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5월호

거미줄 인터넷, 한 달 사이에 세상을 뒤집다

정치권 지각변동의 핵, 네티즌 파워

  • 김기영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des@donga.com

    입력2004-09-03 11: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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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한다. 그 변화의 핵심어는 ‘盧風’이다. 정가에서는 ‘노풍 논쟁’이 한창이다. 노무현이라는 ‘상품’이 노풍의 원인이며 인터넷은 노풍 확산의 통로였다는 주장도 있다. 노풍은 우리사회 정보인프라 혁명의 부산물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본격적으로 달아오르는 노풍 논쟁의 한가운데로 들어가 봤다. 아울러 세상을 바꾸는 네티즌 파워 그 힘의 원천을 추적했다.
    노무현(盧武鉉) 민주당 상임고문의 지원부대라 할 수 있는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회원은 2만명 가량이다. 경선이 시작된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회원이 늘어난 결과 2만명이지, 올 초까지도 노사모 회원은 1만명을 밑돌았다.

    반면 이인제(李仁濟) 상임고문의 후원세력인 구(舊) 국민신당 인사들은 이런 저런 형태로 전국적으로 5만명 가까이 퍼져 있었다. 1만 대 5만. 단순 외형 비교로는 싸움이 되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이고문에게는 수십 명의 현역의원과 지구당 위원장이 ‘줄’을 섰지만, 노고문 진영에 가담한 의원은 천정배 의원 단 한사람이었다. 외형만 놓고 봐선 경선 직전까지만 해도 이인제 고문의 우세를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민주당 경선은 당초 예상과 딴판으로 흘러가고 있다. 광주대회에서 노고문이 1위로 치고 나선 이후로 상황은 급변했다. 부산, 경기, 서울 등 선거인단 규모가 큰 세 선거구를 남겨둔 4월18일 현재 노고문은 이인제 고문에 1512표를 앞서고 있다. 이날 오후 이고문은 마침내 ‘세불리’를 인정하고 경선후보 사퇴를 선언했다. 경선이 시작되기 전 가장 유력했던 후보가 한달여가 지나 경선 자체를 포기하는 드라마틱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예상하지 못했던 현실에 부닥치면서 정치권 사람들은 뒤늦게 노무현 돌풍의 원인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조직력과 자금력, 대중지지도 등 어느 하나에서도 앞서지 못하던 후보가 불과 2주 만에 선두를 따라잡은 뒤 경선 한달이 조금 지나 유력한 대선주자로 올라선 기막힌 반전의 드라마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의견이 분분하다.

    과연 이인제 고문의 주장처럼 청와대나 혹은 외부세력이 개입해 상황을 조작한 것일까. 다른 뭔가가 노고문의 지지를 의도적으로 끌어올린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이인제와 노무현의 결정적 차이점은 무엇일까. 불과 한달 사이에 한국의 정치지도를 뒤바꿔버린 대변화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결국 두 사람의 근본적 차이점이 오늘날의 반전을 가져온 결정적 이유라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정치권의 관전자들은 두 사람의 결정적 차이를 인터넷에서 찾는다. 노고문은 인터넷의 가능성을 일찍부터 감지하고 공을 들인 반면, 이고문은 사이버세계보다는 눈에 보이는 사람에게 힘을 쏟았다는 것이다.

    몇몇 통계만 봐도 노고문과 이고문이 인터넷을 대하는 전략의 차이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웹사이트 분석 평가 전문 사이트인 랭키닷컴의 조사에 따르면 3월 마지막 주 노무현 고문의 공식 홈페이지인 ‘노하우’의 하루 평균 방문자 수는 8만명, 페이지뷰는 190만회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사람의 방문객이 약 23페이지뷰를 기록한 셈이다. 홈페이지가 생긴 이래 4월6일까지의 총 방문자 수는 누적 방문객 수는 350만 명이었다.

    3월24일부터 3월30일까지 1주일을 기준으로, 노무현 공식 홈페이지는 정치인 개인 홈페이지 모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점유율 66.3%로 1위를 차지했다. 즉 정치인 사이트 전체의 접속 수 가운데 노고문 홈페이지 접속 수가 가장 많았을 뿐 아니라 노고문 홈페이지 접속비율이 총 정치인 사이트 접속건수의 3분의 2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나머지 정치인들의 홈페이지를 다 합쳐도 노고문 한사람의 홈페이지보다 더 접속률이 낮다.

    같은 기간에 노고문 사이트의 일일 추정 방문객 수는 7만9848명으로 한주전보다 8813명이 늘어났다.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만해도 하루 6500개 가량이나 된다.

    노고문에 이어 네티즌 인기 2위를 달리는 정치인은 이인제 고문이다. 이고문 홈페이지의 일일 방문객은 1만3689명, 전체 정치인 사이트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6.67%였다. 정동영 고문 홈페이지의 1일 방문객은 9947명이었고 점유율은 5.63%였다.

    랭키닷컴은 주간 단위 접속회수를 기준으로 전체 사이트에서 정치인과 정당 사이트의 순위도 매긴다. 앞서의 조사기간 동안 노무현 홈페이지는 전체 웹사이트 가운데 140위에 올랐다. 이인제 홈페이지는 1589위, 정동영 홈페이지는 1909위였다. 참고로 민주당 홈페이지의 순위는 362위, 한나라당은 1106위였다.

    통계수치로만 보면 노무현 고문의 홈페이지는 한나라당은 물론 민주당의 홈페이지보다 인기가 높은 사이트다. 홈페이지 방문객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면서 노고문 캠프에서는 처음 한대이던 서버를 4대로 늘렸다. 하지만 이것조차 용량이 부족해 곧잘 다운된다는 게 사이버팀 관계자의 설명.

    노무현 고문은 다른 어떤 정치인이나 정당보다 일찍이 인터넷의 가능성을 알았고 그 가능성을 믿고 투자를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노고문 캠프의 백원우 사이버팀장은 “노고문의 돌풍과 인기는 유행처럼 일어난 일이 아니다. 지난 몇 년간 꾸준히 네티즌들과 대화하고 교류하면서 쌓아온 신뢰가 지금과 같은 지지로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한 직후부터 사이버팀을 중심으로 노무현 고문에게 오는 메일에 일일이 답을 해줬다고 한다. 답장에는 ‘이 메일은 노무현 고문이 직접 읽어보지 않는다. 하지만 뜻은 노고문에게 전달하겠다’는 간단한 메시지를 담았다.

    백팀장은 “비록 답장을 받은 네티즌 입장에서는 노고문의 메일을 직접 읽지 않았다는 사실에 당장은 화를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답장을 보내줌으로써 네티즌의 지적과 건의에 귀를 열어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길게 봐서 네티즌과의 커뮤니케이션은 우리의 지지자를 늘려 나가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백팀장은 이같은 노고문 진영의 일상적인 노력을 소개하면서 “노고문이 인터넷의 힘으로 노풍의 주인공이 된 것은 인정하지만 노고문 자체가 상품성 있는 후보였기에 네티즌들의 지지를 모을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만약 인터넷이 현재의 정치돌풍을 불러일으켰다면 왜 유독 노고문 홈페이지로만 네티즌들이 몰리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노고문 홈페이지의 시장 점유율이 66%에 이르렀다는 것은 곧 노고문이 다른 정치인에게는 없는, 네티즌들에게 ‘어필’하는 장점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노무현 캠프에서 노풍의 원인을 내부에서 찾으려 하는 반면, 민주당 일각에서는 노고문의 상품성보다는 현 정치상황을 둘러싼 주변의 변화에서 노풍의 원인을 찾으려는 시각도 있어 관심을 모은다.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의 한 고위 관계자는 “노무현 고문은 노풍으로 대표되는 변화의 상징성을 갖지만 그 이면에는 드러나지 않은 몇 가지 원인들이 잠복해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경선이 실시되기 전까지 일반 언론들은 한결같이 ‘양이(兩李) 대세론’을 전개했습니다. 특히 일부 메이저 신문에서는 의도적으로 ‘이회창 띄우기’를 해왔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이회창 대세론이 언론에 의해 떠받들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유일한 대항마로서 이인제 고문이 부각됐던 겁니다. 언론의 양이 대세론은 여론조사에 의해 다시 확대 재생산 됐습니다. 일상적으로 이회창·이인제 맞대결 형식으로 조사를 벌인 덕에 ‘이회창 대세론’과 ‘이인제 민주당대세론’이 거의 고착화 되다시피 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언론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는 결정적 허점이 존재했다”고 지적한다. 바로 30~40%에 이르는 무응답층이 그것. 이들 무응답층은 현 정치질서에 끊임없이 환멸을 느끼며 언제든 새로운 대안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노풍은 바로 이 침묵하던 30~40%의 국민이 구체적으로 제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신호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노풍의 원인을 크게 다섯 가지로 분석했다.

    첫째, 노풍은 기성 언론의 일방적 여론 조장에 대한 여론 수용자들의 반란이라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인터넷 교육의 강화와 전용선의 확충으로 네티즌이 3000만명에 육박하는 상황입니다. 20대에서 시작해 30대, 40대로 그 대상이 확대되더니 요즘에는 주부, 농민, 군인은 물론 교도소 재소자들까지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처럼 한국사회는 거대한 정보인프라의 변혁을 거치고 있지만 제도권 언론은 이런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신문과 방송의 정보량이 인터넷에 미치지 못하기 시작하더니 최근 들어서는 발행시간이 정해져 있고 보도 시간이 고정된 기성매체들이 속보성에서도 인터넷과 경쟁이 안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정보 수용자 입장에서 과연 어떤 매체를 선택할까요. 답은 뻔한 것 아닙니까.”

    이 관계자의 주장에 대해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의 한 기자는 “전폭적으로 동의한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민주당 경선의 경우 기존 공중파 방송에서는 도저히 소화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 정당의 내부 후보를 뽑는 경선을 처음부터 끝까지 중계할 경우 편파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겠죠. 그 틈새를 오마이뉴스가 비집고 들어간 겁니다. 국민들은 궁금해 하지만 기성매체가 외면하는 곳에 오마이뉴스가 가서 중계를 하고, 실시간 속보를 올리며 보도를 하면서 우리 종사자들도, 네티즌들도 새로운 매체의 가능성을 발견한 거죠. 민주당 광주경선 때 조회수가 350만 명이었는데 이 수치는 이런 국민의 요구를 잘 보여주는 것 아닌가요.”

    이 기자는 “오마이뉴스가 경선 생중계를 시작한 뒤 주위에서 우리에게 경선결과를 묻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며 “우리의 속보성과 현장성을 네티즌 독자들이 인정해준 것 아니겠는냐”고 말했다.

    앞서의 전략연구소 관계자는 노풍의 두 번째 원인을 인터넷매체의 쌍방향성에서 찾고 있다.

    기성언론이 일방적으로 공급하는 여론과 달리 인터넷매체는 참여자의 다양한 해석과 토론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일방적으로 전해주는 정보를 수용하던 입장에서 스스로 여론을 주도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인터넷의 영향력이 시간이 지날수록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의 쌍방향성은 오마이뉴스의 민주당 경선 중계과정에서도 잘 나타난다. 오마이뉴스는 경선이 진행되는 도중에 네티즌들이 특정사안에 대해 취재 요구를 하면 현장의 기자가 즉각 이를 실행하는 기동력을 보였다.

    오마이뉴스는 최근 경선중계 도중 이번 대회 사회자인 김경재 의원과 추미애 의원을 인터뷰해 방송으로 내보낸 적이 있다. 이들 아이템들은 경선 중계를 보던 네티즌들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 앞서의 오마이뉴스 기자는 “인터넷이 쌍방향이 가능한 매체라는 사실을 경선과정을 취재하면서 절실히 깨달았다”고 말했다.

    앞서의 전략연구소 관계자는 노풍의 세 번째 원인은 “국민경선제라는 제도 자체가 가져온 효과”라고 말했다. 그는 “국민경선은 시장민주주의 시대에 가장 잘 맞는 정치이벤트”라고 말했다.

    “국민경선제는 폐쇄정치시장을 국민들에게 사실상 개방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투표인단의 50%가 일반국민입니다. 하지만 당연직 대의원을 제외하면 사실상 국민경선단으로 봐야 하는데 그 수가 전체의 80%에 가깝습니다. 폐쇄시장에서는 독점이 가능합니다. 기성 언론은 폐쇄된 정치시장을 독점하면서 일방적으로 국민들에게 정보수용을 강요했죠. 국민경선제가 그런 카르텔을 깨버린 겁니다. 국민이 직접 참여하고 인터넷으로 현장이 생중계되면서 더 이상 기성언론이 정보를 독점할 수 없게 됐습니다.”

    그는 “비제도권 여론시장에 내재해 있던 변화와 개혁의 욕구가 인터넷을 통해 모아지고 노무현이라는 새 상품을 통해 분출되고 있는 것이 노풍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노풍이 가능했던 네 번째 원인을 경제상황의 호전에서 찾는다.

    “관전자인 국민의 입장에서는 경제상황이 좋지 않았으면 국민경선 자체도 짜증이 났을 겁니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국민경선은 축제가 아니라 난장판이 됐을 겁니다. 각종 게이트 사건으로 국민에게 짜증을 주는 기득권층과 달리 새로운 정치인들에게서 가능성을 찾는다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을 테고요.”

    이 관계자는 노풍의 다섯 번째 원인으로 “네티즌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는 권위주의에 대한 식상과 반발의식”을 들었다. “대세론에 안주해온 폐쇄정치구조와 이를 고착화하려는 메이저 언론에 대한 식상과 반발이 변화와 개혁의 욕구를 보다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권위주의에 대한 반발은 여론형성의 핵심이 되는 매체의 역할에도 변화를 가져오는데, 1992년 대선 때 여론형성의 주체가 신문이었다면 1997년에는 방송이, 2002년에는 인터넷이 그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관계자는 “노풍은 결국 우리사회 정보인프라의 혁명에서 비롯된 현상”으로 분석한다. 세상은 변화하고 있는데 그 변화의 욕구가 노무현 고문을 통해 분출되고 있다는 게 이 관계자의 주장이다.

    하지만 노고문의 역할에 대한 이런 평가에 대해 반발도 적지 않다. 노풍은 인터넷 혁명의 단순한 부산물이 아니라 인터넷 혁명을 유발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현재 인터넷 상에서 노풍을 주도하는 세력은 노사모를 비롯한 노고문의 “사이버 친위대”라 할 수 있는 네티즌 조직들이다. 노고문에 대한 이들 네티즌의 자발적 지지는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사이버 친위대의 역할분담도 정교하다.

    노고문의 공식 홈페이지는 노고문을 일반에 홍보하는 홍보페이지의 성격이 강하다. 반면 노사모는 순수 팬클럽으로 노고문 지지자들의 외연을 넓히는데 그 역할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근 언론과의 신경전이 벌어진 직후 관심을 끈 사이트가 ‘우리모두’이다. ‘우리모두’는 노고문을 이념적으로 옹호하는 사수대 성격의 모임이다. ‘안티조선’을 전면에 내세운 ‘우리모두’에는 노고문을 지지하는 아마추어 논객들이 모여 있는데,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이슈에 대해 나름의 반격 논리를 제공하고 이를 인터넷상에 퍼뜨리는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직접적으로 노고문과 연결돼 있지는 않지만 ‘인물과 사상’ 홈페이지와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IT한겨레 등 인터넷 매체들, 그리고 울산경선에서 돈봉투가 건네지는 현장을 취재해 화제를 모았던 ‘사이버참여연대’ 등도 인터넷 상에서 노풍을 확산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한 매체들로 거론된다.

    결국 정치권 변화를 바라는 일반국민들의 욕구도 있었고, 이런 욕구를 여과 없이 드러내고 여론화하는 새로운 매체로서 인터넷이 자리잡은 것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정치권 변화의 원인으로 보인다. 이런 네티즌들의 변화욕구가 대안으로 선택한 인물이 노무현이라는 게 민주당 주변의 대체적 해석이다.

    노풍은 인터넷 매체의 발전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인터넷 매체들의 민주당 경선현장 생중계는 인터넷매체 자신에게도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앞서의 오마이뉴스 기자는 “지금까지 기성 매체시장을 보면 방송이면 방송, 신문이면 신문 식으로 매체의 형식에 따른 분리가 엄격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오마이뉴스가 그 관례를 깨 버렸다”고 말했다.

    “오마이뉴스는 경선현장을 생중계하면서 동시에 현장상황을 취재해 글로도 올렸습니다. 지금까지 어느 매체도 해보지 않은 시도였습니다. 우리끼리는 스스로를 ‘퓨전매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인터넷 매체의 활로, 즉 수익모델은 결국 오프라인이 아니겠느냐는 논의가 있었습니다만, 이번 경선방송을 통해 인터넷방송 쪽으로도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는 내부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

    인터넷방송으로서 오마이뉴스의 가능성은 광고주들이 먼저 발견한 듯하다. 최근 들어 오마이뉴스의 민주당 경선현장 생중계 창 옆에는 기업체의 협찬 광고가 붙기 시작했다. 방송도중 휴식시간에 공중파 방송에서처럼 기업체 광고가 나오기도 하는데 이 역시 인터넷 매체 종사자들이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수익창출 통로였다.

    이런 변화의 세계 한가운데에 서 있는 당사자인 노무현 고문 본인은 인터넷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과연 그는 디지털 세계와 어느 정도나 친숙할까. 최근 노무현 고문은 한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컴퓨터를 사용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노고문이 컴퓨터를 처음 사용한 것은 1982년이다. 8비트 컴퓨터로 간신히 위드프로세서 기능 정도를 하는 정도였다. 노고문은 이 컴퓨터에 ‘장원워드’라는 한글 프로그램을 설치해 사용했다. 그런데 이 워드 프로그램이 그렇게 편리할 수가 없었다. 변론문을 작성하기도 하고, 저장하기도 하고, 또 필요할 때는 손쉽게 고칠 수도 있는 등 이 컴퓨터의 역할은 ‘무궁무진’해 보였다.

    1982년이면 PC는커녕 워드프로세서도 제대로 보급되기 전으로 딸깍거리는 타자기만 해도 감지덕지 하던 시절이었다. 이 시절 컴퓨터를 사용한 것도 신기하지만 그의 컴퓨터 활용능력은 시간이 갈수록 향상돼 갔다.

    1992년 노무현 고문은 ‘뉴리더’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해냈다. 이름은 거창했지만 이 소프트웨어의 기능은 단순했다. 오프라인에 늘어놓으면 복잡한 명함관리를 대신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그후 이 인명관리 소프트웨어는 진화에 진화를 거듭한다. 1996년 말부터 노무현 고문은 새로운 소프트웨어 개발에 착수했다. ‘뉴리더’의 기능에다 일정관리와 자료관리 기능을 추가하고 중소기업수준의 세무관리까지 가능한 프로그램으로 업그레이드를 한 것이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노하우97’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노고문은 이 프로그램을 노고문이 소장으로 있던 지방자치실무연구소에서 시험 운용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문제점 투성이었다. 작업을 할 때마다 버그가 발생했고 이를 수정하면 다시 문제가 생기는 등 제 기능을 못할 때가 더 많았다. 그렇지만 하나하나 문제를 잡아나가면서 프로그램은 서서히 제 모습을 갖춰갔다.

    1999년 ‘노하우97’의 단점을 시정한 ‘노하우2000’이 완성됐다. 품질에 자신감을 가진 노고문은 한때 이 제품의 상품화를 검토했다. 그러나 시장에 내놓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무엇보다 인터넷환경의 급속한 발전이 문제였다. ‘노하우’를 처음 개발할 때만 해도 인터넷이 지금처럼 보편화 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인터넷은 광범위하게 확산됐고 어떤 소프트웨어든 인터넷환경에 적응하지 않고는 상품성을 갖출 수가 없었다.

    결국 ‘노하우2000’은 자치경영연구원과 노고문 주변에서만 사용되는 소프트웨어가 되고 말았다.

    노고문은 1996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종로에서 출마해 당선됐다.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노고문은 의원회관과 지구당, 자치경영연구원 등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사무실 사이의 유기적인 정보교류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1998년 들어 구체적으로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강구했는데, 가장 먼저 검토된 것이 ‘전용선의 설치’였다.

    노고문의 집과 종로지구당, 그리고 여의도 자치경영연구원과 국회의원회관 등 노고문이 주로 머물고 참모진들이 활동하는 곳을 하나의 전용선으로 연결하자는 구상을 한 것이다. 2000년 총선에는 부산에서 출마할 생각을 하고 있었으므로 최종적으로 이 전용선은 부산 사무실까지 연결되어야 했다.

    이게 장난이 아니었다. 비용도 문제려니와 전용선으로 사무실을 연결해 프로그램을 공유하려면 프로그램 자체적으로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한 둘이 아니었다. 뭔가 새로운 방법은 없을까 하는 고민이 이어졌다.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 인터넷은 급속도로 확산됐고 초고속 인터넷망은 전국을 거미줄처럼 연결하고 있었다.

    결국 인터넷 통신망의 급속한 발전은 노고문 캠프의 고민을 저절로 해결해 줬다. 굳이 전송선을 설치하지 않아도 인터넷연결망이 노무현 캠프의 네트워크망을 연결해 줬던 것이다. 대신 새로운 골칫거리가 생겼다. 기껏 개발해놓은 ‘노하우2000’의 쓰임새가 줄어든 것이다. 인터넷 환경에 맞게 버전을 변경하지 않고서는 ‘노하우2000’의 상용화는 불가능해진 것이다.

    온라인상에서 정보와 자료를 주고받는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등장한 것도 노하우의 상용화를 막은 장애물이었다.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정색을 하고 만든 제품과 경쟁에서 이기지 않는 한 시장에서 성공을 거둘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노하우’는 노무현 캠프 내에서만 사용되고 있다.

    이상은 노무현 고문이 2000년 4·13총선에 출마하기 전의 이야기다. 노무현을 인터넷의 주인공을 끌어올린 팬클럽 노사모가 결성된 것은 4·13총선 직후다. 하지만 노고문은 4·13총선 탈락 이전부터 어떻게 하면 인터넷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인가를 꾸준히 고민해온 인물이다.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전, 이미 인트라넷 형태의 정보공유망의 설치를 고려했을 정도로 시대변화에 민감했던 것이다.

    오늘의 노무현 바람은 4·13총선 이후 사이버 팬클럽 노사모의 탄생으로 본격화됐지만 노무현 고문 자신은 오래전부터 변화하는 상황을 예측하고 스스로를 ‘디지털형 인간’으로 단련시켜왔던 것이다.

    노무현 고문진영에서는 당초 2002 대선에서 매체들이 차지하는 영향력의 순위를 ‘방송-신문-인터넷’으로 보았다. 하지만 인터넷 매체의 맹활약과 네티즌들의 호응이 높아가면서 매체 영향력 순위를 달리 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노고문 측은 적어도 ‘방송-인터넷-신문’ 순서로 영향력이 낮아지는 양상으로 변화할 것이며 지금 그 변화가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런 내부 분위기는 노고문의 언행에서도 엿볼 수 있다. 과거 정치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거대 신문매체에 대한 당당함이다. 노고문 지지자들은 그의 이런 태도에 매료되는 듯하다. 그런 당당함은 노고문에 대한 견실한 지지를 보여주는 인터넷 매체와 네티즌이라는 우군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닐까. 아무튼 노고문과 네티즌이 보여주는 선순환의 상승작용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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