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소명’이라는 말, 美 트럼프와의 통화
정부·기업 핵심 관계자들과 ‘국익 퍼스트’ 회의
범여권 후보 지지도 단박에 1위…‘대망론’ 키워
‘영남이 선택한 호남 후보’ 가능성…‘어게인 노무현’
“‘권한대행’만 떼어주면 되는 것 아니냐”

4월 14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시스
‘마지막 소명’ 두고 문해력 테스트
한덕수 권한대행은 4월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미국발(發) 통상전쟁 대응과 관련해 “국무위원들과 함께 저에게 부여된 마지막 소명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 정부와 본격적인 협상의 시간에 돌입했다”며 “정부와 민간의 대응 역량을 총결집해 국익을 지켜나가는 데 사력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라며 “각 부처 장관들은 국익과 국민만 생각해 미국 측이 제기하는 각종 비관세 장벽 및 협력 프로젝트에 대한 전략적 대응 방안을 구체화해 달라”고 당부했다.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한 대행이 말한 ‘마지막 소명’은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국익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는 ‘다짐’이자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더욱이 한 대행은 헌법재판소(헌재)가 탄핵을 기각해 직무에 복귀한 3월 24일에도 대국민담화를 통해 ‘마지막 소임’을 강조한 바 있다. 당시는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결과가 나오기 전이어서 한 대행이 직무에 복귀하면서 ‘공직자’로서 흐트러진 국정을 바로잡겠다는 원론적 의미로 해석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이 헌재 탄핵심판 ‘인용’으로 파면되고 6월 3일 대선 투표일이 확정되면서 한 대행의 ‘마지막 소임’에 대한 새로운 정치적 해석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출마설’ 도화선 된 美 트럼프와의 통화
‘한덕수 대망론’을 촉발한 계기는 한 대행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4월 8일 통화한 내용이 흘러나온 것과 무관치 않다. 한미 정상 간 통화를 앞두고 누군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 대행을 “한국의 유력 대선후보”로 소개했고, 통화 때 트럼프가 한 대행에게 “대통령에 출마하느냐”고 질문한 것으로 알려진 것이다. 더욱이 한 대행이 “아직 결정된 바 없다”며 애매모호하게 답변한 내용까지 흘러나오며 출마설에 불이 붙었다. ‘출마 생각이 없다’고 딱 잘라 말하지 않고 ‘결정된 바 없다’고 애매하게 답함으로써 출마 가능성을 열어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0일 CBS라디오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 대행에) ‘대통령 출마하냐’고 물었을 때 안 할 것이면 ‘안 한다’고 단호히 말하면 될 텐데 ‘아직 결정된 바 없다’는 식으로 얼버무린 것을 보면 ‘한덕수 플랜’이 윤석열 시나리오와 연출로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박 의원은 “한 대행의 뒷심이 무르다”며 “국민의힘 싸움쟁이들, 홍준표 전 대구시장,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이런 분들한테 못 견딘다”며 무소속 출마 후 단일화 시나리오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여기에 최근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단박에 수위권을 형성하는 국민적 지지도 한몫한다. 4월 13~14일 ‘여론조사공정’이 실시한 ‘범여권 대선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한 대행은 13.5%로 1위를 기록했다. 출마 의사를 밝히지도 않은 ‘외부인’이 1위에 오른 것이다. 이어 김문수 전 장관 13.1%, 한동훈 전 대표 10.5%, 홍준표 전 대구시장 6%, 나경원 의원 5.3%, 안철수 의원 4.3% 순이었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는 역선택 방지 룰에 따라 국민의힘 지지층과 무당층 지지율만 취합한다. 따라서 이 기준을 적용하면 한 대행 지지율은 29%로 더 높아진다. 김문수(22.3%), 한동훈(16%), 나경원(11.1%), 홍준표(9.9%), 안철수(3.9%) 순이다(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한 대행은 4월 14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경제안보전략TF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 일본, 인도와 같은 3개국과는 ‘즉각 협상을 진행하라’고 지시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하루이틀 사이에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관련 한미 간 화상회의가 있을 것”이라며 “모든 분야에서 한미가 협상 체계를 갖추고, 이른 시일 내 구체적인 내용을 도출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할 것 같다”고 예고했다.
경제안보전략TF, 그리고 대정부질문 불참
한미 통상 협상 과정에 우리 기업이 겪을 어려움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 당국이 협상 체계 구축에 만전을 기하라는 의례적인 얘기로 들을 수 있지만,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한 대행의 ‘마지막 소명’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까지 더해지면서 이날 한 대행의 ‘국익 퍼스트’ 발언은 여러 정치적 해석을 낳았다.이날 회의에는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방기선 국무조정실장,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박성택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 강인선 외교부 2차관, 성태윤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 등 정부 핵심 관계자들은 물론 윤창렬 LG글로벌전략개발원장, 김원경 삼성전자 사장, 박일준 대한상의 부회장,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위원장, 김동욱 현대차 부사장도 참석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한 대행이 경제안보전략TF를 주재한 시각, 국회에서는 정치·외교·통일·안보에 관한 대정부질문이 진행됐다. 만약 대통령 권한대행이 아니었다면 한 대행은 국무총리로서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한 대행의 대정부질문 불참을 두고 “헌법을 무시하는 것인지, 국회를 무시하는 것인지, 국민을 무시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한 대행은 김영삼 정부에서 특허청장·통상산업부 차관을, 김대중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청와대 정책기획수석·경제수석을 지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국무조정실장·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거쳐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주미대사를 거쳐 한국무역협회장을 지냈고, 윤석열 정부 들어 다시 국무총리에 기용됐다. 보수, 진보 정권 할 것 없이 ‘통상 전문가’이자 ‘행정의 달인’인 그를 중용한 것이다.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한 대행이 출마해야 하는 이유로 ‘국정 안정’과 ‘국정의 연속성’을 꼽는다. 당직을 맡고 있는 한 인사는 “흐트러진 국정을 신속히 바로잡으려면 한 대행이 출마해 국민 선택으로 ‘권한대행’을 떼어주는 게 최선”이라고 주장했다.
영남이 선택한 호남 후보…‘어게인 노무현’
한 대행이 호남(전북 전주) 출신이라는 점도 ‘이재명 대항마’로 유리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과거 ‘호남이 선택한 영남 후보’ 콘셉트로 노무현 대통령이 탄생한 것처럼 6·3대선에서 대구·경북(TK)과 부산·울산·경남(PK) 등 영남 유권자들이 호남 출신 한 대행을 ‘대표선수’로 선택할 경우 ‘영남이 선택한 호남 후보’라는 점에서 ‘어게인 노무현’이 될 수 있지 않으냐는 것이다. 즉 한 대행이 호남 출신이라는 점에서 범여권 다른 후보에 비해 호남에서 상대적으로 더 많은 득표를 기대할 수 있어 ‘필승 카드’가 될 수 있다는 논리다.대통령 궐위로 치러지는 이번 대선은 당선이 확정되자마자 곧바로 대통령으로서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 대행이 ‘국정 안정’에 최적임자라는 얘기도 있다. 별도의 업무 보고 절차 없이도 곧바로 당면 현안을 처리할 수 있어 국정의 연속성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 한덕수 대행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동시에 한 대행은 윤 전 대통령의 ‘멍에’를 고스란히 쓰고 가야 할 ‘2인자’이기도 하다. 물론 그는 비상계엄에 반대했지만, ‘탄핵 후폭풍’을 온몸으로 받아야 할 처지는 부인할 수 없다.
지금까지 한 대행은 자신이 직접 주권자 국민에게 ‘선택’을 구한 적은 없다. 그가 ‘마지막 소명’을 다하기 위해 5월 3일 이전에 권한대행에서 물러나 ‘이재명 비토론’을 타고 국민의 선택을 받을지, 아니면 ‘탄핵 후폭풍’에 자신의 임명권자와 함께 날아갈지는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