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은 2월22일 한국상장회사협의회와 한국IR협의회가 공동주최한 장하성 교수의 조찬 강연 내용이다. 주제는 ‘소액주주가 본 주주 중시경영과 주주총회 운영’. 주총을 앞둔 각 기업의 뜨거운 관심 속에 진행된 이 강연에서 장교수는 “주주들이 주가하락을 항의하거든, 투명한 경영을 약속하며 솔직하게 접근하라’고 조언했다.》
이것은 참으로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참여연대의 소액주주운동은 현재 세계 100개 이상의 기관투자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템플턴, 스커더켐퍼, 메릴린치, 머큐리, 슈로더 등 한국에 들어와 있는 유럽 또는 미국의 큰 기관투자자들이 저희와 끊임없이 교류하고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그 많은 기관투자자 중 단 한 군데도 저나 참여연대가 먼저 찾아가 우리가 이런 소액주주운동을 하니 도와주십시오 한 적이 없다는 겁니다. 그들이 알아서 자기 발로 찾아온 겁니다.
97년 1월에 제일은행을 상대로 소액주주운동을 시작하면서 참여연대가 내세웠던 모토는 투명성과 책임경영이었습니다. 지금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용어가 됐지만 그때는 모두가 비웃었죠. 참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일부 경제신문에서는 빨갱이 아니냐는 표현까지 썼습니다.
그런데 저희도 모르는 사이에 외국 언론들이 이 운동을 크게 보도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할 수 있는 세계적인 신문들, 파이낸셜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LA타임스, 르몽드가 이 운동을 보도했어요. 그리고 외국 기관투자자들이 그 기사를 보고 저를 찾아온 겁니다.
제가 왜 이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 참여연대는 그런 기관투자자들로부터 단 1원의 기부금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많은 외국 기관투자자들이 우리는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으니까 1만 달러 정도 기부금을 낼 수 있다며 제안해오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소액주주운동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100% 개인 후원금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반면 국내에서는 제가 여러 회사를 방문해 “이런 일은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나서야 하는 겁니다, 우리 문제는 우리 시장에서 해결해야 하니 도와주십시오”라고 부탁해 보았지만 단 한 군데도 반응이 없습니다. 여기서 도와준다는 의미는 후원금을 달라는 게 아닙니다. 정당한 문제를 제기했을 때 그것이 투자자를 보호하고 주주를 보호하고 채권자를 보호하는 것이라면 주총에서 참여연대와 같은 편에 서달라, 또는 어떤 안건이 나왔을 때 참여연대와 의견을 같이해 투표해달라, 그런 부탁을 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이 운동에 적극적인 국내 기관투자자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지난해 8월 SK텔레콤 임시주주총회에서 당시 참여연대가 대표한 지분이 37%였고, 선경의 최태원 회장측 지분이 38% 정도였습니다. 18%의 지분을 가진 2대 주주 한국통신이 참여연대를 지지했는데 그렇다면 37% 중 나머지 19%는 어디서 왔느냐, 그게 안타깝게도 대부분 외국인 지분입니다.
많은 외국 투자자들이 우리나라 기업들이 너무 저평가(低平價)돼 있다고 봅니다. 세계적인 기관투자자들은 참여연대가 주장하는 것처럼 우리나라 기업들이 투명성과 책임경영체제를 확립하고 재벌총수들의 전횡경영을 전문경영인의 독립적인 경영체제로 바꾸면 우리나라의 기업가치가 올라간다고 믿기 때문에 참여연대의 소액주주운동을 지지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참여연대의 소액주주운동은 시비를 걸자는 게 아닙니다. 이 운동은 우리나라 기업들, 특히 재벌들을 국제적 기준에 맞는 기업지배구조로 바꾸어서 기업가치도 높이고 공정한 시장경제체제를 만들고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에 부정부패를 막음으로써 모두가 이기는 윈윈(win-win) 운동을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다시피 우리 나라 상장회사의 시가 총액이 GDP 규모와 맞먹습니다. 경제성장을 5% 하거나 10%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 기업이 국제적으로 5% 또는 10% 높게 평가받는 일은 매우 쉽습니다. 대부분 외국 기관투자자들은 한국이 지금보다 최소한 두 배, 또는 그 이상 평가받아야 한다고 공통적으로 이야기합니다. 그 이야기는 만약 상장기업의 시가총액이 두 배가 되면 곧장 우리나라 국부가 두 배로 늘어난다는 겁니다. 우리나라가 매년 5%씩 경제성장을 해서 경제가치를 두 배로 늘리려면 10~15년은 걸릴 겁니다. 그렇지만 이미 잘 하고 있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투명한 경영과 책임지는 경영체제로 바꾸고 총수들의 전횡을 막으면 국제적으로 기업가치를 더 인정받게 되니 국부를 두 배로 늘리는 것은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기업의 평가는, 개방된 시장경제체제에서 어떤 특정기업의 주주 이익이나 채권자의 이익에 국한한 것이 아니라 국부(國富)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것은 기업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경제차원의 중요한 문제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소액주주운동은 단순히 소액주주들의 권익만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국부를 늘리는 운동인 것입니다.
자본시장에서 결정되는 기업가치
요즘 코스닥 시장의 활황에 대해 많은 상장기업이 불평합니다. 특히 주주총회를 앞두고 걱정하는 분이 많습니다. 우리는 이익도 많이 냈고 여러 가지 노력도 했는데 주가가 형편없다는 거죠. 물론 지금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상당히 비정상적인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기업의 가치가 상품시장에서 결정됐습니다. 좋은 물건 만들어서 많이 팔면 좋은 기업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기업의 가치가 상품시장에서 끝나지 않고 자본시장에서 최종적으로 인정받습니다. 아무리 물건을 잘 팔고 시장을 장악하고 있어도 궁극적으로 자본시장에서 투자자들이 그것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기업가치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코스닥시장에 대해 많은 분이 거품이라고 말하지만 우리나라에 새로운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있으며 투자자들은 그것을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반면 상장기업에 대해서는 투자자들이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을 대변해 줍니다. 어차피 양쪽 다 믿기 어렵다면 성장가치를 좇겠다는 투자자들이 코스닥시장으로 몰리는 것도 주식시장에서 상장기업이 밀리는 이유 중 하나일 겁니다.
이제 현실적인 문제로 돌아오겠습니다. 참여연대는 올해에도 몇몇 기업의 주주총회에 참석하고 소액주주운동을 계속합니다. 소액주주운동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업 몇 군데로 국한하는 것은 저희의 인원이나 재정이 한정돼 있기 때문입니다. 대상기업은 지난 3년 동안 계속해온 삼성전자와 SK텔레콤, 작년부터 우리가 주목하고 있으며 올해 주요 목표로 삼은 현대중공업과 데이콤 등 4개 회사입니다.
LG그룹이 데이콤을 인수할 때 참여연대는 여러 차례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재벌이 또 하나의 기업을 갖는 것이 과연 산업구조상 좋은 일이냐는 문제로 이의를 제기했고, 그동안 LG그룹이 여러 군데 분산해서 위장 보유해온 데이콤 지분을 밝혀내고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공정거래위원회가 내린 결론은 참여연대가 제소한 내용이 위장지분이라고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소액주주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국가의 산업정책까지 판단할 만한 역량이 부족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 후 공정거래위원회가 데이콤을 LG그룹 신규계열사로 정식 지정했기 때문에 더 이상 그 문제를 따지지 않고, 대신 누가 경영권을 가져가든지 데이콤을 좋은 회사로 만들어보자는 뜻에서 저희 나름대로 LG그룹에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관한 제안을 했고 상당부분 경영진과 협의를 진행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정말 한국에 이런 기업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외국 투자자나 국내 투자자에게 “봐라, 재벌도 이렇게 바뀔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결국 그것이 저평가된 한국 기업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유일한 길이라고 봅니다.
기업의 지배구조위험에 주목하라
기업가치를 평가할 때는 미래의 현금인 이익을 현재 시점에서 평가하는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그때 미래의 현금이란 결국 영업이 결정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과거에 기업의 가치는 상품시장에서 결정됐지만 오늘날에는 그 기업의 자본비용, 즉 할인율입니다. 전통적으로 경영학에서 가르치는 할인율이란 얼마나 싼 자본을 가져오느냐의 자본비용 개념과 그 기업이 직면하고 있는 위험에 대한 요소, 두 가지입니다. 과거에 비해 금리가 크게 내렸는데도 한국 기업의 가치가 높아지지 않는 것은 소위 말하는 한계자본을 국내에 투자하고 있는 외국 투자자들이 우리 기업이 지닌 위험요소를 아직도 높게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위험요인이란 경영학적으로 크게 세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하나는 ▲재무위험입니다. 궁극적으로 재무위험이 극단화됐을 때 파산위험이 되는 것이죠. 둘째 ▲영업위험입니다. 영업이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고 그래서 사이클을 타는 것인데, 여기까지가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특히 이머징 마켓(Emerging Market)에서 투자자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이 ▲기업지배구조위험입니다. 기업의 투명성과 책임경영체제가 돼 있느냐 안 돼 있느냐, 과연 이 경영진이 내 돈을 충실히 관리하고 있느냐, 이 경영진이 내놓은 숫자를 믿고 투자해도 좋으냐 하는 것들이 할인율을 결정합니다.
그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 지금 우리나라 채권시장이 죽어 있다는 것입니다. 채권시장 투자자들은 주식시장의 투자자들보다 훨씬 보수적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업들이 기업내용은 상당히 좋은데 외국의 기관투자자들이 우리 기업의 채권에 투자하지 않는 큰 이유가 바로 기업지배구조를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작년에 참여연대가 참석한 삼성전자 주주총회는 9시간 반 동안 진행됐고 재작년에는 13시간 반이나 주총을 하는 희극을 연출했습니다. 저희는 주총에 참석하기 수개월 전부터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도 마찬가지지만, 그 기업 내용을 분석해 경영진에 미리 질의서를 보내고 경영진과 협상을 합니다. 삼성전자의 경우 작년에는 1주일 전에 질의서를 보냈고, 재작년에는 열흘 전에 보냈습니다.
재벌기업들과 사전 협상을 할 때 쟁점사안은 계열사간 거래의 절차 문제였습니다. 참여연대는 계열사간 거래의 절차를 정관에 명기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외국 선진기업에서는 정관이 필요 없이 회사 감사실에서 철저하게 합니다. 인터널 컴프라이언스 룰이라는 것에 따라 이해 당사자와의 거래는 가장 투명한 절차를 밟습니다.
참여연대가 삼성전자에 요구한 절차는 아주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단일거래가 약 100억원을 넘는다든지 아니면 연간 규모로 일정 금액이 넘는 계열사와의 거래는 사전에 이사회 승인을 취득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것이 계속거래일 때는 어떤 한도를 정해놓고 사전 승인을 받으면 업무에 지장이 없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최대기업이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기업이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능력 있는 전문 경영인을 갖고 있는 삼성전자가 이걸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기업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겁니다.
기업들이 이런 절차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만, 경영구조 문제가 많습니다. 기업마다 능력 있는 전문경영인이 많습니다만 그룹경영이다, 총수경영이다 해서 전문경영인들이 날개 끝에 깃털 하나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깃털이 할 일은 높이 나는 거예요. 높이 날기 위해 필요한 날개 끝의 깃털이 바로 투명성과 책임경영입니다.
우리나라 최대 기업이고, 가장 영업을 잘 하고, 가장 이익을 많이 내며, 세계적인 경제지 ‘포천’이 올해의 경영인으로 뽑은 사람이 대표이사로 있는 삼성전자가 계열사와의 거래절차를 투명하게 명시하는 정도의 변화를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 기업이 저평가되고 있다고 봅니다.
현대중공업의 경우가 여러분에게 참고가 될 것 같아 예를 들겠습니다. 지난해 가을 현대그룹이, 제가 생각하기에 아마 처음일 것 같은데, 박세용 회장이 각 계열사 사장단을 이끌고 싱가포르와 홍콩으로 로드쇼를 하러 갔습니다. 말하자면 IR(Investor Relation:대투자자 홍보활동)을 하러 간 거죠.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 로드쇼가 현대그룹 주가에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물론 시장 전체가 그 동안 코스닥으로 많이 이동하면서 거래소가 상대적으로 저평가를 받았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현대그룹 주가를 보면 일방적인 슬라이딩입니다. 현대중공업은 작년 8월 상장했는데 겨우 공모가격의 반에 미칠 정도로 한심한 수준입니다.
참여연대는 소액주주운동의 대상 기업으로 현대그룹 중 어떤 회사를 선정할 것인가로 고민했는데, 현대중공업을 택한 것은 기분 내키는 대로 한 게 아닙니다. 이 운동을 이끄는 분들이 다 전문가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어떤 그룹에서 특정 기업을 대상으로 삼을 때는 많은 분석을 합니다.
그중에 참여연대가 상당히 고민한 부분이 과연 주주를 많이 모을 수 있느냐는 겁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 운동을 지지하는 주주가 대부분 외국인들이어서 가능하면 외국인 지분이 높은 회사를 선정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짐작하실 텐데 현대중공업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현대중공업은 외국인 지분이 2%입니다. 그리고 대주주들이 상당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회사입니다. 그런데 왜 참여연대는 현대중공업을 택했을까요?
참여연대가 보기에 현대그룹에서 가장 좋은 기업이 현대중공업입니다. 현금을 가장 많이 만들어내고, 배를 만드는 회사지만 발전부문 설비부문 플랜트부문에서 세계 최대 조선회사일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포트폴리오가 굉장히 좋습니다. 현재 현대중공업의 주가가 3만원대인데 외국의 분석가들은 목표가격을 10만원대로 보고 있습니다.
현대중공업은 주주들에게만 손해를 끼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도 해를 끼치고 있습니다. 현대중공업이 저평가됨으로써 국부가 유실되는 거라고 봅니다. 왜 그런 결과가 왔느냐. 저희가 작년 현대중공업 주총에 참석하기 전, 어느 기업이나 마찬가지입니다만, 주주로서 당연히 회사의 감사보고서와 사업보고서를 요청했습니다.
그랬더니 주총 이틀 전에 저희에게 연락해서 감사보고서가 완료됐으니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시간이 촉박해 서울에 있는 현대 본사 사무소에 가서 받으면 안 되겠느냐 했더니 법에 그렇게 안 돼 있으니 울산에 와서 가져가라는 겁니다. 팩스로 보내주면 안 되겠느냐고 했더니 그것도 법에 그렇게 안 돼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오후에 회계사 한 분이 비행기를 타고 울산 현대중공업으로 갔습니다. 주총 하루 전입니다. 그 전날 아침 일찍 이 회계사가 회사로 찾아가 “감사보고서와 사업보고서를 한 부 주십시오” 했더니 법에 열람은 할 수 있지만 등사는 할 수 없다, 그러니 보여는 줘도 줄 수는 없다는 겁니다. 열람이라는 건 등사를 포함하는 것이라고 항의했더니 법정에서 만나자, 이렇게 나온 겁니다. 그래서 저희 회계사가 4시간 동안 직접 숫자를 다 적어왔습니다. 참 불행한 이야기입니다. 그 직원이 회계사에게 “당신네 복사기 가져와서 복사해 가라”고 했답니다.
그 회계사가 적어온 숫자를 토대로 우리는 성실한 질의서를 만들어 경영진에 주총 전날 건네주었습니다. 다음날 주총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현대측은 직원 600명을 동원해 전날 우리가 준 질의서 내용을 모두 나눠준 뒤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질문하게 했습니다. 참여연대 쪽에서 질문을 하면 그 질문은 이미 받았으니 똑같은 질문은 받을 수 없다고 했고 우리쪽에서 참석한 10명이 발언을 할 때마다 소리를 질러 무슨 말을 하는지 들을 수도 없게 만들었습니다. 주총장 들어갈 때 참여연대측 여자 변호사의 핸드백을 뒤지는 무례까지 보였습니다. 우리는 이 주총에 대해 무효소송을 제기했으며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해서 진행 중입니다.
불신이 투자를 가로막는다
작년 삼성전자 주총에서도 우리는 절차상의 문제를 강력히 제기했는데 당시 법률자문을 맡은 김·장에서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해 경영진은 주총을 강행했지요. 그러나 나중에 우리가 주주총회 결의 취소 소송을 제기해 결국 승소했습니다. 재량기각을 받았으니 그건 저희가 정당하다는 걸 인정한 거죠.
같은 이야기가 결국 현대중공업에도 적용됩니다. 제가 왜 이 이야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하느냐면 여러분이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국내기관 투자자도 모르는 사실을 외국 기관 투자자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현대 박세용 회장이 IR을 하러 싱가포르에 갔는데 상당히 많은 투자자들을 앉혀놓고 “우리 현대그룹이 이렇게 바뀌고 있습니다, 이렇게 좋아졌습니다”라고 이야기하자 세계적인 투자기관 중 하나인 머큐리 에셋의 참가자가 일어나서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들은 다 좋다고 이야기하는데 그러면 지난 봄 주주총회에서 참여연대의 활동을 왜 방해했느냐”고요.
현대측 답변은 그런 적이 없다는 거였습니다. 여러분, 한국에 투자하는 외국기관은 규모가 큰 곳이 20~30군데, 작은 기관까지 합치면 100개 내외입니다. 뉴욕에 있든 런던에 있든 싱가포르나 홍콩에 있든 한국에 투자한 펀드매니저들끼리는 활발하게 정보를 교류합니다. 그런데 현대가 “그런 일 없다”고 부정하면 그 자리에 모인 투자자들이 머큐리 에셋의 펀드매니저 말을 믿겠습니까, 현대의 말을 믿겠습니까.
나중에 현대그룹은 머큐리측에 사적인 만남을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머큐리 총책임자가 제게 전화를 걸어 오후에 현대 그룹과 따로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당신네의견이 뭐냐고 묻더군요. 현대측은 사적인 자리에서까지 참여연대 사람들은 한국의 과격분자이고 나쁜 놈들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고 머큐리 에셋은 나중에 현대중공업 지분을 다 팔아버리겠다고 했습니다.
현대중공업은 제가 볼 때 아무리 안 돼도 외국인 지분이 최소 10%선은 있어야 합니다. 외국인 지분이 지금의 2%에서 10%대로 올라간다면 기업 가치가 상당히 증대하리라고 봅니다. 많은 투자자들이 현대중공업을 좋은 회사라고 보고 있지만 경영진에 대한 불신, 회계 장부에 대한 불신 때문에 투자하지 않으려는 겁니다. 참여연대가 바꾸려고 하는 것이 바로 그런 부분이라는 것을 여러분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SK텔레콤이나 삼성전자에 대해서는 긴 이야기를 하지 않겠습니다. 현대중공업이나 데이콤, SK텔레콤도 마찬가지입니다만 결과적으로 기업이 과거처럼 은행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간접금융의 기회가 점점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주식의 발행이나 채권의 발행을 통해 자본시장에서 직접 금융으로 조달해야 됩니다. 특히 그것이 국내 자본시장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해외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야 하기 때문에, 기업경영의 투명성과 책임경영의 문제는 당장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도 일단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얻으면 장기적으로 기업 자금조달에 결정적인 구실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기업에서 IR하시는 분들, 또는 감사들이 투자자의 신뢰를 얻는 방법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IR는 PR와 다릅니다. 마케팅 차원의 광고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현대그룹의 IR였던 거죠. 제가 만약 현대 책임자였다면 머큐리 에셋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을 겁니다. “그렇다. 그런데 그때는 우리가 소액주주운동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었지만 이후로 참여연대와 만나 이런 저런 협의를 해서 좋은 성과를 내겠다”고. 말 한마디로 천냥 빚 갚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한 기업이 삼성전자입니다. 제가 작년 2월 삼성전자 주총을 앞두고 외국 기관투자자들을 만나기 위해 로드쇼를 하러 나갔습니다.
저도 로드쇼를 다닙니다. 개인 돈을 들이기도 하고, 또는 투자기관 초청으로 자주 외국에 나갑니다. 작년에는 싱가포르, 홍콩, 런던, 뉴욕의 투자자들을 만나러 출장을 갔습니다.
싱가포르와 홍콩에서 규모가 큰 투자기관 30여개와 회의를 했는데 제가 돌아온 그 다음 주에 삼성전자 윤종용 사장이 제가 갔던 코스를 그대로 밟아 투자자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이것은 삼성전자에 엄청나게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삼성전자, 장부열람으로 적극 공격
삼성전자는 세계적인 기업입니다. 세계적인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투자자들을 직접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투자자들에게 주는 신뢰는 대단합니다. 단순히 삼성전자 대표이사라는 지위 때문이 아니라, 그분이 외국에 나가 거짓을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윤종용 사장은 귀국 후 개인적으로 만난 자리에서 오해가 있었다고 말씀하더군요. 제가 외국에 나가 투자자들에게 삼성전자는 나쁜 회사라고 이야기하고 다닌 줄 알았다는 겁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한국 전문경영인들의 역량은 세계적입니다. 경영진은 정말 경영을 잘 하고 있는데 자꾸 회장이 나서서 이 돈 빼가고 저 돈 빼가고, 이 계열사 돈 돌려서 저리 주고 하는 그룹경영에 문제가 있으니 그것을 바꾸자는 게 참여연대의 주장입니다.
현재 삼성전자는 경영을 참 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포천’지가 삼성전자 윤종용 사장을 올해의 경영인으로 선정하지 않았습니까. ‘포천’을 대표해 시상하러 온 루이스카씨는 평소 교분이 있던 분입니다. 그분이 시상식 전에 제게 “우리가 사람을 제대로 선정했느냐”고 묻더군요. 제가 “베스트 맨을 선정했다. 그래서 내가 오늘 여기에 축하해주러 왔다”고 했더니 “참여연대가 그렇게 이야기해주니 ‘포천’이 확실히 좋은 사람을 선정한 것 같다”고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삼성전자도 이건희 회장 개인의 독단으로 삼성자동차에 수천억원 투자해서 날리고, 삼성계열사들이 회사 재산을 이회장 자식들에게 빼돌려도 전문경영인들은 꿀 먹은 벙어리거나 오히려 이것을 도와주는 악역을 맡고 있어서 주가가 국제수준보다 낮은 것입니다.
참여연대는 삼성전자가 우리나라 최고 기업으로서 국제적인 수준의 투명성과 책임경영체제를 받아들이도록 지난 3년간 인내를 가지고 전문경영진과 협상을 통해서 노력해왔습니다. 그 결과 전문경영인들은 이건희 회장의 전횡적인 경영체제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회장과 아들 이재용씨의 사적인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한 전문경영인들은 아무런 권한이 없고 투명한 경영도 불가능하다는 결론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삼성과는 주주총회 참석보다는 장부열람권 같은 소액주주들의 정당한 법적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할 생각입니다.
지금 기업의 투명성과 책임경영체제를 끌어내기 위한 참여연대의 소액주주운동을 국내에서는 왜곡해서 받아들이고 있는데, 참여연대는 결코 시비 걸러 오는 깡패나 과격집단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궁극적으로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가장 기본적인 작업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결국 이 자리에 계시는 여러분이 기업가치를 결정하는 데 핵심적인 구실을 해야 합니다. 참여연대가 지금도 하고 있고 이제껏 해왔던 일은 바로 감사 여러분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참여연대가 주주대표 소송을 하려면 먼저 상당한 지분을 모아야 하지만 감사는 언제든지 임원진을 상대로 주주대표 소송을 낼 수 있습니다. 증권거래법과 상법에 상장돼 있는 소액주주권은 100% 감사가 단독으로 행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앞으로 참여연대는 삼성전자의 장부를 열람할 계획입니다. 장부를 열람한다는 것은 그 기업에 들어가 회계장부를 다 감사하겠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회계법인의 감사는 믿기 어려운 부분이 많고 기업이 특정부분을 숨기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시정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영진 스스로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이지만, 응하지 않을 경우 참여연대가 직접 기업의 장부를 열려고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장부를 열려면 수많은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거죠. 그러나 감사는 언제든지 장부를 보고 문제를 제기할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사는 주주를 대신해 경영의사결정을 하고 경영진을 감독할 권한을 갖지만, 감사는 주주를 대표해 경영진에 대해 주주권을 행사할 권한을 갖습니다.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경영진을 감독하는 차원이 아니라, 주주가 행사하는 권한을 감사는 다 행사할 수 있다는 겁니다. 위법행위유지청구권이라든지 장부열람권이라든지 심지어 주주총회소집권까지 행사할 수 있는 법적인 뒷받침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기업이 잘못 되면 사실 누구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느냐면 바로 감사입니다. 대주주나 계열사가 회사 돈을 훔쳐갔는데 그것을 감독하지 못한 책임은 첫째로 감사에게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그런 예가 없습니다만 앞으로는 그 책임을 감사에게 묻게 될 겁니다.
우리나라 기업을 개혁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사람이 감사입니다. 그리고 외국 투자자든 국내 투자자든 투자자의 신뢰를 얻는데, 소위 IR을 가장 적극적이고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금담당이사가 아니라 감사입니다. 감사가 나서서 “내가 이렇게 기업을 감시하고 투명하게 절차를 지킨다”고 이야기해주면 투자자들은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기업의 사외이사나 사외감사는 투자자들 눈에 경영진의 골프 파트너 이상이 아니라고 보입니다. 사실 IR을 가장 잘 하는 것은 현대그룹의 박세용 회장이 사장단을 이끌고 외국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현대그룹의 사외이사와 감사들을 데리고 나가서 그 사람들 입에서 내가 독립적인 사외이사로서 우리 기업을 이렇게 감독하고 있으니 안심하고 투자하시오 하는 게 가장 좋은 방안입니다. 그런데 대개 감사들을 그렇게 활용하지 않습니다. 자금담당 부서나 홍보파트에서 IR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기업은 외국인 투자자가 찾아오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지어 삼성전자같이 큰 기업도 외국인 투자자의 방문을 꺼립니다. 만약 삼성전자에서 만든 TV나 컴퓨터를 사려고 온 고객을 회사가 싫어하고 만나주지 않는다면 그 회사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고객중시 경영이다, 고객은 왕이다라고 말로만 떠들어 봤자 소용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제는 상품시장에서 기업가치가 결정되는 게 아니라 자본시장에서 기업가치가 최종적으로 결정되는데 우리는 그 가치를 결정하는 투자자를 박대하고 있어요. TV 사러 온 고객 1명 박대하는 것은 별것 아닐지 모르지만 자본시장의 투자자를 박대하면 기업이 쓰러집니다. 그것을 우리 기업들이 아직도 모르고 있어요. 거꾸로 제가 전화를 걸어서 “이 투자자는 정말 한국 시장에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니 좀 만나주셔야 합니다”라고 부탁해야 할 정도입니다.
투자자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투자자는 여러분의 친구입니다. 여러분 회사의 주인이고 여러분 기업의 가치를 높여주는 수단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IR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올해도 참여연대는 몇 개 회사의 주총에 갑니다. 최근에는 다른 회사 주주들도 우리에게 연락해옵니다. 이런 문제도 제기해 달라, 저런 문제를 지적해 달라, 왜 이 회사는 안 하느냐. 회사 경영에 대해 자신이 있는 어느 경영진은 우리 회사를 대상으로 삼아달라고 요청하기도 합니다. 아무도 우리 회사를 믿지 않으니 참여연대가 와서 확인해 달라는 거죠. 그렇게 앞서가는 기업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여연대가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역량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몇몇 기업에 한해 소액주주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시민단체로서 앞으로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나라 경제와 기업을 발전시키는 방향이라는 걸 제시하는 정도로 충분합니다. 이것은 결국 시장에서 해결해야 하는데 그때 시장이란 기업 내부에서는 바로 감사 여러분과 투자자를 상대하는 IR파트가 될 겁니다. 기업 외부에서 본다면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그 일을 대신해야 할 겁니다. 지금까지 참여연대가 그 일부를 대신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번 주총에서 상장기업들은 주가가 상당히 떨어져 고민스러울 것입니다. 주가가 떨어져 주주들이 항의를 하면 솔직하게 접근하면 됩니다. 솔직한 경영은 투명한 경영입니다. 이번만이 아니고 앞으로 지속적으로 투명하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우리가 이렇게 영업을 잘했고, 이렇게 해왔고, 앞으로 이렇게 해나갈 건데 시장 상황이 안 좋아서 주가가 낮게 평가되고 있다, 이렇게 솔직하게 접근하십시오.
주주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으라
그런다고 여러분의 소임을 다하는 건 아닙니다만 적어도 주주총회에서 주주로부터 주가 때문에 일방적으로 공격받는 일은 없으리라고 확신합니다. 다만 그런 노력이 주주총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적극적으로 투자자들을 설득하고 투자자들에게 다가가는 IR의 일환이어야 한다는 거죠. 그렇게 되면 주가는 오르게 돼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삼성전자 주식이 지금 20만원대인데 저는 말이 안 되는 주가라고 생각합니다. 저 혼자만의 의견이 아니라 외국의 전문가들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익이 3조3000억원 이상 났고, 올해도 최저 2조5000억원 이상 순이익을 낼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런 기업의 주식이 20만원대밖에 평가받지 못하는 것은 삼성전자가 자만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비하면 물론 주가가 많이 올랐고 장사도 잘 되고 있죠. 이러니까 자만에 빠지게 된 겁니다.
다시 말해 이 IR은 끊임없는 과정이지 한번 잘하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세계적인 팬션펀드나 파운데이션 같은데서 삼성전자를 방문하겠다고 하는데 그것을 거절했을 때 당시 담당자는 승리감에 도취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 포드파운데이션, 록펠러파운데이션, 세계적인 기관이면 어때, 우리는 좋은 회사니까 당신 같은 사람들 안 만나 줄 수도 있어” 이렇게 거만을 떨어 잠시 즐거움을 가졌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그 뒤로 기업에 보이지 않는 어떤 영향을 끼친다는 것까지 생각하지 못하는 겁니다.
TIAA CREF라고 하면 미국의 최대 팬션기금 중 하나인데 거기에서 온 사람이 방문하는 것을 거절했을 때 그것이 자본시장에 어떤 결과를 낳고 그것이 투자자들이 삼성전자에 갖는 신뢰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아무리 적은 투자라도 담당자나 담당임원이 그 사람들을 거절함으로써 얻은 쾌감보다는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주총회에서도 혹시 주가 때문에 너무 염려하는 기업이 있다면 현대그룹이 싱가포르에서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말고 아주 솔직하고 있는 그대로 접근하라고 말씀드립니다.
제가 삼성전자 임원들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가 주총에서의 성실한 자세입니다. 많은 분이 기억하는 것이, 13시간 반 동안 진행된 삼성전자 주총에서 TV에 잠깐 비친, 그것도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제가 소리를 지른 10초도 안 되는 화면입니다. 그러나 제가 삼성전자의 주총에서 소리 지른 것은 1분도 채 안됩니다. 그러면 13시간 29분 동안 뭘 했는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바꾸어 이야기하면 그만큼 경영진이 저희를 진지하게 대했다는 이야깁니다. 물론 저희가 앞서 많은 질의서를 보내고 끈질기게 질문을 했지만 반대로 경영진이 그만큼 끈질기게 저희 질문에 답하려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십시오. 그까짓 2~3시간 더 주총을 하면 큰일납니까? 그날 하루 욕 좀 먹으면 체면이 깎입니까? 그렇게 해서 투자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고 주주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이 기업을 위하는 길 아니겠습니까?
제가 삼성전자 주주총회 끝난 다음에 이건희 회장의 봉건체제는 문제 삼지만 전문경영인에 대해서는 항시 긍정적으로 이야기하고, 주주총회 자체를 나쁘게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 기업이 변화를 받아들였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렇게 많은 관심을 보여주신 이유가 주총이 가까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여러분도 그런 식으로 주총을 진행하면 어떨까 생각하고 마지막으로 다른 이야기를 잠깐 하겠습니다.
제3의 자본시대가 왔다
제가 앞서 우리나라에 지금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있다고 했는데요, 저는 우리 나라 근대경제역사에서 제3의 자본형성기가 지금 진행되고 있다고 봅니다. 첫번째 자본 형성기는 62년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될 때부터 80년대 초까지, 소위 말하는 고도성장을 누리는 산업화과정에 생긴 산업자본이었습니다. 오늘의 재벌기업 중 상당수가 그 기간에 형성됐습니다.
두번째 자본 형성기는 1980년대 후반 소위 부동산으로 인한 자본의 형성이었습니다. 하루 아침에 수백 억원의 부자가 탄생하고 기업도 개발이익을 통해 엄청난 자본을 만들었습니다.
그 후 10여년 만에 우리나라에 새로운 자본가들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거품이라 말하지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통신과 인터넷 혁명으로 한국에 벤처기업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나고, 그중 상당 기업들이 엄청난 자본을 축적했습니다.
현대중공업은 차라리 조선소 다 없애 고철로 팔아버리고 아파트 지어서 개발이익을 내는 게 기업가치를 더 많이 인정받을 겁니다. 지금 현대중공업의 시가총액이 2조원 내외입니다. 그 땅 팔아 개발하면 2조원이 넘을 겁니다. 그런데 100명도 안 되는 직원을 가진 벤처기업의 시가총액이 2조5000억원이 넘습니다. 이런 현상은 어느 한 기업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이 거품이냐 아니냐는 앞으로 지켜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벤처기업이라는 말 자체가 기업평가가 안 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평가된 기업은 이미 벤처가 아니죠. 그래서 “이런 회사가 어떻게 2조짜리냐, 말도 안된다”는 식으로 반응하는 것은 근거가 없습니다.
확실한 것은 100개가 됐든 200개가 됐든 새로 생겨난 벤처기업과 신흥텔레커뮤니케이션, 인터넷 기업 100개 중 2~3개는 살아남는다는 겁니다. 100개가 다 거품은 아니라는 것이죠. 제가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기업의 가치평가는 새롭게 일어나는 기업에 대해서는 성장가치 쪽을 인정하고, 기존 기업은 수익가치 쪽을 인정합니다.
새로 생긴 기업 100개가 모두 폭발적인 성장가치를 지닌 것은 아니라 해도 그중 최후의 승자가 될 2~3개의 기업에는 반드시 적용될 수 있다고 보고 투자를 하는 것이죠. 이미 이들에게 상당한 자본이 형성됐습니다.
제가 왜 이 말씀을 마지막으로 드리느냐면 첫번째 자본 형성기였던 경제개발 시대에 형성된 산업자본들은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투입을 통해 산출을 끌어냈습니다. 그러나 형성과정이 매우 불투명하고 불공정했습니다. 다시 말해 정경유착과 부패가 난무했습니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우리 국가를 발전시키고 좋은 결과를 냈기 때문에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지만 형성과정은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의 삼성이 사카린 밀수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돈 많은 것이 자랑스러워야
그런 과정이 우리 사회에서 부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 됐습니다. 불행하게도 두번째 자본 형성기에는 투입 없는 산출로 엄청난 자본이 형성됐습니다. 땅은 그냥 그대로 있는 것인데, 물론 개발이라고 하는 인풋(input)이 있었습니다만 그것이 가져오는 가치는 상대적 가치입니다. 인플레이션만 유발하지 별로 의미가 없죠. 은행에 담보가치만 늘렸지 실제 아웃풋(output)을 가져오는 자본이 아니었던 겁니다. 그래서 졸부라는 신조어가 생겼죠. 두번째 자본은 형성과정도 건강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결과도 나빴습니다. 그래서 새롭게 형성된 부유층 역시 우리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형성되고 있는 세번째 새로운 자본, 벤처기업이든 기존기업이든, 특히 우리가 IMF 경제위기 이후 기업이 구조조정을 하면서 새롭게 만들어진 이 기업들은 적은 인풋으로 많은 아웃풋을 만들어내는 효율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형성과정이 가장 건강하다고 봅니다. 그 점에 우리나라 경제가 아주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 돈 많은 것이 자랑스러운 것이고, 돈 많은 사람이 존경받으며, 진실로 부(富)가 정당성을 인정받는 사회적 분위기가 돼야만 우리가 건강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할 수 있는데 앞서 두 번의 자본이 인정받지 못했는데 지금 세 번째 자본형성기에 만들어진 자본들은 적어도 형성과정에, 일부 그렇지 않은 회사도 있다고 합니다만, 평균적으로 봤을 때 새로운 기술 개발과 산업의 구조변화 속에서 상당히 건강하게 이루어진 자본이기 때문에 이 자본이 새로운 부의 창출과 사회적 가치의 창출을 같이할 때 우리 경제가 건전해질 수 있다고 봅니다.
이렇게 형성된 새로운 자본들이 그 자본을 유지하는 과정과 쓰는 과정에 다시 한 번 인정받지 못하는 부정한 관계로 가게 되면 저는 앞으로 한국 경제에 희망이 없다고 봅니다. 그걸 어떻게 할 것이냐, 기업의 감사 여러분과 임원 여러분께서 우리 사회에 새롭고 건강하게 형성된 자본이 기업을 건강하게 유지발전시키고 건강하게 쓰이게 해주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