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청의 수사를 중단시켰다는 것은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이 윤태식이 수지킴의 살해자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로부터 1년이 흐른 2001년 1월, 벤처기업 대표가 된 윤태식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앞에서 지문인식 기술에 대해 설명했다. 대통령 앞에는 아무나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한번은 신원조회를 거쳐 문제가 없는 사람만이 대통령을 만날 수 있는데, 윤태식은 당당히 대통령을 만났다. 경호실은 물론이고 국정원도 대통령 경호에 참여한다. 윤씨가 살인사건 용의자라는 것은 이미 언론보도를 통해 만천하에 알려졌는데, 경호실과 국정원은 살인사건 용의자의 대통령 면담을 허가했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국가정보기관과 수사기관은 살인자가 활보하도록 내버려두었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을 만나는 것도 방치했다. 벤처사업가 윤태식은 패스21의 주식을 헐값에 뿌리는 방법으로 정계와 관계·언론계를 상대로 로비를 펼친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이제 윤태식의 한마디에 청와대를 포함한 국가 주요기관의 요인들이 날아가는 세상이 된 것이다. 1월14일 연두기자 회견을 가진 김대중 대통령은 결국 “이러한 사태와 관련해 큰 충격과 더불어 무엇보다 국민 여러분께 죄송한 심정을 금치 못하고 있다”며 사과까지 했다. 한 나라가 이렇게 흔들려도 되는 것일까.
수지킴 사건과-윤태식 사건이 터지자 많은 연루자들이 구속되었다. 소환장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검찰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들이 아무리 억울하기로서니, 수지킴과 수지킴 유가족 이상으로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까지 수지킴 사건에 관련된 연루자들은 수지킴 유가족에게 솔직히 사과하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수지킴 살해 사건이 일어났을 때 국가안전기획부장이었던 장세동(張世東·66)씨만은 수지킴과 그 유가족에 대해 공개 사과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