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1호로 불리는 고품위(高品位) 히로뽕
- 마약산업 총괄하는 39호실
- 가짜담배 제조창으로 전락한 BAT(영국 담배회사) 북한공장
- 효능 좋은 북한産 비아그라
김정일(오른쪽), 김정은이 10월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 군 열병식에서 박수치고 있다.
권력승계와 통치자금
김정은이 이번에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오름으로써 군권 승계 절차는 마무리 단계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이 당 중앙위원에도 올랐으므로 당 권력 승계도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독재 권력을 유지하려면 통치자금이 필요하다. 북한 내 소식통으로부터 확보한 정보에 따르면 김정일은 김정은에게 통치자금을 이양하고 있다고 한다. 불법 통치자금 관리인이던 전 스위스 주재 북한대사 이철이 통치자금을 김정은에게 이양하는 작업을 하고자 2010년 3월 평양으로 복귀했다는 것이다.
북한 통치자금 상당 부분이 마약·위조지폐·가짜담배를 비롯한 불법 활동을 통해서 나온다. 북한은 지도자의 통치자금을 마련하고자 이와 같은 더러운 일을 서슴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김정일 통치자금을 김정은에게 이동하면서 자금의 원천인 불법 활동도 승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 권부에선 불법 경제 활동을 김정은 시대에도 지속할 것인지 검토했고 결국 계속할 수밖에 없다는 쪽으로 결론이 내려졌다고 한다. 불법 활동을 중단하면 합법 활동으로 통치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개혁·개방을 하지 않으면 합법적으로 대량의 통치자금을 확보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개혁·개방은 김정은 권력을 위태롭게 하거나 붕괴시킬 우려가 적지 않다. 북한 처지에선 개혁·개방을 통해 권력이 무너지는 것보다는 범죄 국가라는 오명을 쓰는 것이 오히려 낫다.
북한-중국 국경지역에서 히로뽕을 유통하는 이들이 사용하는 은어 중 ‘김정일 1호’라는 게 있다. 질이 가장 우수한 히로뽕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김정은 등장 이후 ‘김정은 1호’라는 제품이 생겨났다고 한다. 김정은 1호라는 은어는 북한이 김정은 시대에도 불법 경제행위를 계속하리라는 걸 나타내는 상징적 단어다.
김정은이 후계자로서 활동하기 시작한 2009년 전후로도 불법 외화벌이 활동이 끊이지 않았다. 외화벌이 활동을 수행하는 돌격대 중 하나가 국가안전보위부다. 북한 내 소식통은 “김정은이 2009년 9월부터 보위부로부터 직보(直報)받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보위부 안에 전용 사무실을 두고 지시를 내린다고 한다. 김정은이 외화벌이 활동에 개입했을 소지가 농후한 것이다.
김정은 1호 마약
2009년 2월27일 미국 국무부는 ‘2009년 국제 마약통제 전략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지난 6년간 북한 당국이 지시한 것으로 추정되는 마약거래 사례는 없지만 현재로선 당국이 후원하는 마약거래가 확실히 중단됐다는 증거도 불충분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UNDOC(유엔 마약·범죄 퇴치 사무소) 안토니오 마리아 코스타 국장 역시 같은 해 2월 교도통신 인터뷰에서 “최근 수 년 동안 북한이 마약 공급원 역할을 해왔다는 관행을 입증할 만한 근거가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복수의 북한 내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정부는 해마다 4000만달러 규모에 달하는 2t가량의 고품위(高品位) 히로뽕(순도 98% 이상)을 중국을 통해 전세계로 불법 유통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이 고품위 히로뽕은 브로커들 사이에서 김정일 1호라는 은어로 불린다. 김정일 1호라고 불리는 이유는 두 가지라고 한다. 하나는 이 히로뽕이 최상급 순도를 가진 덕분이고, 다른 하나는 히로뽕 판매 자금을 통치자금으로 사용해서다.
북한 내 소식통은 “국가기관(보위부가 중심)이 김정일 1호를 매년 평균 2t 넘게 거래하고 있으며, 압록강 하구인 평안북도 신의주, 용천 인근 서해에서 암거래 형식으로 중국 브로커들에게 밀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정일 1호 가격은 2009년 초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에서 1g당 20달러가량이었는데, 최근에는 2배 넘게 값이 올라 40~45달러에 유통된다고 한다. 북한이 1년 동안 거래하는 히로뽕의 시장가격은 적게 잡아도 4000만달러가 넘는다. 이 같은 추산은 개인이 제작해 해외(주로 중국)로 밀수하는 히로뽕은 제외한 것이다.
소식통은 “중국으로 밀반출된 김정일 1호는 각국 브로커들에 의해 가격이 곱절로 뛰어 거래된다”고 전했다. 랴오닝성 단둥에서 1㎏당 4만달러에 거래되는 김정일 1호, 김정은 1호가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에선 6만5000~7만달러, 홍콩에선 20만달러에 유통된다는 것이다.(도매가 기준)
미국 국무부 보고서와 다르게 북한 정권의 주도하에 마약 수출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2003년 봉수호(호주에 헤로인 150㎏을 밀반입한 혐의를 받고 나포된 북한 화물선) 사건 이후 북한은 유엔(국제연합)을 비롯한 국제사회 압력으로 양귀비 생산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1100억원 넘는 마약을 실은 봉수호가 감시망에 걸려든 데는 미국 정보기관 도움이 컸다고 한다.
마약산업 총괄하는 39호실
봉수호는 2006년 3월23일 호주 근해에서 격침됐다. F-111 전폭기가 발사한 유도폭탄이 배를 가라앉혔다. 호주 공군 훈련용 목표물로 생을 마감한 것. 알렉산더 다우너 당시 호주 외무장관은 “봉수호 격침은 마약 유통과 관련해 북한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2007년 3월 유엔마약협약에 가입하면서 마약 생산을 중단했다고 밝혔으나 지금도 당국의 방조, 묵인 아래 마약을 생산한다. 북한산 마약은 북한 내 생산지에서 국경으로 이동→전진기지 격인 중국에 보관→제3국으로 밀수출하는 3단계 경로를 거쳐 유통된다.
북한은 1990년대 초반 소련 및 동구권 사회주의가 몰락하면서 경제 위기는 물론 체제 위협에 직면했다. 국가 주도 마약 생산은 위기를 극복하고, 체제를 유지하고자 시작한 것이다.
북한은 양귀비를 원료로 하는 헤로인 계통과 북한에서 빙두라고 부르는 히로뽕을 주로 제조한다. 마약 비즈니스는 김정일 비자금을 관리하는 39호실이 총괄한다. 양귀비는 함경도, 양강도 산간지역에서 재배된다.
내각의 보건성 산하기관 및 무역회사가 중국에서 히로뽕 원료물질(에페드린, 무수초산)과 헤로인 원료물질(무수초산, 아세톤)을 수입해 함경도, 평안도에 터 잡은 제약공장이나 연구소에서 마약을 제조한다.
부산항-나진항을 오가던 중국 선적 화물선 추싱호. 마약, 위조담배 밀수출에 이용됐다.
최근엔 보위부와 결탁한 대(對)중국 무역업자들이 중국 내 화학공장에서 원료물질과 제작기구를 구입해 북한 내 마약 제조자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기술자들은 화학공장이 밀집한 함경도·평안남도 지역 내 아파트 형태의 자가에서 마약을 제조하고 있으며 보위부 인사들은 이를 묵인하는 대가로 무역업자들로부터 이익금의 절반가량을 뇌물로 받는다.
마약 밀반출엔 당국자·무역업자·선원이 관여한다. 중국에 체류하는 공관원이나 외화벌이 무역회사 직원도 김정일에게 바치는 충성자금을 마련하거나 재산을 축적하고자 마약밀매에 가담한다. 중국에 나와 있는 북한 일꾼은 자력갱생한다. 급여를 주고 일을 시키는 게 아니라 독립적으로 돈을 벌어 살고 정해진 돈을 국가에 입금해야 하는 곳, 그래야 훈장 받고 영웅 되는 곳이 북한이다. 마약 거래도 자력갱생 수단인 것이다.
한국으로도 밀반출
북한에선 마약을 얼음, 현대약이라고 부른다. 콩알처럼 생긴 것은 총석, 납작하게 만든 것은 판사, 손가락을 닮은 것은 막돌이라고 한다.
중국 베이징(北京), 선양(瀋陽)에서 수시로 보위부 인사(중국에 나와 있는 경제 일꾼 상당수가 보위부 소속이다)를 만나는 한 대북사업가는 이렇게 말했다.
“북한 마약 남용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중국에서 마약 단속이 심해져 판로가 줄어들면서 북한에서 유통되는 마약이 늘었다고 한다. 마약 제조업자가 밀집한 곳은 함흥이라고 한다.”
8월9일 북한 당국은 ‘마약단속통제를 강화할 데 대한’이라는 제목이 붙은 포고문을 발표했다. 마약 복용자를 총살에 처한다는 게 요지다.
북한 거주 소식통은 “함흥에서 얼음, 빙두를 주로 생산하는데 최근에는 어른뿐만 아니라 중학생까지 공공연히 마약을 하고 있다. 당국이 단속에 나선 것은 얼음, 빙두로 대마초는 북한에서 마약으로 취급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북한 국경경비대가 중국 내 조선족·탈북자와 결탁해 마약을 중국으로 밀반출하는 일도 잦다. 이렇게 유통된 마약이 국제 마약 밀매 조직을 통해 한국, 일본으로도 건너온다. 최근 한국에선 인터넷을 통해 마약이 거래된다. 그중 일부가 북한산이다.
2009년 4월 한국인 정모씨가 부산 지역 폭력배와 일본 야쿠자에게 공급할 계획으로 조선족 김모씨로부터 북한산 히로뽕 500g을 구입해 밀반입하다 적발된 일이 있다. 그는 중국인 보따리상을 통해 다롄(大連)-인천 여객선을 이용해 히로뽕을 들여오다 꼬리가 잡혔다. 2010년 1월엔 중국에서 북한산 마약을 아기 기저귀에 숨겨 밀반입한 후 국내에 유통한 탈북자 부부와 한국인 2명이 적발됐다.
‘2009년 국제 마약통제 전략보고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한국은 마약 남용 문제가 없다는 명성 때문에 마약 거래업자들이 마약을 옮겨 싣는 장소로 부각되고 있다. 한국 최대 항구 중 하나인 부산은 한국을 불법 마약을 선적하는 매력적인 장소로 만들고 있다.”
북한산 마약은 중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1회 투입 분량 히로뽕이 8만~10만원에 거래된다.
정보당국 관계자는 “한국 마약 조직은 거의 모두 중국으로 옮겨갔다. 이들이 다루는 물건엔 북한산도 당연히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 똬리 튼 한국 마약 조직은 중간 판매책을 활용한 일대일 방식에서 인터넷을 통한 박리다매 방식으로 밀매 수법을 바꿨다. 중국에서 수집한 마약을 특수 포장해 국제우편을 이용해 한국으로 배달한다. 마약 조직엔 중국 사정을 잘 아는 조선족 혹은 탈북자가 파트너로 참여한다.
대북사업가 K씨는 “탈북자와 조선족이 중국조직과 결탁해 북한산 마약을 한국으로 유통한다는 걸 북한 관료들도 잘 알고 있다”고 전했다.
달러 찍어내는 926호 공장
필립 크롤리 미국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는 2010년 8월2일 “북한이 외화벌이 수단으로 달러 위조 활동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슈퍼노트라고 불리는 100달러 위조지폐 제조·유통은 북한의 주요 외화벌이 사업 중 하나다.
북한은 1980년대 외화벌이 차원에서 위조 달러 생산을 본격화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초정밀 위조달러, 즉 슈퍼노트를 생산하는 수준으로 기술이 발전했다.
평남 평성시 소재 평성상표인쇄공장에서 시변색 잉크(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특수 잉크) 요판(凹版)인쇄 방식을 확보해 육안으로는 진위 구별이 불가능한 슈퍼노트를 연간 1500만~1700만달러가량 생산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평성상표인쇄공장은 평성시 삼화동 산골짜기에 위치하는데 1970년대 말부터 화폐생산을 해왔다. 이 공장은 내각 재정성 조선중앙은행 산하에 있지만, 인민보안성 통제도 함께 받는 특수기관이다. 926호 공장으로도 불린다. 생산기술 노동자 120여 명과, 보안성·보위부 인사들이 함께 일한다. 이 공장을 관할하는 특수부대는 중대 규모로 알려진다.
북한 고위급 소식통은 926호 공장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모 기업소가 2010년 2월 중국 옌지(延吉) 주재 회사를 통해 스위스에서 달러 위조용 잉크와 종이를 수입했다.”
중국 회사를 통해 스위스에서 수입한 잉크, 종이가 두만강 주변 북한-중국 국경을 통해 북한으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잉크, 종이 총액이 220만달러가 넘는다고 소식통은 밝혔다. 미국 국무부 전 북한실무팀장 데이비드 애셔가 2005년 11월15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북한이 슈퍼노트를 1장 제작할 때 소요되는 비용이 40센트 이하”라고 추정한 것을 바탕으로 계산하면 이 종이, 잉크로 100달러권 위조지폐 55만장을 제작할 수 있다.
북한은 해외체류 공관원, 상사 주재원을 통해 자국에서 생산한 위조지폐를 유통시킨다. 각종 대금이나 출장 경비에 위조달러를 끼워 넣기도 한다. 각국의 중간도매상에게도 넘긴다. 북한산 슈퍼노트는 100달러권 1매당 30~40달러에 판매된다. 유통과정에서 직·간접으로 국제 범죄조직이 연계된다.
스위스産 잉크, 종이 수입
슈퍼노트는 1989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처음 발견됐다. 1994년에는 외교관 여권을 소지한 북한 무역회사 간부들이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에 슈퍼노트 25만달러를 입금하려다 체포됐다.
미국 정부는 1990년대 탈북자 진술을 토대로 슈퍼노트 출처를 북한으로 지목하고, 북한 외교관·상사 주재원의 위조달러 유통을 추적했으며 관계부처 합동조사팀인 불법행위방지구상(IAI)을 2003년 조직해 정밀 조사에 나섰다.
미국이 북한 위조지폐 제작 관련 증거를 외부에 공개하며 유관 국가와 정보공유·공조 강화에 박차를 가한 것은 2006년 1월 이후다.
2008년 4월 미국 재무부는 상원 재무위 보고에서 “2005년 BDA 제재 이후에도 위조지폐용 인쇄용품을 구매하려는 북한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면서 “북한산으로 추정되는 위조달러가 지속적으로 적발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에서도 북한산 위조달러가 두 차례 적발됐다.
2004년 6월 검찰이 위조지폐 유통조직 일당을 검거해 위조미화 7만달러를 압수한 적이 있다. 이 돈은 베이징 주재 북한 공관원이 조선족 차모씨에게 활동비로 지급한 10만달러 중 일부로 드러났다. 검찰은 북한이 단둥 고려호텔 내 무역사무소를 위조지폐 유통 거점으로 활용한 사실을 확인했다.
2008년 11월 부산에서 일어난 북한산 슈퍼노트 유통사건은 유명하다. 한국인 위조지폐 밀매 조직이 다롄에서 밀반입한 100달러 위조지폐 1만장을 환전업자에게 판매하려다 수사망에 걸린 사건이다. 수사당국이 적발한 슈퍼노트는 잉크·지질을 대폭 개선해 은행 위조지폐 감별기를 무사통과했으며, 전문가들도 진위를 판별하기 어려웠다. 전문가들은 해외 공관원, 상사원을 통해 유통하려다 압수된 과거의 북한 위조지폐들과 동일한 원판에서 제조한 것으로 판단했다.
북한은 1998년부터 아시아 소재 가짜담배 제조업체를 유치했다. 이들 업체와 합작공장을 설립하는 방식으로 가짜담배 생산에 나섰다. 2000년대 초반 가짜담배 생산이 절정에 이르렀다. 미국, 유럽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감시를 강화하면서 2005년부터 가짜담배 생산은 과거보다 위축된 것으로 알려졌다.
왼쪽 의 추정치는 익명을 요구한 항만 관계자 인터뷰를 통해 작성한 것이다. 에 명시한 예상 수익금은 한국에 반입을 시도하거나 한국을 경유하려다 적발된 것을 돈으로 환산한 것이다. 북한에서 실제로 생산한 가짜담배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것이다.
북한産 ‘MILD SEVEN’
필립모리스, BAT 등이 공동으로 조사해 작성한 보고서는 북한이 10~12개 공장에서 연간 가짜담배 410억 개비를 생산해 5억~7억달러의 수익을 거두는 것으로 추정한다.
북한이 정교한 가짜담배를 제작할 능력을 가진 데는 다국적 담배회사 BAT 역할이 컸다. BAT는 2001년 북한에 공장을 세워 담배를 생산했다. BAT가 60%, 조선서경천연물무역회사가 40%를 출자했다. 합영회사 이름은 대성BAT. 배종렬 수출입은행 선임연구위원에 따르면 2005년 미국이 BDA 제재에 나섰을 때 BAT가 대동신용은행에 예치한 자금 400만달러가 동결됐다. BAT는 설비를 남겨둔 채 북한에서 철수했다(철수 시기는 확인되지 않는다. BAT는 지금도 북한 투자 내용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북한은 BAT로부터 전수받은 노하우, 설비를 바탕으로 이 공장에서 A급 가짜담배를 생산한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한국 신발업체는 세계 유명 브랜드 운동화를 OEM(주문자상표부착방식)으로 생산한다. 남북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아 개성공단이 폐쇄되면 북한이 짝퉁 운동화를 만들어 돈을 벌지도 모를 일이다.
북한에서 생산한 가짜담배는 주로 중국, 동남아시아, 러시아로 밀수출돼 유통되고 있다. 북한은 그중 일부를 남(부산)-북(나진)운항 화물선인 추싱호를 활용해 밀수출했다. 한국 정부는 2003~08년 추싱호를 통해 부산항에 들어온 팔말, 마일드세븐을 비롯한 가짜담배 678만 갑을 적발했다. 추싱호는 현재 운항을 중단했다.
중국 선적 화물선 추싱호에 실은 가짜담배는 유아용품, 의류, 완구 품목으로 위장해 부산항에서 환적 처리한 후 동남아시아, 미주 지역으로 수출됐다. 부산을 환적지로 이용한 것은 한국으로 선적지를 세탁함으로써 수입국 세관 검색·단속을 피하려는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세계 컨테이너 운항 체계에 포함돼 있지 않다. 북한 컨테이너는 한국 러시아 중국 홍콩에서 환적한 뒤 제3국으로 보내진다.
북한은 유럽 소재 위조담배 조직과 연계해 유럽산 담배원료를 반입한 후 가짜담배를 제조·가공해 유럽지역으로 다시 밀수출하는 수법도 사용하고 있다. 유럽지역 범죄조직이 북한을 가짜담배 생산기지로 활용하고, 북한 당국이 이를 묵인하고, 협조하면서 외화를 버는 것이다.
북한 당국은 가짜담배 유통을 통한 외화자금 획득에도 개입하고 있다. 해외 주재 북한 공관원이 위조담배를 밀수하다 적발된 일도 있다. 2009년 11월 스웨덴 세관은 위조담배 1만1500갑을 스웨덴으로 밀반입하려고 한 북한 외교관 2명을 체포했다.
효능 좋은 북한産 비아그라
중국 항구는 북한산 가짜담배가 중국산으로 세탁돼 수출되는 루트다. 중국은 가짜담배 천국. 정교하게 위조한 말버러, 마일드세븐, 던힐, 블랙데블이 1갑에 5~11위안(850~1900원)에 팔린다. 중국산, 북한산 가짜담배가 뒤섞여 유통된다.
“가짜담배는 아동복, 농산물 등으로 수입 품목을 허위 신고한 뒤 커튼치기 방식으로 들어온다”고 인천세관 관계자는 말했다. 알박기라고도 하는 커튼치기는 세관에 신고한 상품을 컨테이너 양쪽과 윗부분에 싣고 중앙에 가짜담배를 숨기는 것을 말한다. 세관은 컨테이너 100개당 2~3개밖에 뜯어볼 수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물류가 마비된다고 한다.
한국과의 무역이 활발한 산둥(山東)성 옌타이(煙台)와 웨이하이(威海) 암시장에선 가짜담배뿐 아니라 북한산 발기부전치료제도 팔린다. 정교하게 위조한(치료효과가 실제로 있다) 비아그라나 씨알리스 한 상자가 소매가격으로 200위안에 거래된다. 비아그라를 비롯한 위조약품도 북한 외화벌이 수단 중 하나다.
재래시장 골목이나 인터넷을 통해 불법으로 팔리는 비아그라의 상당수가 중국에서 들여온 가짜다. 한국에서 유통되는 가짜 비아그라는 중국산, 북한산이 뒤섞여 있다. 정교하게 위조한 북한산 비아그라는 정품의 3분의 1 가격에 팔리기도 한다.
북한산 가짜 비아그라는 보따리상을 통해서도 한국으로 밀반입된다. 술병에 비아그라를 담아오는 수법도 활용된다고 한다. 보따리상 한 명이 운반하는 비아그라는 소량이지만, 수거책이 거둬들이는 양은 상당하다.
가짜 의약품을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상 국가’에서 위조 의약품을 보기 어려운 건 못 만들어서가 아니라 특허 제도 탓에 안 만들어서다.
지금이, 버릇 고칠 때
일각에선 김정은이 집권하면 김정일 시대와는 다르리라는 기대 섞인 관측을 내놓는다. 나이가 젊은데다 외국 문물에 밝다는 걸 근거로 제기한다. 이 같은 전망은 환상일 소지가 적지 않다. 국제사회가 북한이 저지르는 불법 활동을 제재하지 않으면 사악(邪惡) 산업이 김정일→김정은으로 대를 이을 것이다. 국제사회가 공조해 북한 정권의 통치 자금줄을 추적, 압박하는 지갑 정책(Pocketbook Policing)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정일이 김정은으로 권력을 이양하는 지금이 북한의 버릇을 고칠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