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병이득 일장난구(千兵易得 一將難求)
강군 만들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군사태세 강화, 정치적 중립, 신분보장 시급
누가 봐도 임무 수행 능력에 토대 둔 인사여야
![2024년 9월 27일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에서 열린 제1회 군인가족의 날 기념식에서 한 군인이 아들의 손을 잡고 있다. [뉴시스]](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SHINDONGA/Article/67/bc/0f/ec/67bc0fec09c1d2738276.jpg)
2024년 9월 27일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에서 열린 제1회 군인가족의 날 기념식에서 한 군인이 아들의 손을 잡고 있다. [뉴시스]
이러한 세론과 걱정이 출렁이던 2024년 12월, ‘천병이득 일장난구(千兵易得 一將難求)’라는 글귀를 우연히 읽었다. ‘1000명의 병사는 얻기 쉬워도 한 사람의 장군은 구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한눈에 들어왔고,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조계종 월하 전(前) 종정이 생전에 육군군수사령부를 방문했을 때 도자기 접시에 새겨 사령관에게 건넨 글이다. 글귀가 새겨진 도자기 접시는 현재 경주 코모도호텔 박정희 대통령 기념 공간에 전시돼 있다.
필자는 관련 지식을 보완하려고 인터넷으로 글귀의 출처를 검색해 봤다. 원나라 때부터 전해진 ‘천군이득 일장난구(千軍易得 一將難求)’라는 격언을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월하 종정은 왜 이를 육군군수사령관에게 전했을까.
조계종 종정, 총무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북녘에 있는 금강산 유정사, 휴전선 부근 건봉사 등 전국 사찰에서 수행한 그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의 고통을 온몸으로 감내했다. 나라 없는 고통과 전쟁의 비극은 산문 스님들의 수행을 피해가지 않았다. 그 고통의 역사를 버텨온 고승이기에 군부대를 방문해 제대로 된 장군이 되라는 메시지를 남긴 것이 아닌가 싶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장군에 대한 집단적 우려가 형성돼 있다. 심각하다. 안보를 위해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고급장교에 대한 국민의 불만과 걱정은 군사력, 정신 전력에 고스란히 반영되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고급장교 집단은 이러한 국민적 의심을 해소해야 할 책임이 있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정치권은 대승적 결단을 내려 군통수권자의 인사권을 최대한 절제해 ‘군인사법’이 보장한 고급장교의 법정 임기를 제대로 보장하자. 군은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높은 계급’에서 찾지 말고, 주어진 임무 완성 ‘능력’에 집중해야 한다.
군 간부 법적 임기, 정권교체마다 임의 단축
고급장교의 꽃은 장군이다. 육·해·공군 장군들의 수장이 각 군 총장이다. 각 군 총장을 지휘하는 상위 계급은 합동참모본부(이하 합참)의장뿐이다. 합참의장은 총장을 지낸 사람이나 장성급 장교 중에서 국방부 장관의 추천과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합참의장은 국회 청문회 절차도 거쳐야 한다. 이러한 복잡한 절차는 전쟁 태세를 준비하고, 유사시 전쟁 임무를 가장 잘 수행하는 장군을 선택하기 위해서다.
군인사법에 따르면 합참의장, 각 군 총장의 임기는 2년으로 한다고 명확히 규정돼 있다. 합참의장의 경우에는 전시·사변 또는 국방상 필요에 따라 1년 이내 범위에서 임기를 연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육·해·공군 총장의 임기는 2년으로 규정돼 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최고 군사지휘관의 법적 임기는 2년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난 30년 동안 육·해·공군 참모총장의 평균 임기는 1년 6개월 안팎이다. 이 중 육군총장은 1년 4개월에 불과하다. 2년 임기를 규정한 군인사법은 철저히 무시됐다. 군인사법을 무시해도 되도록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된 철통 논리는 ‘군통수권자의 인사권 보장’이다. 대통령의 인사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논리가 군인사법이 규정한 법의 효력을 정지시킨 것이다. 대단히 잘못된 관행이다.
그래서 5년 단임의 새 정부가 들어서면 군의 수장 교체를 자연스럽게 예상하고, 받아들인다. 정권교체 주기가 아니더라도 총장을 1년 남짓하고 나면 교체설에 당사자들은 전전긍긍한다. 필자는 이런 모습을 가까이서 너무나 많이 봐왔다. 심각한 부작용이 있는데, 우리 모두는 대통령 인사권 행사 논리 뒤에서 모른 체한다. 대통령 인사권 행사가 군인사법이라는 실정법 규정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임기 못 채우는 관행의 부작용
군인사법은 제1조에 “군인의 책임 및 직무의 중요성과 신분 및 근무조건의 특수성을 고려해 그 임용, 복무, 교육훈련, 사기 및 신분보장을 하기 위해서”라고 제정 목적을 적시하고 있다. 각 군 총장의 ‘법적 임기 보장’을 키워드로 해서 군인사법 제정 정신을 재해석하면 “임기 중에 △소신 있는 군사태세 강화, △정치적 중립, △신분보장”이라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총장 임기를 단축하는 나쁜 관행이 △안정적 군사태세 강화 기회 실기, △생존형 정치화, △비군사 분야 신분보장 여건 탐색이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야기하는 것이다.
그 부작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짚어보자. 첫째, 평균 18개월 임기만으로는 제대로 된 군사태세 강화를 설계하고 추진하기에 역부족이다. 18개월도 안정적으로 보장된 기간이 아니다. 임명 직후부터 임기에 대한 불안을 머리에 이고 근무한다. 실제 임기를 1년도 채우지 못한 총장이 다수 있다. 군 조직보다 훨씬 규모가 적은 공공기관을 운영하는 필자의 현재 경험을 감안해도, 각 군 CEO가 그 기관에 변화 동력을 만드는 데 18개월은 절대 부족하다.
군의 지휘관은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지휘자는 음악이론에 정통해야 하고, 모든 악기의 특징과 연주자들의 장단점을 파악해 통달해야 한다. 아무리 준비된 지휘관이라 하더라도 ‘불안한 18개월 임기 동안’ 전력 구성 요소의 특장에 통달하고 유사시 전력을 최적의 방법으로 운용하기 힘들다. 특히 새로운 전력을 증강하기 위해서 소요 제기에서 검증, 예산 획득, 생산, 배치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거의 10년에 달한다. 최소한 한 단계라도 제대로 진행하려면 법적 임기 2년은 안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그 간부가 아니라 우리 군과 국가를 위해서다.
둘째, 정치적 중립 원칙이 상처받을 수 있다. 정치적 중립은 고급장교단의 노력만으로 확보할 수 없다. 정치권은 고급장교단이 국가에 대한 충성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보장해 줘야 한다. 고급장교 인사 내용에 대해 “누가 봐도 임무 수행 능력에 토대를 뒀다”는 군내부의 공감대를 만드는 인사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적어도 유니폼을 입은 고급장교단 인사에 대한 정치권의 개입이 최소화돼야 한다. 각 군 총장을 비롯한 소수의 고급장교들이 불안한 임기에 전전긍긍하며 이를 스스로 해소하기 위해 특정 정치인들과 소통한다면 정치적 중립은 상처받을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군인사법을 존중하는 범위 안에서 군인사권을 행사하고, 군은 임무에만 집중하는 정상적 관행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어렵지만 정치적 중립이라는 역사적 요구를 구현하기 위해 정치권이 먼저 이러한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전역 후 진로를 현재 업무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탈이 발생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경향까지 있다. 각 군 총장뿐만 아니라 장성급 장교도 계급정년이 보장돼 있다. 중장 4년, 소장 6년, 준장 6년이다. 총장이 법적 임기를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각급 장성들도 법이 보장한 정년까지 신분을 보장받기가 힘들다. 자연히 명예전역이라 이름 붙여놓고 시행하는 조기 전역 이후의 진로를 걱정하게 된다. 걱정이 앞설 경우 자연히 임무에 소홀해지고, 사회의 부적절한 유혹에 쉽게 약해질 수 있다.
계급보다 군인 정신 앞세운 몽클라르 장군
군 간부들은 랄프 몽클라르(Ralph Monclar·1892∼1964) 프랑스 장군이 조국과 인류를 위해 보여준 군인 정신에서 우리 안보를 굳건히 할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몽클라르 장군은 프랑스 정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중장 계급을 버리고, 중령으로 강등 자원해 유엔 평화 정신을 구현하고자 6·25전쟁에 참전했다.
몽클라르는 제1차,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할 당시 프랑스의 3성 장군이었다.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되자 영국으로 망명해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고, 그때 사용한 가명이 몽클라르다. 6·25전쟁 당시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이 남긴 후유증을 수습해야 하는 등 국내 사정으로 군사고문단만 우리나라에 보내려 했다. 그러자 몽클라르는 600여 명 부대원을 모아 중령 계급에 대대장 직위로 한국전에 참전하려고 했다.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 3성 장군의 자존심을 거론하며 만류했다. 그는 정부를 설득했고, 정부는 끝내 그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가 한국전에 참전한 명분은 유엔 헌장에 기초한 군인 정신이다. 참전을 앞두고 임신 중인 아내에게 “자유를 위한 여정은 군인의 성스러운 본분”이라는 말을 남겼다. 참전을 앞두고 하마터면 유복자가 될 뻔했던 그의 아들 롤랑 몽클라르 부부가 2024년 7월 4일 전쟁기념회를 찾았다. 롤랑은 당시 아버지의 참전 배경에 대해 “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창설된 유엔이 처음으로 결정한 유엔군 파병에 프랑스가 참전해야, 안보리 상임이사국 프랑스의 국제적 위상을 지킬 수 있다고 여겼다. 본인 스스로 유엔군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고 그 자부심이 대단했다”고 전했다. 가슴이 뭉클했다.
한국전에 참전한 몽클라르는 1951년 2월 지평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미군과 프랑스군 5600명은 3만 명에 이르는 중국군을 상대로 사흘 밤낮에 걸친 혈투를 벌여 승리하고, 중국군은 패주했다. 1951년 1월 4일에 서울을 다시 내주고 1951년 3월 16일에 서울을 다시 수복한 6·25전쟁 일지를 보면 지평리전투 승리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를 알 수 있다. 당시는 장진호 전투, 1·4후퇴 분위기 속에서 트루먼 미국 대통령을 제외한 상당수 유엔 참전국 지도자들이 대한민국의 망명정부 수립 불가피론을 제기할 때였다. 지평리 전투는 반전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 몽클라르 장군이 그 포인트를 만든 것이다.
몽클라르 장군에게서 우리 군 간부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군인의 진정한 명예는 최고계급으로 승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요구하고 필요로 하는 대의와 명분에 봉사하고, 주어진 임무를 차질 없이 수행하는 데 있다. 갓 창설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프랑스의 6·25전쟁 참전을 역설하고, 스스로 중장 계급을 떼고 중령으로 미군에 배속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임무를 수행한 그의 의연한 결심 과정에서 군 간부, 장군의 존재 이유를 찾아야 한다. 그의 주장을 받아들인 당시 프랑스 국방부의 관용적 태도도 본받을 만하다. 몽클라르 장군을 생각할 때마다 백의종군한 이순신 장군이 6·25전쟁에서 부활한 것 같은 기시감이 든다.
군 간부 모두가 몽클라르, 이순신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계급 지상주의, 진급 지상주의가 절제된 빈 곳에 참 군인 정신이 자리 잡아야 군과 국가가 강해진다.
사기충천한 강군과 장군을 위하여
2025년 들어서 북측의 오물풍선 소식은 잦아들었다. 군의 적절한 대응이 한몫했다. 어려운 시국에서도 우리 군은 정위치에서 북한의 도발을 잘 억제하고 있다. 우방과의 군사외교 플랫폼도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해 온 K-방산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우선주의를 밀어제치고 손을 내밀 정도로 세계 방산의 게임체인저로 성장, 황금기를 맞고 있다. 국방 분야 성과는 역대 우리 군 간부들의 헌신과 집념의 산물이다.
한편 북측은 약 1억 달러라는 예산을 들여 제작한 ‘72시간’이라는 장편 영화를 2024년 1월부터 국내외에 상영하고 있다. 북측 영화가 설정한 ‘72시간’은 6·25 개전 초기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한 시간을 말한다. 상투적 역사 왜곡인 북침설을 강조하면서 서울을 점령한 사실을 자랑하고, 당시 북측 일부 장군의 아집과 잘못된 지도, 자질 때문에 한반도 통일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내용이다.
결론은 김정은에게 절대 충성하는 군대를 만들자는 것이다. 왜 북측은 현재 북측 장군의 자질, 전략적 판단을 향상하자는 캠페인성 영화를 만드는 데 1억 달러를 사용하고, 서울 점령 72시간을 환기시킬까. 김정은은 여전히 ‘한반도 두 개의 국가론’을 앞세워 국제사회에 대해 무력 적화통일을 포기한 것처럼 위장한다. 그러면서 핵무기를 기반으로 한반도 전체를 공산화하려는 임무를 북측 장군들에게 세뇌, 숙지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사회, 정치권은 우리 군 간부의 사기를 충천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치권, 국회가 앞장서서 군 간부의 법적 임기 보장을 선언하자. 군 스스로도 몽클라르 장군의 군인 정신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면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군이 정상화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군 간부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검증되지 않은 주장은 절제할 필요가 있다. 군통수권자가 인사권 행사를 절제하고, 군 간부 진급 지상주의를 절제하면 비우는 공간이 생긴다. 그 공간에 건강한 고급장교 문화가 자랄 수 있다.
월하 종정은 “벼슬은 대를 이어 문무를 겸하고, 충효는 집에 전해져 자손이 흥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좋은 문화, DNA를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다. 좋은 군대 문화, 고급장교 문화를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국회 국방위원 시절에 군 간부의 법정 임기를 보장하려는 법안을 제출한 적이 있다. 군통수권 인사 제한이라는 벽 앞에 좌절된 아픔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지금이 법적 임기를 보장하는 입법 조치를 취할 적기다. 힘든 우리 군을 응원하자.

● 1961년 출생
● 부산대 정외과 졸업, 경북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
● 국방부 차관, 20대 국회의원
● 現 전쟁기념사업회 회장, 국민대 석좌교수, 한중안보평화포럼 회장
● 저서 : ‘백승주 박사의 외교이야기’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