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6월호

건강보험, 정부·기업부담 늘려야

<의료보장>

  • 강영호 (울산의대 예방의학교실 전임강사)

    입력2005-04-14 15: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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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험재정 수입·지출 부문의 정책과 함께 시급히 보험급여를 확대해야 한다. 보험급여 확대야말로 보험재정 위기 극복의 목적이자 건강보험 구조개혁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되고 있다. ‘파산’에 대한 우려도 증가하고 있다. 몇 차례 보험료 인상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 재정지출은 계속 늘어, 2000년 9조원 수준의 보험재정 지출이 2001년에는 약 14조원 또는 그 이상이 될 전망이다. 갑작스러운 건강보험 재정난의 원인을 둘러싼 논쟁도 뜨겁다. 시민사회단체에서는 ‘부당한 수가인상’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의료계에서는 ‘준비 안된 의약분업 도입’ 때문이란다.

    예상치 못한 보험재정 지출 증가로 갑작스럽게 문제의 중요성이 부각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 건강보험 재정위기는 조만간 사회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건강보험 재정은 이미 1996년부터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상태가 지속됐기 때문이다. 물론 올해의 재정위기는 국고지원 등 몇 가지 단기대책을 통해 해결될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앞으로도 건강보험 재정위기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지속될 전망이라는 점이다.

    건강보험의 재정위기는 ‘실정(失政)’의 사례가 되기에 정부로서는 부담이다. 건강보험 재정위기는 진료비 지급 중단 또는 지연 사태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의료제공자들에게도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보험재정 위기는 국민들로 하여금 보험료를 더 내도록 강요하며 보험료의 인상은 실질 임금의 감소로 이어진다. 건강보험 재정위기는 보험급여 확대를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다. 당초 정부가 약속했던 예방접종, MRI, 초음파 등에 대한 급여 확대 일정이 지켜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점만 보아도 그렇다. 건강보험 재정위기는 소액진료본인부담제와 의료저축제도,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등과 같은 건강보험의 재편시도를 용이하게 한다. 물론, 현재로서는 정부의 고려 대상이 아니겠지만, 보험진료비를 지급하지 못하는 사태가 지속될 경우 정부는 건강보험의 ‘파산’을 선언하고, 사회보험의 틀을 버릴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고 정부(또는 보험자)와 의료제공자, 국민의 삼자가 보험재정 위기 극복방안에 합의한 것도 아니다. 일반 국민으로서는 어떤 방안은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지만, 다른 방안은 반대할 필요도 있다. 재정위기의 극복을 위한 건강보험 구조개혁 방안을 검토하는 데 있어서, “보험재정 위기를 넘기기만 하면 된다”는 ‘재정위기 극복 지상주의’는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즉, 재정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따라 건강보험의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재정의 구성과 구조적 문제



    건강보험이 진정한 사회보험으로 거듭나는 데 가장 큰 과제는 보험급여 확대다. 즉, 현재의 본인부담 수준이 너무 높다. 연구결과를 토대로 할 때, 건강보험의 본인부담률은 50% 수준으로, 총진료비가 1만원이 나왔다면 이중 평균 5000원을 환자 호주머니에서 지불하고 있다. 건강보험의 보험급여비가 올해 14조원이라면, 같은 규모의 돈을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높은 본인부담을 덜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없다. 외국처럼 저소득층의 본인부담금을 감면해주는 제도도 없는 상황이다.

    본인부담이 높으면 형평성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마치 보험이 없는 상황과 유사해져 저소득층이 경제적 장벽 때문에 필수적인 의료서비스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본인부담이 높은 상황에서는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이 동일한 의료서비스 양을 이용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불평등하다. 같은 의료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본인이 부담하는 돈이 총소득에서 차지하는 상대적 크기가 빈자(貧者)에서 더 크기 때문이다.

    보험급여를 확대하려면 돈, 즉 보험재정이 있어야 한다. 보험재정도 가계부와 같아서 수입과 지출항목이 있다. 보험재정이 충분하려면 수입은 늘고 지출은 줄어야 한다.

    그림에서 불 수 있듯이 건강보험 재정의 수입원은 크게 정부, 기업, 개인이라는 세 경제주체의 기여금이다. 그런데 삼자 중에 누가 부담하느냐가 문제다. ‘적정부담-적정급여’라고 했을 때에도, 부담 주체를 명확히 해야 한다. 저소득층에게 돈을 더 받아서 고소득층의 의료보장에 쓰는 방식의 적정부담-적정급여가 결코 바람직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조세정책은 간접세 비율이 높아 역진적 성격이 강하다. 건강보험의 보험료도 소득 비례제로 되어 있다. 자영자 소득파악률이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은 보험료 인상을 통한 보험재정 안정화라는 정책 방안을 어렵게 한다. 더 큰 문제는 이를 핑계 삼아 ‘능력에 따른 보험료 부담’이라는 사회보험의 원칙을 적용하기 위한 노력을 회피하는 것이다.

    보험재정을 안정화하기 위해 우선 고려되는 방안이 국고지원율을 상향 조정하는 것이다. 물론 2001년의 경우, 갑작스러운 재정난으로 인해 국고지원이 대폭 확대될 전망이지만, 작년만 하더라도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은 지역건강보험 재정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기업의 보험료 분담 비율도 문제다. 우리나라는 사용자와 근로자가 반씩 부담한다. 독일도 사용자와 근로자가 반씩 부담하지만, 월보수가 낮은 근로자의 보험료는 전액 사용자가 부담한다. 프랑스는 사용자가 65%를 부담하고, 이웃 대만은 사용자가 60%, 정부가 10%를 분담한다. 일본도 700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사용자가 56%를 부담하고, 근로자가 가입하는 정부관장 보험에는 정부가 국고 지원한다.

    지출구조는 더 큰 문제다. 건강보험 ‘지출부문’이 낭비구조임은 오래 전부터 지적되어 왔다. 행위별 수가제, 민간중심의 의료기관과 부족한 공공의료기관, 의사수 및 병상수 증가 등 의료자원의 지속적 증가가 그것이다.

    건강보험 위기 상황에서 고려되고 있는 방안이 ‘의료저축제도’와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다. 특히 의료저축제도는 건강보험 구조개혁 방안으로 향후 지속적으로 제기될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 제시되는 의료저축제도는, 건강보험은 중한 질병(암 등)에 대한 보장으로 보장범위를 바꾸고, 대신 소액진료비는 본인이 전액 부담하되, 경한 질병(감기 등)을 대비하기 위한 개인소유의 의료비 지출통장(의료저축계좌라 부른다)을 모든 국민이 갖게 하는 제도다. 즉, 의료저축계좌를 중심으로 보험급여 구조를 개편하는 방안이다. 의료비가 많이 드는 소액진료비를 줄이면서, 보험기능이 정작 필요한 고액진료비에 대한 보장성을 높인다는 논리를 갖고 있다. 의료저축계좌는 1998년 구조조정차관(SAL-Ⅱ) 협상안에서 세계은행이 도입 검토를 제안한 바 있고, 전경련을 통해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의 개편 방안으로 제시된 바 있다. 보건복지부에서도 올해 1월 말 도입을 검토했다가, 시민사회단체의 거센 반발로 백지화한 바 있다.

    그런데 의료저축제도의 핵심인 의료저축계좌는 사회보험 원리와 상반되는 의료비 조달 방법이다. 소액진료에서 사회보험 기능을 없애는 것이다. 이는 특히 저소득층의 필수적인 의료이용을 제한함으로써 형평성을 저해한다. 더구나 질병 치료에 있어서 ‘상부상조’의 사회보험 정신을 없애고, ‘개인 책임’을 강요할 것이다.

    민간의료보험을 활성화하는 방안도 제기된다. 하지만, 공보험인 건강보험에서 급여되지 않는 항목이 너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는 곧바로 건강보험의 대체로 이어질 것이다. 총진료비 중 50%를 본인이 부담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적 의료보험의 급여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 급여(비급여 부분)를 ‘거의 전적으로’ 민간의료보험에 의존하는 피보험자가 많은 경우, 공적 의료보험의 필요성에 대한 논란이 일어날 것은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의료제공자들도 공적 의료보험 진료비 수입보다는, 앞으로 장래성이 뛰어난 민간의료보험 부문 확장에 주력하게 될 것이다. 독립된 수가체계와 독립된 의료전달체계, 즉 공적 의료보험을 대체하는 의료체계에 대한 요구가 많아질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민간의료보험 시장의 확장을 통해 보험재정을 절약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지만, 총국민의료비는 오히려 늘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이는 민간의료보험 중심의 의료체계를 가진 외국의 공통된 경험이다.

    건강보험 재정위기를 계기로 건강보험 구조개혁에 대한 여러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일반 국민의 처지에서 각 방안의 궁극적 의미를 판단할 수 있는 리트머스시험지는 “건강보험을 강화할 것인가, 아니면 대체할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아직 제대로 된 사회보험으로서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사회보험을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회보험이 갖고 있는 상부상조의 미덕을 우리 사회에서 실현하는 방향이 우선이다.

    보험재정 수입 부문에서는, 국고 지원율의 상향 조정이 시급하다. 당초 전국민의료보험 확대 실시에 따라 정부가 약속했던 지역의료보험료에 대한 국고지원 50% 실현도 중요하지만, 정작 보험료 부담 경감이 필요한 저소득층 지원, 영세기업의 사업주 부담분 지원 등과 같은 세부 방안들이 검토될 필요가 있다. 기업 부담을 선진국 수준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외국 사례와 같이 기업 규모에 따른 기업부담 차등 방안도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보험료를 형평성 있게 부과하기 위하여 소득파악률 제고는 시급하게 이뤄져야 할 과제다.

    보험재정 지출 부문에서는, 행위별 수가제를 다른 방식의 진료비 지불제도로 개편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포괄수가제, 총액계약제 등 다양한 방식이 검토될 필요가 있다. 궁극적으로는 공공의료기관을 확대하고, 민간의료기관이 공공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함으로써 전체 의료공급체계의 공공성을 향상시켜야 하는 과제가 있다.

    한편, 소액진료 본인부담제와 같이 의료수요자를 대상으로 한 지출관리 방안은 지양되어야 한다. 의료수요자 중심의 지출관리는 효과도 미약할 뿐만 아니라, 저소득층이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하는 형평성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보험재정 수입, 지출부문의 정책과 함께 시급히 보험급여를 확대해야 한다. 보험급여 확대야말로 보험재정 위기 극복의 목적이자 건강보험 구조개혁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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