57회), 최주식 로지피아 사장(58회) 김남진 호성기업 대표(60회), 윤진무 하이코통상 사장(63회) 등이 신흥 재력가로 성장하고 있는 부산상고 출신 인사들이다.

    부산상고가 배출한 인물 가운데 30대 CEO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조운호 웅진식품 대표이사(68회)도 돋보이는 인물이다. 최근 자사 음료 TV광고에도 얼굴을 내민 조사장은 노무현 고문이나 이기택 전의원에 이어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부산상고 동문이다.

    부산상고 출신 가운데는 의외로 예술계 인물도 적지 않다. 가곡 ‘그네’의 작곡가인 고(故) 금수현씨(24회)와 코주부라는 캐릭터로 잘 알려진 만화가 이원수 화백(38회)도 부산상고에서 자수성가의 학풍을 배운 동문이다.

    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가 1988년 가석방됐으며,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이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46회)도 부산상고 출신이다.

    신교수는 정서적으로 가장 노무현 고문과 잘 통할 것 같은 동문이지만 김근태 고문의 한반도재단 지도위원으로 있으면서 대선후보경선에 나선 김근태 고문을 도왔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부산상고가 차지하는 비중도 만만찮다. 김응룡 삼성라이온스 감독(47회)과 강병철 SK와이번스 감독(52회)이 부산상고에서 선수생활을 한 동문들이다.

    한국시리즈 우승 횟수를 보면 김응룡 감독이 9번, 강병철 감독이 2번으로 두 감독의 우승횟수를 합하면 11번이다. 한국 프로야구 21년 가운데 절반 이상을 부산상고 동문 감독이 이끈 팀이 우승을 차지한 셈이다.

    축구계에서도 부산상고는 이름을 떨쳤는데 올드팬들의 기억에 생생한 1960년대의 국가대표 축구선수 정강지 서윤찬씨(이상 50회) 등이 부산상고 동문이다.



    노무현 고문처럼 법조계에 진출한 부산상고 출신들은 많지 않다. 몇 년만에 한두 명 사시합격자가 나올까말까 했다고 한다. 부산상고 진학 목적이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취업을 하는 것이라면, 오랜 세월을 공부에 투자해야 하는 사법시험은 부산상고와는 어울리지 않는 분야인지도 모른다.

    수적으로는 적지만 부산상고 출신 사시합격자들 가운데 법조계의 존경을 받는 인물도 적지 않다. 황도연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38회) 같은 이가 그 대표적 인물. 손진영 서울고검 부장검사(57회) 황종국 부산지방법원 판사(58회), 장희장 부산지방법원 판사(61회), 은진수 변호사(67회), 서보증 서울지검 검사(70회) 등이 대표적인 부산상고 출신 법조인들이다.

    언론계에서는 김정명 문화일보 이사(50회)가, 예능계에서는 연극인 김광일씨(50회) 등이 활약하고 있다.

    관계에서는 김병호 중앙공무원 교육원장(53회)과 유갑영 행정조정실 부이사관(58회) 등이 현역 공무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부산상고는 정치권과 관계에서도 저명인사들을 많이 배출했다. 부산상고 출신으로 국회의원을 지낸 사람은 모두 24명. 하지만 대부분은 작고했고 생존해 있는 동문들은 몇 명 되지 않는다. 그 가운데 정해영 포은정몽주사상연구원 이사장(21회)은 1970년대 신민당 부총재와 국회부의장을 지낸 야당의 거목.

    김상영 한국산업정책연구소 이사장(20회)은 8대 국회 때 여수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을 지낸 인물이다. 그의 아들 로버트 김(한국명 김채곤)은 미 FBI에 의해 간첩 및 간첩혐의로 구속 수감된 인물. 로버트 김의 동생인 김성곤 의원은 부친에 이어 국회의원에 당선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들 외에 전직 국회의원인 부산상고 동문으로는 김동인 전의원(36회), 김승목 헌정회 이사(38회), 김채겸 쌍용양회그룹 고문(41회), 강경식 민주당 부산진갑 지구당위원장(46회) 등이 있다.

    이기택 전민주당 총재와 신상우, 박은태 전의원 등은 43회 동기동창으로 한때 정가에 부산상고 출신 3인방 국회의원으로 화제가 됐다.

    이밖에 59회인 권태망 의원이 부산상고 출신으로는 유일한 현역의원(한나라당)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 외에도 이양한 서울시의회 부의장(48회) 등 지방의회나 지방자치단체장으로 활약중인 동문들도 상당수다.

    부산상고 동문회가 자랑하는 관계 동문으로는 고(故) 김학렬 전경제부총리(28회)다. 김부총리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경제부총리를 지내면서 개발경제의 주역으로 활약했던 인물. 역시 작고한 김종호 전건설교통부 장관(30회)도 부산상고를 빛낸 동문이다.

    지금까지 부산상고 출신으로 장관을 지낸 사람은 노무현 전해양수산부장관을 포함, 9명이다. 이 가운데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오른 인물은 김학렬 전경제부총리. 국회에서는 부의장을 지낸 정해영씨가 최고위직을 지낸 동문이다. 그러니까 노무현 고문이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동문회 사상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는 인물이 된다.

    그러면 동문회 밑바닥 기류는 어떨까. 동창회를 대표하는 이사회나 기수별 대표자 사이에서는 이미 노고문을 지지하고 물심양면의 지원을 펼치기로 결의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상층부의 움직임일 뿐, 생활전선에서 뛰고 있는 부산상고 출신 일반 동문들의 생각은 아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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