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영어학원가에 ‘족집게 강사’라는 별명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많은 수강생, 가장 빠른 강의신청 마감, 토익교재 부문 베스트셀러 1위 같은 기록의 이면에는 이런저런 오해와 비방도 적잖이 뒤따른다. “유학도 갔다 오지 않았으면서 영어를 하면 얼마나 하겠냐”며 비아냥대기도 하고, “토종이면서도 어떻게 영어를 그렇게 잘할 수 있냐”고 부러움 섞인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필자는 초등학교에서 대학원까지 우리나라에서 공부했다. 외국은 자료수집이나 관광을 목적으로 더러 나갔지만, 공부를 하기 위해 간 적은 없다. 내가 영어를 좋아하게 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 영어를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도록 가르쳐주신 선생님 덕분이었다. 구문을 정확하게 분석해주는 그 분의 강의를 통해 영어에 흥미를 느꼈고, 그렇게 좋아하다보니 꾸준히 괜찮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자습서를 살 수 없었다. 그래서 중학교 때 산 사전 한 권만 들고 영어공부를 했다. 무책임한 선생님들이 더러 자습서에 있는 문제를 그대로 시험에 내는 바람에 손해를 보기도 했지만, 미련스럽게 사전 한 권에 의지해 영어를 공부한 것은 여러 면에서 도움이 됐다. 단어의 여러가지 뜻을 알 수 있었고, 사전에 나오는 예문들을 통해 나도 모르게 독해력도 늘었기 때문이다. 영한사전 한 권과 조금 뒤에 마련한 영영사전, 그리고 수도 없이 반복해 읽은 두터운 종합서 한 권으로 닦은 영어실력이 고3 초에 이르자 큰 힘을 발휘해 나는 친구와 선생님들 사이에 영어 잘하는 학생으로 알려지게 됐다.
꼼꼼히 읽기:술술 읽기=4:6
영어에 취미가 붙어 대학도 영문학과에 진학했는데, 2학년 말에 영어에 대한 ‘문화충격’을 경험했다. 영어는 웬만큼 한다고 생각해서 정서가 풍부한 영시나 소설을 즐겨 읽던 내게 학교의 ‘타임강독반’은 또 다른 영어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충격적으로 보여주었다.
영어는 어휘력이나 구문 파악능력이 있어도 특정 분야에 대해 관심이 없으면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법이다. ‘타임’지에서 특히 ‘US칼럼’ 같은 것은 미국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되냐에 비례해 이해의 정도가 달라진다. 가령 ‘타임’의 간판스타 랜스 모로의 글을 재미있게 읽으려면 미국의 국가적 배경에 대한 지식과 문학적 감수성, 풍부한 어휘력이 필요하다.
대개 영문학과 학생이 토익(TOEIC) 점수도 높을 것으로 알겠지만, 의외로 경영학과 학생들이 토익을 잘 보는 경우가 많다. 토익에 나오는 내용들이 실용문이라 이런 방면에 잘 적응된 사람들이 글을 쉽게 읽기 때문이다. 내가 토익을 처음 접했을 때는 독해 지문이 별로 가치 있는 글처럼 보이지 않았고 머리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후 시험을 꾸준히 보면서 토익 특유의 색깔과 맛을 알게 되었고, 토익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됐다. 하지만 다른 부류의 영어로 된 좋은 글을 충분하게 즐기지 못하는 비극을 안고 살게 됐다.
영어잡지를 잘 읽고 싶은가. 우리나라 신문의 국제면과 방송의 국제뉴스를 꾸준히 보고 들으면서 영어잡지를 읽으면 흥미도 생기고 이해도도 높아져 곧 잡지와 친해지게 된다. 토익을 잘 치고 싶은가. 그렇다면 우리말로 번역된 토익 독해 문제 지문들을 꾸준히 읽어도 어느 정도 토익에 대한 적응력이 생긴다. 이렇듯 기본적인 영어 실력 못지않게 해당 과목이나 분야에 대한 적응력이 중요하다.
그런데 영어에 대한 필자의 인식에 변화를 주는 일이 또 생겼다. 대학원 입시 영어를 공부할 때도 그랬고, 대학원에 들어와서 전공을 하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타임반에서 몸에 밴 학습법이 오히려 장애로 작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배경 지식을 알고 꼼꼼히 공부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시험은 ‘신속’과 ‘정확’을 요구한다. 한 시간에 한 페이지를 읽어나가면서 정확한 구문분석을 하고 배경 지식을 따지는 타임반식 학습법은 그 나름대로 좋은 공부방법이었지만, 영어 문장을 느리게 읽는 나쁜 습관을 동시에 키워줬던 것이다.
대학원 입시 영어를 준비하면서 필자는 영어공부를 새로 시작했다. 시험 기출 문제 유형을 정리하면서 쉬운 글을 빨리 읽는 습관을 들여갔다. 대학원에서는 한 주에 영어소설 한 편 정도를 읽어야 했기 때문에 ‘술술 빨리 읽기 훈련’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사전을 일일이 찾아가면서 소설을 읽으려면 도저히 수업 진도를 따라갈 수 없고 ‘감수성 훈련’에도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영어는 ‘천천히 정확하게 읽기’와 ‘술술 많이 읽기’ 연습을 병행하되, 전자와 후자의 비율을 4:6이나 3:7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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