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4월호

리베이트·무임승차·가짜영수증

  • 안길찬 교수신문 기자

    입력2006-11-06 15: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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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료 교수의 이름을 도용해 연구비를 타낸 서울대 법대 이상면 교수 사건. 이에 대한 교수들의 반응은 “학자의 양심을 팔아먹은 용서할 수 없는 일”에서부터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동료 교수를 형사고발한 것은 너무 심하지 않은가” 하는 비판론, 비관론, 동정론이 다양하게 표출됐다. 어쨌든 이번 사건은 교수사회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던 연구비 추문이 사실임을 천하에 드러냈다. 》
    다른 교수의 이름을 도용해 연구비를 유용한 혐의로 현직 교수가 형사처벌을 받은 사건이 대학가에 화제다. 지난 3월초 서울지검은 다른 사람의 이름을 도용, 연구비 1000만원을 지원받은 혐의로 이상면 서울대 교수(법학과)에 대해 300만원의 약식기소 처분을 내린 바 있다.

    이 사건이 교수사회에 던진 파문은 컸다. 먼저 교수사회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인 연구비 신청과 수혜를 둘러싼 치부가 백일하에 드러났다는 점, 그리고 비록 벌금형으로 사건이 종결되긴 했지만 이번 사건을 국립 서울대 교수가, 그것도 법을 꿰고 있는 법학 전공 교수가 일으킨 일이란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더하다.

    이를 보는 대학 밖의 시각도 고울 수 없는 노릇. 서울대 법대 교수가 이럴진대 하물며 다른 대학, 다른 학문 분야 교수들이야 오죽하겠느냐는 부정적 여론이 들끓었다. 특히, 문제가 된 교수가 사회적으로 신망을 얻고 있는 학자라는 점(이상면 교수는 해양법 전문가로 그동안 독도영유권 문제와 한·일어업협정 문제 등 미묘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개진해 왔다)은 교수의 연구비 추문이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 종잡을 수 없게 한다.

    이런 사건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꼭 풀고 가야 할 몇 가지 의혹이 있다. 예컨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가’ ‘아무리 연구비 신청과 선정과정이 허술하다지만 남의 이름을 도용한 사실을 모를 수 있는가’ ‘연구비 신청·수혜과정이 어떻기에 5년 전 일이 이제서야 불거지는가’ ‘연구비를 둘러싸고 관행이 된 교수들의 비리구조는 어디까지 뻗어 있는가’ 등이다.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된 내용은 현상에 그치고 있다. 이런 의혹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이번 사건의 이면을 들춰보아야 한다. 이 사건의 이면을 읽어가다 보면 연구비 신청에서 결과보고에 이르기까지 교수들간에 벌어지는 비리의 고리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인 중앙대 이상돈 교수(법학과)가 전하는 사건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서울대 이교수는 지난 94·95년 정부출연 연구지원기관인 학술진흥재단에 연구비를 신청하면서 1년의 공동연구과제를 냈다. 당시만 해도 2~3명이 참여하는 공동연구과제는 교수 혼자 진행하는 단일 연구과제에 비해 연구비 규모가 컸다. 이교수는 그 과정에 고등학교와 대학 후배이면서 전공분야도 같아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나와 백아무개 서울대 교수를 동의도 구하지 않고 공동연구자로 만들어 과제를 신청했다.

    문제가 불거진 것은 지난해 7월, 백교수가 학술진흥재단에 연구비를 신청했을 때다. 이 과정에 이교수가 자신과 내 이름을 함께 올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더 큰 문제는 그때까지 이교수가 연구결과물을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백교수가 신청하려 했던 연구는 학술진흥재단으로부터 거부됐다. 이 사실은 곧바로 내게 전해졌다. 그리고 지난 8월, 이교수는 대학 내 법학학술지에 연구결과인 논문을 게재한다는 예정증명서를 발급받고 이를 학술진흥재단에 보고했다. 그것으로 이교수는 연구결과물 문제를 마무리지으려 한 듯하다. 학술진흥재단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결과보고를 받았으니 문제 될 게 없다는 태도였다.

    하지만 나로서는 하지도 않은 연구를 했다고 할 수도 없었고, 들리는 소문에 이교수가 당시 서울대 법학학술지에 실으려던 논문은 12쪽 분량으로 도저히 1년간의 연구로 보기에는 부실한 내용이었다고 한다. 화도 많이 났지만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명색이 법을 가르치는 교수가 남의 이름을 빌려 연구비를 따내고 부실한 결과를 보고했다는 사실이었다. 범법을 범하는 교수가 어떻게 학생들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으며, 무엇을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지난 9월 이상돈 교수는 서울대 이상면 교수를 검찰에 고발했다. 이교수의 설명에서 보듯 이번 사건의 이면에는 선·후배 관계란 교수사회의 두터운 고리가 있다. 이교수가 허락도 없이 이름을 빌려 연구를 신청할 수 있었던 것은 고등학교 때부터 이어진 학연을 과신했던 것이다.

    5년간 숨겨진 진실

    이번 사건은 선·후배 간에 일어난 일이지만 사제의 도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학계 풍토를 감안한다면, 스승과 제자 간에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실제 스승과 제자가 함께 연구를 하는 일도 많고, 이럴 경우 부도덕한 스승을 만난 젊은 교수들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본다.

    어찌 보면 이상면 교수 사건이 형사처벌로까지 이어지지 않았다면 대학사회에서 전혀 새로울 게 없는 일로 잊혔을지도 모른다. 다만 피해를 본 교수들이 이상돈 교수처럼 적극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아탑 속에 묻혀버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교수들은 피해사실을 밝히지 않는 것일까. 사실을 밝힌다는 것은 현재 우리 학계의 풍토를 고려해 보면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따지고 보면 다 아는 사이고, 또 학자가 돈 때문에 이러쿵저러쿵 한다는 것은 주위에서 곱지 않게 볼까봐 대체로 작은 일에는 참고 지내는 것이 교수사회의 인지상정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오히려 내부 고발자가 손가락질받아, 피해자를 오히려 가해자로 만드는 경우도 생긴다. 이상돈 교수가 “피해 입은 교수가 떳떳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미지근하게 넘김으로써 이런 문제가 악순환되는 것이다. 교수들이 좀더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의아한 점은 5년 전 일이 왜 이제서야 터져나왔는가다. 그것은 학술진흥재단이 최근에야 연구비 지원 후 관리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학진의 연구비는 지원에 큰 중점을 두었을 뿐 사후관리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비로소 연구지원 후 관리를 철저히 하기 위해 그동안 진행해온 연구내용을 전산화했다. 이 과정에 연구비는 타가고 수년째 연구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연구자들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이들은 향후 2~3년간 지원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방침이었다. 이렇게 해서 이교수 사건이 5년 만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최근 들어 비슷한 사례가 부쩍 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피해자는 벙어리 냉가슴

    이름을 도용당한 것은 아니라도 공동연구자로 이름을 빌려주었다가 낭패를 당하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이교수 사건이 있기 한 달 전, 기자는 평소 안면이 있는 경북지역 최아무개 교수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아주 억울한 일을 당했네. 몇 해 전 동료교수 소개로 서울대에 있는 ○○○교수와 공동연구를 진행했는데 내가 받은 연구비는 80만원밖에 되지 않았다네. 그런데 얼마 전 알고 보니 그 연구과제가 2000만원이 넘는 과제였다는 거야. 돈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 교수가 연구결과물을 보고하지 않아 나는 학술진흥재단에 연구비를 신청할 수도 없다네. 학자들 간에 일어난 일이니 하소연할 곳도 없고, 2000만원이 넘는 연구를 진행하고도 80만원밖에 받지 못했으니 주위에 내놓고 얘기할 수 없고, 창피하기도 하고… 답답한 노릇이네.”

    연구비 수혜에서 지방대 교수들은 서울 지역 명문대 교수들에 비해 소외감이 크다. 이는 서울에 있는 중·하위권 대학의 교수들도 마찬가지. 소위 명문대라고 일컬어지는 SKY 대학교수들이 적지 않은 연구비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교수도 이런 사정으로 피해를 본 경우다. 공동연구를 신청할 때 일부 명문대학 교수를 참가시키는 것은 오랜 관행이다. ‘잘 나가는’ 명문대 교수를 연구책임자로 내세울 경우 프리미엄이 붙어 선정 확률이 높아진다. 이 때문에 지방대 교수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독자적인 연구보다는 공동연구를 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뿐만 아니라 이런 기득권을 이용해 어떤 교수는 이름만 빌려주고 일정의 혜택을 요구하는 ‘거래’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최교수는 “비슷한 피해를 본 교수가 적지 않을 것이다. 이는 학계 내부에도 기득권 세력이 엄존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이다. 학계 내부의 기득권세력은 일정한 파벌을 형성해 부도덕한 일을 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연구비는 그 좋은 예”라고 지적했다.

    연구비를 놓고 교수들이 이런 곡절을 겪을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교수들이 연구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곳이 극히 제한적이고 규모가 적다는 것이다.

    턱없이 부족한 대학 연구비

    현재 교수들이 손을 내밀 수 있는 곳은 크게 대학, 정부출연기관, 각종 기업문화재단 등이 있다. 대학에서 지원하는 연구비는 대부분 급여와 함께 지급되는 수당성 경비의 성격이 짙다. 교수들의 급여명세서를 살펴보면 수개월에 한 번씩 몇십 만원씩 주기적으로 지급되는 돈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대학에서 지급하는 연구비의 전부다.

    살림형편이 좀 나은 대학은 일부 예산을 모아두었다가 성과급으로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절대 다수인 극빈 대학에서는 엄두도 못내는 일이다. 더구나 IMF위기 이후 대학의 주머니는 더욱 가벼워져 대학의 연구비는 명목일 뿐 사실상 생계비 지원에 불과하다.

    그 때문에 대학이 지원하는 연구비로는 제대로 된 연구를 진행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이니 연구비에 대한 교수들의 타는 목마름은 외부로 향한다.

    그나마 비빌 언덕은 이번 사건의 발단인 학술진흥재단, 한국과학재단을 비롯한 정부출연기관이다 교육부가 관할 기관인 학술진흥재단은 매년 1000억원 이상(올해 지원비 1200억원)의 연구비를 다양한 형태로 집행하고 있고, 과학기술부 관할기관인 한국과학재단은 이·공계 분야에 대한 연구지원을 중점적으로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기관의 지원연구비는 정부 예산이 정해져 있다 보니 거의 늘지 않는다. 한정된 예산은 당연히 교수들간에 치열한 경쟁을 부른다. 학진의 최근 평균 연구비 경쟁률은 5 대 1. 과학재단도 경쟁이 치열하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들어 이들 출연기관의 연구비 신청 자격기준은 더 까다로워지고 있다. 연구능력을 끌어올린다는 목적으로 지난해부터 SCI(과학논문색인)와 같은 국제적 잣대를 들이밀고 있는 것이다. 학술진흥재단은 지난해부터 학술연구비 지원방식을 완전히 뜯어고쳤는데, 과학기술계 분야의 연구비 신청자격을 최근 5년 이내에 SCI에 등재된 국제적 학술지에 2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한 연구자로 제한하고 있다. 과학 연구를 중점 지원하는 과학재단도 비슷한 기준을 들이대고 있다.

    이는 당장 교수들로부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SCI라는 획일적 잣대만을 강요함으로써 창의적 연구의 싹을 자른다는 비판과 함께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무리한 기준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특히 인문사회계의 연구작업은 우리 학문의 토착화를 기반으로 국제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사실 국제적 기준은 의미가 없을 뿐더러 앞뒤가 맞지 않는 잣대라는 점이다.

    어쨌든 치열한 경쟁과 까다로운 자격 요건은 연구비 지원구조를 합리화한다. 그러나 문턱이 높은 만큼 부정이 개입할 여지도 커진다. 이를 테면 연구비 선정과정에 동원되는 각종 로비가 그것이다. 연구비 지원총액은 변동이 없는데 교수 숫자는 늘어나고, 자격 요건은 까다로워지기 때문에 여러 인맥을 동원한 연구비 지원 로비활동도 그만큼 집요할 수밖에 없다.

    심사과정에 끼여드는 치열한 로비

    한국의 교수사회는 ‘한 다리 건너면 모두 한 식구’로 연결된다는 통설이 있다. 연구비를 신청하는 이나 신청과제를 선정하는 이 모두 교수다 보니 이리저리 엮어 인맥·학맥을 동원하면 결국은 통하게 된다는 것. 이 때문에 연구과제 선정에 참여하는 교수는 적지 않게 시달린다. 지속되는 청탁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

    학술진흥재단은 최종 연구과제를 선정하기까지 크게 세 차례 심사를 거친다. 첫째 단계는 학문분야별 교수들에 의한 심사이고, 둘째 단계는 부정을 방지하기 위해 각 분야 심사단이 다른 학문분야의 과제를 심사하는 것이고, 마지막 단계는 각 분야별 심사단 대표와 학진의 임원이 함께 최종과제를 선정한다.

    이런 심사단계는 투명하고 공정하게 과제를 선정하기 위한 필수요건이다. 그리고 외부 청탁을 사전에 방지한다는 의미에서 학진은 학문분야별 심사단을 일절 공개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를 공개하지 않는다 해도 입소문을 타고 학계 내부로 전해지기 때문에 누가 심사위원이고, 위원장인지 금세 알게 된다. 지난해 국내 박사후 연수과정(포스트 닥)에 참가하려다 떨어진 한 대학강사가 전하는 말.

    “심사위원에 자신의 지도교수나 그와 관련있는 이가 참여한다면 당연히 큰 이득을 보게 된다. 심사과정이 어떻게 이뤄지고, 언제쯤 결과가 발표되는지 세세한 정보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비를 따내려면 참신한 연구계획서를 작성하는 것보다 정보를 많이 얻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야 어느 쪽으로 줄을 댈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학진의 연구지원비는 절대액이 교수들에게 집행된다. 지원비 1000억원 중 대학강사를 비롯한 학문후속세대에 돌아가는 지원비는 얼마 되지 않는다. 지금은 대학으로 돌아왔지만 최근까지 학술진흥재단에 파견근무를 한 바 있는 한 교수는 “선정결과를 재단에 있는 나보다 더 빨리 아는 교수도 있었다. 심사과정을 철저히 기밀에 부친다지만 어떤 식으로든 밖으로 알려질 수밖에 없다. 워낙 다양한 방법으로 연줄을 동원해 청탁해와 곤욕을 치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고 회고했다. 연구비 신청과정에 로비가 얼마만큼 성행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말이다.

    이 때문에 학진의 연구비 지원은 여러 차례 구설에 오르내렸다. 지난해 학술진흥재단은 감사원 감사에서 97·98년 지원한 2200억원의 학술연구비 중 연구과제 미제출자 84명, 초과지원자 2명에게 모두 38억8000만원을 잘못 지원한 사실이 밝혀져 시정명령을 받았다.

    학술진흥재단 다음으로 교수들이 연구비 지원을 기대하는 곳이 각종 기업재단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연구비를 따내기는 정부출연기관보다 더 힘들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이들 재단의 연구비는 특수한 목적을 위해 지원되기 십상이고, 다른 하나는 이 때문에 그만큼 연구비 신청 및 선정과정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과정의 불투명성은 곧 비리로 연결된다. 교수들 사이에는 기업재단에서 지원하는 연구비는, 생색을 내기 위해 공고는 하지만 대상자는 일찌감치 정해져 있다는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져 있다. 또 특정 기업과 인연을 갖기 전에는 연구비 수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일부 기업재단의 예일 것이다. 일부 교수들은 연구비 지원을 전제로 모종의 계약이 이뤄진다고 증언한다.

    서강대 왕아무개 교수는 “교수가 연구비를 지원받는 대신 커미션을 떼주기도 하고, 소개한 교수에게 사례금을 주는 경우도 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마저 최근 줄어드는 추세다. IMF 사태 이후 문을 닫은 기업재단이 하나둘이 아니며,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곳도 지원비를 대폭 삭감했다.

    한편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하는 연구용역의 경우 담당공무원들이 리베이트를 요구하기도 한다. 지방대학의 한 교수는 “교수가 담당공무원에게 리베이트를 주지 않으면 심사할 때 대상에서 제외되는 불이익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는 공무원들이 받는 리베이트가 20~30%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연구비를 지원받은 후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도 문제는 여전하다. 연구결과물을 내놓으면서 참여하지도 않은 교수들의 이름을 끼워넣어 업적을 늘리려는 경우가 허다하다. 학계에선 이를 흔히 ‘연구 무임승차’로 부른다. 무임승차는 일반적으로 연구소나 대학에서 상급자가 자신의 높은 직책을 이용해 제자나 후배교수들의 연구성과에 편승하는 방식으로 일어난다. 이는 실험·실습을 통한 공동연구를 주로 진행하는 이·공계 분야에서 특히 관행이 된 현상이다.

    몇 해 전 서울대 공과대 대학원 자치회에서 대학원생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교수들이 실제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비율이 무려 49%로 나타났다. 결국 대학원생 위주로 연구가 진행되고 교수는 거기다 이름만 슬쩍 얹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보여준다. 고려대 김아무개 교수는 “교수 사이에도 무임승차를 눈감아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경우에 따라 거래를 통해 이뤄지기도 하는데, 타인의 연구에 이름을 얹는 대신 자기 연구에 해당교수가 참가한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렇듯 교수들이 거래까지 하며 다른 교수의 연구에 무임승차할 수밖에 없는 것은, 연구실적이 재임용 승진 등에 기초자료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임승차는 후학들의 연구의욕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연구문화 전반을 위축시킨다.

    까다로운 정산이 비리 자초

    지원받은 연구 결과를 보고하는 과정에도 문제는 적지 않다. 각종 연구지원 기관은 연구비를 투명하게 집행하느라 사용내역을 자세하게 보고하는데 그 절차는 점점 까다로워지고 있다. 연구비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영수증을 첨부해 꼼꼼히 보고하게끔 명문화하고 있는 것. 그러나 이 과정에 교수들은 또한 번 추문에 휘말린다. 즉 연구비를 정산할 때 등장하는 가짜 영수증 문제다.

    지난해 8월, 경북 영남대에서 가짜 연구비 정산 문제로 검찰이 현직 교수의 은행계좌를 추적한 사건이 있었다. 영남대에 재직중이던 이아무개 교수는 당시 지방자치단체가 의뢰한 연구 용역비 9700여만원 중 4000여만원을 개인적으로 유용한 혐의가 드러나 형사처벌을 받았다. 이 교수가 연구비 유용을 위해 이용한 것이 가짜 영수증이었다.

    연구비에는 대학원생을 비롯한 공동연구자들의 인건비도 포함돼 있었는데 이교수가 이를 착복하고 가짜 영수증을 올렸던 것이다. 사건은 이교수 밑에 있던 대학원생이 인건비를 받지 않았다고 확인해주면서 확대됐다. 가짜 영수증 파동은 영남대에서 끝나지 않아 대구지역 각 대학 교수들이 일제히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이와 같은 사례는 박사과정생을 비롯한 대학원생들이 함께 연구에 참여하는 이·공계 분야에서는 관행이 된 비리의 고리다. 강원대 김아무개 교수는 “연구비를 지원받았으면 이를 투명하게 처리·보고하는 것이 학자적 양심인데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 연구비 총액을 맞추기 위해 교수들이 식대에서 교통비에 이르기까지 영수증을 가짜로 만들어 보고하는 것은 아량으로 봐 줄 수 있지만, 곤궁한 처지에서 연구에 몰두하는 학문후속세대의 인건비까지 착복하는 일은 같은 학문의 길을 가고 있는 학자의 양심을 저버린 행위”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연구비 정산에 대해 교수들도 불만이 많다. 정산방법이 까다로워 어쩔 수 없이 가짜 영수증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실험실습 위주로 이뤄지는 이·공계 분야와 달리 순전히 자신의 노동력에 의존해야 하는 인문·사회계 학문분야의 연구는 무엇을 근거로 정산서를 만들어야 할지 막막한 경우가 허다하다.

    상명대 박아무개 교수는 “연구비를 지원했다면 사용용도는 어느 정도 교수 재량에 맡겨야 한다. 그래야 창의적인 활동이나 연구가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연구비를 받아놓고도 정산이 무서워 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며 까다로운 정산방법이 초래한 폐단을 지적했다.

    업적평가에 대한 부담 커

    연구비에 대한 교수들의 불만은 분야별 지원비율에서도 두드러진다. 인문·사회계 교수들은 상대적으로 박탈감이 크다. 이·공계의 경우 각종 기업의 프로젝트에서 한국과학재단의 지원사업에 이르기까지 여러 곳에서 연구비를 받을 기회가 있지만 인문·사회계는 그나마 기댈 곳이 학술진흥재단뿐이다. 그렇다 보니 이교수 사건과 같은 부도덕한 일이 생겨난다.

    그러나 같은 이공계 소속 교수라도 지방대 교수들의 소외감은 대단하다. 서울대 공대 교수들의 외부 프로젝트 용역은 해마다 수천 억원이라는 건 학계 내부에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듯 서울대가 연구비를 독점하다 보니 놀고 있는 지방대 연구실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고 한다. 교수들 사이에서는 서울대가 수행하는 연구 프로젝트는 돈이 되고 지방대에게 돌아오는 프로젝트는 잘 해야 현상유지도 어렵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너무 많은 연구 용역이 오히려 화를 부르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서울대 실험실 폭발사고를 들 수 있다. 밖에 알려진 것은 대책 없는 대학 내 안전불감증이 부른 인재였지만 실상 그 이면에는 기업의 연구프로젝트 일정을 무리하게 맞추려다 일어난 사고였다. 사고가 난 실험실은 여러 가지 연구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고 일정에 쫓기다 보니 안전을 소홀히 한 것이다.

    여기서 유심히 살펴야 할 것은 왜 이렇듯 교수들이 연구비 신청·수혜에 매달리는가 하는 부분이다. 물론 연구가 교수 본연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경향은 이를 넘어선다. 경쟁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교수들 사이의 최대 관심사는 업적평가다. 개별 교수들의 교육, 연구, 봉사 활동을 중심으로 대학이 매년 실시하는 업적평가는 교수의 연봉, 재임용, 승진 등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잣대가 된다. 때문에 교수들로서는 업적 쌓기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

    교수들의 활동은 그 자체가 업적으로 간주된다. TV출연에서부터, 학생들의 MT에 따라가는 것까지 일거수 일투족이 점수로 기록되고, 그 결과가 자신의 연봉을 결정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연구업적은 가장 중요하게 취급된다. 승진을 위해서는 국내 학술지에 논문을 실어야 하고, 재임용을 위해서는 국제적 학술지에 연구논문 게재해야 한다고 이를 기준을 세우는 대학이 늘고 있다.

    연구비를 끌어오는 것도 연구업적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외부연구비는 일단 대학이 관리를 맡는 ‘중앙관리제’ 방식으로 운용되는데, 여기서 ‘간접연구경비’라는 명목으로 대학도 일정 지분을 갖는다. 교수들이 밖에서 연구비를 많이 따올수록 대학도 그만큼 이득을 보는 셈이다. 대학들은 재정난을 해결하는 방편으로 이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이 과정에 교수들이 연구비 전선으로 내몰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 건국대는 이번 학기에 해외에서 연구비를 들여오는 조건으로 교수를 임용했다가, 그 교수가 이를 지키지 못하자 재임용에서 탈락시킨 일도 있었다.

    학계 내부의 자성 있어야

    그렇다면 연구비를 둘러싼 부정과 비리를 예방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교수들은 우선 연구비 신청과 수혜, 보고 과정을 제도적으로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한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게끔 신청에서부터 선정에 이르는 과정을 밖으로 드러내야 한다는 것.

    최재목 영남대 교수(철학과)는 “부수적인 서류처리에 안간힘을 쏟게 하는 번잡한 족쇄를 연구자들에게 덧씌울 것이 아니라 뛰어난 연구자와 참신한 연구 그 자체를 도울 수 있는 합리적인 제도가 마련되고 투명하게 운영하는 제도보완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부정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최근 건축공사 비리에 연루된 교수들이 대부분 벌금형을 받고 대학에 복귀해 강의를 맡고 있는 폐단을 막기 위해서는 좀더 강한 법적 판단이 있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학계 내부의 자성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결국 연구비를 둘러싼 교수들의 추문은 ‘수단’을 ‘목적’시하는 데서 비롯된다. 도덕성과 윤리성을 생명으로 삼아야 할 교수가 학문보다는 현실의 이익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여기는 교수사회의 불감증도 오늘의 문제를 불러오는 한 요인이다. 당장 자신에게 피해가 돌아오는 경우라도 교수들은 잘 분노하지 않는다. 그냥 억울하다고만 생각하고 안으로 삭일 뿐이다. 어쩌면 이런 태도와 반응이 지금과 같은 관행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는 외부의 시선은 결코 곱지 않다. 최근 들어 그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지만 우리 사회에서 교수들은 여전히 기득권 세력이며 존경 대상이다. 그런 교수 사회에서 빚어지는 갖가지 추문은 기득권을 이용한 범법행위이며 학자로서 자질을 의심케 한다. 또 이런 관행때문에 연구비가 정작 필요한 학자에게 돌아가지 못하는 일도 비일비재다. 이런 사건이 되풀이될 때마다 연구실에서 묵묵히 학문에 정진하는 학자들까지 싸잡아 비난받는 일을 막는 것은 단순히 제도적 보완만으로는 어렵다. 학자로서 위치를 명확히 인식하는 교수들의 자성과 반성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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