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4월호

‘생명의 책’ 완성으로 진시황의 꿈 이룬다

  • 김진수 (주)툴젠(Toolgen, INC) 대표이사·이학 박사

    입력2006-11-09 14: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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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29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앞으로 두 달 이내에 내 인생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발표를 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는 지난 10여년간 미국을 비롯한 15개국이 공동으로 수행해온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마침내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음을 의미한 것이었다. 클린턴 대통령의 예고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완료 선언을 통해서 미래지향적인 리더십을 세계에 과시하면서 생명공학 산업에서 미국의 선도적인 지위를 굳건히 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닷컴 시대’ 다음은 ‘바이오칩 시대’

    그러나 클린턴 대통령의 이런 예고에는 말못할 속사정도 있었다. 지금까지 30억 달러를 투입해 진행해오고 있는 미국 정부의 게놈 프로젝트가 한 민간 생명공학 기업의 독자적인 게놈 프로젝트에 뒤질 수도 있다는 절박한 상황이 미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미국의 생명공학 회사인 셀레라의 크레익 벤터 사장이 올 연초에 발표한 대로 셀레라가 올 상반기 중에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먼저 완료하고 수만 개의 인간 유전자들에 대해 특허를 출원하게 된다면, 다국적 차원에서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주도해온 미국 정부는 곤란한 지경에 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실질적으로 관장하고 있는 미국 국립보건연구소는 셀레라에 앞서 게놈 프로젝트를 완료하고 그 정보를 인터넷에 공개함으로써 인류 공동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게놈 정보를 일개 민간 기업이 소유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완료로 상징되는 생명공학 시대의 본격적인 개막은 이미 작년부터 미국 나스닥 시장에서 감지되기 시작했다. 나스닥 평균지수가 지난 1년간 약 2배 상승한 데 비해서 생명공학 관련 기업의 주가지수는 같은 기간 4.3배나 상승한 것이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직접적인 수혜자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밀레니엄 제약의 주가는 지난 1년간 10배, 어피메트릭스의 주가는 9.3배 상승했고, 다국적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 맞서 독자적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셀레라의 주가는 20배 이상 폭등하는 등 소위 바이오칩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과시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본격적인 생명공학 기업을 표방하는 마크로젠이 코스닥에 상장돼 연일 상한가를 기록하는 등 바이오칩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은 날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이런 사실은 이제 닷컴 시대가 가고 바이오칩 시대가 개막된 것이 아닌가 하는 다소 성급한 판단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생명공학에 대한 관심이 부쩍 고조되고 있는 현 시점에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완성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과연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우리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가?

    [ 인간 게놈 프로젝트란 무엇인가? ]

    무병장수, 불로장생은 진시황제만이 아니라 유사 이래 전인류의 소망이었다. 21세기에는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이러한 인류의 꿈이 상당 부분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인간의 기대수명은 50세를 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100년간 의학과 생명과학의 발전은 인간의 건강 증진과 수명 연장에 크게 기여해 이제 산업화된 사회에서 인간의 기대수명은 80세 가까이 이르고 있다.

    생명공학의 기술적 진보가 21세기에도 계속된다고 볼 때 21세기 중반에는 인간의 기대수명이 120세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머지 않은 장래에 암과 치매, AIDS 등과 같은 난치병을 포함한 거의 모든 질병에 대해 적절한 치료법이 개발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10년 이내에 동물로부터 장기를 생산하여 환자에게 공급하는 것이 가능해질 전망이고, 궁극적으로는 환자의 세포를 채취하여 배양함으로써 필요한 장기를 만들 수 있는 날도 올 것이다. 불과 몇 년 전에 처음 성공한 동물 복제는 의학적으로 유용한 장기와 약제의 생산에 크게 기여할 것이고, 머지 않은 장래에 일부 개방된 국가에서는 부분적이나마 인간 복제가 허용될 것이다. 아기가 유전병을 앓지 않도록 생식세포의 유전정보를 변경하는 유전자치료가 가능해질 것이고, 마침내는 부모의 취향에 맞추어 더 똑똑하고 건강하고 재능있고 잘생긴 아이를 미리 ‘설계’해서 임신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다.

    이러한 전망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구미 선진국에서 지난 10여년간 수행해온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이제 막바지에 이르러 인간의 게놈 전체가 조만간 실상을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게놈 프로젝트가 처음 제안됐을 때 일부 보수적인 과학자들은 이 프로젝트가 완료되려면 수백년이 소요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기술 진보에 힘입어 당초 2015년을 목표로 했던 계획이 앞당겨져 2003년에 종료될 것으로 수정됐다. 그러다가 작년에 미국의 민간 기업인 셀레라가 “2000년 상반기 중에 독자적으로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완료하겠다”고 발표한 후 미국정부는 계획을 더욱 앞당겨 2000년 초에 90%가 완성된 인간 게놈의 초안을 발표하겠다고 공표한 것이다.

    ‘생명의 책’ 쓰기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10만개의 유전자를 포함하는 인간의 게놈을 완전히 읽어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대담하고 야심찬 국제적 프로젝트다. 이는 ‘인간’이라는 생물학적 정보를 디지털화하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컴퓨터 프로그램이 0과 1 두 숫자의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고 영어로 기술된 책이 26개의 알파벳으로 쓰인 데 비해 인간의 게놈은 A, C, G, T라는 기호로 표기되는 4종류의 염기가 특정한 순서로 30억번 배열돼 이루어진 ‘생명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이러한 서열을 완전 구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 방대한 계획인 것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수행되고 있는 이 프로젝트는 총 30억 달러의 사업비가 소요되는 대규모 사업으로 현재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어서 금년 상반기에 90% 이상 구명될 예정이고, 이와는 별도로 미국의 민간 기업인 셀레라 역시 올 상반기중 완전히 밝힐 것으로 보인다.

    흥미롭고도 놀라운 사실은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유전자가 무엇으로 이뤄졌는지 아무도 몰랐다는 점이다. 멘델의 유전법칙이 발견된 19세기 이전에도 이미 사람은 물론이고 가축, 농작물 등 모든 생명체에서 자식이 어버이 세대를 닮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폭넓은 인식이 있었다. 가축이나 농작물의 종자 개량은 바로 자식이 어버이 세대를 닮는다는 자연법칙을 활용한 전형적인 예였다.

    우리 나라 속담에도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이 있듯이 형질이 유전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겨 왔는데, 바로 부모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형질을 전달해주는 물질을 서구의 생물학자들은 유전자라고 불렀다. 20세기 들어와 생물학자들은 유전자가 DNA 형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하나의 유전자로부터 하나의 단백질이 만들어진다는 점을 알게 됐다. 즉 유전자는 정보를 간직하고 있는 일종의 명령어라고 할 수 있고, 그 명령어의 정보를 실현하여 만들어진 것이 단백질인 것이다.

    1950년대에 워슨과 크릭은 DNA 구조가 이중나선이라는 것을 밝혀내 유전정보가 어떻게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지 수수께끼에 빠진 생명과학자들에게 광명을 비춰 주었다. 워슨과 크릭이 밝혀낸 DNA 구조는 두 가닥의 긴 줄이 서로 꼬여 있는 형태이고, 두 가닥 사이에는 A, C, T, G 네 종류의 염기가 쌍을 이루고 있다.

    염기가 쌍을 이루는 데는 일정한 규칙이 있어서 A는 항상 T와 쌍을 이루고, C는 항상 G와 쌍을 이룬다. 따라서 한 가닥의 염기 서열을 알면 맞은편 가닥의 염기 서열을 정확히 알 수 있다. 세포가 분열할 때 각각의 가닥을 사본으로 새로운 가닥이 만들기 때문에 유전정보가 다음 세대로 전달될 수 있다.

    유전자와 유전명

    인간의 세포에 존재하는 DNA는 30억쌍의 염기서열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를 인간의 게놈이라고 부른다. 즉 인간의 게놈은 30억개의 글자로 쓰인 ‘생명의 책’인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30억개 모두 의미가 통하는 문장으로 쓰인 것이 아니라 그중 불과 10%만이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생명의 책에서 의미가 있는 문장이 바로 유전자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인간 게놈에는 약 10만개의 유전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전자는 비유해서 표현하자면 “인터페론을 만들어서 면역성을 강화하라” “성장 호르몬을 분비해서 키를 크게 하라” “지방분해 효소를 분비해서 지방을 소화하라” 등과 같은 형태의 문장으로 쓸 수 있다. 이 문장이 실현되어 만들어지는 인터페론, 성장호르몬, 지방분해 효소들은 모두 단백질 형태로 존재한다.

    즉 생명의 책, 게놈은 명령어로 기술된 군사교본이나 요리책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유전병은 유전자에 이상이 생겨 명령을 실행할 수 없을 때 발생한다. 예를 들어 “성장 호르몬을 분비해서 키를 크게 하라”는 문장의 일부가 찢겨 나가 그 명령을 실행할 수 없게 되면 왜소증에 걸리게 된다.

    지금까지 밝혀진 인간의 유전병은 3000여개에 이른다. 이런 질병은 부모에로부터 자식에게로 전달된다. 유전병 가운데에는 유년기를 넘기지 못하는 치명적인 질병도 있고, 색맹과 같이 평생 특정 색깔을 구별하지 못할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질병도 있다. 수많은 유전병 가운데 어떤 유전자가 그런 질병을 초래하는지 밝혀진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종료되면 유전학자들은 짧은 시간에도 유전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찾아낼 수 있다. 원인 유전자가 밝혀진 유전병은 어떻게 치료할 수 있나? 21세기에는 유전자 치료가 유전병을 치료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이 방법은 바로 잘못된 유전자를 정상적인 것으로 대치하는 것이다. 즉 생명의 책을 교정하여 틀린 부분을 고쳐 쓰는 것이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가장 큰 혜택은 유전병을 앓고 있거나 유전병을 앓는 자녀를 갖게 될 수많은 부모에게 돌아갈 것이다.

    스핑크스의 침묵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완료되면 당장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게 될까? 당분간 전세계적으로 생명공학 기업들의 주가가 천정부지로 솟구칠 것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의 삶에 즉각적인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활용되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 작업이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첫째, 게놈 프로젝트로 완성된 생명의 책에 쓰인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게놈 프로젝트는 일단 인간의 DNA 정보를 A, C, G, T 네 글자로 옮겨 적은 것일 뿐 그 의미가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시 말해 유전자 10만개 대부분에 대해서 그 의미가 무엇인지 생명과학자들도 아직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생명의 책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대략 5년에서 30년이 걸릴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마치 이집트에서 로제타 돌을 유럽으로 가져온 후 거기에 새겨진 상형문자의 의미를 해독하는 데까지 소요됐던 ‘스핑크스의 침묵’ 기간에 비유할 수 있다.

    둘째, 사람들마다 생명의 책에 기록된 정보가 조금씩 다른데, 이를 파악해야 한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약 1000개의 글자마다 1개씩 차이를 보이고 있다. 만일 지구상의 두 사람을 임의로 선정해서 각각의 게놈을 완벽히 구명하면 약 99.9%가 동일하고 0.1%가 다를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두 사람이 같은 민족에 속해 있으면 그 차이는 더 작을 것이고, 다른 민족에 속해 있으면 더 클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게놈의 서열에 차이를 보이는 것을 단일염기다형성(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이라고 부른다. 미국과 일본, 유럽의 국립 연구소와 민간 기업들은 단일염기다형성을 밝히는 작업에 이미 착수했다.

    게놈이라는 생명의 책에는 과연 어떤 정보가 들어 있나? 이 프로젝트를 실질적으로 주관하고 있는 미국 국립보건연구소의 주된 관심은 게놈 정보가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데 있다. 유전학자들은 게놈 프로젝트의 완료로 인해 향후 5∼30년 사이에 거의 모든 질병에 대한 유전적 근거를 밝혀낼 것으로 기대한다.

    현재 파이저, 글락소-웰컴, 스미스클라인 비첨 등과 같은 다국적 제약회사들과 밀레니엄, 인사이트와 같은 생명공학회사들은 질병을 초래하는 유전자들을 발굴하는 데 사운을 걸고 있다. 이러한 유전자들을 찾아야만 이에 대해 특허를 출원할 수 있고 약제를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미국의 휴먼게놈 사이언스사는 게놈 정보를 이용해 유전자 또는 유전자로부터 만들어지는 단백질을 약제로 활용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게놈 정보를 활용한 이러한 시도는 대부분의 질병에 적용될 전망이고, 결국 수십년 후에는 난치병이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질병은 계속 발생하겠지만 거의 모든 질병에 대해 적절한 처방을 할 수 있는 시대가 21세기 중에 실현될 것이다.

    또한 인간의 게놈 정보는 언제 어떠한 질병에 걸리게 될지를 예측할 수 있게 할 것이다. 만일 어떤 아이가 50세가 될 무렵 동맥경화에 걸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그 부모가 알 수 있다면 부모는 그 아이에게 적절한 식이요법을 미리 실시할 수 있을 것이고, 개선된 식생활이 몸에 밴 아이는 성장해서도 주의를 기울이며 질병의 발생 가능성을 현저히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흡연이 건강에 해롭고 수명을 단축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를 알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담배를 끊지 못한다. 담배의 강력한 중독성 때문이지만 한편으로는 “설마 내가” 하는 심리가 의지를 약화시킨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주변에서 살펴보면 흡연을 하지 않던 사람도 폐암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드물게 있고, 평생 골초로 살아 왔지만 건강하게 장수하는 사람도 있다. 그 이유는 사람마다 유전자가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유전적으로 폐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 자신이 담배를 안 피워도 간접 흡연에 오랫 동안 노출되면 재앙을 맞을 수 있다. 반면 어떤 이들은 행운의 유전자를 타고나 흡연을 해도 암에 걸리지 않고 오래 살 수 있다.

    문제는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을 흡연자가 알고 있다 하더라도 자신이 유전적으로 취약한 쪽인지 행운의 유전자를 타고났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설마 나는 괜찮겠지” 하는 심리가 작용하여 금연하려는 결심을 작심삼일로 만들곤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만일 유전자진단이 보편화해서, 어떤 사람이 흡연을 했을 때 40대 중반 이후에 폐암에 걸릴 확률이 90%라는 판정을 받는다면 그래도 흡연을 계속할 사람이 있을까? 폐암에 잘 걸리지 않는 행운의 유전자를 타고난 사람들의 경우에도 자신의 흡연 때문에 배우자 또는 자녀들이 유전적으로 간접 흡연에 취약하여 암에 걸릴 확률이 크게 높아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에도 마음 편하게 흡연을 계속할 수 있을까?

    이처럼 인간의 게놈 정보는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유전자를 확인하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것이고, 결국 미래 의학에서는 유전자진단을 통하여 질병 발생 가능성을 상당 부분 예측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심지어 신생아의 출생 이전에 그 아이의 건강에 관련된 유전자를 검사함으로써 나이별로 질병 발생 가능성을 추정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정보는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면서 음식물이나 생활 습관의 조절을 통해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바람직한 성장 환경을 조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생명의 책’ 고쳐 쓰기

    만일 유전자검사에 의해 부모가 유전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어서 치명적인 유전병에 걸릴 아이를 낳을 확률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면 어떻게 할까? 미래 사회에는 대부분의 유전병에 대해서 유전자치료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인간의 유전병 수천 가지를 밝히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고, 결국 이러한 정보는 유전자를 변형하여 그 유전병에 걸리지 않는 아이를 임신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유전자를 교체하여 유전병을 치료하는 작업은 두 단계로 나뉜다. 첫 단계는 유전병을 초래하는 유전자가 무엇인지 밝히는 것이다. 이 작업은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완료되면 매우 신속하게 진행될 것이다. 다음 단계는 문제가 되는 유전자를 정상 유전자로 대치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생명의 책에서 오자를 발견한 후 이를 교정하는 것과 비슷하다.

    생명의 책을 인간이 고쳐 쓸 수 있다면, 잘못된 문장을 교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문장을 마음대로 삽입하고 싶다는 유혹을 누구나 느끼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머지 않은 장래에는 자녀를 낳을 때 “키가 180cm 이상이 되어라” “IQ가 140 이상이 되어라” 등의 문장을 자녀의 게놈에 삽입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진학하기도 전에 영어, 한문, 음악, 미술 등 가능한 모든 것을 가르쳐 남들보다 한발 앞서도록 준비시키는 한국의 부모들이 생명의 책을 교정하여 선천적으로 경쟁력 있는 아이를 만들고자 하는 유혹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물론 인간의 행동, 소질, 외모 또는 성격에 관련된 유전자들은 성장 환경 때문에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고, 1개의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에 단일 유전자의 결함에 의해 초래되는 유전병의 경우와는 달리 그 유전자들을 찾는 작업이 쉽지 않다. 그러나 최근 생쥐의 게놈을 변형해서 영리한 생쥐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사례가 보여주듯이 사람의 성품과 재능을 유전적으로 재프로그래밍하여 변경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게놈을 교정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지난 수십억년간 모든 생명체의 게놈은 수없이 다시 쓰여 왔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게놈이 복제되는 과정에 게놈의 일부 정보가 잘못 전달되기도 하고, 바이러스 등에 의해 유전자가 첨가되거나 삭제되기도 한다. 중요한 점은 이렇게 게놈이 변화되어 왔기 때문에 생물의 진화가 가능했고,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가 존재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게놈의 끊임없는 변화 때문이라는 점이다.

    게놈이 다시 쓰이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면 유전병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유전자를 치료하는 것이 왜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는 것인가? 고장난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 유전병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정상적인 유전자를 환자에 전달하는 체세포 유전자 치료는 놀라운 기술적 발전이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지난 수천년 동안 의료행위의 연장선상에 있는 기술적 진보일 뿐이다. 따라서 이에 대해 윤리적 차원의 문제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논의를 한 계단씩 높여가다 보면 필연적으로 좀더 대담하고 곤혹스러운 가능성에 맞닥뜨리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논의가 현재 과학자들 사이에 진행되고 있다. 유전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정상적인 유전자를 환자의 체세포에 전달하는 것이 기존 의료행위의 연장선이라면, 유전병 우려가 있는 부모가 아예 생식세포의 게놈을 변경하여 유전병이 근본적으로 치료된 아이를 낳는 것도 당연히 허용돼야 하지 않을까?

    체세포에 유전자를 전달하면 그 유전자는 다음 세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러나 생식세포에 유전자를 전달하면 게놈이 영구적으로 변경돼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까지 지속적으로 그 유전자가 전달된다. 따라서 유전병을 치료하기 위해 정상적인 유전자를 생식세포에 전달하는 유전자 치료는 자손대대로 그 유전병을 치유하는 근본적인 치료법인 셈이다. 유전병을 앓고 있는 많은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가 겪는 고통을 생각해보면 생식세포 유전자 치료의 가능성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해보아야 한다.

    그런데 유전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생식세포의 게놈을 변경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한발 더 나아가 더 잘생기고 똑똑하고 건강한 아이를 낳기 위해서 생식세포의 게놈을 바꾸는 것은 어떨까? 미래의 부모들은 이러한 유혹에 저항할 수 있을까? 그리고 국가와 사회가 이런 부모들의 욕망을 금지하거나 비난할 수 있을까?

    만일 미래사회 부모들에게 자녀의 게놈을 바꾸어 더 잘생기고 똑똑하고 건강한 아이를 낳는 것이 허용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예비 부모들은 백화점에서 물건을 고르듯이 미술적 재능에 관한 유전자, 강력한 근육을 갖게 하는 유전자, 뛰어난 기억력을 담보하는 유전자 등을 주문하여 아기의 게놈을 다시 쓰게 될 것이다. 부모에 따라서는 항상 명랑한 성격을 나타내게 하는 유전자, 주변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데 도움이 되는 유전자들을 원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는 대가가 있는 법이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인기 있는 유전자를 원한다면 상당한 비용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결국 부유한 계층은 인기 있는 유전자를 계속 보강하여 유전적인 엘리트 계층으로 변화할 것이고, 일반 대중들은 ‘고작’ 유전병에 관한 유전자들만 교정하여 지금의 인류와 별다른 차이가 없는 ‘열등한’ 게놈을 지니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수십, 수백 세대 이상 계속된다면 어떻게 될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는 세습되고 부와 함께 유전자도 세습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유전적 엘리트 집단과 열등한 집단으로 계층이 영구히 분리되지는 않을까? 그리하여 마침내 두 집단간에는 정상적인 결혼과 가족의 형성이 불가능해질 정도로 유전적으로 분리되지는 않을까?

    역사상 가장 대담하고 야심적인 인류의 선택

    이처럼 생명공학의 발달은 필연적으로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고찰을 수반하게 된다. 생명공학은 바로 생명 그 자체를 다루는 과학과 기술이기 때문이다. 생명공학자들의 기본적인 인식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자연(또는 신)이 만든 매우 복잡한 기계라는 것이다. 공학자들이 새로운 기계를 발명하거나 고장난 기계를 고치듯이 생명공학자들은 인간을 포함하여 우리 주변의 가축, 농작물 등에서 결함을 제거하고 장점을 강화하고자 한다.

    물론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의 삶을 한층 풍요롭고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기아에 굶주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더 많은 양의 곡식을 더 저렴한 비용으로 생산할 수는 없을까? 농작물을 병충해에 강하게 만들어서 농부와 소비자에게 혜택을 줄 방법은 없을까? 왜 우리는 병들고 늙고 허약해져야 하는가?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생명공학자들은 이에 대한 해결책을 추구한다. 그러나 이상주의적인 생명공학자들의 열정과 탐구욕이 마침내 현실로 나타나게 될 무렵에는 부작용이 염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인류는 항상 현실에 머무르기를 거부해왔다. 인류는 페스트, 천연두, 소아마비와 같은 질병에 가족과 이웃이 희생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이제 암과 치매, 그리고 노화 자체에 대해서도 참지 않으려 한다. 인류에게 주어진 냉혹한 현실은 항상 참을 수 없는 조건으로 여겨져 왔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발전에 원동력이 돼 왔다.

    과학기술은 인간이 자연과 현실을 개선하고 극복하기 위해 개발한 노력 중에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이러한 과정에 일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고 가치관에 혼란이 초래되기는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러한 도전을 기꺼이 감수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하고 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로 상징되는 생명공학 시대의 전개는 이러한 인류의 끊임없는 노력 가운데 가장 대담하고 야심적인 시도가 될 것이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생명과학과 의학의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사업이면서 사람들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칠 사업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워슨을 비롯한 미국의 분자생물학자들에 의해 게놈 프로젝트가 처음 제안됐던 80년대 후반에는 과학계 안팎에서 이 프로젝트의 효용성과 실현 가능성에 대해 논란이 일었다. 일례로 당시 ‘네이처’지에 실린 한 과학자의 기고문은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 대해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몽땅 설형문자로 번역하는 것과 같다. (이 두 작업 사이에는) 유용성 측면에서는 별차이가 없다고 할지라도 실현 가능성 측면에서는 게놈 프로젝트가 훨씬 어렵다”고 하면서 게놈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학자들을 통렬하게 비난했다.

    도대체 셰익스피어 전집을 설형문자로 번역하는 것이 무슨 효용이 있겠는가? 당시 ‘네이처’에 실린 기사는 게놈 프로젝트가 가져다줄 의학 및 생명공학의 혁명적 진보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마저 무지했다는 사실을 깨우쳐준다. 더욱이 게놈 프로젝트의 중요성에 동의한 젊은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과연 ‘생명의 책’을 완전히 옮겨 적는다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할지에 대해서 상당한 회의가 있었다. 일부 비관적인 분자생물학자들은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완성에는 수백년이 소요될 것이라는, 지금 보기에는 황당하기까지 한 추정을 내놓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 분자생물학자들 사이에 ‘살아 있는 전설’로 추앙받는 워슨의 등장은 게놈 프로젝트에 활력과 생기를 불어 넣었다.

    워슨은 50년대에 크릭과 함께 그 유명한 DNA의 이중나선형 구조를 밝힌 과학자로 탁월한 비전과 통솔력을 갖춘 20세기 최고의 과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모든 생명체의 게놈이 DNA 형태로 존재한다는 측면에서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워슨은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책임자로서 대단히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존재였다.

    워슨은 솔직하고 직선적인 성격으로 많은 지지자를 확보한 반면 상당수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과 불편한 관계를 만들기도 했다. 예를 들어 70년대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닉슨이 암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을 때 워슨은 이를 ‘미친 짓’으로 일축했다. 암에 대한 전쟁이 선포된 지난 30년간 미국 정부가 그다지 승리했다고 볼 수 없는 현재 상황에 워슨의 당시 논평은 과학적으로 정당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대통령의 선언을 한마디로 모욕하는 것은 개방적인 미국 사회에서도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70년대 암에 대한 전쟁을 ‘미친 짓’으로 평가절하한 워슨이 착수한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암 정복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모든 일에는 적절한 때가 있다. 때를 놓쳐서도 안 되지만 너무 서둘러서도 안 된다. 워슨은 바로 때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워슨의 등장으로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본궤도에 올랐고 많은 생물학자, 비전을 갖춘 관료, 생명공학 기업 관계자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크레익 벤터, 독불장군 혹은 천재?

    워슨이 미 국립보건연구소에서 게놈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을 때 인접한 다른 부서에 근무하고 있던 크레익 벤터는 새로운 방법으로 많은 유전자를 발굴하는 데 성공했다. 1991년 벤터는 연구소장의 적극적인 후원하에 자신의 연구팀이 발견한 유전자들에 대해 특허를 출원하려 했다. 그러나 워슨은 기능이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유전자에 대해 특허를 출원하게 되면 과학자들간에 자유로운 정보 교환이 불가능해져서 학문 발전에 장애가 될 것을 우려해 벤터와 연구소의 방침에 크게 반발했다.

    워슨은 벤터의 연구결과를 ‘원숭이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평가 절하하면서 특허 출원의 부당성을 강조했다. 결국 당시 연구소장과 개인적 갈등까지 빚자 워슨은 게놈 연구에서 손을 떼고 책임자직을 사직해버렸다. 학문적 자유와 개인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당국과 당당히 맞선 워슨의 행동은 과학자들에게 일생을 통해 그가 구축한 명성에 걸맞은 용감한 행동으로 비쳤다.

    벤터는 이 사태 이후 워슨을 비롯한 주류 과학자들과 관계가 소원해졌고, 그가 연구비 신청을 위해서 제출하는 연구제안서는 동료 과학자들 때문에 번번이 거부되는 상황을 맞게 됐다. 워슨 못지않게 고집 세고 탁월한 비전을 갖춘 벤터는 결국 국립보건연구소를 떠나 새로운 사립 연구소를 세웠고, 그곳에서 혁혁한 성과를 이루었다.

    보는 이에 따라 분자생물학계의 독불장군이라는 평가와 뚜렷한 비전을 지닌 천재 과학자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는 벤터는 학창시절 심각한 문제아였다고 한다. 어려서는 학교 시험을 거부해 부모 속을 썩이는 고집쟁이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빈둥대던 벤터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계기는 월남전이었다. 해군에 징집된 벤터는 그곳에서 군의관의 눈에 띄었다. 군의관은 벤터가 천재적인 두뇌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제대하면 꼭 대학에 가라고 권했다. ‘타임’지 인터뷰에서 벤터는 월남에서 시간이 얼마나 귀중한 지를 깨달았다고 밝혔다. 게놈 프로젝트에 관한 한 세상은 벤터가 정한 시간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데, 이는 사실 벤터가 월남전에서 체득한 경험에서 출발한 셈이다.

    벤터는 의사가 되려고 명문 존스홉킨스 의대에 진학했으나 그곳에서 임상의학보다는 분자생물학에 깊은 흥미를 느꼈다. 분자생물학자들이 선망하는 국립보건연구소에 연구원으로 채용된 벤터는 뛰어난 연구실적을 올렸으나, 특허 출원을 둘러싸고 워슨을 비롯한 일부 과학자들과 갈등을 빚어 결국 그는 분자생물학의 ‘앙팡 테리블’로 불리게 됐다.

    벤터의 천재성과 반골 기질은 그의 연구 방식에서도 곧잘 표출되고 있다. 벤터는 여러 차례 주류 분자생물학자들과는 다른 연구방법을 개발하여 전통 방식을 고집하는 보수적인 경쟁자들을 물리쳤다. 벤터가 국립보건연구소에 있을 때 유전자를 발굴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기술적으로 기발하거나 탁월한 것은 아니었으나 성과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었다. 워슨은 이에 대해 ‘원숭이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평가절하했지만, 이러한 비난은 특허 출원과 관련된 갈등을 겪으면서 다소 과장되게 표현한 해프닝이라고 볼 수 있다. 워슨은 후일, 벤터에 대한 공격이 지나친 것이었음을 인정했다.

    벤터가 국립보건연구소를 떠나 게놈연구소와 셀레라에서 추진한 게놈 프로젝트 방식은 주류 분자생물학자들이 보기에는 무척 무모한 일로 여겨졌다. 국립보건연구소를 중심으로 진행된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주류 과학자들에 의해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방법을 이용했지만 벤터는 이러한 방식이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단점이 있다고 생각해 독자적인 방법을 고안했다.

    인간 게놈 해독의 두 가지 방법

    네 종류의 염기가 특정한 순서로 30억번 배열되어 이루어진 인간의 게놈 정보를 A, C, G, T 네 종류의 알파벳을 30억번 배열하여 쓰인 생명의 책을 번역하는 데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얼핏 생각하기에 게놈을 구성하는 DNA의 한쪽 끝에서부터 읽기 시작하여 한 염기씩 순서대로 읽어 나가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이러한 방법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DNA를 분리하는 순간 게놈 전체가 수천, 수만 개의 조각으로 부서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가장 최신의 DNA 서열 자동분석기를 사용해도 기껏해야 한 번에 1000개 정도의 염기 서열을 읽어낼 수 있을 뿐이다. 결국 게놈을 잘게 쪼개서 조각의 염기 서열을 밝혀낸 후 원래의 게놈 정보를 재구성할 수밖에 없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 인간 게놈 프로젝트 사업에서 주류 분자생물학자들이 이용하는 방식은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방법이다. 이를 비유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첫번째 할 일은 먼저 게놈을 부숴 이를 순서대로 나열하는 일이다. 이는 생명의 책을 장 별로 나누고 쪽 별로 나누는 것과 같다.

    다음으로 실험을 통해 각각의 쪽에 해당하는 염기서열을 밝혀낸다. 각각의 쪽이 전체 생명의 책에서 어느 부분에 해당하는 지 이미 알고 있으므로 이를 규합해 생명의 책을 완성한다. 이 방법은 합리적이고 실현 가능성이 높지만 첫째 단계, 즉 생명의 책을 쪽 별로 배열하는 작업에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반면 벤터는 이러한 첫 단계를 생략하고 무작위로 책을 찢은 후 각각의 쪽지를 서로 비교하여 전체 책을 구성하는 다소 무모한 방식을 고안했다. 벤터가 사용한 방식의 첫 단계는 동일한 책 10권을 무작위로 약 1000개 글자를 포함하는 쪽지로 잘게 찢은 후 각각의 쪽지를 읽어 내는 작업이다. 이때 동일한 책들을 무작위로 찢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물론 실제 작업은 책을 찢는 것이 아니고 게놈을 잘게 부순 다음 조각의 염기 서열을 읽어 내는 것이다.

    다음 단계는 각각의 쪽지를 서로 비교하면서 순서를 정하는 것이다. 만일 책을 한 권만 찢어 작업한다면 어느 쪽지가 어느 쪽지 다음에 오는지 전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동일한 책 10권을 무작위로 찢었다면 원래의 책에 두 쪽지가 연이어 있는 경우 다른 책에서 찢겨 나온 쪽지 가운데 이들 두 쪽지와 부분적으로 겹치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앞 단락의 첫째 문장을 평균해서 다섯 단어씩 무작위로 찢는다고 가정하자. 매우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일례를 들자면 다음과 같이 찢을 수 있다. “반면 벤터는 이러한 첫 단계를 생략하고” “무작위로 책을 찢은 후 각각의” “쪽지를 서로 비교하여 전체” “책을 구성하는 다소 무모한 방식을 고안했다”

    이와는 달리 다음과 같이 무작위로 찢는 것도 가능하다. “반면 벤터는 이러한 첫” “단계를 생략하고 무작위로 책을 찢은” “후 각각의 쪽지를 서로” “비교하여 전체 책을 구성하는” “다소 무모한 방식을 고안했다”

    이들 9개의 쪽지를 서로 비교하면 전체 문장을 재구성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첫 째 방식으로 찢었을 때 만들어진 다음 두 쪽지, “반면 벤터는 이러한 첫 단계를 생략하고”와 “무작위로 책을 찢은 후 각각의”가 연속되어 있는 것인지는 바로 둘째 방식으로 찢었을 때 만들어진 쪽지 “단계를 생략하고 무작위로 책을 찢은”과 비교하면 확인할 수 있다. 둘째 방식으로 찢었을 때 만들어진 쪽지에는 첫째 방식으로 찢었을 때 만들어진 쪽지들과 겹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업을 각각의 쪽지에 대해 반복하면 원래의 문장을 복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권의 책이 수백만 개의 쪽지로 구성돼 있고, 두 쪽지가 연이어 있는지의 여부를 판단하려면 10권의 책을 찢어 만든 수천만 개의 쪽지와 일일이 비교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작업이 얼마나 무모한 방법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주류 과학자들은 한 문장이나 한 쪽에 대해서는 이 방법을 적용할 수 있겠지만 생명의 책 전체에 적용하기에는 너무 ‘무식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연방정부의 연구비를 지원받으려는 벤터의 제안은 주류 과학자들로 구성된 보수적인 심사위원회에서 번번이 거부됐던 것이다.

    더욱이 특허 출원을 둘러싸고 주류 과학자들과 빚은 갈등은 벤터를 더욱 외톨이로 만들었다. 그러나 벤터는 이 방법이 주류 분자생물학자들이 진행하고 있는 30억 달러짜리 프로젝트에 비해서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훨씬 빨리 생명의 책을 완성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 이유는 벤터가 DNA 서열 자동분석기와 슈퍼컴퓨터의 뛰어난 기능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벤터 방식의 특징은 각각의 쪽지를 읽어 내고 이들을 서로 비교하는 단조로운 작업을 거의 무한히 반복해야 한다는 데 있다. 벤터는 이런 작업에는 기계가 최고임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벤터는 올 상반기에 작업을 완료함으로써 미국의 국립보건연구소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다국적 인간 게놈 프로젝트보다 3년이나 빨리 생명의 책을 완성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작년 ‘타임’지 인터뷰에서 벤터는 “(워슨과 자기 둘 중에) 누가 바보인지 곧 분명해질 것”이라고 밝혀 자신감을 보였다.

    다윗이 골리앗에 맞설 수 있는 이유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 사업과 벤터가 이끄는 일개 민간 기업인 셀레라의 한판 승부에서 누가 이길 것인가? 애초부터 승부가 될 수 없다는 전망을 뒤엎고 셀레라가 승자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금년 초까지만 해도 대세를 이루었다. 그러나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최근 발표는 다국적 프로젝트가 재역전을 시도, 마지막까지 승부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 주고 있다.

    유전자에 대한 특허 개념이 미미한 우리 나라로서는 대부분 인간 유전자에 대한 특허가 외국 민간기업 소유가 되는 것보다는 다국적 프로젝트가 한 발 앞서 인간 게놈 사업을 완료함으로써 그 정보를 공유하게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현 상황을 보면 다국적 프로젝트가 승리하더라도 결국 각각의 유전자들에 대해서 외국의 제약회사, 생명공학회사, 선진국 정부 등이 별도로 특허를 출원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즉 다국적 프로젝트의 성과로 인간 게놈 정보가 인터넷상에 공개되면 셀레라가 이를 총체적으로 특허 출원하는 것은 봉쇄할 수 있지만 각각의 유전자 기능과 유용성을 밝혀서 따로따로 특허를 출원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유전자를 확보하기 위한 진정한 싸움을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벤처 기업에 불과한 셀레라가 선진국 정부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 다국적 인간 게놈 프로젝트 사업단에 당당히 맞서 한 판 승부를 벌일 수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이는 생명공학 산업에서 개인의 창의성과 도전정신이 막대한 조직과 자금보다 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벤처 기업은 소수의 창의적인 과학자, 기술자들과 비전을 갖춘 경영인을 중심으로 엔젤 투자자와 벤처 캐피털이 의기 투합하여 시작되는 것이 보편적이다. 벤처 기업의 장점은 덩치가 큰 대규모 다국적 회사 또는 국가 연구기관과는 달리 의사결정 과정이 빠르고 개인의 창의성과 주도권을 전적으로 존중한다는 점에 있다. 또한 기업을 구성하는 경영진, 기술진 모두가 회사의 성장을 통해 자아를 성취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들에게 적극적인 동기를 부여하고 있어 벤처기업 성공에 주요 기반이 되고 있다.

    생명공학 산업을 21세기 전략산업으로 육성하려는 우리 나라에서도 미국 바이오벤처 기업들의 성공은 좋은 교훈이 된다. 아울러 벤처 열기가 뜨거운 한국의 경제상황은 생명공학 시대를 이끌 미래의 생명공학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좋은 토양이 되고 있다. 다만 생명공학 산업이 이제 태동 단계이므로, 신생 바이오벤처 회사들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인프라가 매우 열악하다는 사실이 걸림돌인데 이에 대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사람과 원숭이의 차이 - 종이 한 장

    1860년 영국 옥스퍼드대 강당에서 개최된 공개토론회에서 윌버포스 주교는 헉슬리에게 이렇게 물었다.

    “당신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면 그것은 당신의 할머니 쪽이었습니까? 할아버지 쪽이었습니까?”

    관중들이 폭소를 터뜨렸음은 물론이다. 이에 대해 ‘다윈의 불독’이라고까지 불렸던 골수 진화론자인 헉슬리는 이렇게 대꾸했다.

    “내 조상이 원숭이라는 사실은 수치스럽지 않지만 당신처럼 타고난 재능과 언변을 이용해서 편견과 오류를 조장하는 사람이 내 조상이었다면 매우 수치스러웠을 것입니다.”

    윌버포스보다 한 수 위인 헉슬리의 신랄한 독설을 듣고 일부 흥분한 관중은 혼절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분자생물학이 발달한 현 시점에서 사람과 침팬지를 비교해 보면 윌버포스 주교에게 다소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사람과 침팬지의 게놈을 비교해보면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받아들이기에 따라서 흥미있을 수도 있고 기분 나쁠 수도 있겠지만 사람과 침팬지의 게놈은 98.7%가 동일하고 다른 것은 1.3%에 불과하다. 생물학적으로 볼 때 사람과 침팬지는 가까운 친척간이다. 진화론적으로 설명하자면 사람과 침팬지는 불과 1000만년 전에 갈라선 형제 사이다.

    언어를 사용하여 의사를 표현하는 능력,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능력,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알고 또한 창조하는 능력, 달에까지 도달할 수 있고, 이제는 게놈마저 분석할 수 있는 기술, 그 어느 것도 침팬지는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런데 그러한 침팬지의 게놈과 인간의 게놈이 불과 1.3%만 다르다니….

    그 1.3%의 차이를 밝히면 인간의 고유한 특성, 즉 언어를 사용하고 예술을 창조하며 과학과 기술을 개발하는 놀라운 능력의 생물학적 근거를 밝힐 수 있지 않을까?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일부 영장류 생물학자들이 제기했던 의문이다. 10년 전만 해도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 대해 찬반 논쟁이 분분했지만, 이제는 침팬지의 게놈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많은 과학자들이 필요성을 공감하는 눈치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축적한 노하우를 활용하면 침팬지 게놈 프로젝트는 불과 수년 내에 완료될 수도 있다.

    사람과 효모의 차이 - 종이 두 장

    다소 엉뚱한 비교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사람과 효모의 게놈은 얼마나 비슷할까? 잘 알다시피 효모는 예로부터 빵을 굽거나 맥주를 만드는 데 사용해온 단세포 생물이다. 그런 효모와 사람을 어찌 비교할 수 있는가?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볼 때 복잡성에 차이는 있지만 효모도 사람도 게놈을 지니고 있는 생명체란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사람의 게놈에는 유전자가 약 10만개 있는 데 비해 효모의 게놈에는 약 6000개가 있다. 효모의 유전자 대부분은 사람의 게놈에도 그것과 유사한 유전자들이 존재한다. 평균해서 말하자면 사람과 효모의 유전자는 대략 20%가 유사하다고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람의 유전자와 그것에 해당하는 효모의 유전자를 비교해보면 유전자 서열이 80% 이상 동일할 때도 있다.

    효모 유전학자들이 흔히 하는 실험 가운데 효모 게놈에 존재하는 특정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제거하거나 망가뜨리는 것이 있다. 유전학자들이 이러한 실험을 하는 이유는 그 유전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를 알아내고 싶어서다. 그런데 제거하고자 하는 유전자가 효모의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적인 유전자인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러한 경우 그 유전자를 제거하거나 망가뜨리면 당연히 효모는 생존하지 못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때 그 유전자와 비슷한 인간의 유전자를 효모에 주입하면 효모가 다시 분열하면서 살아난다. 즉 사람의 유전자가 효모의 유전자를 대치하면서 효모가 살아나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사람과 효모가 먼 친척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예전부터 생물학자들은 사람의 몸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효모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었다. 효모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파악하면 사람의 몸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상당 부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일부 제약회사의 연구진 중에 효모를 연구하는 학자가 포함돼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신약을 개발하고 시험하는 첫 단계로 효모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효모의 게놈은 벌써 몇 년 전에 완성돼 생물학 연구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일단 다 구명하고 보자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막바지에 달한 현 시점에 생명과학자들은 다음으로 착수할 게놈은 무엇이 되어야 할지에 대해 심각하게 논의하고 있다. 인간 게놈 이전에도 이미 여러 종류의 박테리아 게놈을 구명했고, 비교적 고등생물인 효모와 씨엘리간스(흙에서 유래한 작은 벌레)의 게놈도 최근에 완성했다. 초파리의 게놈도 가까운 시일 내에 완전히 구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러한 모델 생물들은 생물학 연구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만 사람과는 진화적으로 상당히 떨어져 있어서 그 연구결과를 바로 사람에게 적용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많은 생물학자들이 생쥐의 게놈에 눈을 돌리고 있다. 생쥐는 유전학적으로 매우 연구가 잘 돼 있고, 한 세대가 짧아서 생물학자들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고등동물이다. 신약을 개발하는 데 필수 단계인 동물실험에도 생쥐가 흔히 쓰인다. 생쥐의 게놈이 구명되면 생명과학과 의학이 한 단계 더 발전할 것이다.

    식물학자들도 게놈의 중요성에 일찌감치 눈을 떠 여러 종류의 게놈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고등식물 가운데 식물학자들이 흔히 연구하는 모델 식물인 애기장대의 게놈은 올해 안에 완전히 밝혀질 전망이다. 상업적으로 중요한 식물인 쌀의 게놈 프로젝트도 세계 각국에서 활발히 진행중이다. 쌀 게놈 프로젝트가 종료되면 다음 차례는 밀 또는 옥수수가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21세기 중에는 우리 주변의 대다수 생명체에 대한 게놈 프로젝트가 계속 진행되고 종료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세계 각국의 정부, 기업들은 게놈 프로젝트에 열을 올리나? 간혹 갈등이 노출되기도 하지만 생물학자들, 기업, 정부의 이해가 맞아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은 게놈 구명이 생명체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게놈 프로젝트에 열광하고 있다. 이는 마치 보물섬을 발견하고 흥분에 차 환호하는 소년들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다.

    모험심이 강하고 호기심 많은 아이들은 발견한 보물을 가지고 노는 것 자체에 신이 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발 밑에 쌓여 있는 보물들이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지는 잘 모른다. 한편 제약회사, 생명공학회사 등 기업들은 유전자를 둘러싼 경제적 이익을 계산하고 있다. 보물섬을 발견한 아이들과는 다른 견지에서 선주들은 유전자가 보물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미소짓고 있는 것이다.

    세계 각국 정부는 생명공학이 21세기의 경제적 흥망을 결정할 핵심산업 분야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게놈 프로젝트를 적극 후원하고 있는 각국 정부는 바로 양질의 유전자원을 가장 많이 확보하는 나라가 21세기 경제 강국이 되리라는 점을 이미 깨닫고 있다.

    각종 게놈 프로젝트가 종료되면 가축과 농작물의 게놈을 개량해서 신품종을 개발하는 작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육질이 좋은 소나 돼지를 생산하게 될 것이며, 포화지방산의 비율을 낮춘 콩을 개발해 사람 몸에 좋은 식용유를 만드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다. 필수 비타민 성분과 철분이 강화된 쌀을 만드는 작업도 지금보다 용이해질 것이고, 식물에서 플라스틱 성분을 만들어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완료와 더불어 의학과 약학이 획기적으로 발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각종 게놈 프로젝트가 종료되면 생명공학에 신기원이 펼쳐질 것이다.

    그다지 의미 없는 의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는 것보다는, 답은 모르지만 중요한 의문을 갖고 있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생명의 책, 게놈은 우리에게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은 왜 동물과 다른가? 나는 왜 다른 사람과 다른가? 우리는 왜 늙고 병들고 결국 죽는가?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와 같은 중요한 의문을 끊임없이 제공한다.

    아마도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가장 큰 성과는 앞으로 우리의 삶과 건강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점말고도 이와 같이 근원적이고 중요한 의문을 떠올리게 하는 데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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