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비구승과 대처승 사이의 오랜 분규를 끝내고 통합종단을 출범시킨 불교계는 뭔가 새로운 모습을 선보이자는 뜻에서 상징적으로 역경사업을 시작했다. 1962년 조계종단은 역경위원회법을 제정하고 1964년 3월1일 동국대학교에 동국역경원(초대원장 운허 스님)을 설치했다. 역경원이 종단 기구가 아닌 동국대학교 내에 생긴 것은 예산 문제와 관련이 깊다. 정부는 종교간의 형평성 문제 등으로 팔만대장경 번역사업을 후원하는 데 부담을 느꼈다. 그래서 대학을 통해 역경사업을 측면 지원했던 것이다.
역경원의 설립목적은 크게 다섯 가지인데 고려대장경의 보존, 영인 및 국역사업이 그 첫째다. 이 밖에도 역경원은 역경사업, 한글대장경 간행, 한국불교의 세계화, 불교의 현대화 및 대중화 등을 추진해왔다. 불교계에서는 지금도 “역경원이 종단과 독립돼 있었기에 잡음에 휩싸이지 않고 작업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만큼 숱한 격랑을 겪은 한국 현대불교사에서 묵묵히 한길을 걸어온 역경원의 노력은 단연 돋보인다.
1965년 ‘장아함경’ 1집 2000부를 출간하며 첫 성과를 올린 역경원은 한글대장경 완간으로 확실한 위상을 확보했다. 하지만 대장경 완간을 불교사적 의미에 국한하는 것은 너무 좁은 시각이다. 당대의 역사와 문화, 지리 등이 녹아 있는 용광로가 바로 대장경이다. 때문에 한글대장경의 완간은 향후 역사학이나 지리학 등 관련 학문의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동국역경원 최철환 편집부장은 “혜심 스님의 ‘선문염송’이 한글로 번역된 이후 이것을 다룬 논문만 수십 편이 나왔다. 한글대장경 완간을 계기로 이와 관련한 연구작업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면 팔만대장경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배경과 제작원칙 등을 기술한 ‘고려국신조대장교정별록(高麗國新雕大藏校正別錄)’ 같은 경우, 또 다른 대장경인 ‘북송장경’과 ‘거란장경’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처럼 중요한 팔만대장경이 한글로 ‘환생’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시대의 한 걸출한 학승(學僧)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역사를 만드는 것은 사람’이라는 말을 실감케 하는 주인공은 현재 동국역경원장을 맡고 있으며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에 있는 봉선사 조실인 월운 스님이다. 어버이날인 5월8일 봉선사로 차를 몰았다.
한글대장경은 민족적 자부심
학승이기 때문일까, 스님은 구도자에 앞서 스승이었다. 춘원 이광수가 묵었다는 ‘다경당’에 있는 스님의 방에는 신도들이 갖다 놓은 꽃바구니가 여러 개 눈에 띄었다. 인터뷰 도중에도 신도들이 꽃을 들고 찾아왔다. 세수 73세. 스님은 “이제 나이가 들어가는 게 느껴져. 힘이 들어”라며 세월의 흐름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스님의 형형한 눈빛은 5월의 찬란한 햇살을 꿰뚫고 기자의 가슴에 콕콕 박혀왔다.
―한글대장경 완간의 불교사적, 사회문화사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먼저 자라나는 세대가 불교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토대를 닦았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제 우리 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160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불교계가 그 동안 제대로 된 우리말 불경 하나 없었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이후 나라에서 ‘간경도감’을 만들어 20여 종을 번역하고 필사본 등을 남겼지만, 經(경전) 律(계율) 論(이론) 등에 걸쳐 체계적으로 번역한 것은 역사상 이번이 처음입니다.
37년 만에 한글대장경을 완성한 것은 민족적인 자부심을 갖게 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팔만대장경은 몽골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킨다는 호국의지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한글번역을 계기로 국민들이 대장경의 본래 제작 취지를 마음에 새긴다면, 자연스럽게 양심을 지키고 탈선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생겨날 것입니다. 올해가 국민들이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원년이 됐으면 합니다.
새로운 문화에 대응할 수 있는 기본틀을 마련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현재 불교는 내부에서도 한문을 멀리하는 상황입니다. 여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불교의 근본정신을 계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일단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는데 의외로 오래 걸렸습니다. 또한 팔만대장경 속에는 제작 당시 중국, 인도, 우리나라의 사회상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내용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한글대장경 완간으로 우리는 이제서야 진정한 의미의 대장경을 갖게 됐습니다.”
―번역과정에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크게 세 가지를 얘기할 수 있습니다. 인력난 재정난 저력난(底力難·추진하는 힘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인력난은 한문과 불교를 모두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생긴 거죠.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제일 어려웠던 것은 재정난이었습니다. 한 권을 만드는 데 번역비 등 실제 경비가 2500만원이 들어갑니다. 318권으로 나왔으니 산술적으로만 따져봐도 795억원이 들어간 셈이죠. 조계종단에서 약간 지원해 줬지만 큰 힘이 되지 못했고 다른 종단과 단체의 지원도 태부족이었습니다. 국가의 지원이 큰 힘이 됐지만, 역시 특정 종교에게 전액을 줄 수는 없었죠. 그래서 번역된 책을 열심히 팔아 자금을 마련했는데, 들어온 돈을 바로바로 투입해야 할 만큼 빠듯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그 동안 한글대장경을 구입해 주신 분들께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93년 말 제가 역경원장이 돼보니 고려대장경을 기준으로 반 정도가 번역돼 있었습니다. 7년간 나머지 번역작업을 했습니다. ‘부처님도 경전을 출판하면 공덕이 크다고 하셨다. 경전을 번역하는 것은 불제자의 의무’라고 주장하면서 후원회도 만들었습니다. 3만명이 1만2000원씩 내면 1년에 필요한 3억5000만원을 마련할 수 있겠다는 계산을 했는데, 이게 안 되더군요. 역경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돌아서면 그만이었습니다. 지금은 후원회에 2500여 명이 가입해 있습니다.
최근 한글대장경 완간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사정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오늘도 칠순잔치 할 돈을 보시한다며 한 퇴역장성이 1억원을 보내주었습니다.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이제 사람들이 역경작업의 중요성에 눈을 뜬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한 사람이 1억원씩 큰 돈을 내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역경사업을 계기로 많은 사람이 불교 사업에 동참해줄 것을 바랄 뿐입니다. 내가 이런 구상을 밝히니까 주변에서 ‘다른 단체라면 몰라도 절은 안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지금도 ‘안 되면 불교를 때려치우자. 부처님까지 불질러버리자’고 말합니다. 승가(僧家)는 결국 화합입니다. 불교적인 화합은 무조건 단합하자는 게 아니고 거룩한 목적 밑에 응집력을 연마하자는 것입니다. 응집력이 없는데 거기서 무슨 꽃이 피고 미래가 있겠습니까.”
‘역경의 대부’로 꼽히는 월운 스님의 ‘번역원칙’은 무엇일까.
“원문에 충실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물론 언어관습까지 포괄하거나 때로는 정황이나 상상력에 근거한 과감한 번역이 필요하겠죠. 하지만 그건 나중 문제이고 우선은 원문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원문을 바탕으로 해서 여러 사람이 다양한 방식으로 그 의미를 새겨봐야 할 것입니다.”
―역경이 왜 중요합니까.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따르는 게 보통입니다. 그러나 역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단순히 경제논리로만 따질 수 없는 역사적이고 민족적인 맥락이 있습니다. 경전 속에 있는 많은 얘기들이 나름대로 우리의 삶을 풍부하게 해준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번역이 돼야 합니다. 그 뒤에는 일반인들이 찾기 쉽게 포장하는 일이 필요하겠죠.
정당이나 종교단체가 요란스럽게 한다고 해도 현재 국민들의 정서를 바로잡기 힘듭니다. 국민 스스로 일어나야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죠. 줄을 서야 하는데 안 선다면, 경찰이 단속하겠습니까? 자연스럽게 줄서는 습관을 익혀야 합니다. 신행(信行)의 근본을 튼튼히 하려면 경전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인데 여기서 언어가 걸림돌이 돼서는 곤란합니다.”
―한글대장경을 국민들이 가까이 하도록 돕기 위해 여러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앞으로 5년 정도까지만 인쇄본을 내보내고 멈출 생각입니다. 그 뒤엔 전산화에 주력할 생각이에요. 국민들 누구나 자기 취향에 맞게 대장경을 볼 수 있게 하려는 거죠. 내가 봐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픈 경전이 있어요. 이런 것은 전문가들이나 보라고 하고, 국민들은 컴퓨터를 두드리면서 보게 할 생각입니다. 향후 10년을 목표로 잡고 있어요. 일반인들도 몇 년 뒤면 인터넷을 통해 한글판 경전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스님은 “역경작업이 완료되기까지는 여러 어른들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내가 칭찬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고, 내가 다른 사람보다 불경을 더 잘 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나는 야구의 희생타자처럼 한 단계의 일을 마치고 물러날 뿐이니 앞으로 나올 선지식(善知識)들이 더 갈고 닦아 길이 빛날 우리 시대의 국보로 만들어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벌써부터 일부에서 ‘역경 잘했다더니 엉망으로 해놨네’라는 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당연한 겁니다. 한술에 어찌 배부를 수 있겠습니까? 어찌 보면 이제부터가 시작인 셈입니다”라며 겸손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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