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곰(K-1, NHK-1)

나이키 미사일은 1950년대 미국 맥도널 더글러스(MD)사가 개발한 지대공 미사일인데 지대지 임무도 수행할 수 있었다. 한국군은 1960년대 중반 도입해 지금까지 운용하고 있다. 백곰은 나이키를 국산화한 것이다. 새로운 미사일 설계에는 항공역학적 안정성 검증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당시의 한국은 기술력이 너무 미약해 새 미사일 설계 도전은 무리였다. 이 때문에 안전하게 기존 미사일을 모방생산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나이키는 1950년대 기술로 제작된 것이라, 모방 생산을 하더라도 대폭적인 성능개량이 필요했다. 사거리를 연장하기 위해 1, 2단 추진기관을 전부 추진력이 큰 복합추진제로 바꾸었다. 진공관 전자회로는 반도체화하고, 아날로그 시스템인 유도신호처리도 컴퓨터화했다. 유도방식은 나이키와 같은 레이더 지령 유도방식이었다. 하지만 1·2단 로켓 모두 콤퍼지트(composite)을 썼기에 출력은 나이키보다 훨씬 커졌다. 그에 따라 미사일을 강하게 만들 필요가 있어 기체도 완전 재설계했다.
백곰을 개발하는 데 금성정밀(본체), 한화(탄두), 삼성항공(추진기관), 대우중공업(발사대), 대우전자-금성사(추적-탐지장치) 등이 참여했다. 백곰은 초기 생산물량을 시험운용포대에 배치했지만, 개발 직후 10·26과 12·12 사태 등이 일어나 양산되지 못했다.

백곰 개발 성공 후 신군부가 정권을 잡았다. 신군부는 미국과 관계개선을 위해 미국이 반대하던 독자적인 탄도탄 개발을 포기하게 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나이키에 페인트를 칠해서 국산 미사일로 사기 쳤다”는 논리로 백곰 개발을 폄하했다. 국과연 연구원 1000여 명 이상을 해고하고 미사일 개발 조직을 해산시켰다. 힘들게 확보한 미사일 개발능력이 결정적으로 훼손된 것이다.
그러나 1983년 미얀마에서 아웅산 테러사건이 터지면서 전 전 대통령은 다시 국산 미사일 개발을 지시한다. 그에 따라 백곰 개발에 참여했던 연구원들을 모아 새로운 미사일 개발계획을 수립했다. 그때 개발에 들어간 것이 백곰을 개량한 현무(현무-1) 미사일이다. 그런데 1988년 서울올림픽 이전에 이 사업을 완료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짧은 기간에 개발하라고 했기에 새로운 외형설계를 할 수 없어, 나이키 외형을 그대로 사용했다. 그러나 추진 유도방식은 완전히 바꿨다. 허큘리스 엔진을 하나로 통합해 대형 1단을 채택했다.
1단 로켓엔 무연(無煙)추진제인 더블베이스(double base)형을, 2단 로켓엔 콤퍼지트형 추진제를 썼다. 고체연료를 채택한 것인데, 이는 발사시 발사포대의 위치 노출을 최대로 억제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영국 GEC 사의 관성항법장치(INS)도 적용했다. 한국은 영국으로부터 INS 기술을 도입해 국내생산하면서 INS 관련 기술을 확보하게 된다. 현무의 탄두는 500kg급이다. 표적에 따라서 단일 고폭탄이나 클러스터탄을 바꿔 사용할 수 있어, 백곰에 비해 유연성이 높아졌다. 물론 파괴능력도 강화됐다. 백곰은 양산되지 못했지만 현무는 200여 기 이상 생산돼 운용되었다.
일부 현무는 나이키를 운용하던 강화진지에 배치됐으나, 상당수는 차량용 발사대에 장착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현무-2에 임무를 넘기고 퇴역해 예비전력으로 보관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블록 A
백곰과 현무가 나이키의 외형을 차용해 설계했다면, 현무-2는 외형부터 완전 새로 설계한 정밀타격용 미사일이다. 1990년대 중반 러시아에서 획득한 SS-21 지대지 미사일의 기술정보가 현무-2 설계에 상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는 북한의 은하-3호 발사에 대응해 2012년 4월 19일 현무-2 발사시험 동영상을 공개했다. 이를 통해 크기와 외형 등이 처음 확인되었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SS-21과 SS-23 중간형이었다. 길이 6m, 직경이 80cm인 현무-2는 사거리 300km, 발사중량 3t 내외로 개발 초기에는 공산오차(CEP)가 100m급이었다. 하지만 유도장치의 성능개량 작업을 통해 공산오차를 30m급으로 낮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