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 방송서 “극단적 준비 있지 않았을까” 가설 먼저 띄워
4일 뒤 국회 출석해 “제보받았다” 공표, 출처는 오리무중
충격 발언 해놓고 의원 질의 받지 않은 채 퇴장
“민주당, 김어준에 ‘특급 의전’하며 지라시 살포 도와”
김어준 국회로 부르지 않고 직접 찾아가는 민주당

방송인 김어준 씨가 2024년 12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미군 암살 등 제보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방송인 김어준 씨는 지난해 12월 13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가 진행한 12·3비상계엄 사태 관련 현안 질의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해 이같이 말했다. 이날 그는 한 전 대표와 야권 핵심 관계자, 미군을 대상으로 한 군사작전에 대한 제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비상계엄 후 불과 열흘이 지난 시점에 나온 해당 발언은 대통령실과 군 등 제도권에 대한 불신에 기름을 부었다. 여권에서는 “탄핵 표결을 하루 앞두고 당을 흔들 심산으로 한 발언이 아닌가”라는 비판마저 나왔다.
비상계엄 당시 이재명이 가장 먼저 찾은 인물, 김어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국면에서 각종 의혹이 한국 사회를 뒤덮었다. 개중에는 내용에 비해 근거가 불충분해 음모론의 성격을 지니는 것 역시 적지 않았다. 특히 탄핵소추안 표결 등 중요 판단을 앞둔 시기에 각종 의혹이 제기되면서 검증의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다.의혹 제기의 선봉에 선 이는 김어준 씨.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구독자 209만 명)과 ‘딴지방송국’(구독자 146만 명)에서 활동하는 그는 야권의 유력 인플루언서다. 현재 수감 중인 조국 전 대표는 물론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 등 야권 주류 인사가 앞다퉈 그의 방송에 출연했다. 유력 대권주자인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는 4월 15일 출간한 책 ‘결국 국민이 합니다’에서 비상계엄 당일 김어준 씨에게 가장 먼저 도움을 요청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책에서 이 후보는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알려야 했다”며 “영향력 있는 유튜버가 떠올랐다”고 했다.
김 씨는 그간 각종 의혹을 제기해 왔고, 그중 다수는 음모론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8대 대선 부정선거 의혹, 세월호 고의 침몰설,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다양한 주제를 다뤘으며 영화 제작, 유튜브 방송, 국회 출석 등 전달 방법도 제각각이었다. 그는 비상계엄 및 탄핵 국면에서도 각종 의혹을 제기하며 사회에 파장을 일으켰다.

방송인 김어준 씨가 2024년 12월 9일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서 12·3비상계엄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갈무리
‘한동훈·미군 사살 의혹’에서도 이 특성이 여실히 나타났다. 시작은 2024년 12월 9일이다. 김 씨는 이날 김병주 민주당 의원을 인터뷰하며 “비상계엄의 명분을 유지하기 위해 한국을 혼란시킬 목적으로 극단적인 준비가 있지 않았을까”라며 “어디서 폭탄이 터진다든지, 생물학전이 발생한다든지, 사람이 총에 맞아 죽는다든지 이런 기획이 있지 않았을까”라고 묻는다. 김 의원의 “상상할 수 있다”고 답하자 김 씨는 더 나아가 “국내 상황을 교란하기 위한 여러 자작 테러 준비를 분명히 했을 것”이라고 확언하기에 이른다. 2분 사이에 의혹 제기에서 확신으로 나아간 것이다. 나흘 뒤 김어준 씨는 국회에서 관련 내용에 대해 제보를 받았다고 발언한다.
물론 김 씨가 김병주 의원과 대화하기 전 관련 제보를 받았을 수 있다. 하지만 김 씨는 해당 제보의 출처, 시점 등에 대한 세부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는 국회에서 “20여 년 동안 수많은 제보를 받았는데, 어떤 경우도 제보자의 신원을 밝힌 적이 없다”며 “위험을 감수한 이들에 대한 도리”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 수준에서 정보 출처를 밝혔다. 주한 미국대사관은 이와 관련해 선을 그었다.
음모론의 주된 특징은 반증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의혹이 제기돼 검증이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로 판명될 경우 큰 피해가 예상되는 만큼 경고 목적으로 알린다” 등 사실이 아닐 가능성을 열어두거나, “안전을 위해 제보자의 신원을 밝힐 수 없다”며 출처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는 등 방법도 다양하다. 반대되는 정보가 나오더라도 “정보원을 신뢰할 수 없다”며 부정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국회 내란 혐의 진상 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조특위)가 2월 28일 청문회 불출석과 위증 등을 이유로 윤석열 당시 대통령 등에 대한 고발을 야당 단독으로 의결했다. 동아DB
의혹 제기 후 사실 확인은 민주당 의원에 넘겨
김어준 씨 역시 “반증을 대라”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는 2017년 4월 17일 다큐멘터리 영화 ‘더 플랜’ 제작발표회에서 “제가 주장한 내용이 음모론으로 밝혀진 적이 있는지, 아무 근거가 없다고 밝혀진 것이 무엇인지 반증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 플랜’은 2012년 18대 대선과 관련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한 영화다. 김 씨는 “이 영화는 ‘개표 절차에 하자가 있었을 수 있다’는 문제 제기를 하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하자가 있다”가 아닌 “하자가 있었을 수 있다”는 형식인 만큼 사실상 반증이 불가능하다.김어준 씨 주장에 대한 ‘검증 통로’가 사실상 차단되고 있다는 사실도 문제다. 김 씨는 앞선 국회 진술에서도 의원들의 질의를 받지 않았다. 그는 “알고 있는 것은 다 말했다”며 “사실관계에 대한 것은 (민주당) 김병주·박선원 민주당 의원에게 확인해 보는 것이 정확하다”고 말하며 질의를 거부했다. 해당 발언 직후 김현 민주당 과방위 간사가 이석 요청을 했고, 과방위원장인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이 이를 수용하면서 김 씨는 자리를 떠났다. 발언의 사실 여부를 검증할 최소한의 시간마저 주어지지 않은 셈이다.
당시 현장에 있던 의원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과방위 소속의 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어준 씨가 충격적인 발언을 했음에도 관련 내용을 소명하지 않는 것은 물론 질문마저 받지 않았는데, 이는 무척 이례적”이라며 “(민주당에서) 김 씨에 대해 ‘특급 의전’을 하며 지라시를 살포할 수 있도록 해줬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국민의힘 측이 여러 문제를 제기했으나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민의힘 측은 민주당이 여당과 별도 협의 없이 김어준 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시켰고, 발언 시간에 대한 제약을 따로 두지 않은 사실을 문제 삼았으나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통상적으로 국회의원의 경우 상임위에서 7분의 발언 시간이 주어지지만 이날 김 씨는 13여 분간 발언했다. 국민의힘 과방위 간사인 최형두 의원은 당시 상황에 대해 “워낙 황당한 경우라 별도 논의가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이후로도 김 씨에 대한 접근은 차단됐다. 국민의힘은 김어준 씨를 12·3 비상계엄 의혹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 신분으로 부르려 했으나 무산된 것이다. 국회 내란 혐의 진상 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조특위) 가운데 과반(10명)이 민주당 의원으로 구성되면서 야당의 반대를 넘지 못한 탓이다. 증인의 경우 참고인과 달리 허위 진술을 하면 위증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제14조에 따르면 “선서한 증인이 허위의 진술을 했을 때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김어준 씨의 국회 출석을 막은 민주당 의원들은 도리어 김 씨의 방송을 찾아 국회 소식을 전하고 있다. ‘신동아’ 확인 결과, 국조특위 소속 민주당 의원 10명 가운데 위원장을 맡은 안규백 의원을 포함한 7명이 비상계엄 이후 김 씨의 방송에 출연해 그간의 사정을 전했다. 김 씨 역시 2월 6일 안 의원을 소개하며 “국조특위 위원들만 모시다, 위원장도 한 번 모셔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 김어준 씨의 주장에 대한 당내 검증 역시 사실상 차단되고 있다. 앞서 박선원 민주당 의원실에서 “과거의 제한적 지식을 가진 사람이 정보 공개가 제한되는 기관의 특성을 악용해 일부 확인된 사실을 바탕으로 상당한 허구를 가미해 구성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 중 계엄 이전에 실행된 것은 단 하나도 없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한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일었다. 이에 최민희 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 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무모함은 무엇이냐”라고 즉각 비판했다.
결국 박선원 의원은 김어준 씨를 찾아 “첫 보고서가 유출돼 김어준 씨가 허황된 사실, 거짓말을 한 것처럼 돼서 제가 미안하다”고 공개 사과했다. 그는 △한동훈 전 대표 사살 △김어준 등 호송부대 습격 △북한군복 매립 △미군 사살 △북한산 무인기 사용 5개 항목에 대해 ‘가능성 배제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박 의원은 “김 씨 제보에 대한 최초 분석 보고는 정보사령부의 내란 가담이 합리적 행위자에 의해 계획됐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극우 음모론에 심취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실질적으로 정보사의 내란 가담을 주관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분석 전제를 수정할 필요성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김어준 씨 제보, 확인할 방법 없어”
민주당 안팎으로 검증이 사실상 차단되면서 관련 내용은 여전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김선호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은 4월 14일 국회 국조특위에 출석해 “김어준 씨 제보 문제, 정보사 인민군복 문제는 저희 입장에서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면서도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고 지적했다.그사이 김어준 씨는 의혹의 무대를 옮겼다. “비상계엄을 앞두고 군이 유혈 사태에 대비해 시신을 임시 보관하는 영현백을 3000개 구입했다”는 새 의혹에 기름을 붓고 있는 것이다. 김 씨는 3월 19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대학생진보연합,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단체들의 숫자를 다 더하면 족히 2000명은 된다”며 “그러니 3000명분을 준비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 씨와 합을 맞춘 인물은 앞서 미군 암살 의혹 등을 공유했던 김병주 의원이다.
다만 음모론과 의혹 제기를 구별하는 것이 사실상 어려운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음모론의 시대’를 집필한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다양한 권력관계가 작용하는 이른바 ‘사회적 중력 상태’에서는 음모론과 의혹 제기를 구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특정 주장을 음모론으로 부르는 것 자체가 권력에 의한 낙인찍기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비상계엄 역시 민주당 측에서 최초로 관련 정보가 나왔을 때 음모론으로 치부됐으나,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며 “음모론은 사후적으로 확인할 수밖에 없는 만큼 섣부른 낙인찍기 대신 침착한 대응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