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호

피해자 공포·충격 보며 희열과 존재감 느껴

범죄심리학자가 본 ‘김수창 사태’와 성도착증

  • 이수정 |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suejung@daum.net

    입력2014-09-18 09: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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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관급 공직자가 ‘공연음란’이라는 어이없는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엔 그 어떤 변명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형벌 집행에 앞서 이런 행위가 왜 발생했는지, 어떤 경로로 습득하는지, 그리고 벌금이나 징역형만으로 재발 방지가 되는지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필요하다.
    피해자 공포·충격 보며 희열과 존재감 느껴
    제주지방검찰청 수장이 저녁나절 대로변에서 5번이나 음란행위를 한 것으로 확인돼 한동안 세상이 시끄러웠다. 여성단체들은 일제히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을 엄정히 처벌할 것을 촉구하면서, 공연음란행위는 반드시 처벌받아 마땅한 성폭력 범죄이며 ‘병’을 핑계 삼아 그 뒤에 숨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엇이 불법인지 알고 있으며, 발각되면 패가망신할 것이 명백함에도 절제하지 못하고 음란행위를 한 김 전 지검장의 행위는 틀림없이 성도착, 그중에서도 노출증에 해당한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

    원래 성도착(paraphilia)이라는 용어는 그리스어 ‘para’(~에서 벗어난)와 ‘philia’(사랑, 우정)가 합쳐진 단어로서 1920년대 정신분석학자 빌헬름 스테켈이 처음 만들어 쓴 것으로 알려진다. 성도착은 일반적으로 특이하거나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성적 행위를 기술할 때 사용된다. 특히 비정상적 상황이나 물체, 행동에 성적으로 집착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하는데, 그 정의는 시대적으로 변화하는 사회적 통념에 의해 조금씩 바뀌어왔다.

    성도착 중 노출증에 해당

    성도착의 종류를 세분화하면, 대략 550가지로 구분이 가능하다고 알려진다. 1952년 미국정신의학회가 처음으로 발표한 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정신장애진단통계편람)-Ⅰ에서는 성도착을 성적 일탈(sexual deviation)로 명시하면서 하위 범주로 동성애, 복장도착증, 소아기호증, 물품음란증, 성적가학증 등이 있다고 정한 바 있다. 이후 DSM은 1968년 두 번째, 80년 세 번째, 94년 네 번째 개정작업이 진행됐고, 2013년엔 DSM-Ⅴ까지 나왔다.



    정신장애진단통계편람의 최근판인 DSM-Ⅴ에서는 성도착을 관음증, 노출증, 마찰음란증, 성적피학증, 성적가학증, 소아성애증, 물품음란증, 복장도착증, 그리고 달리 분류되지 않는 성도착 등으로 구분한다. 예컨대 인격체가 아닌 특정 물품과 관련한 성적 집착, 자신이나 상대방이 고통이나 굴욕을 느끼게 하는 성행위, 소아나 동의하지 않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성행위 등도 성도착의 대표적 유형인데, 적어도 6개월 이상 이런 종류의 성적 흥분을 강하게 일으키는 공상, 성적 충동, 성적 행동이 반복되면서 임상적으로 심각한 고통을 일으키거나 사회적, 직업적 또는 기타 중요한 영역에서 장애를 일으키는 경우 성도착 장애(Paraphilic Disorders)라고 진단한다.

    흥미로운 점은 DSM-Ⅱ까지 성도착에 포함됐던 동성애가 DSM-Ⅴ에서는 더 이상 성도착의 일종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동성애를 바라보는 사회문화적 시각의 변화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정신의학적으로는 성도착에 해당하는 행위라 할지라도 모두 법률적 제재를 받는 건 아니다. 특히 타인에게 고통을 주기보다는 자신에 대한 고통을 추구하는 성적피학증이나 스타킹과 같은 여성의 복장을 남성이 착용하는 등의 복장도착증, 하이힐 등 여성이 사용하는 물품에 집착을 보이는 물품음란증 등은 법적 처벌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성도착 유형이다.

    또한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되는 도착적 행위라 할지라도 형벌의 경중이 다 똑같지 않은데, 피해자의 신체를 접촉하는 도착적 행위와 그렇지 않은 도착적 행위는 성범죄 처벌 수위에서 현저한 차이가 있다. 그렇다보니 비접촉 성범죄, 즉 피해자의 신체를 접촉하지 않는 성적 일탈행위에 대해선 범죄라고 인식하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최근 단속이 집중되는 비접촉 성범죄 중 대표적인 것이 인터넷을 통해 아동음란물을 제작·배포하는 행위다. 아동·청소년 성보호법의 개정으로 2012년부터 아동음란물 유포자를 적발해 수강명령 등 처벌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이러한 행동에 대해선 개인의 성적 취향(소아성애)일 뿐 범죄라는 인식이 희박하다.

    관음증의 본질

    불법성에 대한 인식은 희박하지만 형사처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또 다른 성도착 행위는 관음증이다. ‘훔쳐보기(peeping)’라고 일컬어지는 이 행위는 피해자를 성적인 방식으로 몰래 지켜보는 것을 말한다. 주로 알몸이거나 옷을 벗은 사람, 때론 성관계 중인 사람을 지켜보는 것이 관음증에 해당하는 행위인데, 최근엔 스마트폰을 이용한 도촬(盜撮)이 관음증적 욕구를 분출하는 경로로 활용된다. 지하철이나 계단 혹은 화장실 등에서 여성의 치마 속이나 웃옷 안을 훔쳐보고 이를 촬영해 유포하는 등 단순한 관음증에서 출발한 행위가 최근엔 첨단 정보기술(IT)과 접목돼 우리 사회에 만연한다. 관음증의 본질은 상대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 비밀스럽게 지켜본다는 사실 자체로 희열을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주로 공공장소에서 단속 대상 행동으로 발현되는 경우가 많다.

    범법행위임엔 틀림없으나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었던 또 다른 비접촉 성범죄는 김 전 지검장의 행위와 관련된 노출증이다. 속칭 ‘바바리맨’이라고 불리는 노출증 환자들은 피해자에게 자기 몸의 일부, 그중에서도 성기를 노출하고 외설적 표현을 하는 행위로부터 즐거움을 얻는다.

    정신의학적 관점에선 자신의 성기를 낯선 사람에게 내보이고 싶다는 반복적이고도 극심하며 자극적인 성적 환상과 성적 충동을 느끼고, 경우에 따라선 행동으로도 옮기는 문제가 6개월 이상 지속될 때 노출증 진단을 내린다.

    피해자 공포·충격 보며 희열과 존재감 느껴

    CCTV에 찍힌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

    하지만 법적으로 이 같은 행위에 적용하는 공연음란죄는 지속성을 담보로 하지 않으며 환상이나 충동만으로는 처벌하지 않는다. 노출증 행위자는 동의하지 않은 상대방에게 자신의 성행위를 보여주려고 야외에서 성관계를 하기도 하고 행인을 자신의 차량으로 불러 자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노출증은 피해자가 드러내는 충격과 공포의 반응으로부터 자신의 존재감과 성적 희열을 느낀다.

    그렇다면 비접촉 성범죄자는 차후 접촉 성범죄를 저지르게 될까. 이에 대해선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성범죄에 관한 발달사적 연구들은 이미 검거된 성범죄자들을 상대로 수행하는데, 약 30~40%가 과거 아동·청소년 음란물 중독이나 관음증, 혹은 노출증이나 물품음란증 등 성도착에 해당하는 문제행동을 보였다는 비공식적 보고가 존재한다. 즉 재범률이 낮지 않다는 것인데, 보다 학술적으로 엄격한 방법론을 적용한 연구들에선 그 비율이 10% 내외로 현저히 감소한다고 알려진다.

    이런 연구 결과들은 성도착에 해당하는 비접촉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차후 접촉 성범죄를 저지를 것이란 전제는 적절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한 가지 연구는 눈여겨봐야 하는데, 강간 등의 접촉 성범죄를 이미 저지른 고위험 성범죄자군의 경우 가학적인 성적 환상은 재차 성범죄를 저지르는 데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이런 연구 결과는 성도착이라고 해서 모두 성범죄 재범으로 연결되는 게 아니라 성도착의 내용이 무엇이냐, 그리고 정도가 어떠하냐에 따라 위험추구 행동의 양상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한다.

    스트레스 심하면 뒤늦은 발병

    그렇다면 이 같은 일탈적 성도착이 발생하는 원인은 뭘까. 정신분석학자들에 따르면 어릴 때 이른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심했던 경우 타인에게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려고 성기를 노출하거나 성적으로 접촉하려는 충동이 강해진다고 한다.

    프로이트는 아이들이 본능적으로 이성 부모에 대한 독점욕을 타고나는데, 3세 정도에 이르면 가족 내에서 동성 부모의 존재를 인지하게 되며 이때부터 이성 부모에 대한 독점욕을 포기하는 대신 동성 부모와의 동일시 과정을 거치게 된다고 했다. 이때 부모의 태도가 과도하게 억압적이면 일종의 ‘소아 노이로제’ 상태에 놓이게 되는데, 남아의 경우 이런 상태에서 경험하는 불안감을 거세불안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문제는 이 같은 불안감이 성인이 돼서도 극복되지 않을 경우, 자신이 남성으로서 부적절하다고 느끼는 것인데, 이런 상태를 벗어나려고 남성성을 과시하고자 하는 욕구가 성도착으로 발현된다고 했다. 피학대 아동에게서 관음증 등의 성도착 경향이 나타나는 것은 이 같은 주장을 지지해주는 결과다.

    행동주의 학습심리학에 따르면 소아청소년기에 비정상적인 성적 흥분과 성적 공상을 일으키는 미디어에 과도하게 노출되는 상황이 성도착을 유발한다고 본다. 소아청소년 시기는 충동 조절 능력을 배양하고 좋은 습관을 배워야 할 중요한 시기다. 하지만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왜곡된 성, 즉 잘못된 성적 행동에 보상이 따르는 부적절한 장면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경우 관찰학습이나 대리학습 과정에 의해 성적으로 도착적인 욕구나 행동이 습득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아동음란물 중독이 아동성범죄, 즉 소아성애로 이어지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메커니즘이다.

    性집착 부르는 가부장적 사고

    성범죄자 중 성도착으로 진단받은 이들의 심리적 특성은 어떨까? 만일 그와 같은 특성을 변화·개선할 수 있다면 성적 도착의 경향성이 감소해 성범죄 재범 억제에도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관음증은 대개 15세 이전에 시작되고, 노출증은 18세 이전에 시작된다는 등 성도착은 주로 청소년기에 발병한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소아성애 등의 성도착을 고착형(fixated)과 퇴행형(regressed)으로 나누는 주장도 있다. 고착형은 청소년기에 이미 성도착 경향을 보이면서 장기간 지속되는 유형이지만, 퇴행형은 원기 왕성한 젊은 시절엔 이성과 정상적인 성관계가 가능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가 심해지는 경우 뒤늦게 발병한다. 이는 바바리맨 중 다수가 기혼이거나 연인을 두고 있으며, 발기부전 등 약간의 성기능장애를 지니고 있음으로도 확인되는데, 일상적 스트레스의 가중이 성인기 성도착 경향을 뒤늦게 야기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양상이 어떤 것이든 성도착자들에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심리적 특성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성인지 왜곡이다. 성적 욕구를 억제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강한 믿음을 갖거나, 왕성한 성적 표현은 남성성의 발로라는 가부장적 사고가 성에 대한 집착을 부른다. 음란물 중독 등 과도한 성중독 행위가 성도착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특성과 함께 이들은 일반인보다 고립감과 절망감 등을 상대적으로 더 심하게 느낀다고 알려지는데, 성도착증을 지닌 성범죄자들에게서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등의 임상 증세도 함께 발견되는 것을 보면, 대인관계에서의 문제가 기분장애나 성도착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2009년부터 성도착증을 지닌 성범죄자에게 심리치료를 제공했다. 당시엔 치료감호소(현재는 국립법무병원) 내에 성범죄자치료및재활센터를 뒀지만, 이후 인성치료재활센터로 개칭, 확대했다. 현재 이곳에선 화학적 거세를 위한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를 집중적으로 제공한다. 정신성적장애자에 대해선 특히 인지행동치료뿐 아니라 사회기술훈련 및 왜곡된 성적 환상에 대한 혐오요법을 적용한다. 또한 항우울제나 신경안정제 등 우울과 불안을 줄이고 충동조절을 완화하는 약물치료도 병행한다.

    약물치료와 심리치료

    하지만 다양한 시도에도 성도착 증세의 호전은 녹록지 않은 듯하다. 얼마 전 필자는 성범죄자치료심사위원회 참석차 국립법무병원을 방문했다. 그동안 치료를 받아왔던 정신성적장애자, 즉 성도착증을 지닌 성범죄자들을 하루 종일 면담·평가했다. 피평가자들은 노출증, 소아성애, 물품음란증 등 다양한 성도착 증세를 호소했는데, 전반적으로 이들이 느끼는 가장 큰 문제는 스스로의 욕구 통제에 확신이 없다는 점이었다. 물론 주사제로 제공되는 화학적 거세치료를 받는 동안은 잠시 도착적인 집착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지만 약물을 끊으면 다시 성적 판타지가 자신들을 괴롭혔다고 한다.

    이들 중 치료에 가장 저항적인 집단은 친족강간에 이른 소아성애자들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조차 않았기에 심리치료에도 거부적인 태도를 보이고 비협조적이었다. 그러다보니 재활 가능성도 매우 낮아 보였다.

    또한 지능이 현저히 떨어지는 도착적인 성범죄자들의 예후도 매우 부정적일 것으로 예상됐다. 심사평가를 받는 중에도 주의집중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의사소통이나 문제해결력에 결손을 보였다. 재활 가능성이 그래도 존재한다고 확신이 드는 이들은 인지적 능력에 큰 손상이 없고 사회성에 문제가 없으며, 심리치료에 열성적으로 임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자신의 성인지적 사고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 지냈다고 한다. 하지만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무엇이 자신의 부적절한 성적 욕구를 촉발하는지 정확히 알게 됐으며, 어떻게 하면 위험한 순간을 모면할 수 있을지를 이해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아쉬운 점은 이런 주장을 검증할 제도적 장치가 부재하다는 점이다. 이젠 국내에서도 중간처우시설에서 조건부 처분으로 잠시 동안 생활하게 함으로써 치료효과를 단기적으로나마 검증할 수 있는 계기가 있다면 이들의 완치 판정을 좀 더 확신을 갖고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성도착은 근본적으로 조절기능 약화로 발생한다. 적절한 조절기능의 발휘는 사실상 적절한 해소방안의 습득과도 연관성이 높다. 억압적이고 부적응적인 고립된 생활보다는 타인과 어울려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스트레스를 표출해 날려버리는 생활습관이 우리 모두에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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