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가 출전하는 골프게임을 보면서 골프장의 날씨를 확인하고 부킹을 시도한다. 마우스를 눌러 할리우드 스타의 액세서리를 주문한다. 100개가 넘는 TV 채널을 리모컨으로 돌려가며 가장 마음에 드는 프로그램을 선택한다….’
꿈 같은 얘기지만 빠르면 오는 12월부터 안방극장에서 펼쳐질 ‘현실’이다. 논란 끝에 위성방송 사업권을 따낸 한국디지털위성방송(KDB)은 연내에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본격적인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위성방송의 성패를 결정할 최대 변수는 역시 양질의 콘텐츠일 것이다. KDB는 5월23일부터 사흘간 채널사용 사업자 접수를 받아 엄정한 심사를 거친 뒤 6월16일 그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위성방송 시장의 초반 판세를 잡으려는 PP(Program Provider·프로그램 공급업자)간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KDB가 1차로 선정할 위성방송 채널 수는 TV 60여 개, 오디오 50개다. TV 채널 수가 유동적인 것은 막판에 경쟁력 있는 사업자를 배려하기 위한 조치라고 한다. 이와 관련 KDB 장윤택 콘텐츠사업단장은 “TV채널은 최대 65개 선에서 결정될 것이며, 케이블TV 등에 프로그램을 공급해온 기존 PP에 40%를 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기존 PP 44개 중 30개(공공채널 3, 종교채널 3 포함)는 채널을 따낸다고 볼 수 있다. 반면 70여 개에 이르는 신규 PP가 위성방송 사업자로 선정될 확률은 50% 수준이다.
KDB는 채널사용 사업자를 선정하는 기준을 네 가지로 제시했는데, 배점이 가장 높은 항목은 ‘채널운용 현황 및 계획의 우수성’(35%)이다. 즉 채널의 상품성을 최대한 고려하겠다는 얘기다. 장단장도 “사업 성공에 최우선을 두고 기존 PP의 강점과 신규 PP의 경쟁력을 조화시킬 생각”이라고 말했다. 장단장은 또한 “위성방송 사업자가 하나의 채널로 수익성을 맞추기는 어렵다”는 말도 덧붙였는데, 이것은 선정과정에 MPP(Multi Program Provider·복수 프로그램 공급업자)를 충분히 고려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장단장은 위성방송이 조기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쟁력 있는 ‘Key Drive(전략상품)’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지상파나 케이블TV와 확실하게 차별화된 상품을 내놓아야만 가입자를 끌어모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현 상태에서 장단장이 구상중인 Key Drive는 영화와 스포츠다. 그는 “영화와 스포츠의 경우 장르별로 다양하게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상품성을 가질 수 있다. 현재까지 나온 시장조사로는 영화 스포츠 음악 오락 교육 순으로 채널 선호도가 높다”고 말했다.
온미디어, 영화채널 선두 질주
온미디어는 한국 최대의 MPP다. 온미디어가 직·간접으로 위성방송 진출을 노리는 채널은 모두 9개. 이 가운데 영화(OCN)가 5개로 가장 많고, 바둑 게임 만화채널도 준비중이다. 온미디어는 또한 세계적인 음악채널 MTV와 ‘온뮤직네트워크’라는 별도법인을 설립해 채널 등록을 마쳤다. 이로써 종합 엔터테인먼트 그룹의 이미지를 구축한 셈이다.
지난 95년 케이블 TV가 개국했을 때 영화채널은 2개였다. 대우의 DCN과 삼성의 캐치원이 그것이다. 하지만 두 채널은 현재 온미디어로 넘어갔다. 이 때문에 온미디어는 영화 판권과 경영 노하우 면에서 월등히 앞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OCN은 이번에 모두 5개의 채널을 신청할 전망이다. 이 가운데 영화 종합과 프리미엄 채널은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태.
영화 채널의 향배는 OCN이 몇 개의 채널을 가져가느냐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KDB가 영화를 전략상품으로 생각하고 있는 만큼 6개 이상의 채널이 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OCN의 비중에 따라 나머지 PP의 거취가 가려질 듯하다. 고전 영화를 특화하겠다는 유씨엔, 성인영화와 독립영화 채널을 준비하고 있는 미디어앤커뮤니케이션네트워크 등이 틈새시장을 겨냥하고 있는 신규 PP다.
OCN의 장현 차장은 “영화채널을 운영하려면 한 달에 300편, 1년에 1000편의 영화가 필요하다. 때문에 신규 업체는 영화판권을 확보하는 데 애를 먹을 것이다. 반면 OCN은 케이블 TV에 참여한 노하우가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한편 유씨엔의 배봉원 이사는 “중장년층이 좋아하는 영화를 선별해서 우선 SO(System Ope- rator·케이블TV 방송국)에서 방영하고, 위성으로 옮겨가는 방식을 시도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미디어앤커뮤니케이션네트워크의 유효진 팀장은 “위성방송의 차별화 측면에서 독립영화나 성인영화 채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영화채널의 또 다른 변수는 초창기에 연간 40억~50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보이는 적자 규모다. 2~3년 내에 수익모델을 만든다면 다행이겠지만, 자칫 위성방송 자체의 마케팅이 부진할 경우 문을 닫는 채널이 속출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케이블TV의 경우처럼 채널사업자가 바뀌는 사태가 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스포츠, 지상파 3사 안정권
스포츠 채널은 지상파 3사가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KBS, MBC, SBS가 KDB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다. 이들 3사는 한국통신에 이어 KDB의 2,3,4대 주주다. 그런 만큼 KDB의 사업구상에 일정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실제로 3대 지상파방송이 신청할 채널은 모두 10개에 달하고 있다.
냉정하게 말해서 지상파 3사가 경쟁적으로 위성채널에 참여하는 것은 전파의 독점이라는 차원에서 비판받을 소지가 많다. 하지만 KDB 관계자는 “위성방송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제작능력이 있는 지상파의 참여가 절실하다. 특히 영화와 더불어 주력상품으로 꼽히는 스포츠 채널은 지상파의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어쨌든 방송 3사의 스포츠 채널 동시 진입은 거의 확실하다. 문제는 채널의 차별화다. KDB 장윤택 콘텐츠사업단장은 “지상파 3사가 모두 스포츠 종합 채널을 운영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보다는 특정 종목을 방영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는 또 “케이블과의 차별을 위해 같은 조건이라면 새로운 PP가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3개 스포츠 채널을 신청할 것으로 보이는 SBS가 변수다. SBS는 현재 케이블에서 스포츠종합, 골프, 축구 등 3개 채널을 방송하고 있는데 위성에서도 3개 채널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SBS스포츠TV 하상욱 팀장은 “SBS의 3개 스포츠 채널은 MBC나 KBS에 비해 인지도가 높다. 비록 종합스포츠가 KBS나 MBC와 상충되지만, 차별화가 가능할 것이다. KBS는 공익적 차원에서 비인기 종목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으며, MBC는 국내 3대 프로스포츠에 대한 판권이 없다. SBS는 케이블과의 시간대별 교차 편성으로 차별화를 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코리아특급’ 박찬호가 나오는 경기를 포함, 4년간 미국 메이저리그 중계권을 확보한 MBC는 위성방송에서도 해외스포츠를 충분히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MBC스포츠의 편성 관계자는 “케이블과 위성의 프라임타임이 다르다는 점을 이용할 생각이다. 위성방송의 특성상 스포츠 채널이 많아질 것으로 본다. 세계적인 골프대회나 국내 고교야구 등의 비중도 높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MBC는 드라마와 게임 채널에서도 유력한 후보로 꼽히고 있다.
KBS가 1대 주주로 참여하는 스카이KBS는 스포츠, 드라마, 자연 등 3개 채널을 신청한다. 이 밖에 KBS는 독자적으로 한국문화 채널도 준비중이다. 스포츠의 경우 스카이KBS는 향후 3~5년간 중계권을 갖고 있는 3대 프로스포츠를 충분히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지상파가 위성까지 장악한다는 비판에 대해 스카이KBS 지종학 대표는 “건실한 지상파가 참여해서 질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위성방송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반박했다. 지대표는 위성방송의 종합 스포츠 채널 수와 관련, “2개 정도가 적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상파 3사를 제외한 업체 중에는 스포츠서울21이 준비중인 스포츠 정보, 월드TV와 월드태권도네트워크가 경합을 벌이는 격투기, 월드TV와 한국타이거풀스가 신청할 것으로 보이는 스피드, 그리고 골프다이제스트미디어의 골프코리아 등이 관심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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