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구조상 점차 불리해지는 보수세력
비상계엄은 보수정당에 치명타
이재명 지지 여론 과소평가됐을 가능성
소셜미디어라는 ‘5번째 계급’ 키워온 민주당
정치 양극화 심해질수록 영향력 커지는 중도층

이원재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지호영 기자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헌법재판소는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했다.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 혹은 탄핵 반대가 옳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의 소동은 거의 없었다.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와는 또 다른 모양새였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선고일에는 4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다쳤다. 반면 이번에는 사상자가 나오지 않았다.
소요를 막을 수 있었던 것은 경찰의 철저한 경비 계획 덕분이다. 하지만 일각에서 애초에 계엄 옹호, 탄핵 반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탄핵 반대 여론에 허수가 있던 것일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4월 11일 대전 KAIST 연구실에서 이원재(54) KAIST 문화대학원 교수를 만났다. 그는 “탄핵 반대 여론이 과대평가된 측면이 있다”며 “이번 대선에서 여당의 정권 연장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예측을 내놓았다.
이 교수는 데이터 사회학자로 빅데이터를 통해 사회 현상을 분석하고 있다. 2019년 4월 ‘주간동아’ 인터뷰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2020년 총선 승리와 2022년 대선 패배 가능성을 예측했다. 2021년 8월 ‘신동아’ 인터뷰에서도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후보가 국민의힘 당대표에 오른 것을 두고 보수정당 지지자들의 ‘전략적 선택’이라며 2022년 대선 승리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4월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인용 결정문을 낭독하고 있다. 뉴스1
계엄 선포 대통령, 범죄자 후보보다 문제
그가 탄핵 반대 여론의 과대평가 근거로 내놓은 것은 탄핵 선고를 이틀 앞두고 치러진 재보궐선거 결과다. 국민의힘은 기초단체장 5곳 중 1곳(경북 김천시장)을 수성하는 데 그쳤다. 서울 구로구청장과 전남 담양군수는 후보를 내지 않았지만, 후보를 낸 충남 아산시장과 경남 거제시장은 더불어민주당에 돌아갔다. 부산시교육감 선거에서도 패배했다. 친윤석열계로 꼽히는 정승윤 전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이 나섰으나 역부족이었다.탄핵 반대 집회를 이끌던 한국사 강사 전한길 씨와 5선 중진 김기현·나경원 의원은 거제시장 선거 유세를 도왔지만 결과는 낙선이었다.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부산시교육감 선거 출정식에 얼굴을 비췄지만 선거 결과는 거제시장과 같았다.
대선에서 여당이 승리할 가능성이 낮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보수정당에는 치명타가 됐다. 비상계엄의 이유와 무관하게 계엄 자체가 독재와 폭력적 억압에 대한 대중의 트라우마를 건드렸다. 20대 대선에서 윤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도 많이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 대선후보 시절 윤 전 대통령의 구호는 ‘법에 의한 지배’와 ‘상식과 공정’이었다. 계엄은 유권자가 정치인에게 기대하는 상식적 해결책과 거리가 멀었다. 헌재도 윤 전 대통령의 계엄이 법을 어겼다는 판결을 내렸다.”
일부 지지자들은 야당이 대통령 국정 수행을 막아 계엄이 불가피했다는 주장을 편다.
“국정 수행을 막은 측면은 있지만, 헌재가 탄핵을 인용한 것처럼 계엄이 불가피했던 것은 아니다. 물론 ‘야당의 국정 수행 방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유권자는 많다. 그렇다고 이들이 전부 잠재적 여당 지지자라고 본다면 과도한 낙관이다.”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보다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윤 전 대통령 탄핵에 관한 해외 언론 반응으로 답변을 대신하겠다. ‘이코노미스트지’에서 윤 전 대통령 탄핵 때 재밌는 기사를 내놨다. 유럽연합 기금 횡령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연합의 지도자 마린 르펜의 피선거권을 제한해서는 안 되지만, 계엄을 선포한 윤 전 대통령의 경우 합당하다는 내용이다. 정치인 개인의 범죄행위는 법이 아닌 선거로도 재판할 수 있지만, 민주주의를 위협한 대통령은 당연히 법으로 탄핵해야 한다는 의미다.”
국민의힘이 대선 승리 가능성을 높이려면 어떤 방안이 필요한가.
“지지층이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해야 한다. 계엄이라는 실정을 저지른 정부를 비판하고 중도층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
보수 진영 후보 중 계엄 반대, 탄핵 찬성을 내건 사람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정도다. 세 사람이 최종 후보가 될 가능성이 낮다고 보는가.
“최종 후보가 될 가능성이 낮을뿐더러 설사 후보가 된다고 해도 대통령 당선까지 이어지기는 어렵다. 탄핵 찬성을 주장했던 정치인이 대선후보가 되고 당의 주도권을 잡으려면 탄핵에 반대했던 사람들이 물러나야 한다. 탄핵 반대파가 보수정당의 다수를 구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세 사람 중 한 명이 최종 대선후보에 오를 가능성은 높지 않다.”
국민의힘이 탄핵에 찬성한 인물을 후보로 내세워도 대선 승리는 어려울까.
“인구구조상 이번 대선은 보수정당에 불리하다. 이른바 86세대라 불리는 민주당 핵심 지지층이 60대 고령층에 들어서고 있다. 전통적으로 보수정당을 지지하던 노령층의 비율은 점차 감소한다. 과거 이준석 후보가 국민의힘 대표를 맡았던 시절 ‘세대포위론’을 들고 나왔던 이유도 이 같은 인구구조 에 있었다. 20~30대 젊은 지지층을 확보해 민주당의 지지층에 맞서겠다는 전략이다. 이 후보를 대표직에서 끌어내린 윤 전 대통령도 결국 탄핵 직후 청년들에게 메시지를 내지 않았나.”
4월 6일 윤 전 대통령은 탄핵심판 법률대리인단을 통해 메시지를 냈다. 메시지 중에는 “청년 여러분께서 용기를 잃지 않는 한 우리의 미래는 밝을 것”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2007년 12월 19일 밤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17대 대통령 당선 축하 행사에서 주인공인 이명박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 북을 치고 있다. 동아DB
이재명, 2007년 이명박만큼 유리하다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전 대표의 지지율이 30%대에 머무른다. 국민의힘이 후보 단일화에 성공하고 중도층을 포섭한다면 유리해질 가능성도 있어 보이는데.“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여론이 과대평가된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이 전 대표의 지지율은 과소평가된 측면이 있다. 윤 전 대통령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탄핵심판에 관한 여론조사가 오히려 중도층의 의견을 반영한 결과라 볼 수 있다.”
한국갤럽이 4월 1~3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4월 1주차 여론조사 결과(응답률 13.7, 신뢰수준 95%, 표본오차는 ±3.1%포인트) 한 권한대행의 탄핵심판 기각 결정에 대한 질문에 ‘잘된 판결’이라 응답한 비율이 48%, ‘잘못된 판결’이라 응답한 비율이 37%였다.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 관해서는 찬성이 57%, 반대가 37%를 기록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후 치러진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은 41.08%를 득표했는데,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의 전신) 후보였던 홍준표 전 시장(24.03%)과 국민의당 후보였던 안철수 의원(21.41%)의 합보다 적은 득표수를 기록했다. 이번 대선에서 여권이 단일화 후보를 내놓는다면 정권 연장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이번에 치러질 대선은 2017년 19대 대선보다는 2007년 17대 대선과 비슷한 형국이다. 추후 여권이 단일 후보를 내놓는다 해도 큰 차이로 패배할 가능성이 크다.”
17대 대선 당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의 경선 후보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선 전까지 지지율이 30% 박스권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당내 경선을 마치고 지지율이 53%대로 올랐다. 반면 여권이던 대통합민주신당(현 더불어민주당) 손학규, 정동영, 이해찬 후보의 지지율은 한 자릿수(2~9%)에 불과했다. 경선을 거쳐 정동영 후보를 중심으로 표를 끌어모았지만, 역대 최대 득표율 격차(22.53%포인트)로 야권에 패배했다.
17대 대선 때보다 지금은 정치가 더 양극화됐는데, 그에 따라 중도층이 늘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정치 양극화는 전 세계적 문제다. 정치가 양극단으로 분열되는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관측되는 현상은 중도층 감소다. 반면 그 영향력은 커진다. 양극단에 치우친 사람이 많으니, 오히려 상대적으로 수가 적은 중도층이 캐스팅보터가 되는 것이다. 즉 양극단에 몰린 지지자들이 많고, 이들의 지지율이 비슷하다면 중도층의 영향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 소셜미디어 영향력에서 압승
이 교수는 “17대 대선 이후 진보정당이 오랜 부침을 겪었던 것처럼, 보수정당도 당분간 고난의 길을 걸을 가능성이 높다”고도 짚었다.민주당은 17대 대선 이후 10년 뒤 집권했다. 국민의힘도 10년간 정권을 잡기 어려울 것이란 뜻인가.
“여론을 다루는 언론과 소셜미디어가 전부 민주당에 유리한 상황이다. 17대 대선 직전을 돌이켜 보면 진보성향인 언론사들도 전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내놓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보수성향 언론사도 윤 전 대통령과 거리를 두고 있다.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에서도 보수성향보다는 진보성향(친민주당 성향) 채널이 더 영향력이 큰 편이다.”
4월 13일 기준 정치 분야에서 가장 구독자가 많은 채널(언론사 제외)은 ‘매불쇼’(240만 명)다. 2위는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 공장’(209만 명)으로 진보성향 유튜브 채널이 보수성향 채널에 비해 구독자 순위 상위에 있다.
이어 이 교수는 “최근의 정치 지형에서 언론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소셜미디어”라고 부연했다.
소셜미디어가 언론의 영향력을 앞지를 수 있을까.
“앞지르지는 못하더라도 언론사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갖고 있다. 윌리엄 H 더튼 영국 옥스퍼드대 인터넷 연구 교수는 저서 ‘제5계급’에서 “소셜미디어가 제5의 계급”이라고 주장했다. 언론이 입법·사법·행정부에 이은 제4계급이라면, 소셜미디어가 그다음인 제5계급이라는 의미다. 민주당은 이 5번째 계급을 잘 키워온 셈이다.”
탄핵 반대 집회를 보면 보수성향 유튜브 채널과 그 구독자들도 세력이 꽤 커 보인다.
“상대적으로 진보성향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이 더 크다. 방송인 김어준 씨 등 진보성향 진행자들은 유튜브가 유행하기 이전인 팟캐스트 시절부터 영향력과 팬층을 키워왔다.”
이 교수는 “대선에 진다 해도 보수정당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며 “오히려 보수정당이 더 튼튼해질 수 있는 휴식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권 지지자들의 ‘전략적 선택’으로 탄핵을 찬성하던 정치인을 대선후보로 선출하면, 어렵겠지만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생긴다”며 “설사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더라도 계엄 선포와 거리를 둔 상식적 정당으로 다음 기회를 도모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