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4월호

세계적 브랜드는 가치의 독특함에서 나온다

  • 홍성태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경영학

    입력2006-11-09 14: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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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의 기술 여건상, 지금 당장 세계 최상의 품질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중저가 전략 등 가격 경쟁력에만 의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므로 당분간은 남들이 갖지 못한 ‘독특한 기능’을 먼저 갖추는 아이디어 싸움의 승자가 되어야 한다. 한마디로, 독특함이 없이는 세계적인 브랜드가 될 수 없다.》
    소비자가 찾는 제품을 만들려면, 제품의 가치가 소비자에게 인정받아야 한다. 여기서 가치란 어떤 상품이 지니는 중요성이나 의미로서, 실제적 가치와 심리적 가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번에는 실제적 가치에 대하여 살펴보고, 다음달에는 심리적 가치, 즉 이미지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소비자에게 실제적 가치를 전달하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여기서는 가격 면에서 또한 기능 면에서 가치를 더하는 방법들을 중점적으로 알아본다.

    [ 제1부 저렴한 가격으로 승부하라 ]

    저렴한 가격

    소비자들은 제품의 품질이 웬만하면 가격이 저렴할수록 좋아한다. 그런데 그저 ‘조금’ 싸게 제품을 판매할 경우, 경쟁사들도 쉽게 쫓아올 수 있으므로 저가격 전략을 쓰려면 누구도 감히 흉내내지 못할 정도로 저렴해야 한다.



    브뤼셀에 본부를 둔 EBA(EuroBelgian Airlines Express)의 비행기를 타면 제공되는 식사도 없고, 지정 좌석도 없으며, 무료 신문이나 잡지도 없고, 연결 항공편도 없다. 다만 유럽에서 찾아보기 힘든 매우 저렴한 요금이 있을 뿐이다. 다른 항공사의 평균 요금이 브뤼셀에서 빈까지 1284달러, 로마까지 1146달러, 바르셀로나까지 503달러인 데 비해, EBA는 175달러의 균일요금을 부과하고 있다. 단거리 항로와 제한된 승무원 수, 낮은 임금이 특징인 EBA의 군살 없는 항공서비스는 어쨌든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처럼, 품질과 서비스를 다소 희생하더라도 가격을 파격적으로 낮출 수 있다면 이것도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한 방법이 된다.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저가격(low price) 전략과 저원가(low cost) 달성 노력을 혼동하여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저가격은 품질수준을 다소 낮추거나 기능을 줄여서라도 가격 자체로서 우위를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이와는 달리, 저원가 노력이란 동일한 품질을 유지하면서 되도록 원가를 낮추려는 것을 의미한다.

    저가격 전략을 쓰는 기업에는 당연히 저원가가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다른 기업에게도 원가를 낮추려는 노력은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우선, 원가를 낮추는 방안들을 생각해 본다.

    원가절감의 방안

    첫째, 제품의 설계를 단순화하여 원가를 낮출 수 있다. 일본의 복사기 업체인 캐논이나 도시바 등이 미국 시장에 진출하려 했을 때, 그들은 부속품 수를 대폭 줄임으로써 진입장벽을 극복하였다. 뿐만 아니라 일본업체들은 표준부품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모델에 따라 상이한 부품을 쓰는 제록스에 비해 현격한 원가 우위를 지킬 수 있었다.

    둘째, 원자재의 안정적 공급도 원가를 줄이는 방법이 된다. 예컨대, 건설회사들은 시멘트회사와 장기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건설경기가 좋지 않을 때에도 시멘트 공급원을 확보할 수 있고 또 저원가를 통한 경쟁력 우위가 가능할 것이다.

    도요타 자동차의 적시재고(JIT: just-in-time)시스템도 안정적 원자재 조달방법의 한 예다. 즉 무엇이, 언제, 얼마만큼 필요한지 예측하여 필요한 만큼의 부품만을 조립 라인에 배달하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셋째, 새로운 유통경로를 통해서도 원가절감을 꾀할 수 있다. 예컨대, 우편주문 방식은 상점 확보 등의 고정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으므로 원가 우위를 갖기도 한다.

    우편주문 방식 제품이라 해서 저급품만은 아니다. PC Ltd라는 컴퓨터 판매회사에서는 우편주문 방식을 통해 재고 및 진열 등에 있어 원가를 절감하고, 결과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PC를 공급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PC Ltd의 PC는 견고함과 철저한 보증 및 애프터 서비스로 평판이 좋다. PC Ltd는 창립 3년 만에 7000만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가 되었다.

    넷째, 좋은 상점 위치를 선점하는 것도 중요하다. 뒤늦게 시장에 진입하는 경쟁자는 상점(부동산)을 유지하는 데 더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하고, 또한 지역 선정에 한계가 있다.

    맥도날드의 성공요인 중의 하나는 부동산 구매에 관한 장기적인 관점에 있다. 그들은 상점 위치를 선정하는 데 탁월하여, 심지어 맥도날드가 생기는 곳에는 새로운 상권이 형성된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부동산 취득에서 얻는 원가절감이 그들의 이익을 창출하는 데 막대한 공헌을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다섯째, 시간절약은 원가절감의 필수요건이다. 마케팅에서 스피드란 단순히 ‘빨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기업의 총체적인 시간중심(time-based) 관리를 의미한다. 스피드 경영은 먼저(기회선점) 빨리(시간단축) 제때(적재적시) 자주(유연경영)의 네 가지 특징을 지닌다. 즉 고객에게 만족스러운 제품과 서비스를 남보다 빠르게 제공하는 능력을 말한다.

    포드의 도널드 패터슨 회장은 성공하는 기업과 낙오하는 기업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는 시간에 대한 패러다임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인텔의 앤드루 그로브 회장은 인텔이 보유한 강력한 무기야말로 스피드라고 말한다. 바야흐로, 21세기 기업 패러다임의 핵심은 “좋은 물건을 싸게”에서 “새로운 것을 빨리”로 바뀌고 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원가를 낮추기 위한 방법은 다양하다. 원가를 높이는 요소들은 도처에 잠재해 있으며, 거꾸로 원가절감의 소지도 많다. 그런데 어떤 기법도 비용절약의 분위기가 자리잡지 않고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최고 경영층의 의지, 보상제도 및 구조의 개선, 절약문화의 형성 등을 통해 원가절감 분위기를 심어가야 한다.

    저가격 전략의 문제점

    원가를 절감하려는 기업이 모두 저가격 전략을 택하는 것은 아니다. 저가격은 박리다매를 목표로 한 전략적 대안 중 하나일 뿐이다.

    후발업체가 저가격으로 공격할 경우 선발업체가 쉽게 대응할 수 없는 것은, 기존 고객이 그 업체의 서비스에 기대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발업체가 서비스를 줄이고 이 전략을 모방하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선발업체가 기존의 시설이나 운영 방법을 저가격 체제로 바꾸기는 어려우므로, 저가격 공격전략을 쓰는 기업은 어느 정도 우위를 지속시킬 수 있다.

    그러나 절박한 상황에 빠진 선발업체가 저가격 전략에 대응하기 위해 급격한 가격 인하를 시도할지 모른다는 위험은 언제든 존재한다. 그러므로 저가격 공격전략을 고려하는 기업은 잠재적 가격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재정적 자원과 건전한 원가구조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또 다른 위험은 경쟁자가 몇 가지 속성을 첨가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뭔가 더 붙인(low-frills) 제품으로 포지셔닝하는 것이다. 모텔-식스(Motel-6) 체인은 60년대 처음 시작할 당시에 전화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는 6달러짜리 여관방을 소개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경쟁자들을 불러모으는 결과를 낳았는데, 경쟁자들은 비슷하거나 약간 비싼 가격에 더 많은 서비스들을 제공하고 나섰다. 모텔-식스는 이름만 남았을 뿐, 6달러짜리 저가격 전략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이미지가 관련된 경우, 가격파괴 전략은 더욱 위험하다. 딜라드(Dillard’s) 백화점 체인은 1983년 이후 10년 사이 매출이 6배나 뛰어 51억 달러에 이르며, 미국에서 다섯 번째로 큰 백화점 체인이 되었다. 그러나 94년부터 이익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월마트 등 할인점에 위협을 느껴 ‘매일 저렴한 가격’(EDLP: every-day-low-pricing) 전략으로 나간 것이 화근이었다. 이것은 백화점에는 적절치 않은 방식이었던 것이다. 월마트와 같이 무지하게 싼 가격의 양판점으로 접근한 것도 아니고, 노드스트롬과 같이 고급 백화점으로 포지셔닝하지도 않은 채 ‘저렴함’과 ‘백화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쫓으려다가 어중간한 상태에 빠지고 만 꼴이 되었다. 요약하건대, 저가격 전략을 쓰려면 뛰어난 관리능력으로 원가를 절감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판매량(volume)에 자신이 있어야 한다. 단순히 시장에 끼기 위하여 저가격 전략을 택한다면, 실패는 불을 보듯 뻔하다.

    우리 나라의 수출 패턴을 보면, 70년대에는 품질을 염두에 두지 않아도 가격이 워낙 저렴하여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다. 80년대에 수출하던 텔레비전이나 자동차 등도 최고급 품질은 아니었지만 품질에 비해서 가격이 월등히 저렴했으므로, 상대적인 가치가 있는 제품으로 인식되어 나름대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인건비 등 여러 가지 여건의 변화로 인하여, 가격이나 상대적 가치에 의존하는 전략은 더 이상 경쟁력을 갖기 힘들게 되었다. 국내에서도 시장이 개방됨에 따라 양질의 외제품을 접해 본 소비자들이 품질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있다. 오늘날, 품질에서 경쟁우위를 가지려면 세계 시장의 리더가 될 만한 최고의 품질을 달성해야 한다. 하지만, 단시일 내에 품질을 세계 정상급으로 향상시키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품질력이 뒤지는 기업이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흔히 하는 시도는 기능을 되도록 많이 붙이는 것이다. 그렇지만 기능의 수보다는 기능의 질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진정한 기능의 우위는 남들이 갖지 못한, 즉 경쟁자의 제품에는 없는 ‘독특성’으로 차별을 시도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독특성(uniqueness)은 자동차나 텔레비전 등 기술적으로 복잡한 제품뿐만 아니라 맥주나 음료수 등 단순한 제품, 나아가 서비스 제품에도 첨가할 수 있다.

    하이테크 제품에 독특한 기능을

    비교적 복잡한 기술이 필요한 제품의 경우, 남보다 앞서려는 노력을 독특한 기능으로서 과시할 수 있다. 스웨덴의 사브-스캐니아 (Saab-Scania) 회사에서 생산되는 ‘사브’라는 승용차는 벤츠나 BMW만한 명성을 가진 자동차는 아니었지만, 다른 차가 갖지 못한 독특한 기능들을 항상 한발 앞서 첨가함으로써 고급 승용차 시장에서 강한 경쟁력을 가지게 되었다.

    사브는 2차 세계대전경부터 전투기를 생산하여 지금도 비겐, 그리펜 전투기를 포함한 소형 비행기를 제작하고 있다. 그 경험을 통해 승용차를 설계하는 데 전투기의 디자인 개념을 응용하였다.

    터보 제트기의 터보엔진을 자동차용으로 처음 개발하고 도입한 것도 사브이고, DOHC 엔진을 자동차에 처음 사용한 것도 사브다. 비행기 날개와 같은 리어 스포일러(rear spoiler)를 붙여 고속 주행시 차가 안정되도록 한 것도 사브가 처음이다. 그 밖에 전동식 히팅 시트, 유선형 디자인, 무프레온 에어컨, 사고 기록 블랙박스 장착 등 비행기 설계에서 파생된 모든 기술을 자동차에 적용해 독특한 기능을 한발 먼저 붙여 나간 것이다. 뒤늦게 등장한 사브의 전반적인 이미지가 벤츠나 BMW만큼 높게 평가되거나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남보다 한발 앞선 독특한 기능으로 경쟁력을 가지고 고급 승용차 시장에 끼어들고 있다.

    독특한 기능이라고 해서 반드시 새로운 발명품을 들고 나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기술적으로 우수하다고 반드시 마케팅 면에서 우수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창의력을 가지고 어렵게 신제품을 개발한 혁신적인 기업이 후발업체에게 손을 드는 예도 드물지 않다.

    소니는 세계 최초로 텔레비전을 만든 회사가 아니다. 카세트 녹음기를 처음 만들지도 않았고, 비디오도, 콤팩트 디스크(CD)도 소니가 처음 생산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텔레비전 시장에서, 카세트 시장에서, 비디오 카메라 시장에서, CD 시장에서 제일 앞서가고 있다. 소비자가 쉽게 인식하도록 독특한 기능에 승부를 걸어 이를 상업화하는 데 성공한 덕분이다.

    소니는 60년대에 트랜지스터 라디오로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TV는 12인치 이하의 소형과 흑백 화면을 주로 생산하는 등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러던 중 68년에 새로운 브라운관 투사 방식인 ‘트리니트론’(Trinitron)을 개발하여 평면사각 화면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이전까지의 화면은 원형에 가까워 각진 부분이 잘릴 뿐더러 브라운관이 불룩하여 정면이 아니면 찌그러져 보였던 것이다. 소니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한 TV를 판매함으로써, 일약 유명 TV 브랜드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한편 소니는 79년에 카세트에 스테레오 기능을 첨가한 워크맨(Walkman)을 소개함으로써 세계 시장에서 완전히 자리를 굳히게 된다. 워크맨은 단순히 카세트에 이어폰을 붙인 것이 아니다. 소형 헤드폰이라는 독특한 기능과 마이크로 칩을 개발하여 잡음이 찍찍거리는 기존의 카세트 소리와는 다른 스테레오 전축 수준의 사운드를 듣게 해준 것이다.

    소니의 사례는 모방을 부끄러운 일로 생각하고 무조건 새로운 아이디어만을 참신한 것으로 여기려는 경향은 재고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모방을 부끄러워하지 마라. 다만, 불법적이고 비윤리적인 모방이 아니라, 개선된 창의적 모방을 도모하라. 어떻게 새로운 용도를 첨가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고객을 창출할 수 있는가가 더 큰 과제다.

    또한 독특한 기능을 가진 것만으로 부족하다. 독특한 기능을 소비자에게 부각시키려면 그 개념을 창의적으로 전달해야 할 뿐더러, 어떤 한두 분야의 기능을 집중적으로 강조해야 효과적이다. 예컨대, ‘볼보’ 하면 ‘안전성’이 떠오른다. 측면충격 보호시스템(SIPS)을 비롯해 스노 체인을 처음 장착하였으며, 지금은 전세계 자동차가 쓰고 있는 삼각 안전벨트를 최초로 장착한 자동차다. 헤드라이트에 와이퍼를 처음 도입한 것도 볼보이며, 뒷좌석 가운데 자리에도 삼각 안전벨트를 처음 장착하였다. 미국 고속도로 안전협회(NHTSA)의 안전도 테스트에서 중·대형차 부문 1위를 고수하면서 볼보는 일관성있게 안전성을 강조하여 그 가치를 소비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단순한 제품에 아이디어를 첨가

    기계나 전자제품에만 독특함을 첨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맥주 시장에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기린맥주가 독주를 하다시피 하였다. 1986년 기린맥주의 시장점유율은 59.8%로 아사히, 삿포로, 산토리 등 다른 맥주들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87년 경쟁사인 아사히가 독특한 맛을 가진 맥주를 만들어 냈다. ‘슈퍼 드라이’ 맥주가 그것이다.

    드라이가 나오면서 10% 수준에 머물던 아사히의 시장점유율은 3년새에 24%로 뛰어올랐고, 1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점유율 44%로 기린의 36%를 앞지르고 있다. 이처럼 독특한 기능은 어느 제품시장에서든 그 위력을 발휘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음료 시장의 점유율을 1% 늘리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스포츠 음료라는 새로운 장르의 제품이 88년 처음 소개된 이래 포카리스웨트, 게토레이, 파워에이드 등이 음료수 시장을 급속히 잠식해 가고 있다. 스포츠 음료가 출시된 지 5년 만에 청량음료 시장의 10%를 이미 넘어서 과즙음료, 탄산음료에 이어 3위 자리를 굳혔다. 독특한 기능으로 치열한 시장을 파고든 것이다.

    소비자의 생활양식이 바뀌고 욕구가 다양해지면서 기존의 제품형태로는 충족되지 않는 욕구를 채워 줄 수 있는 제품이 필요해졌다. 이럴 때는 최상의 기술보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성패를 좌우한다.

    김치 전문제조업체 한울농산의 한 중역은 어느 날 집 근처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다가 우연히 아이디어를 잡았다. 편의점에서 라면과 포장김치를 함께 먹는 사람들이 김치를 대부분 남겨 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라면을 먹는 사람들을 위해 소형 포장김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80g 용량의 ‘꼬마김치’는 출고 초반에 하루 평균 500개 정도가 팔렸으나, 1년도 채 안 되어 매일 2만개가 나가는 히트상품이 되면서 상품김치 시장에 뿌리를 내렸다. 제품에 독특한 기능을 첨가하여 기존의 제품이 커버하지 못하는 시장을 파고든 것이다.

    의류시장에도 아이디어 상품들이 선보이고 있다. 청바지는 아랫단의 마무리가 매력의 포인트지만, 외제 청바지들은 대부분 줄이거나 접어 입어야 한다. 닉스는 같은 허리 사이즈에 길이가 짧은 청바지를 만들어 ‘숏다리’들도 밑단을 자르지 않고 입을 수 있게 했다. 가격은 외제 청바지보다 오히려 비싸지만, 없어서 못 파는 제품이 되었다.

    소비자의 사용행동을 잘 관찰하여,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기능을 첨가함으로써 성공한 상품들이다.

    서비스 제품에도 독특함을

    남들이 제공하지 못하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한발 앞서 붙여 나가는 것도 가치를 더하는 한 방법이다. SCI(Service Corp. International)라는 장례 및 묘지 전문회사는 화장(火葬) 서비스를 확대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보통 유족들은 갑작스레 닥친 큰일에 경황이 없을 뿐 아니라 슬픔에 싸여 있어, ‘화장’ 운운하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기 때문이다.

    SCI는 누가 화장 여부를 결정하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 결과 SCI는 ‘유족에게 결정을 미루지 마세요’(Don’t leave the decision to the bereaved)라는 캠페인을 벌여 본인이 살아 생전에 화장 여부를 결정하게 함으로써, 고객을 미리 확보하고 장례를 경건하고 매끄럽게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SCI는 670개의 장의사 대리점과 169개의 묘지를 가진 미국에서 가장 큰 장의업체가 되었다.

    병원 응급실을 찾을 때는 누구나 다급하기 마련이다. 더욱이 병원의 부족한 주차공간과 작성해야 할 서류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기 일쑤다. 또한 진료비를 급하게 구할 수 없을 때도 많다. 캘리포니아의 샌패드로병원(San Pedro General Hospital)에서는 응급실 고객카드 겸용 신용카드를 판매하여 큰 효과를 보았다. 그 신용카드를 소지하고 있으면 앰뷸런스 자리에 주차할 수도 있고, 카드를 긁음으로써 모든 보험 및 의료기록이 컴퓨터 화면에 떠오를 뿐더러 당장 진료비를 구해야 하는 걱정도 사라진다. 서비스의 차별화로 남달리 앞서가는 병원이 된 것이다.

    SAS(Scandinavian Airlines System) 항공사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SAS는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세 나라의 합작기업으로서, 세 나라 정부가 소유하고 운영한다. SAS는 치열한 경쟁과 할인요금 때문에 자국 노선과 국제 노선에서 손해를 보고 있었다. 다른 항공사와 마찬가지로 SAS도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를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지 고심하고 있었다.

    얀 칼존(Jan Carlzon)이 38세의 젊은 나이로 SAS의 사장이 된 것은 항공산업에서 가장 나쁜 시기였던 1980년이다. 세계 경제는 제2의 오일 쇼크로 타격을 받고 있었고, 10년 동안의 적자로 SAS의 명성은 점점 실추되어 갔다. 그런데 칼존은 어찌할 바 없이 적자만 바라보던 SAS를 불과 1년 만에 흑자기업으로 돌려놓았다. 10년 후에는 46억 달러의 매출에 1억9000만 달러의 운영수익을 올린 세계적인 기업으로 변모시켰다.

    칼존은 문제의 본질에 직접적으로 접근했다. 그는 SAS가 북유럽을 넘어 글로벌 경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서는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풍요로운 스칸디나비아에서는 높은 임금 때문에 대륙간 사업의 경쟁에서 아시아나 미국의 항공사에 비하여 불리하였다. 그러므로 가격으로 승부하기는 어려웠다.

    칼존은 고객의 욕구를 직시하였다. 비행기 승객은 비즈니스 여행자와 여가를 즐기려는 여행자로 나눌 수 있는데, 두 부류의 욕구는 매우 다르다. 사업상 여행하는 이들은 종종 스케줄을 바꾸어야 하는 돌발 사태가 일어난다. 즉 그들에게는 융통성이 필요했다. 또 그들은 비행기로 여행하는 동안에 회의 준비 등 업무를 계속하거나, 도착했을 때의 업무를 위해 잠을 자기도 한다. 바꾸어 말하면, 그들에게는 여행을 즐겁게 해준다는 명목의 서비스는 필요치 않은 것이다.

    반면에, 흥미 위주의 여행자 계층은 심적 압박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에게는 비행 자체가 휴가의 일부분인 것이다. 또한 흥미 위주의 여행자는 경비에 민감하다. 붐비는 좌석을 마다하지 않으며 ‘미리’ 표를 구매함으로써 할인을 받으려 한다. 그러나 시간과 스케줄에 쫓기는 비즈니스 여행자는 날짜가 닥쳐야 급하게 표를 구매하는 경우가 많고, 회사 경비로 처리되므로 구태여 할인에 구애받지 않는다. 이제까지 항공사들은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을 모두 만족시키는 법을 터득하지 못했었다.

    요약하면 비즈니스 여행자는 가격에 덜 민감한 반면, 더 높은 질의 서비스를 원한다. SAS가 가지고 있던 장점 중 하나는 좋은 품질을 생산한다는 스칸디나비아의 명성이었다. 그래서 칼존은 SAS를 ‘비즈니스 여행자를 위한 항공사’로 포지셔닝하기로 결정하였다.

    보통, 여행자들은 3등에 해당하는 ‘이코노미 클래스’표를 그나마 할인요금에 구입한다. SAS는 이코노미 클래스의 표를 정상요금에만 팔더라도 수지가 상당히 개선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에 칼존은 일종의 비즈니스 클래스인 ‘유로 클래스’(Euro Class)를 고안했다. 유로 클래스는 흥미 위주의 여행자와 섞여서 비행하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는 비즈니스 여행자를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코노미 클래스의 정상요금을 내는 비즈니스 여행자는 유로 클래스에 탈 수 있게 해주었다.

    이와 유사한 비즈니스 클래스가 다른 항공사에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유로 클래스는 비즈니스 맨들에게 그 이상의 기능을 첨가하였다. 칼존은 기존의 항공사가 채우지 못한 고객의 욕구를 하나씩 찾아간 것이다.

    그는 승객들이 일단 좌석에 도착한 후엔 다른 항공사와 차별화된 서비스가 없음을 알았다. 그는 “승객들이 토할 때까지 보드카와 캐비어를 먹는 것은 아니잖습니까?”라고 반문한다. 그래서 그는 육상에서의 승객 서비스를 향상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로 하였다. 그것은 공항에서 더욱 신속한 체크인, 공항 휴게실의 개선, 그리고 컴퓨터나 팩스 등과 같은 사업 부대시설의 이용 가능성을 넓히는 것 등을 의미한다. 유로 클래스의 이용객들은 무료로 음료를 제공받을 수 있는 독립된 공항 휴게실을 이용할 수 있으며, 어떤 공항에서는 영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회의실, 전화, 텔렉스, 팩스 그리고 타자수의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였다.

    무엇보다 체크인이나 탑승 시점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언제 어디서든 민완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음을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간파하였다. 투우에서 황소를 찌르기 직전 투우사와 황소가 눈을 마주치며 삶과 죽음의 갈림길을 직면하는 그 순간처럼, 승객을 처음 맞이하는 체크인 시점을 ‘진실의 순간’(moments of truth)이라 이름지어, 승객의 눈과 마음을 마주하는 첫 순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비행기 여행을 하려는 승객의 기분은 이 순간 절반 이상 좌우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 밖에도, 유로 클래스를 이용하는 여행자들은 제약 없이 예약 시간을 바꿀 수 있게 했다. 유로 클래스를 이용하는 여행자들은 붐비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별도로 탑승 절차를 받을 수 있으며, 맨 나중에 타고 맨 먼저 내릴 수 있다. 그들은 또한 크리스탈 컵, 도자기 그릇, 천으로 된 냅킨, 고급 음식으로 식사를 대접받았으며, 널찍한 좌석과 다리를 쭉 뻗을 수 있는 공간도 즐길 수 있었다. 이렇게 첨가된 가치는 고객들이 경쟁사의 손길을 뿌리치고 SAS사를 찾도록 만들었다.

    SAS는 고객의 욕구 중 가려운 곳이 어디인지 잘 파악하여, 이를 차별화된 서비스로 창출한 것이다. 일등석은 일반 비즈니스 맨들에게는 너무 비싼 편이었고, 이코노미 클래스에서는 짜증나는 일이 많았다. 또 할인요금을 내고 사는 이코노미 클래스로는 스케줄 변화에 대처할 수 없기 때문에 정상 요금을 내면서도 일반 여행자들과 같이 붐비는 좌석에 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간파한 SAS는 유로 클래스라는 독특한 서비스로서 회생의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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